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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추월선 (마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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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송기현 목사

  세상에는 추월하는 사람과 추월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추월하는 문화가 있는가 하면 추월당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추월하는 사람에 속합니까? 아니면 추월당하는 쪽에 속한 사람입니까? 우리 기독교는 추월하는 종교입니까? 추월당하는 종교입니까?
  세상은 오늘도 우리를 추월하려고 합니다. 세상문화는 오늘도 우리 기독교문화, 이 거룩한 문화를 추월하려고 거대한 물결처럼 몰려옵니다. 토네이도처럼 쓰나미처럼, 유라굴라광풍처럼 밀려옵니다. 그러나 추월당하지 맙시다. 오히려 추월합시다.

  추월할 때는 짜릿함이 있습니다. 추월할 때는 마음이 유쾌합니다. 그러나 추월당할 때는 마음이 편칠못합니다. 불쾌합니다. 추월하는 짜릿함을 맛보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옛날도로나 2차선지방도에는 추월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앞차가 천천히 달리면 뒷차는 힘이 있고 추진력이 있고 아무리 좋은 차여도 별 수 없이 뒷따라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직 우리 주변에는 추원선 없는 도로가 많습니다. 몇일전에 도로교통법위반으로 범칙금 통보를 받은 운전자가 상소를 했는데 패소를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2차선도로에서 앞서가는 차가 길을 비껴주어서 앞지르기를 했는데 그 장면을 경찰에게 적발당하여 60000원의 범칙금 티겟을 발부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앞차가 비껴주기를 해서 추월을 했는데 왜 그것이 불법이냐? 벌금을 낼 수가 없다. 그래서 상소를 했는데, 그런데 판결은 아무리 앞차가 양보를 해주고 앞지르기를 허용해주었다고 해도 추월선이 없는 곳에서 추월을 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패소를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고속도로나 고속화도로나 자동차전용도로 등에는 추월선이 있습니다. 추월선은 앞지르기 허용선입니다. 그래서 기술만 있으면 추진력만 붙으면 언제든지 1차선 2차선 3차선 4차선을 넘나들며 앞차를 앞질러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추월선은 도로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에도 추월선이 있고, 믿음에도 신앙의 추월선이 있습니다. 우리 영혼에도 추월선은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과 그리고 마태복음 20:16절에 보면 "하나님 나라에서는 나중된 자가 먼저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는 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추월선이 없는 세상은 사실 결코 발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희망적이지 않습니다. 추월이 가능해야 합니다.

  옛날 세상에는 신분제도란 것이 있어서 한번 종놈이면 영원한 종놈이었습니다. 그래서 한숨짓다가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신분제도같은 것은 없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곳에는 신분제도가 없습니다. 한 인생이 모든 환경을 박차고 앞을 향하여 달려갈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시고 성령꼐서 좌정하셔서 다스리시고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얼마든지 추월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얼마든지 추월을 가능하도록 하시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에게 희망이십니다.

  그런데 추월선을 사용해서 달릴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속도가 있어야 합니다. 추월하려는 차가 속도를 내지 못하면 오히려 달리고 있는 상대방의 차를 방해하게 되고 사고를 유발하게 됩니다.   
  비행기가 창공을 날려면 추진력이 필요합니다. 로켓트가 하늘을 날아가려면 추진력이 필요합니다. 거대한 함대가 대양을 가로질러 항해를 하려면 추진력이 필요합니다. 이 모든 것은 속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속도의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양이 아무리 많아도 질이 아무리 좋아도 속도에 밀리면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옛날에는 양이 많아야 좋았습니다. 그리고 질이 좋으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양이나 질은 평균화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많은 양과 양질의 것일지라도  빨리 내놓지 않으면 손님은 떠납니다. 고객은 다른 곳으로 옮겨갑니다. 떠난 고객은 다시 찾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 한국에서는 그렇습니다. 한국사람은 빨리빨리를 너무 좋아합니다. 늦으면 견디지를 못합니다. 한국에서 성공하려면 빨라야 합니다. 소비자나 계악자나 고객을 기다리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빨리 처리해주면 다 좋다고 합니다. 고객은 빠른 기업과 거래를 하고자 합니다. 

  저도 한국사람입니다만 한국사람들이 얼마나 빠른 것을 좋아하냐면 자판기에서 손데는 사람은 한국사람 밖에 없다고 합니다. 빨리 뽑아 먹으려고 하다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한국사람은 기다리는 것을 못참습니다. 아무리 온순한 사람도 기다리라고 하면 화를 냅니다.

  한국인의 습성이 이러하건데 교회가 느림보 거북이처럼 하고 있으면 외면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회의 하는데 시간을 많이 잡아먹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회의에 참석을 하지 않습니다.
  시간에 늦는 이의 초대는 한두번 어쩔 수 없어서 참석하게 되지만 결코 유쾌한 참석이 아닙니다. 차라리 초대받지 않았으면 좋았겠다 싶어집니다.

  전화를 하실 때 빨리 하고 짧게 하십시오. 말을 할 때 짧게 하고 분명하게 하십시오. 글을 짧게 쓸 수 있는 능력을 기르십시오. 길게 해야 좋다는 생각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것은 속도를 늦추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결과적으로 추월당하는 인생의 습관을 가지게 됩니다. 기도할 때 중언부언하지 말고 간절하지 않는 기도는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도할 때 간절한 것을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속도가 빨라지면 운전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미숙한 자가 속도가 빠른 차를 운전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것은 너무 위험합니다. 속도가 빠른 세상에서는 전문가만 살아남을 수가 있습니다. 속도가 빨라지면 어리숙한 비전문가들은 눈이 휘동그래져서 사고를 내기 쉽상입니다.
  신앙을 아마추어처럼 하지 말고 전문가처럼 하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을 알바처럼 하지 말고 평생직장처럼 하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을 객이나 뜨네기처럼 하지 말고 주인처럼 합시다.

  운전이 서툰주부가 "초보운전"이라고 써붙이고 시내에 나왔습니다. 운전 중에 몇 차례 실수를 하자 사방에서 조롱과 욕설이 쏟아졌습니다.
  "야, 운전 똑바로해!"
  "아줌마가 뭐하러 차를 끌고 다녀!"
  "집에서 밥이나 할 것이지!"
  화가난 주부는 다음날 "초보운전"대신에 다른 글을 써 붙였습니다.
  "밥하러 간다"
  이 주부는 현명한 주부입니다. 괜히 조롱하고 꼬드긴다고 서튼 운전솜씨로 과속을 하면 사고가 납니다.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으면 속히 운전솜씨를 늘려야 합니다.

  신앙의 추월선을 당당하고 멋지게 사용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오늘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우리 교회가 창립된지 15주년 기념예배를 드리면서 제가 이러한 설교를 하고 있는 것은 우리 성도들이 추월당하는 성도들이 되지 않았고 추월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래서입니다. 우리 교회가 추월을 허용하고 추월을 당하는 교회가 더 이상 아니기를 바래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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