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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은 온전한 쉼표 (마 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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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덕만 목사 (아름다운교회)

예수님의 초대장을 받고 아름다운 교회에 오신 여러분은 환영합니다. 잘 오셨습니다.
우리 옆 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참 잘 오셨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초청장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초청은 부담이 되고 곤란한 초청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초대는 기분이 좋게 기대되는 초청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귀한 초대장이 도착했습니다. 이 초대장은 예수님이 오늘 여러분에게 보내 주신 초대장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듣기만 해도 편하고 기분 좋은 초대입니다. 여러분은 이 예수님의 초대장을 받고 이곳에 오신 줄 믿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치고 스트레스를 안받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특별히 직장인들은 누구나 직장이라는 조직에서 승진과 인정받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습니다. 또 미래에 대한 스트레스를 갖고 있습니다.

학생도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시험 때만 되면 ‘특공대’가 아니라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여러분 특공대 뭔지 아시죠? 특공대는 특별히 공부도 못하면서 대가리만 큰 사람을 가르치는 말입니다. 학생들도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심지어는 젖 먹는 아이들도 제때 젖을 주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인간관계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가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경제적인 심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스트레스를 안 받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모세는 그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시편 90편 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
그렇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인생 70-80년의 삶을 살면서 대부분의 시간은 수고하고 슬퍼하면서 무거운 짐을 진 채 갈등하면서 살아가는 날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프랑스 루블 박물관에는 씨로뎃 트리오슨이란 사람이 그린 그림이 있다고 합니다. 그 그림에는 벼랑에 한 남자가 부러져가는 나무를 한 손으로 잡고 있고, 그 등에는 노인이 업혀 있고 한 손으로는 아내의 손을 잡았고 그 아내의 가슴엔 아기가 있고 등 뒤에 또 다른 아이가 있는 그림입니다. 그 그림의 제목이 “한 남자의 삶”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모습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잡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잡고 마음을 놓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잡고 있는 그것은 안전합니까?
여러분은 어떤 짐을 지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등에는 무엇이 매달려 있고 여러분의 손에는 무엇이 잡혀 있습니까? 여러분은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지경이 아니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려고 술을 먹습니다.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스트레스를 풀려고 밥을 막 먹습니다.
게임에 빠져서 시간을 보내고, 어떤 사람은 잠을 자면서 무거운 짐에서 벗어 나보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밥을 먹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해결하고자 마약을 합니다. 그러나 무거운 짐은 벗어지는 것이 아니고 더 쌓여만 가는 것입니다.
어느 사람의 말처럼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없다는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스트레스가 된다.’라는 말이 오늘 우리의 현실을 잘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우리를 초청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께 나오면 우리는 쉼을 얻습니다.
예수님께 나오면 참 안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온전한 쉼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 무거운 짐에서 쉬게 하십니다.
인간에게 가장 무섭고 무거운 짐은 죄의 짐입니다.
아담 이후의 사람들은 이 죄의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의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죄의 짐이 얼마나 무거운 것이지 모르고 있습니다. 죄는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들의 원인입니다. 많은 사람이 죄 때문에 고통스러워합니다. 모든 고통의 시작은 죄입니다. 죄는 우리에게 자책감과 무거운 짐입니다.
죄의 짐을 지고 허덕이다가 죄의 짐을 지고 지옥을 갑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라는 책을 보면 순례자가 무거운 짐을 지고 갑니다. 이 짐은 죄의 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앞에서 순례자가 죄의 짐을 벗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죄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우리에게 오라 하시고 그 죄의 짐을 벗겨 주셨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친히 담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죄의 짐을 지고 골고다를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죄의 종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의 무거운 짐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8)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예수님은 율법의 무거운 짐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특별히 바리새인들은 600개가 넘는 조항들을 지켜야 했고 외워야 했습니다. 주일이면 멀리 갈 수도 없고 특별히 일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율법은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율법을 십자가에서 완성하셨습니다. 이제는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율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율법의 무거운 짐을 벗겨 주셨습니다. 이 율법과 예수님의 관계는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바울이 너무 자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 믿음의 생활이 무거운 짐으로 느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어떤 노처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노처녀가 어떤 남자와 중매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첫날밤에 남편이 신부에게 종이 한 장을 내어 밀고 서명하라고 했습니다. 신부가 그 종이를 받아보니 그 종이에는 아내가 지켜야할 조건 16가지가 적혀 있었습니다.
첫째, 아내는 몇 시까지 일어날 것,
둘째, 남편이 일어나기 전에 몸단장을 하고 화장을 끝마칠 것,
셋째, 목욕탕에는 남편이 갈아입을 내의를 준비해 놓을 것,
그 이외에도 밥은 어떻게 지어야하며, 반찬은 어떻게 하고, 집은 어떻게 청소하며 등등 16가지 조건이 적혀 있은 것이었습니다.
신부는 하는 수 없이 그 종이에 서명을 하고 그 조건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그 조건들을 지킨다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결국 1년 후에는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몇 년 후 그 자매는 어떤 남자를 만나서 서로 사랑하게 되고 드디어 그 남자와 함께 재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자매가 집안을 청소하다가 우연히 전 남편이 제시한 16가지 조건이 적혀있는 종이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조건들을 다시 읽어 보던 그 자매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현재의 남편을 위하여 자신은 전 남편이 제시한 16가지 조건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도 조금도 어렵거나 부담스러운 느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 남편의 뜻을 따르는 것은 의무에 불과했지만 지금 현재의 남편을 위해서는 사랑으로 하기 때문에 조금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의무감으로 생각하면 무거운 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 아무리 많은 봉사를 하여도 아무리 많은 시간을 바쳐도 그것은 기쁨이고 행복일 수 있습니다 .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는 것이 그것을 다시 짐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초청하시는 목적과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믿음생활이 무거운 짐이 아니라 즐거움이고 은혜라는 사실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질병의 짐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미 생각해 보았던 것처럼 마태복음 8장 17절에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 8:17)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질병을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질병을 위해서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여러분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은 우리의 질병을 낳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공생애를 통하여 많은 환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질병 때문에 무거운 짐이 있습니까? 무거운 짐을 예수님께 나오십시오. 예수님은 그 무거운 짐에서 쉬게 하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죄의 무거운 짐에서 율법의 무거운 짐에서 그리고 모든 질병에서 우리를 쉬게 하실 뿐 아니라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에서 우리를 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무엇입니까? 주님은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라는 시재는 과거형이 아닙니다. 미래형이 아닙니다. 현재형입니다. 지금 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오라는 것입니다. 북한 말로 해석하면 싹다 오라고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55장 1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초청에 응하면 우리는 VIP 대접을 받습니다. 
예수님께 가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초청에 응하기만 하면 됩니다.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구지 찬양하면서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것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신뢰하고 주님께 나오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함께 멍에를 매는 것입니다. 그분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음에 생각하겠습니다.

끝으로 옛날 제가 좋아하던 해바라기의 노래 중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와 함께 간다면 좋겠네
우리 가는 길에 아침 햇살 비치면 행복하다고 말해 주겠네
이리 저리 둘러보아도 제일 좋은 건 그대와 함께 있는 것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이 노래를 가사를 좀 바꿔서 부르면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주 함께 간다면 좋겠네
내가 가는 길에 아침 햇살 비치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겠네
이리 저리 둘러 보아도 제일 좋은 건 주님과 함께 하는 것
주님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주님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우리에게 쉼이 필요합니다. 안식이 필요합니다. 정신적인으로 육체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안식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온전한 쉼표입니다.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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