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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의 면류관을 받은 충성(계 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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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영기 목사

서머나는 소아시아 지방의 서해안에 위치한 중요한 도시로서, 에게 해 전 지역에서 가장 크고 번성한 상업 도시 중의 하나입니다. 에베소, 버가모와 함께 ‘아시아 제일의 도시’ 라는 칭호를 다투던 도시입니다.
이 서머나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종교적 제의가 행해졌으며, 많은 유대인들의 소향으로 그들은 기독교에 대해 공격적인 적개심을 나타났습니다.
언제, 어떻게 이곳에 기독교가 들어왔는지는 분명하게 알 수 없습니다. 53-56년 경 바울의 제3차 전도여행 때 바울에 의해 세워졌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어떻든 계시록에 언급된 일곱 교회 중 하나이며, 빌라델비아교회와 더불어 특별한 칭찬을 받았습니다.
서머나는 지금 터키 서쪽 이즈밀이라는 이름의 도시입니다. 도시 가운데 서머나 교회가 있는데, 지금은 폴리캅기념교회입니다.

이 서머나교회는 책망이 없이 칭찬만 받은 교회입니다.
이 서머나교회에 말씀하시는 분은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분”입니다.
그분은 모든 만물을 있게 하신 분입니다.
요한복음 1:1-3,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그분은 모든 만물을 심판하실 분이십니다.
요한계시록 21:6-8, “다 이루었다. 나는 알파며 오메가, 곧 처음이며 마지막이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내가 생명수 샘물을 거저 마시게 하겠다. 이기는 사람은 이것들을 상속 받은 것이다.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자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비겁한 자들과 신실하지 못한 자들과 가증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마술재이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쟁이들이 차지할 몫은,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바다뿐이다. 이것이 둘째 사망이다.”
또한 그분은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분입니다.
마태복음 16:20, “그때부터 예수께서는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하며,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하며,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그래서 그분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하셨습니다.(고전 15:20-22)

이러한 그리스도께서 서머나교회를 아신다고 하십니다.
1) “나는 네가 당한 환난과 궁핍을 알고 있다.”
말씀 드렸듯이 서머나는 부요한 도시입니다. 지금도 도시 한 가운데 교회가 있습니다. 아주 화려하지는 않지만 깨끗한 거리의 상업지역 입니다.
그 당시에는 물질의 풍요를 누리며 사는 도시였습니다. 그럼에도 교회는 환난을 당했고, 오히려 궁핍했습니다. 서머나 교인들은 환난과 핍박 속에서 엄청난 궁핍을 겪어야 했습니다. 성도들이 이방종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면서 일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당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희생이요 죽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그 자체는 빈곤, 굶주림, 투옥, 때로는 사나운 짐승이나 불에 타 죽임을 당하는 것을 의미 했습니다.
히브리서 11:36-37, “또 이때, 이들은 조롱을 받기도 하고, 채찍에 맞기도 하고, 심지어는 결박을 당하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면서 시련을 겪었습니다. 또 그들은 돌로 맞기도 하고, 톱질을 당하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궁핍을 당하며, 고난을 겪으며, 학대를 받으면서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았습니다.”
아마도 이 정도면 믿음을 저버릴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지금 보십시오. 조금만 손해 본다 싶으면 물러서거나 뒤돌아 앉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때로는 시간 드림이, 때로는 물질 드림이 주님께 드려졌음에도, 기뻐하고 감사하기 보다는 “굳이 이래야 할 거 있느냐?”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히브리서 10:32-39, “여러분은 빛을 받은 뒤에 고난의 싸움을 많이 견디어낸 그 처음 시절을 되새기십시오. 여러분은 때로는 모욕과 환난을 당하여 구경거리가 되기도 하고, 그런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친구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감옥에 갇힌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었고, 또한 자기 소유를 빼앗기는 일이 있어도 그보다 더 좋고 영구한 재산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그런 일을 기쁘게 당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확신을 버리지 마십시오. 그 확신에는 큰상이 붙어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서 그 약속해 주신 것을 받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이제 아주 조금만 있으면 오실 분이 오실 것이요, 지체하지 않으실 것이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그가 디로 물러서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뒤로 물러나서 멸망할 사람들이 아니라 믿음을 가져 생명을 얻을 사람들 입니다.”
그 당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고통이요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당하는 고통보다도, 믿음이 없어 살아계신 하나님의 징벌하시는 손에 떨어지는 것을 더 무섭게 여겼습니다.(히브리서 10:31)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을 오히려 기뻐했습니다.(사도행전 6:41)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가 당한 환난과 궁핍을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 너는 부요하다.”
무엇이 궁핍하고, 무엇이 부요하다는 겁니까?
서머나 교인들은 환난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극도로 궁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영적 상태는 더욱 은혜와 믿음에 부요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라오디게아 교회를 보십시오.
“너는 풍족하고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지만, 실상 너는 네가 비참하고 불쌍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요한계시록3:17)
사람 사는데 물질이 있어야 합니다. 환경도 좋아야 합니다. 그러나 더 있어야 하는 것이 정신적 부요, 그리고 믿음의 부요입니다.
지난 5일 강남교회 봉헌식을 했습니다. 이 교회가 처음 강남동에 건축 될 때 이야기를 돌아가신 조도임 권사께서 해 주셨습니다.
온 교인들이 강가에 가서 돌을 주어 나르던 일. 그래도 권사님의 가정이 형편 조금 나아서 식사를 준비해서 나르던 일.
그 당시는 물질적으로는 어려웠지만 그러나 믿음이 부요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때 보다 훨씬 생활이 넉넉해졌습니다. 먹지 못해 궁핍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흰쌀밥에 고기국만 먹어도 그렇게 감사하던 그런 시절이 아닙니다. 좀 더 입맛에 맞는 거, 그러면서도 건강에 좋은 거 찾아 먹는 시절입니다.
그런데 신앙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그렇게 인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물질이나 시간이 그렇게 인색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제는 주님이 주님이 아닙니다.
마가복음 7:24이하에 보면, 예수님 앞에 한 여인이 찾아옵니다. 그 여인은 자기의 딸이 귀신들렸다고 고쳐 주기를 간구합니다. 들은 척도 하지 않으시던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들이 먼저 배불려 먹어야 한다. 자녀들이 먹을 빵을 집어서 개들 입에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개들도 자녀들이 흘리는 부스러기를 얻어먹습니다.”
지금 이런 신앙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물질의 풍성함이 하나님의 은혜조차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자존심이 “그까짓 부스러기” 그렇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이 주님의 말씀은 옛날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신앙도 돈이 있어야 하고, 내 생활이 좋아진 뒤에나 하는 것으로 생각들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조차도 뜨거운 마음이 없습니다. 찬양에 힘이 없습니다. 기도에 간절함도 없습니다. 말씀 들을 때는 눈을 지그시 감고 듣는 둥 마는 둥 그럽니다. 사람이 이야기 할 때도 그렇게 듣는지 모르겠습니다.
뭡니까?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겁니다. 먹고 사는 건 내 힘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 담에 내 죽은 뒤 천국만 책임져 주시면 된다는 겁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부스러기라도 주님의 은혜가 있어야 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오히려 육신의 삶은 힘들고 궁핍하더라도 주님을 믿는 믿음은 더욱 부요해야 하는 겁니다.
서머나 교인들은 그랬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나는 네가 당한 환난과 궁핍을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 너는 부요하다”는 주님의 칭찬을 들은 겁니다.

2) “또 자칭 유대 사람이라는 자들에게서 네가 비방을 당하고 있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이 자칭 유대인이라는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혹은 전문적으로 스스로 유대인이라고 자랑하는 유대주의자들을 의미 하는데, 이들은 서머나 지방에서 매우 강하여 기독교를 심하게 박해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갈등을 겪었습니다.
사실 하나님 하면 유대인들의 하나님 입니다. 구약 성경은 온통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셨습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그 이스라엘을 책망하셨지만 그래서 그들이 많은 고통을 당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회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이 곧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로마 등 이방나라를 내리치신 하나님은 손을 아예 그 나라들이 다시는 일어서지도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 유대인들이 그러는 겁니다.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니라는 겁니다. 예수 믿는 것은 잘못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으면서도 헷갈리는 겁니다.
유대인들 중 예수 믿는 사람은 그들의 바탕이 유대주의이기에 예수 믿으면서도 이게 진짜인가 싶고, 이방인들 중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옛날부터 내려온 유대주의가 최근에 시작한 기독교보다 더 진짜인 것 같은 겁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자칭 유대 사람들이다.”
자칭. 자기가 자기를 유대 사람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그들을 유대인으로 인정하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로마서 2:28-29, “겉모양으로 유대 사람이라고 해서 유대 사람이 아니요, 겉모양으로 살갗에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할례가 아닙니다. 오히려 속사람으로 유대 사람인 이가 유대 사람이며, 율법의 조문을 따라서 받는 할례가 아니라 성령으로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 할례 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칭찬을 받습니다.”
본문에 보면 “그러나 사실 그들은 유대 사람이 아니라 사탄의 무리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보세요. 유대주의를 내세우는 유대인들이 어떠한 사람들 이었습니까?
그들은 자기들도 못 지는 무거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웠습니다. 그들은 천국 문에 서서 오히려 사람들의 길을 막아섰습니다. 그들은 끝내 하나님의 아픔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한 사람들입니다. 더욱이 이방 땅에서 이들은 이방인들과 이방인들이 섬기는 신에 대해 절충하려는 혼합주의적인 기독교단체를 이루려고 했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그럽니다. “왜 예수 믿어야 하느냐? 우리나라에도 종교가 있지 않느냐?” 예수 믿는 사람들조차도 “꼭 기독교이어야만 하느냐?”고 말합니다.
물론 그런 질문도 가능하다. 그러나 예수 믿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그러면 유대인들의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52:15, “이제는 그가 많은 이방 나라를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 앞에서 입을 다물 것이다. 왕들은 이제까지도 듣지도 못한 일들을 볼 것이며, 아무도 말하여 주지 않은 일들을 볼 것이다.”
이 본문을 헬라인 성경인 구약 칠십인 역은 “그의 일을 알지 못하던 사람이 보게 될 것이요, 듣지 못하던 사람들이 깨닫게 될 것이다.”고 기록하였고, 그것을 로마서 15:21에 인용되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이제까지 듣지도 못한 일들을 보게 된다는데,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일들을 보게 된다는데 그것이 무슨 일일가요?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유대인만이 아니라 세상 누구든지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구원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유대인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섰습니다.
온 세상을 향해 구원이 선포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시며, 그렇기에 세상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쁜 소식이요,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 입니다.
그래서 서머나의 유대인회는 사탄의 회라고 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자 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누구든지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훼방하는 사탄의 모임이었습니다.
“이거 유대교가 진짜 아닌가?” 그리 생각할 것 없습니다.
“꼭 예수 믿어야만 구원 받나? 많은 종교가 있는데.” 그런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하나님의 자녀와 구원 받는 백성 되게 하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믿음이 서머나 교인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칭찬 받은 겁니다.

3) 그리고 주님께서는 서머나 교회에게 칭찬과 더불어 격려와 약속을 주셨습니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보아라. 악마가 너를 시험하여 넘어뜨리려고 너희 가운데 몇 사람을 감옥에 집어넣으려고 한다. 너희는 열흘 동안 환난을 당할 것이다. 죽도록 충성하여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너에게 주겠다.”
장차 받을 고난이 있답니다.
사실 예수 왜 믿었는데요? 고난 받지 않으려고 믿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장차 받을 고난이라니요?
죄수와 양심수는 다릅니다.
죄수는 감옥에 들어간 것이 부끄럽습니다. 왜 그랬나? 후회막급입니다. 그러나 양심수는 감옥에 들어간 것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떳떳하고 당당합니다. 왜 더 분명하게 열심히 하지 못했었나 후회스럽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고난은 부끄럽지 않습니다. 뉘우칠 것도, 왜 그랬나? 후회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당당합니다. 오히려 자랑스럽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고난은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환난은 열흘 동안 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열흘은 꼭 10일 동안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짧은 기간 동안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마치는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영광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는 두려워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 환난과 고통이 제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그것은 잠깐이며, 그리스도께서는 능히 감당케 하시며, 이기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죽도록 충성하라 하십니다.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면류관은 이기는 사람에게 주는 겁니다. 더욱이 생명의 면류관은 믿음의 승리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 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죽도록”
“죽을 때가지”입니다. 그것은 지종일과 변함이 없는 겁니다. 이것은 중단되지도 않으며, 변하지도 않고 계속되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문제점은 처음 사랑을 잃어 버렸다는 겁니다. 그것은 곧 죽을 때까지 사랑하지 못 했다는 겁니다.
“죽기까지”입니다.
요한계시록 7:9이하에, 수를 셀 수 없는 큰 무리들이 흰 두루마리를 입고,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보좌 앞에 어린 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이들이 누구입니까? 거기 14절, “이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린양이 흘리신 피에 자기들의 두루마리를 빨아서 희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환난을 겪었으며, 끝내 주님의 죽으심에 동참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진 것입니다.
환난이 있다고 변하는 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생명의 위협이 있다고 포기하는 것도 충성이 아닙니다. 충성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충성은 큰 환난이 오나, 심지어 죽음이 온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겁니다. 죽었지만 죽은 게 아니라는 겁니다. 죽었지만 오히려 영원한 생명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됩니다.

156년경 폴리캅은 투기장으로 끌려갔습니다. 많은 군중이 모인 가운데 서머나의 로마총독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그리스도를 비난하고 그를 모른다 하라. 그러면 내가 맹세코 너를 놓아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폴리캅은. “내가 86년간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믿어왔는데, 그는 나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시지 않으셨다. 하물며 나의 주인이시며 왕이요 구세주이신 그분을 어떻게 배반 할 수 있겠는가?” 하고 대답합니다.
다시 한번 독촉하는 총독에게 “그대는 헛수고 하고 있다. 내가... 가이사의 운명을 걸고 맹세하노니, 내가 누구며, 무엇을 하는 자인가를 그대가 모른 척 하지 마시오. 내가 지금 하는 말을 똑똑히 들어 두시오. 나는 그리스도인이요.”
그러자 총독은 “이제는 화형에 처하겠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폴리캅은, “그대는 한 시간 정도면 타다가 꺼져버릴 불로서 나를 위협하고 있으나, 악인을 위하여 예비된 장차 올 심판과 형벌의 영원한 불은 모르고 있다. 뭘 주저하시오? 원하는 대로 곧 시행하시오.”
그래서 그는 화형 당했습니다. 그래서 서머나 교회는 지금 폴리캅 기념교회로 남아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여러분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겪는 환난과 궁핍을 알고 계십니다. 어떤 비방과 어떤 고난을 당할지도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그런 환난과 궁핍 그리고 비방과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신앙으로 죽도록 충성하십시오. 분명히 여러분에게도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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