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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좋은 것을 위하여 ! (마 7: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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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신삼철 목사

시작하는 말

맥아더 장군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에서 이런 연설을 했습니다. “온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경제문제다. 경제문제는 군대문제다. 군대문제는 정치문제다. 정치문제는 정치가의 양심문제다. 양심문제는 도덕의 문제다. 도덕의 문제는 종교의 문제다. 종교의 문제는 신학의 문제다.”라고 연설했습니다.

이 시대 수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그 문제는 결국 하나로 귀결됩니다. 신학, 곧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문제입니다. 

"좋은 것"이란 "상질의 것, 훌륭한 것, 유익한 것, 선한 것, 정당한 것, 덕이 되는 것"등을 말합니다. 세상에서도 그러한 것을 구하는 자들을 "상류층 즉 high class"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 많은 자들, 정계에 진출한 자들, 학계의 거두들, 각계의 전문가들"을 상류층이라고 합니다. 즉 생활이 넉넉하여 생활에 구애를 받지 않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과 신앙의 세계에서는 그러한 자들을 상류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의 세계에서 상류층이라고 하면 사회적인 지위를 가지고 따지지 않습니다.

신앙의 세계에서 상류층이라고 하면 "상질의 비전을 얼마나 가졌는가?, 인격이 얼마나 훌륭한가?, 유익한 것을 얼마나 구하는가?, 덕을 얼마나 세우는가?, 은혜생활을 얼마나 잘 하고 있는가?, 깊은 기도생활을 얼마나 하고 있는가?, 숨은 봉사 생활을 얼마나 하고 있는가?"를 보아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하는 상류층 신앙인들의 생활 원리는 ?

1. 좋은 것을 구하여야 합니다.

히말라야 고산족들이 소나 양의 값을 매기는 기준이 재미있습니다. 무게를 따지거나 겉모습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짐승의 버릇을 보고 값을 정한다는 것입니다.

풀을 먹을 때 아래서부터 위로 오르며 먹는 짐승의 값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풀을 뜯어먹는 짐승의 값보다 높다고 합니다. 온통 벼랑뿐인 히말라야에서 안이한 하향 습성에 길들여지면 풀 없는 저지대에서는 곧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마7: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나쁜 것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무리들은 빌라도에게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

이에 빌라도가 저희의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저희의 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자를 놓고

예수를 넘겨주어 저희 뜻대로 하게 하니라"(눅23:23-25)고 했습니다.

무리들은 살인강도 "바라바"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무리가 구하는 대로 바라바를 무리들에게 넘겨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무리들은 살인강도 바라바가 좋아서 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싫어서 바라바를 잘못 구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살인강도를 구한 그들의 후손들에게 살인강도가 많이 생겨났을 거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연의 법칙이나,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초자연법칙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사울의 구한 것은 다윗의 목숨이었습니다. 다윗의 목숨만 거두면 자기의 지위와 신변이 안전할 줄 알았습니다. 사울이 구한 다윗의 목숨은 아주 좋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인들도 시험에 들면은 예수님 당시의 무리들처럼, 사울 왕처럼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나쁜 것을 구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2). 좋은 것을 구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5:14)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사도 요한은 계속하여 "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5:15)고 말했습니다.

좋은 것을 구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들어 주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을 구했다면 그대로 믿고,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원시적인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성화의 단계입니다. 

사도요한은 "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요일5:16)고 말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형제가 신앙적으로 방황하거나 주저하는 일이 있을 때에는 형제를 위하여 하나님께 구하라고 했습니다. 형제의 생명이 위협을 느끼거든 형제의 생명을 구하라고 말했습니다. 

2. 좋은 것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마7: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찾는다."는 말은 "찾다. 구하다. 추구하다. 시도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찾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좋은 것을 찾고, 유익이 되는 것을 구하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시도하라"는 말씀이셨습니다.

1). 나쁜 것을 찾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롬2:8-9)라고 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영광을, 세상의 존귀함을, 세상의 썩을 것을" 구합니다. 그러한 곳에 편당이 있고, 원망이 있으며, 불의와 쟁투가 있습니다. 세상 영광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시듦니다. 세상의 존귀함도 세월을 탑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절대 나쁜 것을 찾지 말아야 합니다. 나쁜 것을 시도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나쁜 것을 추구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을 혼자 좋아하고 찾아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2). 좋은 것을 찾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롬2:6-7)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영광과 존귀는 절대로 썩지 않습니다. 하늘 영광과 존귀에 도움이 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한 것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복락으로 하십니다. 

3. 좋은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도 문 나름입니다. 어떤 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 있는가 하면 어떤 문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있습니다. 어떤 문을 두드리느냐에 따라서 그의 현재와 장래가 달라집니다.

1). 나쁜 문으로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마7: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출입문이 큼지막합니다. 그 길이 넓습니다.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문 앞에 서있기만 하면 저절로 떠밀려 들어갑니다.

그러나 넓은 문 저쪽에는 멸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자와 독사, 뱀과 전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황불 못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2). 좋은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데이 C 쉐퍼드의 “세 가지 황금 문”이란 글을 보면 언어생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층고합니다. “말하기 전에 언제나 세 가지 황금 문을 지나게 하라. 다 좁은 문이다. 첫째 문, 그것은 참말인가?  둘째 문, 그것은 필요한 말인가?  셋째 문, 그것은 친절한 문인가? 이 세 문을 지나왔거든 그 말의 결과가 어찌 될 것인가 염려하지 말고 크게 외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오늘날 이 사회의 위기는 상당 부분 잘못된 말에 기인합니다. 진실을 확인하지 않고 말해 이웃을 곤경에 빠뜨리곤 합니다. 불필요한 말로 실수가 많습니다. 가깝다는 이유로 거칠고 무례한 말을 내뱉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크리스천은 한 가지 문을 더 통과해야 합니다. 곧 기도의 문입니다. 말하기 전에 주의 말씀을 상고하며 진심으로 기도하면 진실한 말을 하게 되고,꼭 필요한 말을 하게 되며,친절한 말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말한 대로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7:14)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문은 언제나 닫혀 있습니다. 찾는 이가 적기 때문입니다. 출입문도 좁고 길도 굉장히 협착합니다. 그러나 길 건너 저쪽에는 축복이, 행복이, 은혜가, 생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눅13:24-27)고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문은 ■들어가기를 힘써야 하며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자가 많으며 ■한번 닫히면 열리지 않으며 ■인간의 공로가 인정을 받지 못하며 ■영원히 버림을 받게 됩니다.

끝맺는 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위해 하나님께 먹지 못할 돌을 구하지 맙시다.

남을 칼을 구하지 맙시다. 가난한 자를 위해 뱀을 구하지 맙시다. 이웃을 위해 전갈을 구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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