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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의 기도(5) (출 16: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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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노강국 목사

오늘은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에 나타난 내용 중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문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와 아울러 예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사실이 과연 어떤 깊은 뜻이 있는 것인지도 같이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먼저 이 “일용할 양식”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하나님의 입장이 무엇인가를 알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이를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오늘 본문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히브리 민족을 해방시키셔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가운데 생겨진 일입니다.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도중, 광야에서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먹을 양식이 없었습니다. 일종의 피난민 생활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먹을 것이 없으니, 자유를 찾아 해방된 기쁨도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종살이 하던 애굽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아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아침마다 광야에 내려주는 하늘의 양식이었습니다. 출 16:31에 이 하늘의 양식에 대해 구체적인 말씀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고도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만나”라 하는 음식을 매일 아침마다 내려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만나를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에서 일용할 양식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을 발견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이 양식과 관련된 내용들을 생각해 보도록 하십시다. 오늘 본문의 4절의 말씀이 아주 핵심이 되는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보고자 하는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의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고 봅니다.

1. 양식이란 하나님께서 내려주신다는 사실.

양식이란 하나님께서 내려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알고 계셨기에 양식의 문제를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신 줄 압니다. 물론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만나라고 하는 양식은 특수한 때에 특별한 양식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만나의 사건을 통해서 일반적인 양식의 의미를 발견해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양식과 관계된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봅니다. 이런 점에서 양식의 문제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를 아울러 생각해 보아야 될 줄 압니다. 우리는 매일 먹는 양식의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전처럼 가난하지는 않기 때문인 줄 압니다. 우리는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식사할 때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이런 우리들의 현실 속에서 이러한 일용할 양식과 관련하여 하나님을 생각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 문제를 오늘은 생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먹는 양식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줄 압니다.

양식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분리할 수 없는 문제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양식의 문제에 대해서 개입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개입은 하나님의 권리인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양식을 받고 이 양식을 하나님 앞에서 먹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은 이러한 양식을 하나님의 선한 선물로 소중히 여기라고 가르칩니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양식은 우리들의 경제 활동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성경적 신앙에 의하면 양식은 경제활동의 결과인 동시에 이것 이상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양식을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 것입니다. 이러한 감사와 찬양은 시 145:15-16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나이다.” 이러한 구약성경에 근거하여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의 식사 기도는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계의 통치자이신 우리 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주님은 주님의 선물을 통하여 온 세상을 먹이십니다. 은혜와 사랑과 자비로써 주님은 모든 육신에게 양식을 허락하십니다.... 주께서는 모든 이들을 먹이시고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들에게 선을 베푸시고, 주님이 창조하신 주님의 모든 피조물들을 위해 양식을 마련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만물을 먹이시는 주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이렇게 양식의 문제가 우리 인간의 경제 활동의 결과를 넘어서서 하나님과 관계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암시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빵의 문제가 인간 중심의 사회에서 결코 단순한 경제 활동의 성취의 문제로 굳어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모든 행위의 성취의 모습은 그 자체의 한계를 갖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빵의 문제가 우리의 경제적 활동의 범위를 넘어서서 하나님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에게서 이는 빵과 감사가 관계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에는 이러한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간직하라는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2. 이 양식은 날마다 거두어야 한다.

둘째로 이 양식은 날마다 거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거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두 가지의 모습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2-1. “오늘”에 담긴 의미

하나는 “날마다”라는 표현에 나타나는 “오늘”이란 의미입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문 중에서 “오늘날”이라는 말과 연관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오늘날”이란 말은 그저 단순히 “오늘”이란 말입니다. 오늘의 양식은 오늘 거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양식의 문제와 관련된 시간적인 이해를 해 보게 됩니다. 이러한 시간성은 양식에 대한 우리 인간의 욕망의 문제와 결부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신 이야기 중에 “부유한 농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눅 12:16-21). 이 농부가 밭에 소출이 풍성한 것을 보고는 지금 창고는 작으니 이 창고를 허물고 새로이 창고를 크게 지어 이 모든 곡식을 쌓아두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는 스스로 이렇게 말합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이 농부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이 이야기를 하시면서, 예수님은 이런 교훈을 주십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렇게 양식의 문제에는 시간의 문제가 개입될 수 있습니다. 이는 주로 우리 인간의 욕망과 관련되어서 개입되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모세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일매일 만나를 거두라고 했는데, 어떤 사람은 매일매일 거두기가 귀찮아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한꺼번에 여러 날 것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날 보니 어제 거두었던 만나는 썩어서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행동한 사람의 모습을 “모세의 말을 청종치 아니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양식에는 매일 매일의 시간성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이는 우리들이 때에 따라 밥 먹기가 귀찮다고 한꺼번에 많이 먹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앞날에 대한 욕망을 경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2. “일용할”에 담긴 의미

두 번째로 양식을 날마다 거두라는 말씀의 또 하나의 의미는 “일용할 양식”이란 표현에 담긴 “일용할”이란 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일용할”이란 말은 양식의 양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양식의 문제는 사회적인 문제와 결부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이 “일용할”이란 표현과 더불어 “우리”라는 표현도 같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양식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이 양식은 단순히 나만의 양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의 양식이고 또 이웃이나 동료와 함께 하는 양식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는 양식의 분배에 대한 기도이기도 한 것입니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 중에는 이렇게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모습이 있습니다. 시 146:7,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또한 선지자 이사야도 하나님의 이러한 모습을 소개합니다. 사 58:7, “(참된 금식은)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들은 필요이상의 과소비와 굶주림 사이에서 이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기도는 우리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기도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과소비적인 생활양식에 대한 인식에서 궁핍한 이웃과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의 모습이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경제 질서의 문제가 요구되는 가운데에서 이러한 기도는 우리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자세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라가츠(L. Ragaz)는 여기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간구한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착취와 이윤 추구에 대해 침묵하는 오늘날의 세계사회가 변화되기를 기도해야만 한다. 우리는 걱정과 탐욕을 극복하기 위해 간구한다. 정당한 노동과 정당한 임금을 위해 간구한다. 실업문제의 해결을 위해.... 알콜 중독과 매춘이 소탕되기를 간구한다. 우상숭배를 위해 봉사하는, 그 기술에 의해 파괴되는 자연보호를 위해 기도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이러한 간구를 깊이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오 하나님, 굶주린 이들에겐 양식을 주옵시고, 빵을 갖고 있는 우리들에겐 정의에 대한 굶주림을 주옵소서(Krister Stendahl, "Your Kingdom Come"에서).”

이렇게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에는 양식에 대한 시간적인 의미와 사회적인 의미가 다 망라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도를 드림으로 인하여 우리 개개인의 물질적인 욕망과 싸우는 우리 자신을 발견해야 할 것이며, 우리가 사는 사회가 하나님의 정의로 바로 세워지기를 바라는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 일용할 양식에서 하나님을 보아야 한다.

양식에 대한 자세는 이러한 인간적인 문제를 넘어서 신앙적인 차원으로 향하게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이러한 양식에 대한 자세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지의 여부와 관계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4절 하반 절에 보면,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이 말씀을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시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5절입니다. “제 육일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예비할찌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이는 매일 매일 만나를 거두라는 원칙을 하나님 스스로 망가뜨리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서 양식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의 절정을 봅니다. 그것은 양식 자체는 우리에게 필수적이고 중요한 것이지만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선물이지만, 이 양식 자체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즉, 양식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먹는 양식 자체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양식의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시험하겠다고 하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님도 이러한 모습에 대해 경고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유명한 5병2어의 표적이 있고난 다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라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수 많은 군중들을 피하셨습니다. 이렇게 숨어서 피해버린 예수님을 사람들은 찾으러 헤매다가 결국 찾고는 “도대체 언제 오셨습니까?”하고 아쉽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요 6:26-2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모세 시대에 만나를 먹고 경험한 사람들도 이러한 자리에 나아가지 못하였습니다. 이들은 만나를 먹었어도 만나 속에 담겨진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믿지 못하였기에 결국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후에 예수님께서도 이 사실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요 6:32-3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은 양식 자체만을 봅니다. 눈에 보이고, 입에 들어가는 양식에서 하나님을 보아야하는데, 양식 자체만을 봅니다. 이는 흔히 “현실은 그렇지 않다”라는 표현으로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는 모습과도 같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눈에 보이는 양식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까? 그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라는 사실을 깊이 알고 간직한 사람에게서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깊이 간직하면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기도>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로 하여금, 이 양식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일상의 삶이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송으로 늘 존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울러 이 양식을 오늘 우리들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이웃들에게까지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굶주린 이들에겐 양식을 주옵시고, 빵을 갖고 있는 우리들에겐 정의에 대한 굶주림을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드림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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