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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의 장애물을 뛰어 넘어라 (마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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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병의 목사

‘예수 믿고 변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는 말처럼 변하지 않는 진리는 없습니다.
예수를 믿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여러 가지 영역에서 놀라운 변화를 경험합니다.
그 중에 하나는 기도를 하고 싶어 하는 열망입니다.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면  의식과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태어난 아이가 숨을 쉬느냐 안 쉬느냐 하는 것은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를 확인하는 가장 기초적인 검증입니다. 젖을 잘 먹느냐 안 먹느냐, 노래를 잘 부르느냐 못 부르느냐 하는 것은 생사 검증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그러나 호흡을 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확인은 생사여부와 직결되어있습니다. 영적인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최초의 갈망은 기도를 하고자하는 것입니다.
(롬 8: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생명이신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모본을 보이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고 곧 바로 ‘주여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요청했습니다.(눅11:1) 이리하여 가르쳐준 기도문이 바로 주기도입니다.

1. 기도의 열망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의 사역의 초기에 있었던 주님의 기도생활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인간의 모습을 입고 오신 주님의 삶과 그의 사역에 있어서 기도는
빼어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삶이였고 사역이었고 사역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주님이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하셨다는 것은 기도의 중요성을 말하기 전에 주님이 기도를 얼마나 열망하셨는가를 보여줍니다.
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성도는 많습니다. 기도의 열망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기도생활에 실패하는 이유는 중요성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열망을 갖고 있지 못해서입니다.
그러나 기도의 열망이 있다고 반드시 기도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 기도의 열망을 실현할 수 있을까요?

2. 기도의 장애

그것은 장애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기도의 중요성도 알고  기도의 열망도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해야 하겠는데 합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잃은 체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도하는 한국교회라는 그 화려한 명성과는 달리 최근 통계로 발표는 한국교회는 기도를 잃어가고 있다 것입니다.
한국교회 성도들의 평균 기도하는 시간은 평신도들이 5-10분입니다. 제직들이 10-15분이구요. 그리고 성직자들이 평균 20-30분으로 나왔습니다. 성직자라고 별 차이가 없습니다.
왜 우리는 기도의 중요성도 알고 열망도 있지만 기도에 실패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기도의 장애물을 극복하지 못한 때문입니다. 이 기도의 장애를 뛰어 넘어야 합니다.
기도의 장애 중에 가장 보편적인 장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분주함과 피곤함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바쁘게 삽니다. 그리고 피곤합니다. 그래서 기도생활을 실패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핑계입니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런 핑계를 할 수 없도록 우리에게 도전하셨습니다. 유난히도 바쁘고 피곤하게 하루를 보내셨던 우리 주님은 그 바쁘고 피곤하심으로 기도를 중단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피곤하고 바쁘시기에 기도로 극복하셨습니다.  자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막 1:35)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예수님은 어디서 기도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언제 기도하셨습니까?
여기 우리가 놓치기 쉬운 단어를 꼭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단어입니까? ‘
오히려’이 ‘오히려’ 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21절에 말씀을 보면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냥 밥 먹고 휴식을 취하셨습니까? 회당에 들어가신 주님은 가르치셨습니다. 사역을 하셨다는 말입니다.
‘가르치는 일,  얼마나 열정으로 가르치시는지 모든 사람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워 하셨습니다. 가르치시는 일만 하셨습니까? 23-28절을 보십시오.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을 만납니다. 주님이 그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회당에서 나와서 심방을 가셨습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을 앓고 있어 그녀를 고쳐주셨습니다. 해가 저물어 갑니다.
집으로 가셔서 샤워하고 침대에서 휴식을 취하셨나요? 32-34절을 보십시오.
저물어 해질 때 많은 병자들이 그분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기다립니다. 주님은 그들을 다 고쳐주셨습니다. 귀신 들린 자들의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다음 날이었습니다.
35절을 다시 읽어 주십시오. “새벽 오히려 미명에 ...기도하시더니 ”
전날 안식일에 너무나 바쁘고 피곤한 하루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새벽에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나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전날의 바쁨과 피곤함을 기도로 극복하신 예수님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얼마 전 저는 기독교서점에서 윌로우 그릭 처치를 담임하고 있는 빌 하이벨스 목사님이 쓴 책한 권을 샀습니다. 그 책의 제목은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 이것은 매우 성서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님이 기도관입니다. “나는 너무 바빠서 기도한다.”
루터도 일찍이 그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매일 3시간씩 기도한다.  그러나 요즘은 너무나 바빠서 5시간을 기도한다.” 이는 얼마나 성서적이고 역설적 진리인가요?
목사의 직업이 편안하기만한 직업은 아닙니다. 목사에게 언제나 기분 좋은 일만 일어나지 도 않습니다. 성도는 목사를 잘 만나는 것이 복이라고 하지만 목사는 교회 잘 만나는 것도 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복이 되는 목사가 되었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도  목사에게 복이 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갈망하십니까?

3. 기도의 실현을 위한 준비

장애물을 극복할 뿐 아니라 주님은 더 나아가  기도의 실현을 위하여 두 가지 준비를 하셨습니다. 하나는 장소의 준비요 두 번째는 시간의 준비였습니다.
새벽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기를 원하시면 조용한 시간과 조용한 장소가 준비되어야 합니다. 소위 Quiet time, Quiet Place를 선택하셨습니다. 눅 22:39절에 보면 주님이 이러한 기도생활은 매우 습관적이었습니다. 자기규례란 말이 습관을 말합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도 그분은 그 자리에 나가셨습니다. 주일성수하는 습관 주일 교회 가는 습관 성경 읽는 습관 기도하는 습관 전도하는 습관. 아주 복된 습관입니다.
이렇게 기도의 열망과 장애물극복과 준비와 함께 결과를 기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4. 기도 결과로의 사역비전

주님은 기도하시고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는 ‘가까운 마을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라 나는 이를 위하여 왔노라.’제자들에게 말씀했습니다.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려는 위대한 비전을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비전 선포는 바로 기도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그날에 하나님의 뜻과 행동의 방향을 알게 하시고 그리고 사역의 능력을 공급받는 파워충전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제자들에게도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습니다. 기도의 십일조라도 드리십시오.
“당신이 기도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쁜 것은 당신은 정말 너무 바쁜 것입니다.”
기도는 중요성의 이해와 열망이 필요합니다. 열망만 가지고도 안  됩니다.
장애물을 극복해야 합니다. 바쁨과 피곤하다는 장애물을 주님같이 극복해야 합니다.
이번에 보니까 노인도 가능 젊은이도 가능 어린이도 가능 간난아이가 있어도 집이 멀어도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준비가 있어야 실현됩니다.
그리고 사역의 분명한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할일도 없다고 생각하면 기도할 필요를 느낄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기도의 장애를 뛰어넘는 여러분 다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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