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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집을 채우라 (눅 14: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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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은종관 목사

오늘 기도의집을 올라오면서 분수대 물이 안나왔던 것을 고쳐서 통수식을 하시는데, 박수치시며 어린 아이처럼 즐거워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양실교회 분들은 참 착하고 순진하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선교의집부터 시작해서 꽃들이 피어있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과수원에 무엇이 열리는가도 모르고 있고 민속교육장을 만들어 놓았는데도 한 번도 안가보셨다면 양실교회를 사랑하는 분들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있는 곳을 둘러보는 것도 내자신의 삶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읽으면 잔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천국은 잔치집과 같은 곳이다.' 이런 이야기를 비롯해서 잔치집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데 누가복음 14장 본문 말씀도 '예수님께서 잔치집에 가셨다.'는 이야기가 1절에 나옵니다. '바리새인의 한 두령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바리새인 중에서 좀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의 집에 초대받아 잔치집에 가신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잔치집에 가서 해야될 예절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앞절에 소개되고 있지만 '잔치집에 가면 먼저 말석에 앉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와서 자리를 양보하게 된다면 얼마나 창피하겠느냐? 아예 말석에 앉으면 주인이 오히려 말석에 앉은 사람을 상석에 앉게 하면 얼마나 기분 좋겠느냐?'고 하십니다.
잔치집에 가서 에티켓을 말씀하시는 것을 볼 때,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성경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인격도 가르치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주일예배드릴 때 자리에 앉으실 때도 중간에 앉으시는 것이 예절이라고 봅니다. 끝 쪽에 앉으시는 것은 예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일어나야 하니까요. 이러한 예절들이 하나 하나 몸에 밸 때 더 밝은 사회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자 하는 것은 잔치집에서 초청을 했는데 사람들이 오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되는 이야기를 예수님께서 하고 계십니다.
유대인의 고전 문서인 탈무드, 미드라슈를 읽으면 유대인의 관습에 대해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로마인들은 하루에 밥을 네끼 먹었다고 합니다. 그리스인들은 3번 먹고, 유대인들은 두 끼 먹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셨던 동네의 유대인 같은 경우에는 두 끼를 먹는데 10시쯤 식사를 하고 해질 무렵에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잔치에 초청을 하는데 유대인의 관습에 따르면 초청을 2번 한다고 합니다. 잔치가 있기 전 며칠 전에 초청을 해서 오실지 안오실지를 결정하고 잔치하는 당일날 종들을 한 번 더 보냅니다. '이제 준비가 다 되었으니까 오세요.' 라고 한답니다. 이스라엘에서 잔치라고 하면 저녁식사를 말합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한 두령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안식일은 금요일 해질 무렵부터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부분 결혼식도 저녁에 합니다. 그들은 저녁을 하루의 시작으로 생각합니다.

성경본문의 말씀을 보면, 미리 종을 보내어 초청한 사람들의 수를 파악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몇인분의 식사를 준비할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면 120명의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런데, 당일날 문제가 생겼습니다. 변명들을 했습니다.
첫 번째 변명은 내가 지금 밭을 샀는데 밭을 나가 보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변명은 소를 다섯 겨리를 샀는데 시험해 보러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변명은 내가 장가 들어서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에 변명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전통에 의하면 초청을 했는데 당일날 못오겠다고 하는 것은 그 초청자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평가했다고 합니다. 굉장한 결례를 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들, 오늘 제 생일이니까, 잔치에 다 참석해 주세요.' 그랬더니, 다 오신다고 했습니다. 호텔에 120명분의 식사를 아주 근사하게 차렸습니다. 그런데, 그날 아침에 종을 시켜서 오시라고 했더니 다들 못간다는 것입니다.
장가 들어서, 소 때문에, 밭 때문에 안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18절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읽겠습니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마치 짜고서 그러는 느낌이 들 정도로 초청한 사람을 불쾌하게 했습니다. 120명분을 준비했는데 30명 정도 밖에 안왔으면 너무 황당하고 불쾌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이 변명들이 올바른 핑계였나 따지고 싶습니다.
첫 번째,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다.'라고 합니다. 초청된 시간은 저녁시간입니다. 밭을 나갈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밭을 사기 전에 밭에 대해 다 파악해야지 매매한 후에 파악하려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토양이 좋은가, 물대가 편리한 곳에 있는지등 여러 가지 판단을 한 후에 샀을 것이 분명한데,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다.'고 변명을 합니다.
두 번째 변명은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간다.'고 하면서 미안하다고 합니다. '겨리'란 쌍을 이야기합니다. 열 마리를 샀다는 것입니다. 시험하러 갔다는 것은 점검하러 갔다는 말입니다. 소 볼 때, 제대로 된 소인지 이가 튼튼한지 여물은 잘 먹을 수 있을지 건강한 것인지 살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미 사놓은 상태입니다. 결국 이 모든 점검은 끝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점검을 하러 가겠다는 말입니다. 이유가 타당합니까?
마지막으로 장가를 갔으니까 못가겠다고 합니다. 유대인의 관습에서 신명기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장가를 가게 되면 그 사람은 1년 동안 군대나 나라에서 하는 의무적인 것을 면제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1년 동안 신부를 즐겁게 해주라고 되어 있는 것이 이스라엘의 법입니다. 1년 동안 좋은 부부가 되라는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그런데 잔치 석상에까지 금한 것은 절대 없습니다. 오히려 잔치 석상에서 음식을 같이 먹는다면 아내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도 변명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수긍이 가지 않는 이유는 이스라엘의 관습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느끼기에 이 세 가지의 변명들은 이스라엘 정서 상에 적합하지 않은 변명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이 초청자리에 안가게 된 원인은 자신 쪽에만 생각을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밭을 사서, 소를 사서, 장가를 가서' 그 변명 속에는 너무나 개인주의적인 생각, 나 중심적인 생각만 하고 있었기에 그들을 잔치자리에 안가게 된 것입니다.
전도를 해도 안되는 이유는 '내가 바빠요. 내가 지금은 교회 갈 형편이 못되요.' 라는 나 중심적인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다 세상적인 육신적인 생각에 관련된 것들입니다. 물론 정말 중요한 이유 때문에 못 가게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나중심적으로 생각할 때는 하나님이 우선 순위가 아닌 차선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교회 가는 것, 주일 성수하는 것의 순위가 뚝 떨어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우리들에게 합당한 신앙생활인가 생각이 듭니다. 모든 문제는 나중심적인 삶을 살 때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가끔 제가 'TV 생활법정'이라는 프로를 봅니다. 황산성변호사가 재판봉을 잡고 두드리는데, 현명한 솔로몬의 판단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의뢰인과 상대방 측에서 변호인이 있어서 이야기를 하는데 처음엔 다 자기 주장만 큰 소리로 싸움을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엔 서로 양보하면서 '당신 쪽에서 생각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요.' 합니다.
부부싸움의 원인은 내 주장만 생각할 때입니다. 내 남편, 자녀, 부모를 생각한다면 싸움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것이 신앙이고 인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할렐루야' 기도, 헌금 잘 한다고 신앙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신앙인이라면 사회에 나가서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라는 정도의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 친구, 교회 등 상대방을 생각할 줄 안다면 분쟁은 없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초청에 초대한 주인의 마음을 생각했다면 이들이 이렇게 행동할 수 없습니다. '정말 기쁜 마음으로 축의금 가져오지 마세요. 공짜로 음식 드시고 가세요.' 초청한 주인의 마음을 알았다면 이렇게 시시한 변명으로 안간다고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주인이 화가 났습니다. 다음 종에게 이야기합니다.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그들은 왔습니다.
읽으면서 은혜가 오는 것은 내가 가진 것이 있는 것 때문에 명예와 권력이 있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초청을 받을 수 없다면 그 가진 모든 것들이 다 불행한 것입니다. 가난한 자, 병신, 소경들, 저는 자들은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구걸해서 먹던 사람들이 '어서 오세요.' 초청 받았으니 말입니다.
저희들도 올 수 없는 자격도 없는 사람들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정말 비뚤어진 심성을 가진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자리를 채우라고 하셔서 여기 와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종들이 자리가 남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잔치는 이렇게 큰지 채우고도 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풍성하고 자리가 많습니다.
여러분들! 자리 없을까봐 걱정하지 마시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 많이 데려 오세요.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강권' 이란 말은 강요 한다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모든 인격을 다 해서 감정, 그분의 이성, 삶에 호소한다는 말입니다. 잃어버린 자를 찾아 예수님께서 한마리 양을 찾듯이, 초청잔치에 앉길 원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엔 '총동원'이란 말을 썼지만 너무 교회에서 쓰는 식상한 말 같아서 '양실가족 한마음 감사예배'로 했습니다. '다음 주일에 다 모입시다.'는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계속적으로 온가족 예배는 계속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내가 사는 날까지 그분이 전도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복음의 씨앗은 뿌려야 되는 것입니다.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 가족끼리만 식사하는 모습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 안에는 가족이 없으신 분이 계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그분들과 함께 어우러져야만 다른 분이 올 때도 우리에게 거리를 두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가족 운동회가 식사하는 장면에서 '정말 우리 양실회는 한 가족이구나.' 하는 생각을 우리 모두가 느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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