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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건강한 교회를 꿈꾸며 (엡 2: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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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철 목사

일찍이 킬케골은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린 교회를 이렇게 책망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다. 그런데 교회는 더 엄청난 일을 했다. 포도주를 물로 바꾸었다." 이 말을 받아 어떤 신학자는 "현대교회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포도주를 담았던 항아 리마저 깨버렸다. 그래서 그 깨어진 항아리 조각들로 서로를 찌르고 서로를 괴롭히고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 깨어진 항아리 조각에 집사, 장로, 목사도 찔려 피를 흘렸습니다. 교회에 깨어진 항아리들 때문에 사회도 역사도 찔려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일본의 신학자인 우찌무라 간조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가룟 유다가 부럽다. 가룟 유다는 팔아먹을 예수라도 있었지만 현대교회는 팔아먹을 예수조차 없다."

그러면 우리의 교회는 이제 해체되어야 합니까? 교회는 진정 무익한 공동체입니까? 그러나 교회의 허물과 연약함,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이 교회를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지속해 오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구원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를 원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존재하는, 그래서 그 사람들 때문에 이 교회의 미진함이 있음이 사실이지만, 아직도 우리 교회에는 풍성한 하나님의 복이 있습니다. 생명의 복음이 있습니다. 구원의 능력이 교회에 영원히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행복한 교회를 만들어 갈 책임이 너희에게 있다.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갈 책임이 바로 너희에게 있다"고 사도 바울을 통하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주일 날 생신 맞이하신 분을 축하드리면서, 제가 빼먹지 않고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왜 태어나셨습니까?"

오늘 본문에 그 대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함께 지어가기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이유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에 건강한 교회를 만날 수 있다고 하는 것, 행복한 교회를 만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건강한 교회, 행복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요청되어지는 전제가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한 교회는 안일한 나태함 속에 제공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하나님을 예배하는 처소와, 그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도들로 이루어집니다.

변함 없으신 하나님은 언제나 완전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예배하는 처소는 돈으로 지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값싼 재료로 지어졌을지라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면 거룩한 성전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건강한가" 하는 문제가 교회의 건강과 직결되어 있다.

1. 믿음의 건강을 잃어버린 신자.

가끔 잠을 자다 보면 잘 때는 나란히 잤는데, 눈 떠 보면 옆에 있던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눅 17:3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주님이 오셔서, 한 사람을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더니 내가 버려둠을 당했나 보다 했습니다. 살펴 보니 같이 자던 사람이 침대 밑에 떨어져 있어요. 내가 버려둠을 당한 것이 아니고, 그래도 위쪽에 있으니 좀 낫죠?  이유가 무엇인가 했더니 내가 잠을 자면서 코를 골고, 신음 소리를 내고 앓는 소리를 내더래요. 시끄러워서 잠을 못자고 알아서 내려갔다는 거에요.

아무리 세상에 제일 멋진 남편감이요, 오매불망 그 남편만 사모하며 김철 만한 사람 없다고 할지라도 앓는 소리, 코고는 소리는 듣기가 싫은 것입니다.

믿음도 병들면 이와 마찬가지로 앓는 소리를 합니다. 믿음이 병들었을 때 내는 앓는 소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병들어 내는 신음소리는 듣기 참 싫은 소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옵니다. 제 발로 걸어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저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민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그러다가 저들의 믿음에 병이 듭니다. 병이 드니 신음 소리를 냅니다. 수많은 병이 들었던 것 중에, 가나안 땅 정탐에 나섰던 여호수아와 갈렙을 포함한 12명의 정탐꾼 이야기입니다. 그들 중에 열 명이 병이 듭니다. 병이든 저들은 병든 표시가 납니다.

1)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열 사람의 정탐꾼은 믿음이 병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된다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안된다고 하면서 악평을 하고 원망과 불평을 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로 하여금 울고 불고 하게 만들었습니다. 즉 낙심케 합니다. 주의 일에 협력하지 않게 만듭니다.

2) 믿음에 병든 사람은 일감을 놓고도 절대로 일을 하지 못합니다.

뒤에서 잔소리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에 병이 들면 봉사할 거리가 많은데도 절대 봉사하지 않으면서 뒤에서 불평만 합니다. 그러므로 병든 사람은 절대 봉사를 하지 못합니다.


3) 믿음이 병든 사람은 남에게 피해를 줍니다.

자신이 일을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못하게 합니다.

마 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믿음에 병이 들면 꼭 다른 사람의 믿음에 손해를 주고 상처를 주게 됩니다. 그 사람을 가까이하면 병에 전염이 되듯이 나도 믿음에 병들어 버립니다. 열 사람의 정탐꾼은 믿음에 병들었기 때문에 하는 말마다 부정적입니다. 말을 할 때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합니다. 정의의 사도로 둔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건강한 사람은 긍정적이요, 건설적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믿음은 건강한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2. 건강한 믿음의 소유자 - 복된 공동체의 건설자

수 14:8~9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9)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이 말씀은 갈렙 자신이 여호수아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 때 열 두 명이 정탐을 갔다가 보고를 할 때 열 사람이 딴 소리를 했지만 당신과 나는 마음에 성실한대로 보고하지 않았습니까? 당신도 알겠지만 그 때 내가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좋았다고 하는 것은 건강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자기 스스로도 건강한 믿음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의 앞에서 보고를 받고 있던 모세도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다고 하였습니다. 자타가 함께 공인하는 온전한 믿음, 건강한 믿음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병든 믿음은 듣는 사람들의 간담을 녹게 합니다. 간을 콩알만하게 만들어 놓았다는 뜻입니다. 그런 공포심과 불안을 조장하고 믿음에 상처를 주고 손해를 끼칩니다. 그러나 믿음이 건강한 사람 갈렙은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내 편으로 만들려 하지 않고, 자기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하신 바가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굳게 믿고, 그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열 두 사람 중에 열 사람의 말은 안 된다 하고 두 사람은 된다고 합니다. 백성들이 누구의 말을 듣겠습니까? 열 사람의 말입니다. 다수가 옳은 것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소수였지만, 그 소수의 뜻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다수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편에 섭니다.

악평하던 10명과 갈렙과 여호수아는 서로 다른 상황을 보고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동일한 현장을, 동일한 사건을, 어쩌면 동일한 절망과 메마른 광야를 보고 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평과 불평, 원망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리는 절대적인 소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민 14:7~9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실제로 그들이 본 땅은 광야였을 지도 모릅니다. 포도송이를 두 사람이 꿰어 메고 왔다하지만, 이스라엘 전역이 그렇게 비옥한 땅은 아니었습니다. 10명의 보고가,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이 늘 진리는 아닙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육신의 눈으로 본 것에 속지 않습니다. 그것에 현혹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눈으로 가나안 땅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환경이 열악합니다. 지금은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지금은 일할 만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누구 하나 나서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이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평안을 누리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변화된 그 땅을 일굴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바로 그 하나님의 약속을 본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저들로 그 척박한 땅을 풍요롭고 아름다운 땅으로 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대 다수의 보고를 듣고 불평하였을 때, 같이 절망하며, 여호수아와 갈렙이 동조하여, 그 땅에 대한 소망을 갖지 못했다면, 이스라엘 공동체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예배 공동체가 망하는 것입니다. 악평하여 불평과 원망의 소리를 늘어 놓는 저들에게 미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그들과는 달랐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신 1:36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신 1:38 너의 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리로 들어갈 것이니 너는 그를 담대케 하라 그가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그러나 원망과 불평의 소리로 악평하는 저들은, 그들의 지도자 모세와 함께 이런 선언을 듣게 됩니다.

신 1:35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신 1:37 여호와께서 너희의 연고로 내게도 진노하사 가라사대 너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

오늘 우리 교회의 건강은 이 건강한 믿음의 소유자들 때문에 지금까지 지탱되어져 왔습니다. 교회가 세워지고 부흥하며, 성장하고 성숙하는 그 모든 자리마다, 믿음의 권속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환경 때문에 절망하지 않고 환경을 지배하시는 하나님께서 변화시킬 젖과 꿀이 흐르는 교회를 꿈꾸며 악평하지 않았기에 가능했음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자는 교회를 망하게 하는 자입니다. 그들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자신이 망하고, 가정이 망하고, 민족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단 한 번도 하나님은 약속을 어기신 적이 없으십니다. 역사는 우리에게 끊임없는 교훈을 줍니다. 믿음의 역사는 우리로 오늘도 감사하며 더 좋은 것이 아직도 오지 않음을 보고, 내일을 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하나님께 기쁨으로 예배하는 사랑하는 대구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의 남편과, 자녀들이, 그리고 가정이 살 수도 있고, 절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때문에 옆에 있는 성도들이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때문에 이 예배 공동체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이 지역을 소망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들 때문에, 나 때문에 가정이 건강하고, 성도가 건강하고, 교회가 건강하여지는 복이 있으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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