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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주일]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 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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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한용근 목사

  어느 조련사가 말을 훈련시켰습니다. 아멘하면 서고 할렐루야 하면 앞으로 나가도록 훈련했습니다. 얼마나 신기했는지 그리스도인이 이 말을 샀습니다. 그 말은 말을 너무나도 잘 알아들어서 할렐루야 하면 앞으로 나갔고, 아멘하면 정확히 그 자리에 딱 섰습니다. 한번은 먼 길을 가게 되었는데 길을 잘못 들어 낭떠러지 길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앞에 놓인 낭떠러지 길을 보고 그만 이분은 어떻게 말을 멈추어야 할지를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두려움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서라 서란 말이야!” 라고 말하면서 말고삐를 힘껏 잡아 당겼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말은 계속해서 낭떠러지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말안장에 앉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제 죽음을 앞두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그 동안 너무 악하게 죄 가운데 살아서 이렇게 죽게 되었구나!”라고 자신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죽는가 보다’ 생각하니 서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죽음 앞에서 이제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이 죄인을 용서해 주십시오. 내가 죽는 그 순간 하나님 나라에 꼭 들어가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그 순간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말이 낭떠러지 1m 앞에서 딱 멈추어 선 것입니다. 그는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이 사람이 무엇이라고 한 줄 아십니까? 그는 소리 높여 손을 들고 할렐루야!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여러분의 상상에 맞기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한국 선교사들의 기록에도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초기에 선교사들은 밥상을 보고 아주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신기하게 생각한 것은 ‘자신들은 늘 다리가 높은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는데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작은 다리를 가지고 있는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을까?’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정말 신기하게 생각한 것은 그 밥상이라는 식탁에는 어떤 의자를 놓고 앉아서 밥을 먹을까였다고 합니다. 특히, 화장실이 그 사람들에게는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재래식 화장실에는 변기도 없었기 때문에 툭하면 선교사들이 실수로 발이 빠지곤 했습니다. 어느 선교사도 겨울에 화장실에서 그만 실수로 발이 빠지면서 몸이 화장실로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이 선교사는 순간 기지를 벌여 양 손을 옆으로 펼쳤습니다. 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그는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자신이 화장실 그 더러운 곳에 몸이 떨어지지 않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손을 모으고 눈을 들어 “하나님 참으로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오늘은 감사의 날입니다. 감사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아야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감사를 하는 것도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그분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알아야 감사가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야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12절에서 우리는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의 옷을 입으라는 명령을 볼 수 있습니다. 13-14절에서는 서로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감사는 용서가 없이는 되지 않는 것이 감사입니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함이나 남에게 선을 베풀려는 자비나 남을 덮어주고 받아들이려는  온유와 오래 참음이 없이는 될 수 없는 것이 감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감사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긍휼과 자비와 인내를 깨달고 감사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이시기 까지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하심과 구원하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하기 원합니다.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감사, 다른 사람을 주님께서 용서하셨던 것처럼 마음으로 형제와 자매를 용성하지 않는 감사는 진정한 감사가 아닙니다. 먼저 용서가 있어야 감사가 나옵니다. 먼저 사랑이 있어야 감사가 나옵니다. 먼저 십자가의 은혜를 알아야 감사가 나옵니다.

  어떤 청년이 이웃집과 나란히 살면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어느 날 청년이 이웃집 아저씨와 농사일로 크게 싸웠습니다. 화가 난 이 청년은 밤에 이웃 아저씨 밭에 몰래 잡초 씨를 뿌려버렸습니다. 그 밭에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났습니다. 이웃집 아저씨는 해마다 잡초를 뽑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이 청년은 고소했습니다. 그러다 이 청년이 이웃집 아저씨의 딸과 연애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아저씨는 그 처녀의 지참금으로 그 청년에게 잡초가 나는 그 밭을 주었습니다. 이 청년은 수 십 년의 긴 세월 동안 자신이 뿌린 잡초를 제거하면서 농사를 지어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사람을 미워합니다. 그러나, 정작 고통스러운 것은 미워하는 자신입니다. 미움을 받는 사람은 전혀 고통을 당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라고 했습니다. 악은 악으로 돌아옵니다. 심은 대로 인생은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7절 말씀에는 "자기를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고 했습니다.

  이 추수 감사 주일에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사랑과 자비와 오래 참음으로 옷을 입으십시오. 누구를 용서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를 먼저 용서하시고 감사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용서 없는 감사는 진정한 감사가 아닙니다.

  코리텐 붐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녀는 독일 유태인 수용소인 라벤스부르크에서 고문과 학대를 받은 사람입니다. 전쟁이 마친 후 그는 자신이 어떻게 수용소에서 고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는가를 간증하면서 가는 곳마다 사랑과 용서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말씀을 전하는 가운데 온 몸에 전율을 느끼고 얼어붙는 경험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언니를 고문으로 죽인 사람이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말씀을 전하면서 그 마음에 “하나님 저 사람만은 내가 용서할 수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라고 반복하여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녀에게 “네가 먼저 그에게 사랑의 손을 내밀어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녀는 망설임 가운데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고 “내가 당신을 용서하고 사랑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한없는 기쁨과 평안 그리고 감사가 넘쳐났습니다. 그녀의 손에 붙들린 그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용서가 없는 감사와 예배는 바른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가 형제와 자매를 주님께서 용서하셨던 것처럼 용서하고 예배하며 감사에 참여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옆 사람에게 이야기 합니다.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 나도 당신을 용서합니다.”

  둘째로 온전한 감사를 하려면 입으로 그 감사를 시인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서 한센씨 병에 걸린 10명의 사람들이 소리를 지릅니다. 한센씨 병은 나병 또는 문둥병 환자를 말합니다. 이 10명이 소리를 높여 “예수 선생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우리의 병을 고쳐 주십시오”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율법에 정한대로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그들 10명은 제사장에게 가는 도중에 한센씨 병에서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완전히 치료함을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오직 한 명만이 주님께 왔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자신의 병을 고쳐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혹시 우리들이 그 아홉 중의 한 사람이 아닙니까?

  코카콜라의 창업자인 캔들러는 본래 알코올중독자였습니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 알코올 중독자 수용소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되지 않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괴로워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마음속으로부터 “내 자신의 본능적인 욕구를 거절하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내 속에 있는 이 악한 욕구, 이 욕망을 단호히 거절해야만 자유인이 될 수 있다.”는 강한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순간 집으로 돌아와 아내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는 손을 잡은 채 “하나님! 내 힘으로는 도저히 술을 끊을 수 없습니다. 내 속에 있는 죄의 욕망은 나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나를 도와주시 옵소서. 예수의 피로 나를 정결하게 하시고 성령께서 나를 지켜 주시옵소서.”라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그 후 그는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 때부터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마음에 두신 은혜를 감사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신이 술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큰 사업가로 성공하게 되었다고 일생동안 간증하였습니다.

  지능을 수치로 나타낸 것이 IQ입니다. 감성지수는 EQ 라고 합니다. 요즘 세상에는 JQ 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JQ란 잔머리지수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TQ입니다. TQ는 감사지수입니다. 이 감사지수는 그 사람이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입에서 감사가 떠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입에서 감사가 떠나는 사람은 불평과 욕설과 저주와 분노와 시기와 질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입으로 시인하는 대로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민수기 14:28절에는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한 것을 들으시고 그 말한 것을 그대로 실행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은 감사하는 자가 되십시오.

  여러분은 예수 만난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치료자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생의 고통의 늪에서 정신의 질병을 구원하신 구원자이십니다. 인생의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목적 없는 유령선과 같이 방황하고 있을 때 인생의 선장이 되셔서 우리를 안전한 포구로 인도하셨습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가슴 아파할 이유가 없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죄의 문제로 고통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제 자신을 용서하고 남편을 용서하고 아내를 용서하고 자녀를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마음의 평안을 입어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되십시오.

  우리 모두 함께 16-17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찬양하며 무엇을 하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하되 감사함으로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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