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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비로운 평안 (요 14:27, 요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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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이봉 목사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
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4장 27절>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6장 33절>

1. 한국인의 인사법은 유대인의 인사와 비슷합니다.

유대인들은‘샬롬’이라는 인사를 주고받습니다.
‘샬롬’은‘평안 하십니까’라는 뜻입니다.
우리도 인사를 할 때 먼저 평안을 묻습니다.
‘다 평안하시지요?’라고 평안을 인사말로 사용합니다.
그만큼 인간 삶에서 평안이 중요하기 때문인 줄 압니다.

또 거꾸로 생각하면, 그만큼 평안하지 못하게 사는 것이 우리들의 생활이란 말도 됩니다.
그래서 만날 때 마다‘평안하시지요?’그런 인사들을 나누는 줄 압니다.
평안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다 귀찮습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평안이 없으면 불행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평안이 돈에서부터 오는 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삶의 기본 생활을 유지하려면 돈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돈이 모든 평안함의 유일한 원천은  아니란 말입니다.
가난한 중에도 평안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이 바로 입증되는 일입니다.
평안하려면 건강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도 옳은 말입니다.
그래서 모두 건강하려고 무척 노력들을 합니다.
건강 중에도 육체적 건강이 있는가 하면, 정신적 건강도 있습니다.
육체는 멀쩡하지만, 마음에 병이 들면 평안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평안은 무엇인가 모자람이 없을 때 평안하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것도 옳은 말입니다.
모든 결핍에서부터 해방되고, 생각하는 대로 다할 수 있을 때 그것을 평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평안을 어디에서 구하려고 하느냐? 에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물질적 번영에서 구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현재의 모습이란 말입니다.

2. 오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한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믿는 성도들이 추구해야 할 평안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법을 그대로 추구해서는 안 된다
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믿는 성도들이 유념해야 할 평안은 무엇입니까?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이 무엇이며, 주님이 주려는 평안은 무엇인가?
이것만 알면 될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무엇입니까?
바로 위에서 말한 대로 돈, 건강, 소유 등이 있겠지요.
그저 많은 것 가지고 있으면, 그것으로 평안한 줄 압니다.
마치 어리석은 부자의 경우에서와 같이, 소출이 넉넉하니 더 큰 창고를 지어서 곡식을 가득 가득 채워 놓고는
‘내 영혼아, 평안이 쉬고 먹고 마시고 즐기자’라고 했다는 그런 식의 생각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그런 평안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의 말씀은‘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또 말씀하기를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
란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평안은 주님과 무관한 물질 안에서, 건강 안에서, 소유 안에서 평안을 누리려고 하지만, 성도들
의 평안은 그게 아닙니다.
그래서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네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한다는 말, 깊이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이 주는 평안은 환난과 시련의 파도가 일어나는 삶의 한 복판에서 누릴 수 있는 평안인 것을 말하고 있습
니다.

이것이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른 점입니다.
고난이 없어진 상태에서 누리는 평안이 아니라, 고난 중에서 얻어지는 평안이란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비
로운 평안이다.
고난 중에 있을 때 사람들은 걱정과 불안에 싸여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약한 인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고난 중에서 평안을 누린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래서 신앙이 약한 자들이나, 아예 무 신앙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예수 믿는 사람들은 미친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한테 미치지 않고야, 어떻게 고난 중에서 평안을 누린다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이것을 <신비로운 평안>이란 말입니다.
주님의 이어지는 말씀을 경청해야 합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
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였습니다.

3. 고난 중에 있을 때 움츠러들지 말고 담대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걱정 근심의 포로가 되기 쉽습니다.
걱정 근심으로 영과 육이 쇠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담대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속에서는 하나님께 간구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고난으로 인하여 신앙인에게는 도리어 하나님 앞에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됩니다.  기도가 진지해집니다.
그런 기도 속에 응답 이상의 더 중요한 다른 목적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과 인격적 교제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는 동안 하나님을 향해 시선이 열리게 되고, 하나님 앞에 눈물을 쏟아내는 간구를 통해 그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것이 신비로운 평안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이루어지게 되면 세상이 주는 평안보다 더 깊은 신비로운 평안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기에 우리 주변에서 극한 가난 가운데서도 찬송을 잃지 않고, 견디기 어려운 핍박과
조롱 속에서도 도리어 감사의 기도를 하게 됩니다.

찬송가 466장에서도 보면,
‘나 어느 곳에 있든지 늘 맘이 편하다.
주 예수 주신 평안함, 늘 충만하도다.
(후렴)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
악한 죄 파도가 많으나,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라고 했습니다.
흉악한 죄악의 고통스러운 파도 속에서도 평안을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최후의 승리를 이미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세상에서는 고난을 당하지만,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하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기 때문
입니다.

이번 주 기독공보에 실린 기사를 읽으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큰 타이틀 밑에‘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년 조엘 소넨버그’의 기사가 실렸습
니다.
내용인즉 Joel Sonnenberg 26세는 갓 태어난지 20개월이 되던 해 40톤 트럭과 승용차의 충돌로 화상을 입었
는데 전신에 3도 이상의 화상을 입어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은 10%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부모님들의 간절한 신앙이 기도의 힘으로 하나님은 역사하여 다시 살게 하였고, 전 세계를 다니며,
절망 속에 있는 장애인들에게 희망의 꽃을 피우도록 희망의 전령사로 다니는데, 이번 국회 조찬기도회에 초대
를 받아 간증하는 말을 듣고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모님은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며, 내가 크리스천 가정에서 주일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것이 매우 기뻤습니
다.
하지만, 내가 그런 가정에서 교회에 출석했기 때문에 예수를 믿은 건 아닙니다.
가장 사랑하고 믿는 부모도 자신이 받는 수술을 대신 받을 수 없었고, 그래서 그가 잡을 수 있는 희망의 끈은
예수 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나와 함께 고통을 느끼고 나와 함  께 누워 주신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고, 나는 그의 친구
가 되었습니다”...
결국 18년 만에 가해자를 법정에서 만나서 용서하면서,‘한 사람을 증오하면서 살기보다 남은 삶을 지금에 처
한 상황에 집중하면서 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말이 더욱 더 감명 깊었습니다.
“길이 있어 가는 것이 아니다, 내가 걸어감으로써 길이 생기는 것이다”는 말... 참으로 깊이 음미해야 할 말이
라고 봅니다.
사람들은 길이 없다고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가노라면, 길이 생기는 것이란 말입니다.
주님은 그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신비로운 평안입니까!
우리 모두 금년 한해 동안 이러한 평안을 경험하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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