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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이유와 소망을 확실히 합시다 (벧전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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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덕재 목사

만약 어떤 선생님이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학생들에게 “너희들 그냥 운동장을 5바퀴 뛰어라”라고 한다면, 학생들이 과연 열심히 뛰겠습니까? 이유도 모르고 소망도 없이 그냥 뛰는 학생들하고 육상대회에 나가기 위해 연습하는 육상부 학생들하고 그 뛰는 모습이 분명히 차이가 나지 않겠습니까? 이유와 소망이 분명할 때 힘이 있고 활력이 있고 열정이 있습니다.

이 이치는 신앙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유와 소망이 분명할수록 그의 삶은 아름답고 힘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목회의 기간동안 사람들을 대하면서, 거듭거듭 안타깝게 확인해 오는 영적 현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한국의 교회에 다니는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이 왜 예수님을 믿는지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교회에 다니다 보면 믿음이 생기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 혹은 그냥 느낌이 좋으니까 좋은 것이라 생각하여 일요일이면 교회에 다니는 습관이 되어, 자신이 일요일이면 꼬박꼬박 교회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그리스도인이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현실을 대할 때마다, 사람이 진리 앞에 명확하게 직면하면 참과 거짓 둘 가운데 하나를 분명하게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진리에 대하여는 모호하게 놔두는 것을 좋아한다는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말이 확인이 됩니다.

이런 어중간한 태도, 회색의 종교인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은 그들은 복음의 능력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라고 약속하였는데, 기독교 문화에만 익숙해진 종교인들에게는 이런 체험이 전혀 없습니다. 또 이런 껍데기 종교인들은 그들의 종교로 고난을 이기지 못합니다.

이런 류의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지만, 마음과 가치관은 세상사람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마음의 신앙이 명확하지 않은데 어찌 삶이 그리스도인답기를 기대하겠습니까?

예수님 믿는 신앙은 무조건 믿다보면, 자연스럽게 믿음이 생겨나고 그런 류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신앙의 이유와 소망을 분명히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 명확한 복음의 메시지를 따라 하나님께 응답하는 마음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정직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의 생애에 인격적인 회심의 순간이 있습니다. 나는 죄인이고 예수님은 죄인된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사랑의 주이심을 알고 깨닫고 예수님을 나의 인생의 주님으로 모시는 회심의 결단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조건 믿으라고 윽박지르지 않습니다. 도리어 인생의 본질을 깨우치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우치시고 그 이유와 소망이 분명한 멧세지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의 믿는 도리에 대하여 명확하게 알고 이해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또 매우 유익한 일 아니겠습니까?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늘의 말씀, <벧전3:15>은 우리 신앙의 이유와 소망을 다른 사람에게 대답하고 설명할만큼 선명하게 이해하라고 깨우칩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신앙의 확신을 위한 것을 넘어서 우리가 전도자로서 살아가는 영적 준비를 갖추라는 명령입니다.

교회에서 왠 골든벨이냐고 의아해하실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냥 재미있자고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복습 시험(review test)을 하는 목적은 성경의 핵심 멧세지인 복음 진리에 대하여 우리 교인들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을만큼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함입니다. 골든벨은 그 목적을 위하여 즐겁고 기쁘게 하기 위한 방법일 뿐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마틴 로이드 존스는 사람이 죄 가운데 딩구는 제일의 이유는 무지(無知)라고 지적합니다. 인생의 진실에 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생명력있고 힘있게 사는 삶을 가로막는 제일의 이유입니다.

물론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성령님의 역사가 말로 다 설명되고 표현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역사가 있게 하는 복음의 멧세지, 인간과 하나님에 대한 진리는 명확합니다.

내가 믿는 복음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베드로가 지적하였듯이, 혼란한 세상 가운데 세대를 본받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사는 능력입니다. 내가 믿는 도리에 대한 선명한 이해가 고난 가운데서도 선을 행할만큼 나의 심지를 반듯하게 세우며 세상을 이기게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우리의 대빵(?)으로 믿고 따르는 이유와 소망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을 만큼 명확한 답변을 준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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