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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꿈을 주신 하나님 (창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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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김형준
 
미국의 어느 신학교에서 사도행전을 강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을 강의하면서 교수님은 당시 초대교회 특징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특징 중에 하나는 주님을 알지 못했던 교회에서 주님을 알아가는 교회, 믿지 않는 자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여 예수를 믿게 되는 전도의 능력이 있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백성들로서 끊임없이 변화되어 다른 사람들까지 변화시키는 정말 이상적인 교회였다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날 많은 교회가 있지만 초대교회와 같이 전도에 관심이 있는 교회는 드물다며 지금 강의를 듣는 학생들 중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를 세우는 목회자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강의를 듣고 있던 한 학생의 가슴에 불같이 뜨거운 것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고백하기를 ‘바로 저거야!’라고 소리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앞으로 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합니다. ‘내가 그런 교회를 꿈꿔야지. 하나님 기뻐하시는 교회를 꿈꾸며 섬겨야지.’하는 꿈을 품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꿈은 계속해서 불타올라 그 후로도 식을 줄 몰랐습니다. 이 학생은 바로 미국 시카고에서 매우 유명한 윌로우크릭 교회의 목사인 빌 하이벨스 목사가 되었습니다.

윌로우크릭 교회는 예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구도자 중심 교회입니다.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교회 중의 하나입니다. 어느 한 신학교 강의실에서 시작된 꿈이 시간이 흘러 구체화되고 결국 하나의 교회로 탄생되게 된 것입니다.

청년의 마음 속에서 자라던 것을 우리는 비전이라고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가슴에 품고 구체화시켜 나가는 삶이 목적이 이끄는 삶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비전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만드는 것은 욕망일 수 있습니다. 비전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향한 계획을 이미 세워놓고 계십니다. 거기에는 물론 저와 여러분을 향한 계획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계획 없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분이 아니실뿐더러 계획 없이 우리를 창조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지만, 그 계획을 이루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 주신 비전대신 자기 꿈과 욕망을 이루는 사람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결국 인생이 허무하고 허망하다는 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어렵고 힘든 인생을 살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비전을 이룬 사람은 평강과 기쁨이 있는 삶을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또 하나님의 비전을 품지만 이루지 못하고 중도 하차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비전을 꿈꾸는 사람이면 누구나 성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이루어갈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오늘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서 해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남은 우리 삶에도 하나님의 비전을 이뤄간 아브라함의 삶의 모습이 새겨지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도 첫째,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는 사람은 자기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두는 사람입니다. 본문은 ‘이 후에’라는 단어로 시작됩니다. 본문 앞에 어떤 말씀이 기록되어 있었을까요? 아브라함은 말씀을 따라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갔지만, 그 땅에 기근이 심하여 식솔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라도 가뭄이 없는 애굽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애굽왕에게 아내 사래를 빼앗기고 맙니다. 가뭄을 피해 잘 살아보고자 간 땅에서도 힘이 없고 능력이 약하여 아내를 빼앗기고 가정이 파탄 날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모든 꿈이 깨지려는 찰나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셨고 아브라함은 아내 사래를 돌려받고 많은 재물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무사히 돌아오긴 왔으나 오자마자 또 조카 롯과 재산분쟁에 휘말리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불러 분쟁이 일어나 함께 살수가 없으니 먼저 비옥한 곳을 택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지금이야 개간하면 되지만 당시 사막에서 물이 없는 곳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롯은 자신이 먼저 보기에 좋아 보이는 곳을 선택합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좋아하고 양보하고 싶어서 그런 제안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깨달은 바가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 인생의 가뭄과 고난, 위기를 피하고 잘 살아보려고 노력해도 하나님이 지켜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큰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면 화가 변하여 복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비록 롯이 좋은 땅을 먼저 택해서 가져간다 할지라도 비옥한 땅보다 소중한 것은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자신이 갖게 될 땅이 황무지라 할지라도 걱정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바로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아브라함에게는 있었다는 뜻입니다.

한 가지 예가 더 있습니다. 롯이 소돔과 고모라에 갔을 때 네 나라의 왕이 연합해서 소돔과 고모라 땅을 공격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밤중에 사병 318명을 데리고 기습해서 숫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조카 롯은 물론 모든 재물을 다시 다 찾을 수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 전체를 함락시키고 패배시킬 만큼 크고 강성한 군대를 가진 적군을 상대로 전쟁을 치른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계획하고 행동했던 전쟁이었음을 승리한 후 아브라함의 고백에서 알 수 있듯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며 살렘왕 멜기세댁에게 십의 일조를 바칩니다. 소돔과 고모라 왕이 전리품들은 아브라함이 다 가져도 좋다고 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전리품들을 취한다고 내 소유가 되는 것 아니요 취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 소유가 안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인생의 생사화복이 사람의 손에 좌지우지 되는 것도 아니요 물질이나 명예, 권세에도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이 인생의 주인 되셔서 부귀와 영광을 주시기도 하고 거둬가시기도 하는 분이라는 것을 아브라함은 마음으로 확신하고 욕심부리지 않고 주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꿈 꾸며 살았던 요셉을 한 번 보십시오. 요셉도 철저히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살았습니다. 노예로 팔려갔을 때 집 주인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했습니다. 현실적으로 희망 없는 삶이었습니다. 외국에 노예로 팔려간 현실 속에서 그야말로 희망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일평생 노예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인의 아내가 멀리 도망가자며, 그렇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주인의 아내와 도망간다고 해서 자유와 행복이 주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라 믿었습니다. 자유와 행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감옥에 가서는 또 어떻게 했습니까? 술 관원의 꿈을 해석해 주었고 술 관원은 요셉을 꼭 기억해 주겠다고 했지만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요셉이 술 관원이나 하나님을 원망했다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습니다. 감옥에서 나가느냐 못 나가느냐는 하나님의 섭리와 뜻에 달려있지, 누군가가 기억해주고 안 해주고 하는 여부와는 상관없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술 관원에게 매이지 않고 하나님께서 오늘 이 길을 인도하시는 것이라면, 감옥 안에서 주어진 길을 묵묵히 가리라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믿음대로 요셉을 세우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며 그 인생을 아름답게 살펴나가셨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누구에게 달려있습니까? 자녀에게 달려있습니까? 돈이나 명예에 있습니까? 행복을 위해 모은 돈이 정작 여러분 자신의 행복을 보장해주었습니까? 짧은 여러분 각자의 경험 속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사람은 하나님께 자기 인생을 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을 말씀 드려 죄송합니다만, 미국에서 삼 년간 목회하다가 갑자기 어려운 일을 당해 한국에 들어가겠다고 했습니다. 그 때 교회 장로님이 저를 붙잡다가 안되니 매우 화를 내셨습니다. 퇴직금도 돌아갈 비행기 티켓도 주시지 않겠다는 것을 설득해서 퇴직금 주시기를 요청했습니다. 약 4500불 정도 주셔서 비행기 티켓 사고 영수증 첨부해서 다시 헌금으로 고스란히 돌려드렸습니다. 제게는 장로님들이 주지 않아도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이라면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물질 때문에 구차해지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첫 사례비 중 비행기 표 값을 추수감사헌금으로 다시 돌려드렸습니다. 쓰던 물건도 다 두고 책 외에는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그저 맡겼습니다. 제 힘으로 열심히 살고자 노력하고 건강해 보려 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달려있지 사람이나 노력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위로부터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다면 사람의 노력은 정말 헛된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이 지키지 않으면 집을 지키는 자, 파수꾼의 수고가 헛되고 하나님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면 집을 짓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는 말씀을 철저하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제가 이삿짐 푸는 것을 지켜보시던 학교 이사장님이 책밖에 없으니 물으십니다. “목사님, 정말 이것밖에 없어요?” 제가 딱했던지 가전이고 뭐고 새것으로 다 채워주셨습니다. 저는 헌 물건 주고 새 물건으로 다 받았습니다. 길지 않은 생을 살면서 물질에 별로 구애 받지 않는 이유는 물질이 풍족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목적을 두고 초점을 맞추는 사람에게 어떻게 보답하시는지를 경험했고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이 돈에 좌지우지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인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께 인생을 맡기십시오. 전리품을 취하지도 않고 풍성한 땅 소돔과 고모라 땅을 취하지 않았던 아브라함도 풍족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자기 인생을 거는 사람은 하나님께 받은 비전과 꿈을 이룰 수 있는 사람입니다.

둘째로 비전을 이루는 사람은 두려움이 찾아올 때 기도의 자리로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1절 말씀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이상 중에’라는 것은 비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깊은 묵상 중에 비전과 더불어 임재하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318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전쟁을 벌여 네 나라의 군대를 이기고 롯과 함께 재물을 찾아왔습니다. 기습공격으로 이겼지만 네 나라의 군대가 아브라함 군대의 실체를 알게 되어 다시 공격해 오면 아브라함은 이길 재간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공도 참 힘들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고 사업을 일구어 놓고 명성을 쌓았는데 쌓은 것을 뺏기지 않기 위해 얼마나 동분서주하며 애쓰는지 모릅니다. 아브라함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두려움이란 것은 어떤 상황에 처해 할 일을 알지 못할 때 옵니다. 아브라함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또 한가지 아브라함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있지만, 아직 자녀가 없으니 하나님은 과연 약속을 지키시는 분인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신가에 대한 의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나를 멀리하실 모양이다.’, ‘나는 희망도 소망도 없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이 오면 삶의 의미와 방향을 잃어버려 흐트러집니다. 될 대로 되라, 마음대로 살자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기도 중에 찾아오신 하나님은 잃어버린 믿음을 다시 붙들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으로 가득합니다. 우리를 향한 약속으로 가득하고 약속을 지키는 자에게 하시는 축복의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 주신 말씀으로 아브라함은 다시 용기와 힘을 얻게 됩니다.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은 모든 축복의 근원이시며,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이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 하이벨스 목사님이 말씀하기를 기도는 비전의 산실이라고 했습니다. 기도할 때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기도할 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증거되고 전달됩니다. 느헤미야는 고향으로부터 예루살렘 성이 훼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수천 리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자기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판단했을 때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비전을 주셨습니다. 어떻게 예루살렘 성이 건축되어야 할 것인지 느헤미야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죽고 난 후에 어떻게 했습니까? 해야 될 일은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이 곧은 백성들입니다. 도무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여호수아가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 드릴 때에 해야 할 일들을 알려주셨습니다. 방향을 주셨고 목표를 정해 주셨습니다. 일어서서 할 수 있는 힘을 기도할 때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앞두시고 겟세마네에서 고통스럽게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할 때에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얻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승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기도와 염려는 다릅니다. 우리는 염려가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3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말씀 드려도 될 것 같습니다. 동안 교회에 처음 부임해서 보니 교인들의 마음이 너무나 많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장로님들도 두려워하시며 제게 부탁하셨습니다. 일꾼들인 3~40대 교인들은 대부분 교회를 나갔고, 50대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다들 나름대로 옳은 생각, 자기 소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빠른 변화를 원하는 청년들이 있는 반면 또 다른 쪽은 안정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청년들에게 맞으면서도 어른들에게도 맞는 설교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모두들 제가 슈퍼맨이기를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큰 교회를 섬겨본 경험이 없었을뿐더러 제게는 능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를 상황이었습니다. 너무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 교회를 어떻게 수습해야 하겠는가? 한번 교인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만 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기도였습니다. ‘하나님, 제 연약함 아시지 않습니까?’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가 중보기도사역이었습니다. 교회 와서 제일 먼저 시작한 사역이 중보기도 사역이었습니다. 공식적으로 몇 분의 장로님들, 그 밖에 교회 많은 분들이 오셔서 “교육훈련은 분당이나 강남에 맞지 우리교회 체질에는 맞지 않습니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응답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추진했습니다. 어떤 장로님 한 분은 “목사님은 위기를 잘 넘기시네요.”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위기를 잘 넘긴 것이 아닙니다. 그때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감당한 것뿐입니다. 교인들과 함께 하나님께 엎드리면서 교회가 갖추어야 할 모습들을 하나하나 갖추기 시작했고 마음도 하나가 되어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의 줄을 놓지 않기 바랍니다. 기도의 자리를 잊지 않기 바랍니다. 이제 이후에 말씀을 보면서 아브라함의 인생을 살펴보십시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예배와 기도의 자리를 절대 놓지 않았습니다.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자리는 양보해도 되지만 기도하는 자리만은, 예배 드리는 자리만은 절대 양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불안과 두려움, 염려가 엄습할 때 기도의 자리에 들어가십시오. 그럴 때 주님은 나를 향한 비전을 보이십니다. 그리고 이루고자 하시는 그 계획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도록 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 중에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사업장이나 가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차라리 내일 아침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분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여러분이 기도의 자리를 놓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향한 꿈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소망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소망의 자리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외롭고 고독할 때에 주님을 향한 묵상의 기도의 자리에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우리를 다시금 소망과 비전 가운데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됩니다.

하나님의 꿈을 이루고 비전을 이루는 사람의 셋째 모습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무척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임재하신 하나님께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합니다. “제게 후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이해하겠지만 아직 아들이 없는 것을 보면 우리 집에서 자라고 있는 종 엘리에셀을 후계자로 삼아야겠지요? 엘리에셀에게 모든 것을 맡기겠습니다.” 라고 하자, 하나님께서 여전히 “엘리에셀이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라야 네 후계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밖으로 불러 내셔서 하늘 바라보고 별을 세어보라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 질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말입니다.

우리야 아브라함 인생의 결말을 알기에 하나님 주신 약속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상식적인 말씀이 아닙니다. 여러분 앞에 큰 산이 두 개 있어서 ‘네 후손이 저만큼 커질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차라리 납득할 만한지 모릅니다. 나이 많아 아들 하나 없는 사람에게 하늘에 무수히 박혀있는 별을 가리켜 ‘네 후손이 저렇게 될 것이야.’라고 하면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어야 기대를 하든지 말든지 하지 전혀 기미가 없는데 어떻게 의지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성경은 아브라함에 대해서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고백으로부터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인 ‘이신득의’, 즉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가 나오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에 철저히 자기 인생을 맡기고 따라갑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따라가고 있습니까?

상담훈련을 할 때 저는 각자 자기 사명을 적어보라고 합니다. 세상에 태어나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묻고 적어보라 하니 딱 두 가지는 적지 않습니다. 신경질 내고 화내고 짜증내고 포기한다는 말은 절대 적지 않습니다. 또 네가 잘하면 나도 잘하겠다는 상대적인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잘 살펴보면 우리는 작정한대로 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상대방이 내게 잘하든 잘하지 못하든 혹은 주어진 환경이 좋든 좋지 않든지 내 사명에만 집중하여 살겠노라고 마음은 먹지만 네 꼴 보기 싫어서 나는 이렇게 살겠다,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살겠다 등등의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환경이라는 상대적인 조건에 맞추는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삶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누구 보기 좋으라고 혹은 환경 때문에 복수심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인생에게 하나님의 비전이 열리게 됩니다.

세계적인 전도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미래에 대한 언급을 자주하니까 한 사람이 조롱하는 투로 물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미래에 대해 아십니까?”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저는 제 미래를 모릅니다.” 라고 대답하고, 조금 후에 다시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미래가 하나님께 있는 줄은 압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나를 선하게 인도하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갈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믿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늘의 별을 보며 믿을 수 없는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후로도 하나님 말씀을 믿으며 말씀에 따라 자기 삶의 방향과 태도를 계속해서 변화시켜 나갔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는 사람이 되기 원하신다면 지금 하나님 말씀을 따라 걸어가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계획 없이 창조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개인 개인을 향한 계획을 다 세워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될 일은 주님께 우리 인생을 거는 것입니다. 앞길이 막혔다고 생각될 때에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십시오. 하나님 말씀을 따라 오늘도 순종하며 가십시오. 환경과 욕망을 따르지 말고 말씀을 따라갈 때에 환경은 말씀으로 정복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드리는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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