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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모보다도 개인적인 하나님 (시 139: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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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기홍 목사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다윗의 입을 통해서 듣습니다. “나의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 . 나의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 .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고 무엇이든 다 아시고 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일어납니까?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쨌다는 말인가? 하나님이 무소부재 전지전능해서 나하고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나의 문제와 힘든 삶에 무슨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인가? 세상은 이렇게 악하고 나쁜 인간들은 잘 먹고 잘 산다. 그런데 하나님은 도대체 뭘 한단 말인가?” 어떻습니까? 같은 느낌입니까?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알면서도 무관심하거나 웃어넘긴다면 그 대가는 무서운 것입니다. 신자라면 그 정도는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고 섬깁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늘 만나는 친구나 가족처럼 느끼지 않습니다. 막연히 천지를 주관하시는 신으로 생각합니다. 우주의 기나 어디나 다 있는 힘 정도로 생각합니다. 개인적이지도 직접적이지도 않아요.

1. 그는 늘 보고 있다

싸르트르는 “무의 존재”라는 책에서 말합니다.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보는 게 얼마나 즐거운가! 상대는 모르는 데 나만 보고 있다. 나는 이 안 보이는 존재됨을 즐기고 있다. 그러다가 이 숨겨진 존재를 보고 있는 또 다른 존재를 느끼게 된다. 열쇠 구멍으로 보고 있는 나를 그가 또 다른 열쇠 구멍으로 보고 있다. 내 삶은 감시를 당하고 있구나!”

생각해 보세요. 누가 안 보이는 구멍을 통해 나를 보고 있다고. 삶은 고통이 될 것입니다. 북한을 방문한 사람들은 누구나 이것을 느낍니다. 호텔에 있건 길을 걷건 식당에서 음식을 먹건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보고 있음을 모르고 살 때는 무슨 행동을 해도 상관이 없어요. 하지만 감시당할 때 자유는 이미 사라지고 맙니다.

이 감시자가 하나님이 되면 이제는 두려움이 됩니다. 다윗은 고백했어요. 투명인간처럼 하나님은 늘 옆에서 바라보고 계십니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니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하나님은 행동만 보는 게 아닙니다. 생각도 보고 있습니다. 그냥 방관자로 보는 게 아닙니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나의 이전과 이후를 보고 계십니다. 나보다 더 정확히 보십니다.

욥은 심판을 보면서 두려워합니다. “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여 내가 범죄하였던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하나님의 눈길을 느끼면 느낄수록 사람은 자기 죄를 보게 됩니다. 피할 길이 없어요. 도대체 내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가?

참으로 하나님은 멀리서 우주를 지배하는 신이 아닙니다. 대통령만 해도 수천만의 사람들을 상대해야 합니다. 지금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해요. 주위 사람 말밖에 듣지 못해요.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라요. 신문이 그렇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한 사람씩 만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인간은 절대로 할 수 없어요.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 머리털을 완전히 세십니다. 누가 자기 머리를 셀 수 있나요? 내 내장을 보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것도 모든 인간을 다 그렇게 하고 계십니다. 사람뿐입니까? 우주에 있는 모든 생물을 종류대로 하나씩 보고 움직이십니다. 그러니까 인간을 정확하게 판단하십니다. 매일 심판하시고 결국에는 영원한 심판을 내리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브루스 올마이티”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은 하나님이 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은 일주일 동안 마음대로 세상을 움직이도록 했어요. 결과는 완전 혼돈이요 대파괴입니다. 하나님만이 완전한 질서 속에서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어요. 그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십니다. 일초도 숨을 수 없어요.

2. 그는 내게 개인적이다

그 하나님은 나에게 개인적입니다. 나를 만들 때 진화론에게 맡겨 저절로 되게 하지 않으셨어요. 나 같은 사람이 어디 있나요? 온 우주에 하나도 없어요. 내 성격, 내 재능, 나만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대로 나를 특별하게 설계해 지으셨어요. 어머니의 자궁에서부터 그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몸 안 모든 기관과 핏줄을 하나하나 만드셨어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나 하나를 개인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대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냥 버려두시면 나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마음에 하나님 두려워하는 마음을 계속 불어넣으십니다. 그리고 세상사는 동안 하나님의 모습이 비쳐나게 하십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자신을 참으로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쉬지 않고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이 점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많아요. 아주 싫어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열쇠구멍으로 보고계신다면 좋은 생각이 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입니다. 북한을 방문한 사람들이 중요한 말을 할 때는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는답니다. 그러면 녹음을 해도 라디오소리만 들린대요.

또한 감시하는 사람도 사람이니까 실수를 많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는 전혀 이것이 해당되지 않습니다. 입을 지으시고 귀를 만드신 분이십니다. 뇌 속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를 보십니다. 그것도 나 한 사람만을 놓고 완전하게 시간마다 보십니다. 그러니까 두려워하는 겁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왜 그렇게 보십니까? 누구를 위함입니까? 다윗은 알았습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자신의 고귀함을 알게 된 다윗은 자신을 그렇게 귀하게 지으신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자신의 고귀함을 아십니까? 누가 나를 그렇게 기묘하게 지었나요?

왕이나 대통령이 되면 개인 주치의가 있습니다. 주치의 밑에 다른 의사들도 전공대로 여럿이 있습니다. 그만큼 그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유능한 주치의는 환자의 속을 다 외우고 있어요. 심장이 어느 정도 강한지 혈관이 얼마만큼 막혔는지 다 알고 있어요. 왜 그런가요? 돌보려고 하는 겁니다. 때로는 먹기 싫은 것을 먹이고 힘든 운동도 시켜요.

하나님은 더욱 그렇습니다. 의사 정도가 아니에요. 내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안전히 보십니다. 어디 속뿐입니까?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 아니 앞으로 될 일도 다 보고 계십니다. 함께 걷고 뛰면서 나를 보십니다. 다윗은 고백했어요.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 받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그는 개인적으로 나 만을 돌보십니다. 이제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성령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개인적으로 게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그와 함께 지냈어요. 함께 먹고 마셨어요. 포옹도 했어요. 하지만 그 포옹은 몸과 몸일 뿐이에요. 성령은 우리가 심장과 심장이 포옹하게 하고 영과 영이 연합하게 합니다. 그것도 개인적으로요.

3. 그를 개인적으로 의지하라

그가 지켜보시는 게 두렵지 않나요? 그 크고 거룩한 눈으로 보고 계시다. 다윗도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고 두려움 속에 고백했어요. 아담도 고백했어요.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불신자들에게는 나중에 변명할 수 없는 무서운 증거가 되겠지요. 신자라도 그를 개인적으로 믿지 않고 모호하게 생각하면 유익을 얻지 못하지요.

하나님은 절대로 인간을 로봇처럼 다루지 않으십니다. 완전한 자유를 주고 그에게 다 맡깁니다. 그래서 내가 악한 결정을 내리고 행동해도 그냥 두십니다. 물론 거기 대한 대가는 반드시 받으시지요. 다윗은 결정했어요. “이 하나님에게 자신을 바치자. 그래서 가장 나를 잘 아시는 그분이 나를 사용하게 해 드리자.” 여기서 모든 게 달라집니다.

그는 말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오히려 그에게 맡깁니다. 두려움을 갖지 않고 기꺼이 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길에 대항하는 사람들을 미워하며 그들처럼 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이렇게 해서 최고가 되었어요.

그를 의지할 때 절대로 거절되지 않는다는 진리를 다윗은 터득했어요.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나를 이용합니다. 어떤 방법으로건 그렇게 합니다.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본 뒤에 그것을 남에게 말합니다. 내게 손해를 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믿지 못해요.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절대로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두 손 벌려 맞으십니다.

그분의 신실함은 십자가가 증명해요. 그가 당한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어요. 완전히 버림 받았어요. 그러나 절대로 내려오지 않았어요. 그가 말합니다. “자 보아라. 이래도 나를 믿지 못하느냐? 나는 너 만의 하나님이요, 너를 책임지는 이다. 네 죄가 네 병이 네 문제를 내가 대신 지고 있음을 아직도 모르겠느냐? 내가 너를 보는 눈은 사랑의 눈이다.”

그가 그냥 보고만 있나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그냥 보는 게 아닙니다. 같이 고통을 받아요. 지옥까지도 같이 가십니다. 그는 세상에 없는 지고한 사랑으로 함께 하십니다. 무엇이 두렵고 창피한가요? 그는 모욕도 억울함도 배반도 다 나 때문에 경험해서 잘 아십니다. 나를 거기서 구원하려고 값을 치렀어요.

그러므로 그에게 나를 내놓고 부탁하세요.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은 강제로 나를 지배하지 않으십니다. 의지할 때 내 생각을 살피고 고쳐주십니다. 약함과 병을 담당하시고 나를 건강케 하십니다. 내 속을 다 보시며 무엇이 문제인지 알려주십니다. 그를 의지하세요. 그는 부모보다도 친구보다도 더 개인적이고 더 직접적입니다. 나만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믿지 않거나 무시하는 이에게는 무서운 분입니다. 그러나 믿고 의지할수록 그는 사랑이시오 나를 돕는 이심을 깨닫습니다. 개인적으로 구체적으로 가까이 할수록 더 다가오시고 자신을 보이십니다.

1. 도입부 두 번째 문단의 소감을 말하세요.
2.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1/6-8)
3. 어떻게 하나님은 개인적으로 내 하나님인가요?(2/8)
4. 왜 하나님은 악한 일을 해도 제지하지 않나요?(3/2)
5. 하나님이 그냥 보고만 계시나요?(3/6)
6. 이제 하나님과 어떻게 하겠습니까?(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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