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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작은 응답 큰 확신 (왕상 18:41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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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윤형 목사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요구하는 단순한 요구가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면이요, 하나님과의 대화요, 하나님과의 교통의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열어젖히는 비상통로가 아니고, 아무 일 없어도 항상 열려 있는, 개방된 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에 끌려간 다니엘은 어떻게 바벨론의 총리가 되었는가?

그는 기도의 줄을 붙잡고 노예에서 총리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왕 이외에 다른 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진다”는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전에 하던 대로, 전에 드렸던 그 기도를, 전에 받으셨던, 그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에 있어서 기도는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잡히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는 기도를 드린 것은 기도가 아니고는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는 대속 사역을 감당할 수없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날 우리는 얼마나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고 있는가? 얼마나 기도를 소흘히 하고 있는가?

기도가 그의 영적 수준입니다. 기도가 그의 신앙수준입니다. 기도가 그의 능력의 수준입니다. 기도가 그의 축복의 수준입니다. 믿음이 없어도 일할 수 있고, 믿음이 없어도 헌금할 수 있는데 믿음이 없이는 기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시간 우리의 기도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리는 축복이 있길 바랍니다.

Ⅰ. 엘리야의 기도는 믿음의 기도였습니다.

본문 41절에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배추벌레에서 나비를 보는 것입니다. 종달새의 알에서 종달새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습니다(히11:1). 그런데 우리는 많은 경우에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성경은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라고 했습니다(롬8:24). 우리가 믿는 것은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우리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붙들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시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그 믿음을 보상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적을 보려고 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실망치 말고, 오직 믿음을 붙잡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엘리야는 사환에게 “올라가 바다 편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저가 올라가서 바라보고 고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 엘리야는 큰 비의 소리를 들었는데, 사환이 바라본 바다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얼굴을 무릎사이에 뭍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영적 싸움입니다. 영적 씨름입니다. 그러므로 평생을 해도 수운 것이 아닙니다. 이 기도의 영성이 흐려지면 하나님의 생명 종교는 세속 종교와 겉이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 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20년 동안 악착같이 모아둔 재물 때문입니까?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취한 축복 기도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환도 뼈가 오긋 나는 기도의 결과였습니다.

성경에 “야곱이 어떤 사람과 씨름했다.”고 했습니다(창32:22~24) 이 씨름이 히브리어로 “야바크”입니다. “야바크는 먼지를 일으키며 싸운다”는 뜻입니다. 야곱이 먼지를 일으키며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우리말로는 “대굴대굴 구르며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엘리야의 무릎 사이에 얼굴을 뭍고 드린 기도가 바로 “야바크”의 기도였습니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한번 드린 기도는 야곱이 이스라엘로 거듭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기도하고 보니까 환경이 변하고 세상이 변한 것입니다. 그렇게 두려웠던 에서가 하나님처럼 보였다고 했습니다(창33:10). 에서의 마음이 녹아져서 야곱을 붙들고 얼싸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나이다” “일곱번까지 다시가라”(왕상18:43) 엘리야는 큰 비의 소리가 큰 비가 되어 내릴줄 믿고 기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막11:14) 아무것도 없는 하늘이 비구름으로 채워질 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마른하늘에서 빗소리를 듣는 것이 믿음입니다.

Ⅱ. 끈질기게 기도했습니다.

어떤 기도가 능력이 있는 기도인가?
의심치 않는 믿음의 기도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 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약5:15).

주님의 뜻을 좇는 기도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려면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요15:7).

합심기도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히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고 했습니다(행12:5). 그 시간에 옥문이 열리고 성문이 열리고, 베드로의 발에 채워졌던 착고가 풀렸습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인내의 기도입니다.
“올라가 보라” “없습니다” “올라가 보라” “없습니다” 네 번하고 다섯 번 하고 포기했다면 비를 볼 수 있었겠는가? 응답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우리도 자주 기도합니다. 20일 기도도 하고, 40일 기도도하고, 100일 기도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가 작정한 날이 되면 기도하기를 포기합니다. 누가 20일 하고, 40일 하고 100일 기도하면 응답 주겠다고 했습니까?

엘리야는 지금 한창 기도하고 있는데, 우리는 돛자리를 걷어가지고 산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는 것은 더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응답의 축복을 담을 그릇을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고 했습니다(갈6:9). 그 때는 내 때가 아니고 하나님의 때입니다.

Ⅲ. 약속을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열왕기 상 18장 1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가서 야곱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고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천지가 변해도 일점일획도 떨어지지 않고 다 이룬다는 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니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는 것은 오히려 더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더욱더 약속의 성취를 사모하라는 뜻입니다.

왜 ? 그것은 너무나 귀한 것이기 때문에 사모하는 자에게 풍성히 주시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더욱더 간절히 비가 오기를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일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보이느냐” “예 보입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아무것도 없고 손바닥만한 구름이 보일 뿐입니다.”

작은 응답! 큰 확신! 손바닥만한 구름 한 점! 그러나 엘리야는 작은 응답 속에서 큰 확신을 얻었습니다. 손바닥만한 구름 속에서 하늘을 덮는 큰 비구름을 보았습니다. 손바닥만한 구름 속에서 장대비를 보았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기도의 응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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