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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좋은 이웃이 되라 (롬 12: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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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광호 목사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가 받아야 할 축복이 있습니다.
좋은 만남의 축복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물론이고 좋은 이웃과 친구를 만나야 합니다.

자녀들은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합니다. 좋은 직장을 만나야 하고 일생을 사는 동안 좋은 배우자를 만나야 합니다.
성도들은 좋은 교회를 만나야 하고 좋은 목회자를 만나야 합니다. 목회자도 좋은 성도를 만나는 것이 축복입니다. 참된 신앙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복된 믿음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소극적 만남의 축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복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성도들은 적극적 만남의 축복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항상 좋은 만남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원치 않는 만남이 있습니다. 좋지 않은 만남으로 힘들고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적극적 만남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적극적 만남의 축복은 다른 사람이 내게 좋은 만남이기를 바라는 것처럼 내가 다른 사람의 좋은 만남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좋은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좋은 스승이 되고 좋은 배우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나로 인하여 좋은 만남의 축복을 받았다고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진정 성경적인 삶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먼저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만남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을 만나는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기뻐할 수 있는 만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십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어떻게 실천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이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을까요?

1. 축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을 축복하거나 행복하게 하는 사람은 자신도 행복합니다. 또 남이 잘되는 것을 도와 주는 사람은 자신도 잘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남을 저주하거나 해를 끼치는 사람은 자신도 해를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축복과 저주는 환경이나 상대편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롬12:14)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17절)

구약시대에는 해를 받았을 때 대처하는 방법으로 '동해 보복법'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복수를 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자신을 지키려는 소극적인 보호법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적극적인 보호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악한 자를 대적하지 않고 악을 갚지 않으며 보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원한을 가지고 보복하다 보면 보복은 보복의 씨앗을 낳고, 그것은 점점 폭력과 전쟁으로 발전하여 화평한 사회관계는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레위기 19장 18절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또 데살로니가전서 5장 15절에서 사도바울은 말했습니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미국의 캔사스 주에 살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이웃 농부로부터 억울하게 모욕을 당하고 나서 보복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해로운 잡초를 가져다가 몰래 그 농부의 밭에 뿌렸습니다. 그 잡초가 자라자, 금방 밭 전체에 퍼져서 밭의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되었습니다.
몇 년 후에 이 청년은 마침 그 농부의 딸과 연예를 하여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장인이 된 농부는 이 청년과 딸에게 청년이 잡초를 뿌렸던 그 밭을 결혼선물로 주었습니다. 이 청년 부부가 밭의 잡초를 뽑아내는 데 30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여러분,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남을 도와주면 자신에게도 유익이 오지만 남한테 해를 끼치면 그 해가 자신에게 올 수도 있습니다. 보복은 남을 해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신을 해하는 것입니다.

어느 수필가가 쓴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서울에 살면서 이사를 많이 다녔습니다. 신설동에서 봉천동으로 이사할 때였다고 합니다. 신설동 집안의 복이 계속 자기네를 따라오게 하려고 방마다 창호지를 북북 찢어 놓았습니다. 청소도 엉성하게 해 놓았습니다. 복이 그 집에 더 이상 남지 않고 그 집이 싫어서 자기를 쫓아오게 하려는 심산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봉천동 집에 도착해서 빈 집문을 활짝 열고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이 집은 마당이 빗질로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고 더구나 방마다 창호지가 한군데도 찢어진 곳이 없었습니다. 부엌으로 가 보았더니 거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거미줄 하나없이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에 잘 띄는 곳에 한 장의 종이가 붙어 있는 것이 보였는데 거기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이사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 집에 오셔서 부디 행복하게 사세요. 방마다 연탄불을 피워 놓았습니다. 방 하나에 연탄 두 장씩이면 온종일 따뜻합니다. 연탄가스도 염려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다음 주소로 이사를 갑니다. 혹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연락 주십시요. 그럼 안녕히 계십시요."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축복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 배려가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따뜻하게 해줍니다. 축복의 말 한마디가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하고 위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어느 고을이나 집에 들어가든지 그 집을 위하여 복을 빌라고 했습니다.

축복하는 자에게는 축복이 임합니다. 그러나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임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복을 받는 축복자들로 살아야 합니다. 좋은 이웃이 되라는 말씀은 축복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이웃을 축복하십시오. 믿음의 축복자, 축복의 통로가 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나누고 베푸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슬퍼하는 자와 함께 울 수 있어야 합니다.

즐거워하는 이들과 함께 즐거워하는 것은 비교적 쉽습니다. 그러나 우는 자들과 함께 울기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축하 잔치를 하는 자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그러나 위로하는 자리에는 그리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습니다. 좋은 이웃이 되는 길은 슬퍼하는 자리에 있어주는 것입니다. 울고 있는 형제와 함께 울어주는 것입니다.

88년 봄 결혼한 부부는 신혼여행조차 변변히 다녀오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아 결혼 10주년때 해외여행을 가기로 한 뒤 매달 7만원씩 적금을 부어왔습니다. 회사원인 남편의 월급으론 결코 적지 않은 액수였고 집장만이 급해 아파트 중도금으로 쓰고 싶은 유혹도 있었지만 흔들리지 않았고 결국 1천만원을 모으게 됐다. 하지만 그해 여름 집중호우가 이들의 마음을 바꿔놓았다. 수해지역 어린이들이 분유와 기저귀가 없어 고통받고 있다는 기사를 접한 뒤 이들을 돕기로 한 것입니다.

이들은 수재의연금을 기탁하는 대신 직접 물품을 전달하기로 하고 매일유업에 전화를 걸어 분유 6백만원어치 5백30통을 구입하고 나머지 4백만원으로 기저귀를 샀습니다. 그리고는 매일유업에 부탁해 경기도 파주와 의정부, 서울 노원구 등 수해지역에 분유를 전달했습니다. 다음날엔 남편이 친구의 트럭을 빌려 직접 기저귀 2천개를 파주시 조리면, 광탄면 등 오지마을을 돌며 나눠주었습니다.

이날 수해를 당해 힘들어하는주부들을 감동시킨 '특별 구호품'은 중앙정부나 자치단체가 보낸 것도 아니고 매일 유업의 호의도 아니었습니다. 한 30대 서민 부부가 10년동안 간직해온 정성이 밴 것이었다.

이들 부부는 "이웃을 위해 좋은 일 한 것만으로 충분하다"며 기자에게조차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했습니다. (한겨레신문에 실렸던 기사입니다)

좋은 이웃이 된다는 것은 고통 받는 자들을 외면하지 않고 돌아보아 주는 것입니다.

진해제일 교회 - 이종영성도 뇌종양으로 수술을 받고 치료중 하나님을 영접함
2년여 동안 착실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아내와 며느리가 교회에 나오게 됨
그러다 다시 병이 악화되어 3개월간 병상에 있었음
매일 방문하여 기도해주고 말씀으로 위로함
돌아가심. 기독교장례로 장남이 예수를 믿기로 결정 지금은 집사가 되어 충성함
그의 친구들의 말 - 3대 불가사이 중에 하나가 이상화가 예수 믿는 것이라고 말함

다음 주일부터 호스피스 교육이 진행됩니다. 많은 분들이 신청해 주셨습니다.
호스피스 사역은 한 사람의 임종을 아름답게 준비시켜주는 것이며 그의 상처받은 영혼과 가족들을 위로해주는 일이며 한 영혼 뿐 아니라 가족들의 구원의 길을 여는 적극적 전도방법이다. 이와 같은 일들이 좋은 이웃이 되는 방법입니다.

지금도 목회 생활 속에서 잊을 수 없는 사건과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함께 울었던 사람들과 사건들입니다. 어려움을 함께 나누었던 사람들이 소중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고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주어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좋은 이웃이 살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3.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하여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있는 체 말라”(16절)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18절)

잠언 18장 12절에서 솔로몬왕이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23장 12절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 말기 라틴교부 신학자였던 성 어거스틴(Augustinus, Aurelius)은 "천사를 마귀로 만든 것은 교만이며 인간을 천사로 만드는 것은 겸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좋은 이웃이 되는 것은 스스로 높은 척 하지 말고 낮아져서 겸손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꽃을 피우기 위한 나무의 뿌리는 바로 겸손이어야 합니다. 그 겸손이라는 뿌리가 말라 버리면 그 사랑의 꽃은 자연히 시들고 말 것입니다.
사랑도 겸손으로, 행복도 겸손으로, 성공도 겸손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모든 기초와 뿌리는 바로 겸손인 것입니다.
화평케하는 사람의 기초는 바로 겸손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결코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화평케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도 하늘과 땅에 존재하는 불신앙과 심판과 저주를 다 없애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평화의 역할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도 평화의 개념을 가지고 이웃과 화평한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시편 34편 14절에서 다윗왕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우리는 평화를 찾고 평화를 따라야 합니다. 평화가 있는 곳에 기쁨도 있고, 평화가 있는 곳에 행복도 있고, 평화가 있는 곳에 희망도 있습니다. 분쟁과 싸움과 다툼은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 합니다. 좋은 이웃이 되는 것은 곧 평화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성 프란체스코의 기도)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절망이 있는 곳에 소망을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이 되어야 합니다.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좋은 이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방황하는 가운데 누군가 나를 붙잡아 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낙심하고 절망하는 이들이 위로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웃입니다. 강도만난 사람에게 필요한 이웃은 친히 돌보아 주고 자기의 포도주와 나귀로 사랑을 실천한 사마리아인입니다. 그러므로 주니께서는 너도 가서 이와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만남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더 귀한 것은 좋은 만남의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좋은 만남을 기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진정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여기 좋은 이웃이 됨으로 이웃과 친구들을 교회로 인도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오늘 처음 나오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좋은 이웃을 만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더 귀한 좋은 만남의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며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복된 인생의 길을 걷는 여러분들에게도 좋은 이웃이 되는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대전 한밭대 김동호교수 뇌종양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98년 마지막 인생을 정리하기 위해 기도원에 방문하여 기도하던 중 말씀을 붙들고 치유를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그후 놀랍게 호전되어 다시 강단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 생에 가장 훌륭한 결정은 청년시절 예수를 믿기로 선택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생의 최고의 선택을 하신 것입니다.
이 선택이 여러분의 인생을 새롭게 하며 풍성케하는 놀라운 축복으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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