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이 온 지면에 흩으셨습니다.(창 11:1-9)

  • 잡초 잡초
  • 306
  • 0

첨부 1


- 설교 : 박충웅 목사
                 
인류의 역사는 참 사연이 많습니다. 역사가 수 없이 곤두박질쳤습니다. 인간은 불의와 죄 속에 허우적거렸습니다. 수 없이 하나님을 실망시켰습니다. 그 기대를 저버린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나 점점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을 잃어 가고 있었습니다. 아담의 범죄, 가인의 살인, 노아 시대의 방탕, 갈수록 죄의 강도가 높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참으심에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몰살시키신 것입니다. 그때까지 온 세상이 한 가지 말을 쓰고 있었습니다. 물론 글자도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동쪽에서 옮아 왔습니다. 그들이 시날 평지에 이르렀습니다. 여기 자리 잡고 의논했습니다. 그곳은 넓은 평야와 넉넉한 물이 있었습니다. “어서 벽돌을 빚어 불에 단단히 구워내자” 했습니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사용했습니다. 흙 대신에 역청을 쓰게 되었습니다. 또 사람들은 의논했습니다. “어서 도시를 건설하자.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도록 탑을 쌓자. 그리고 우리 이름을 알리자. 우리가 사방으로 흩어지지 말자.”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이 세운 도시와 탑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이 한 종족이라 이런 일을 벌이지.. 말이 같아서 안 되겠구나. 이것은 사람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에 지나지 않겠지. 앞으로 하려고만 하면 못할 일이 없겠구나. 당장 땅에 내려가서 사람들이 쓰는 말을 뒤섞어 놓자.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해야 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사방으로 흩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건설하려는 도시는 그만 멈추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말을 섞어 놓아 사람들은 온 땅에 흩으셨다고 하여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불렀습니다.

사실 일치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엉뚱한 발상을 했습니다.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민족 같은 말을 쓰니 여간 편리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외국에 가면 우선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문화가 다릅니다. 그래서 이민을 갔다가 다시 돌아오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당시는 언어가 하나였습니다. 무슨 말이였을까요? 지금 세계 공통어는 영어지요. 그러니 외교적인 글은 문법이 정확한 불어를 같이 쓰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히브리어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언어의 일치는 사상의 통일과 길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지름길은 단연 말입니다. 말이 통하는 사람끼리 하나가 됩니다. 외국에서 듣는 자기 나라 말이 얼마나 좋고 반갑습니까? 이러한 감동이 인간이 갖는 기쁨입니다. 같은 말은 같은 문화를 만듭니다. 같은 말은 하나의 단체를 만듭니다. 그러니 말을 같이 쓰자는 운동을 하는 이도 많습니다. 앞으로는 중국어 같은 것이나 영어, 인도어 같은 것은 배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영어가 공용어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공무원들도 영어로 대화할 것입니다. 그런데 바벨탑 사건 이전에는 언어가 하나이었습니다. 얼마나 편리합니까?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했어야 합니다. 홍수가 끝난 지 그리 오랜 세월이 지나지 않습니다. 백성들이 분열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잘 믿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예배는 하나 됨이었습니다. 똑같은 사상입니다. 똑같은 표현이었습니다. 똑같은 하나님께 예배 드렸습니다. 그야말로 진리 안에서 하나였습니다. 일치란 한 송이의 꽃과 같습니다. 그런데 불행한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온 지면에 흩으셨습니다.”라는 말씀으로 같이 은혜 받고자 합니다.

Ⅰ. 왜 이런 불행이 왔습니까?

모든 일은 우연이란 거의 없습니다. 바람이 부는 것도 물결이 일렁이는 것도 다 까닭이 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착각했습니다. 인간의 영광과 힘은 서로 화합과 교제 속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가족이 흩어지는 것은 멸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노아 홍수 사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몇몇 비슷한 하나님의 심판에 공포를 느꼈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안전을 위하여 단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인간의 문명을 발달시켜 보겠다는 생각이 용솟음 쳤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의 탑은 인간의 힘을 집중시키는 초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보시고 인간이 너무 교만하다고 판단하셨습니다. 이렇게 그냥 둘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힘을 과시하는 것을 가소롭게 보셨습니다. 인간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은 인간의 약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엄청난 일을 했습니다. 벽돌을 구웠습니다. 높은 탑을 쌓아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만족해했습니다. 그들은 사실 파멸에 힘을 쏟고 있었습니다. 결국은 파멸했습니다. 실패했습니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습니다. 자만은 위험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의 목적을 자기에게 두고 있습니다. 이게 인간의 망상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벽돌을 구워 만들었습니까? 탑을 쌓는데도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한 마음 한 뜻이었습니다. 이것을 좋은 데 쓰지 않았습니다. 엉뚱한 데 쓴 것입니다. 스스로의 무덤을 판 것입니다. 그들은 물론 야망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이름을 내고” 한 것입니다. 자기 이름을 내려고 하면 틀림없이 실패합니다. 하나님은 다 보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까지도 다 꿰뚫어보십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자기 자신만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처음부터 막지 않으셨습니까? 사람은 사람이 해야 할 한계가 있습니다. 더 이상 넘으면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목적을 세워야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과연 하나님이 좋아 하실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냥 밀어 붙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얼른 포기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 쉬운 일 아닙니다. 어렵습니다. 이런 것은 미룰 일이 아닙니다. 미루면 미룰수록 손해만 봅니다.

인간이 왜 파멸합니까? ①체면 ② 잘못된 판단 ③건성적인 사고 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맞아야 성공합니다. 큰 계획을 세울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그런 계획은 하나님의 힘으로 밀어 붙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엄두에 두지 않고 세운 계획은 어리석기 그지 없습니다. 공부, 취직, 결혼, 여행, 사업, 다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분명히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활과 계획을 제한 하십니다. 우리 주변에 완성되지 못한 인간의 바벨탑이 대단히 많습니다. 실컷 노력한 것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나 욥이 말한 “내 경영이 다 끊어졌구나”와 같은 말씀들입니다. 우리는 갈수록 악해집니다. 여러 가지 슬픈 형상들이 나타납니다. 정말 우울합니다. 악의 권세 아래 있는 한 불행의 굴레를 벗어 날 수 없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탐욕이 문제였습니다. 바벨탑은 영광에 대한 욕심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명성을 얻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야망이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실패로 끝난 것입니다. 그들은 기도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 물어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고 한 일이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꿈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어쨌거나 하나님을 떠난 어떤 계획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보내 주신 확실한 sign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이 무지 때문입니다. 우리는 끊임 없이 하나님의 뜻을 살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삶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그런데 바벨탑 사건은 영 뒤틀린 일입니다. 그들은 야망이란 신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망이란 신은 잠을 자지도 않습니다. 쉬지도 않습니다. 지치지도 않습니다. 그 신은 교인들에게 휴가도 주지 않습니다. 늘 세상적인 욕망에만 빠지게 합니다. 그렇다고 야망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아닌 야망이 무섭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포부는 하나님의 뜻에 맞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자신을 시험할 수도 있습니다. 어두움으로 떨어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야망은 정신의 독소가 될 수 있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기도 합니다. 우리를 취하게 하는 술잔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야망이 과연 옳은 것인가? 우리는 영적인 야망을 가져야 합니다. 세속적인 것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무엇을 위해 분주히 뛰고 있습니까? 바울 사도는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쫒아 가노라.”고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헛된 영광을 위하여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우리 이름을 알리자”고 했습니다. 굉장히 어리석지요. 이런 사람이 헛된 야망을 품을 사람입니다.

Ⅱ. 하나님이 흩으셨습니다.

현재 바벨론에는 바벨탑이 위치했던 곳이라고 여겨지는 몇 곳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벨러스(Belus) 사원이 위치하고 있는 곳이 가장 유력하다고 합니다. 바벨탑은 장방형으로 되었답니다. 구워지지 않은 벽돌로 되어 있었답니다. 그 높이는 110피트 정도이며 꼭대기는 먼지더미로 뒤덮여 있는 넓고 평평한 공간입니다. 그것이 세워진 언덕은 너비가 200 야드 정도인데 이는 헤로도투스(Herodtus)의 측정치와 일치한답니다. 그 건조물을 통과하는 터널의 벽은 단단하지 않은 구운 벽돌로 되어 있습니다. 그 위에는 느브갓네살 왕의 이름이 새겨져있답니다. 총 층수는 7층이랍니다. 첫 번째 층은 정육면체로 밑면의 길이가 정확히 272 피트, 높이가 26피트, 1층 밑면이 230피트, 높이는 1층과 같이 26피트..... 재료는 당시 순수한 점토로 벽돌 모양으로 만들어서 햇볕에 말리거나 구워서 사용했습니다. 때로는 볏짚을 잘게 썰어 진흙과 혼합해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벽돌과 벽돌 사이에는 아스팔트의 일종인 역청을 사용했습니다. 이 역청의 질이 매우 좋아 건축물의 수명을 길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목적이 순수하지 못했습니다. “자 우리의 이름을 날리자”고 했습니다. 사람은 유명해지려는 욕심이 있습니다. 자기들의 이름을 날리자고 했습니다. 위해대 보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 위대해지려는 자는 굴욕을 당합니다. 결국 인간의 배신과 교만한 시도는 하나님의 노여움을 삽니다. 하나님은 그래도 많이 기다리십니다. 참으십니다. 그러시다가 인간을 벌하십니다. 즉각 벌을 내리시는 경우는 드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오래 참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지요. 그때를 잘 알아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가를 보시려고 손수 이 땅에 내려 오셨습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써 놓은 일기장이나 비망록을 보시고 아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속마음까지 다 아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고약한 행동을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서로 의사소통을 못하게 했습니다. 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일도 더디고 끝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같은 말 같은 글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말이 다르니 불편한 것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공사하기가 불가능했습니다. 원래 하나님은 혼돈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에 “땅이 공허하고 혼돈(Kayos)할 때” 하나님은 질서정연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탑을 세운 목적은 홍수를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물론 멸망되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홍수가 난다면 탑을 세우는 방법으론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마 그 탑을 우상숭배의 목적으로 사용되었거나 민족을 통합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 동방에는 건물들이 높지 않았습니다. 이 탑은 매우 높았습니다. 이 탑 건축을 저지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결국 민족은 분열되었습니다. 인간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죄의 결과입니다. 바벨탑을 쌓다가 인간이 흩어졌습니다. 대단히 불행한 일입니다.

지금 우리 영어, 일어, 중국어, 불어, 스페인어, 또 신학을 하는 사람은 독어,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아랍어를 공부해야 합니다. 얼마나 힘듭니까? 우리 조상들이 서툰 바벨탑만 건축하지 않았어도 이런 일을 없었을 것인데.... 하는 속상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 우리의 잘못과 죄 때문입니다. 이런 불행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다 인간의 어리석은 죄 때문입니다. 다시는 이런 불행한 길을 걷지 말아야 합니다. 그 끝은 파멸입니다.

맺는 말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는 오늘 정말 서글픈 장면을 맞았습니다. 인간의 오판이 이런 슬픈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이 바벨탑을 건축합니다. 자 우리가 다시는 흩어지지 말자면서 시날평지에 탑을 쌓습니다. 흙을 이겨 벽돌을 만들었습니다. 이를 구워 단단하게, 높게 쌓았습니다. ‘자 우리가 다시는 흩어지지 말자. 우리의 이름을 날리자’라고 했습니다. 때에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삶을 두루 살피시려 내려 오셨습니다. 기껏 인간들이 한다는 것이 이 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번개로 때려 부수지 않으셨습니다. 지진으로 흔들지도 않으셨습니다.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그들의 역사를 끝내게 하셨습니다.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습니다. 갑자기 사람들의 하는 말이 달랐습니다.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기에 말이 통하는 사람끼리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야망을 비웃으신 것입니다. 인간의 야망은 물거품입니다. 하나님은 바벨탑을 건축하는 것을 막으신 것입니다. 그들의 실패는 야망과 교만입니다. 하나님이 지치신 것입니다. 사람의 방법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결재가 있어야 합니다. 시날 평지에 모인 사람들이 끼리끼리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자기들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것입니다. 우리도 주 안에서 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005.2.27-충웅-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