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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루지 못한 꿈 (행 16: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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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성철 목사

평생을 목발에만 의지하고 살았던 한 아버지가 어느 날 스스로 걷기를 결심하고 홀로 걷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다가온 맏딸의 결혼식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식구들은 아버지 대신 삼촌이나 이모부가 그 일을 담당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기필코 자신이 딸을 데리고 들어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홀로 걷는 연습은 피나는 훈련과도 같았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 씩 넘어져서 몸 이곳 저곳이 멍들고 깨어지곤 했지만 아버지는 걷는 연습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맏딸은 그러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왠지 마음 한 구석에 답답함과 불안함이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맏딸의 마음에는 건강하지 못한 아버지보다는 삼촌이나 이모부가 자신의 팔을 붙잡아 주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 전날, 맏딸이 신발장 위에 놓여진 하얀 운동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불안한 마음이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날, 결혼식장에 뒤뚱거리며 나타난 아버지는 그 하얀 운동화를 신고 있었습니다. 맏딸은 원망과 분노가 솟구치기 시작했습니다. 하얀 운동화를 신고 뒤뚱거리며 자신에게 매달려 입장하는 아버지가 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결혼식 내내 아버지의 하얀 온동화와 손님들의 수근거리는 소리가 맏딸을 괴롭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운동화를 사준 원수같은 사람도 원망스러워졌습니다. 맏딸은 오랫동안 가꾸어온 아름다운 결혼식의 기대와 꿈이 산산조각이 나는 아픔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수치스러움과 원망과 미움으로 인해서 그녀는 한 동안 결혼식 사진을 집안에 걸어 놓지도 않았습니다. 친정에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와 하얀 운동화가가 준 상처가 맏딸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맏딸은 처음으로 친정 아버지를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수척해진 얼굴로 아버지는 딸의 손을 잡고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애야, 느이 남편에게 잘해라. 네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사실 난 네 손을 잡고 걸어 들어갈 마음조차 없었단다. 그런데 네 남편이 날마다 찾아와서 나에게 용기를 주었고 걸음 연습도 도와주었단다. 그리고 내가 넘어질까 봐서 편안한 운동화도 사다주었지. 그리고 나에게 몇 번이나 말을 하더구나. 아버님! 천천히 걸으셔야 합니다. 정말로 천천히 걸으셔야 합니다. 난 그때 알았다. 내 딸이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얘야! 네 남편 참 좋은 사람이다" 맏딸은 그때서야 하얀 운동화를 사준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맏딸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그리고 그 눈물은 그 동안 자리잡고 있었던 모든 상처를 깨끗하게 씻어주었습니다. 맏딸은 산산조각이 났다고 생각했던 결혼식에 대한 기대와 꿈의 조각들 속에 하나님께서 숨겨놓으신 참 보배가 있었음을 그때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기대나 꿈이 깨어지면 너무나 쉽게 상처받고 아파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환경을 탓하거나 관련된 모든 이웃을 비난하고 미워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방법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들을 이루시기 위해서 인간들의 꿈들을 과감하게 깨뜨리십니다. 그리고 깨어진 꿈의 조각들 속에 귀한 선물들을 숨겨 놓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한 문을 닫으시면서 더 좋은 다른 문을 여시는 것입니다.

1. 이루지 못한 꿈

오늘 본문에는 꿈을 이루지 못한 사도 바울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꿈을 이루지 못한 사도 바울의 이야기는 이루지 못한 꿈 때문에 아파하고 실망하며 잠 못 이루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깨달음과 큰 위로를 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도가 된 바울에게는 간절한 꿈이 하나 있었습니다. 소아시아 지역에 가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아름다운 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길이 열리지 않으면 더 애써서 그 길을 가려고 했습니다. 본문은 "애쓰되"라는 말로 이러한 바울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바울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세워진 하나님의 위대한 일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죽은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온전히 버린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수많은 고통을 당한 사람입니다. 어쩌면 "나를 본받아라"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시아 지역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싶어하는 바울의 소원은 세상적인 소원이 아니었습니다. 귀하고 아름다운 소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위한 소원이 아니라 주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위한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소원은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착하고 성령 충만하다는 이유로 우리들의 꿈들이 항상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히 살았다는 이유로 우리들의 소원들이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선하고 믿음과 성령이 충만해도 그리고 우리의 꿈들이 소박하고 진실해도 이루어 지지지 않은 꿈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본문을 통해서 이 진리를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루어지지 않은 꿈 때문에 하나님께 불평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이렇게 충성했는데, 내가 이렇게 헌신했는데, 내가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했는데--- 왜? 나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지> 라는 생각은 우리들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사단의 유혹입니다.

2. 막고 여시는 하나님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들이 주의 깊게 보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이유가 바로 하나님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주변의 어려운 환경들이 바울의 꿈을 막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능력이 꿈을 이루기에 부족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바울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막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무시아 앞으로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고 증거합니다. 바울이 꿈을 이루지 못한 이유는 성령님께서 그 길을 막으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성령님께서 어떻게 바울의 길을 막으셨을까? 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쉽게 얻을 수 있는 답은 바울에게 주어진 질병입니다. 바울이 아시아 지역으로 나가려고 준비하고 출발하려고만 하면 바울이 몹시 아프기 시작한 것입니다. 몸이 나아서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면 또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바울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니야로 떠나기를 힘쓰니"라고 했는데 여기에 사용된 "우리"라는 단어 속에는 오늘의 본문을 기록하고 바울의 질병을 담당한 의사 누가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성령님께서 바울의 발길을 막으신 다른 방법들도 있었겠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성령님께서 질병을 사용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은 우리들의 길을 여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들의 길을 막기도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들의 질병을 치료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질병을 치료하시지 않으시고 때로는 사용하시기도 하십니다. 성령님은 애쓰고 힘쓰는 우리들을 도우십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들의 애쓰고 힘씀을 수포로 돌아가게도 하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로 인하여 낙망하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본문이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애쓰고 있었던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게 하셨습니다.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바울에게 마게도냐로 와서 도와달라"는 환상이었습니다. 가고 싶은 길이 막혀 있었던 바울은 이 환상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얼른 바꿉니다. 바울은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소아시아가 아니라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바울과 누가는 마게도냐로 가려고 힘을 씁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몸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바다에 바람도 없었기에 즉시 배를 타고 빌립보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일만에 루디아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에 빌립보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선교지의 변화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놀라운 전화점이 되었습니다. 많은 역사가들은 만약 바울이 자신의 소원처럼 소아시아로 진출했다면 기독교는 지금처럼 전 세계에 확산되지 않았을 것이라고들 말합니다. 바울이 소아시아를 포기하고 마게도나야아 지역으로 나아갔기에 복음이 세계 제일의 나라였던 로마를 정복하게 되었고, 복음의 로마 정복이 오늘날의 거대한 기독교를 낳는 씨앗이 되었다는 의견에 많은 학자들이 동의합니다.

바울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결국은 잘 된 일입니다. 바울의 꿈을 막으신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더 좋은 일들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분명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문을 닫으시면 반드시 더 좋은 문을 여신다는 진리를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바울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다른 문을 여신 하나님 때문에 바울은 더 위대한 일, 꿈꾸어보지 못한 일들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일들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들의 꿈을 막으십니다.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생각하고 다시 고기잡이가 되어야겠다는 베드로의 결심은 텅 빈 그물로 인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새로운 문을 여시고 위대한 사도의 삶을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리 마태를 부르셔서 물질의 부요함을 막으시고 새로운 길인 영적 부요함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중간에 막지 않으셨다면 그는 추악한 이름만을 남기게 되었을 것인데 마태는 한 쪽문을 닫으시고 새 문을 여신 하나님의 은혜로 가장 위대한 책 중에 하나인 마태 복음서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죄인 중에 죄인의 자리에서 영광스러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좋은 문을 열어 주시기 위해서 우리들의 소원의 문들을 때때로 닫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3. 기억해야 할 영적 교훈들

이제 오늘의 본문에서 삶에 적용해야할 영적 교훈들을 찾아봅니다.

1>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간직한 계획보다도 훨씬 더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들에게도 우리들의 소원보다도 훨씬 더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가장 아름답고 온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길을 위해서 다른 문을 닫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선함이나 충성에 쉽게 마음을 움직이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일을 위해서는 다른 한 문을 과감하고 냉철하게 닫으십니다. 그러므로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에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잘못으로 문이 닫혔다면 회개하면 됩니다. 아니라면 새로운 문을 여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주시하면 됩니다. 때로 질병이 나의 발목을 잡아도 기뻐하십시오. 그 질병이 다른 문을 여시는 하나님의 손길 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친구의 배반으로 꿈이 깨어졌습니까? 그 친구를 너무 미워하지 말아야합니다. 그 친구의 배신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지 않았다면 요셉이 어떻게 감옥에서 술관원을 만나게 되었겠습니까? 왕자 모세는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돕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그의 숨겨진 간절한 꿈은 오히려 그를 살인자로 만들고 말았고 결국은 광야의 연약한 목동이 되게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깨어진 꿈의 조각들 속에 하나님께서는 귀한 보화를 숨겨두셨습니다. 40년이라는 긴 세월의 훈련을 통해서 모세는 마침내 그 보화를 발견하게 됩니다. 모세는 한 문을 닫으시고 다른 문을 여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옳습니다.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환경을 탓하거나 관련된 이웃들을 비난하는 것은 새로운 문을 여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놓치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문이 닫혔으면 떨리는 마음으로 새로운 문을 여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하면 됩니다.

3> 나의 열심 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 사모해야 한다

바울의 열심이 바울의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바울의 신실함도 바울의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운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자신의 열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결심과 충성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마음껏 쓰시도록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높은 창공을 날으는 독수리는 자신의 힘으로 날으는 것이 아니라 바람의 힘으로 날듯이, 신앙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일하는 것입니다.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일하시도록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직 자신의 열심 하나만 붙잡고 살았던 야곱이 얍복강 가에서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붙잡았습니다. 자신의 미래가, 자신의 가족의 행복이 자신의 열심만으로는 지킬 수 없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자신과 온 가족의 삶을 복되게 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울며 밤새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입니다. 우리 스스로 열심이라는 우물만을 파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샘에 우리의 몸을 담그기만 하면 됩니다. 지나친 우리의 열심은 오히려 우리를 망가뜨립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살게 하고 승리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은혜의 문을 여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온전히 순종하여야 합니다.

맺는 말

지나 온 한 해에 이루지 못한 꿈들이 많이 있습니까? 그 일로 인하여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있습니까? 이루어지지 못한 일들로 인하여, 환경을 탓하거나 이웃들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더 좋은 것들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문을 닫으신 것뿐입니다. 그러나 이제 곧 하나님께서 더 복된 문을 여실 것입니다. 성탄절은 인간의 죄 된 문을 닫으시고 복된 새 문을 여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세상은 성탄절에 어떻게 움직이던지 나두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새 문을 여신 예수그리스도만을 바라 보아야할 것입니다. 깨어진 우리들의 꿈의 조각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숨겨두신 귀한 보물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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