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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름 받은자의 자세 (딤전 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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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홍요셉 목사

[1] <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

하나님은  지도자를 통해 일하십니다. 따라서 교회의 성장은 교회 리더들의 성장과 비례합니다. 리더자의 성장 없이 교회의 성장은 없습니다. 교회 리더들이 성장할 때 교회가 성장하고, 교회가 성장할 때 선교 사역이 확장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교회를 성장시키려고 몸부림치기보다는 언제나 우리 자신이 성장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교회 리더들이 주님의 말씀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 속에 들어갈 때 교회가 새로워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리더들의 마음의 그릇이 넓어질 때 교회 사역이 확장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리더들의 품이 넓어질 때마다 교회의 품이 넓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호수에 있는 물은 호수의 수위를 넘지 못합니다. 홍수가 나지 않는 한 호수의 물은 호수의 수위를 넘지 못합니다. 그와 같이 교회의 크기는 목회자와 리더들의 비전과 믿음의 크기를 넘지 못합니다.
우리 교회는 에수님을 닮은 리더를 키워야 합니다.  이민 사회가 발전할 수 있도록 훌륭한 지도자들을 많이 배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사명을 우리는 갖고 있습니다. 좋은 소문 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교회는 어려운 세상 속에서도 좋은 교인들이 모여, 좋은 교인들만이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좋은 교회는 절대로 저절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죽음을 경험할 때 사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죽는 다는게 쉬운게 아닙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기절하는 것과 죽는 것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반쯤 죽는 것과 완전히 죽는 것은 매우 다릅니다. 우리의 옛 사람이 완전히 죽어야 부활이 있고 부흥이 있습니다.
닮 잡을때를 보십시오. 반쯤 죽으면 온통 피칠하며 돌아 다닙니다.
반쯤 죽었다가 살아나면 더 골치 아픕니다. 목회자나 평신도나 완전히 옛사람을 죽여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교회가 됩니다.

교회는 지상의 어머니와 같은 곳이라고 칼빈은 말했습니다.
그래서 지치고 지친 이민 사회에서는 좋은 교회가 있어야 어머니 품에서와 같이 사랑과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좋은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상의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교회가 만들어 질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받쳐야 합니다. 우리는 좋은 교회를 만들고자하는 비전과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께서 목사와 성도를 능하게 하십니다.

[2]  부름받은 나를 능하게 하시는 예수님 

우리는 하나님 사랑과 은혜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상상 이상입니다. 그 은혜로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은혜를 깨닫고 사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며 살면 우리의 삶은 항상 생동감이 넘치고, 행복은 가까이에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의 영혼을 만족케 하며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일생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 은혜를 깨닫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는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 선물 중에 가장 귀한 선물이요 가장 귀한 은혜로 하나님이 주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귀한 은혜의 선물임을 깨닫고 그 예수를 통하여 주시는 모든 것을 믿음과 감사로 받아들이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예수님을 '나를 능하게 하신 예수님'이라고 합니다.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바울은 주님의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사명을 주시고,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은혜도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 주실 때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도 주십니다. 따라서 부름받은 우리를 능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꽉 붙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직분을 주실 때는 기쁜 마음으로 받으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일로 우리를 부르셨다면 반드시 그 일을 할 수 있는 힘도 주십니다. 만약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주었다면 너무 주저하지 말고 기쁘게 맡아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떤 직분을 주셨다면 반드시 그 직분을 감당할만한 힘도 주십니다.

[3]  부름 받은 일꾼의 기본 자세 

1. 신앙의 기본기를 다지라

균형잡힌 지도자의 요건으로는 기본기가 중요합니다.
기초가 중요합니다.  기본 위에 모든 것이 세워져야 합니다.
왜 어느 날 갑자기 신앙생활 잘하던 자가 넘어 지는가?
신앙의 기본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초와 뿌리에 문제가 있습니다.
거목은 뿌리가 깊습니다. 거목은 뿌리가 깊기 때문에 웬만한 시험에도 끄떡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1) 오중 복음과 삼중 축복의 복음에 대한 확신 (하나님의 부름받은 소명 의식)

  중생의 체험이 있고, 5중 복음의 경험이 있고 십자가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나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 기본입니다. 따라서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다는 구원의 복음,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간구하기만 하면 성령의 충만으로 채워 주셔서 감당케 하시는 성령충만의 복음, 우리 몸과 마음이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기에 우리 몸을 건강하게 해 주시는 병고침의 복음, 또한 복음증거의 사명을 가지고 그 사명 감당을 위하여 구하는 자에게는 더욱 주신 소명 잘 감당하라고 주시는 축복의 복음이 기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이 곳에서도 세상에 보냄받은 자로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며 현세 천국의 삶을 누리고, 죽음 이후에는 영원한 내세 천국의 삶을 보장해 주시는 천국의 복음과 믿는 우리에게는 개인적으로 세상적으로 종말이 있기에 이에 유비무환의 신앙생활을 하도록 깨우치고 도우시는 천국과 재림의 복음이 신앙의 핵심적인 기초입니다.

따라서 이 5중복음과 3중축복의 복음으로 철저히 다지고, 5중복음과 3중 축복의
복음이 믿는 우리에게는 전인적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 나도록
항상 기도하기를 쉬지 말고 힘써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났습니까?  나는 이 순간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죽어도 후회없다고 말할수 있습니까?
복음은 한 인생을 뒤집어 버리는 두나미스(능력)입니다.
우리의 헌신의 모든 기초는 복음입니다. 5중복음과 3중 축복의 복음이 내 가슴 속에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선포하신 5중 복음과 삼중축복의 복음 사역을 위하여 부름받은 자들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헌신을 희생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영광의 기회입니다. 사랑의 고백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너무 크니까 5중 복음에 대한 완벽한 하나님의 사랑의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나의 섬김의 모든 기초는 복음이어야 합니다. 복음적 인생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의를 자랑해서는 안된다. 율법적 인생은 리더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2) 예배생활이다. (하늘의 영광이 임하는 예배 인도자)

예배는 구원받은 자의 가장 기본적 신앙고백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재물를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진정과 신령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하셨지, 사역자를 찾는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목사나 성도나 왜 시험에 듭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예배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예배는 자기를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라야 합니다. 자기가 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엎드려 경배하는 예배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당신은 예배자로 하나님의 임재와 기름부으심을 경험하는 에배를 맛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예배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목회자는 항상 성령의 감동 감화가 있는 메시지를 전하도록 준비해야 하고,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는 예배가 되도록 정성껏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준비를 하고 섬겨야 합니다. 성령의 Anointing, Healing, Empowering, Blessing이 예배 때마다 나타나게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준비해야 합니다. 

특히 직분자들은 예배의 승부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주의 은혜의 기름부음을 사모하며 준비하고 간구하여야 합니다. 세상살이가 힘들지만, 하나님 한번 만나면 끝내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능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진정한 예배자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기 때문 입니다.

진정한 예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도 예배의 성공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때는 강렬한 성령의 임재가 옵니다. 이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때 세상에서 맛볼수 없었던 예배의 황홀을 맛보게 됩니다.
찬양도 아무것이나 부르지 말고 은혜있는 곡과 기름부음이 있는 곡들을 암송하고 묵상하며 고백하며 불러야 합니다.
예배를 잘 섬기지 않는 사역자, 봉사자는 반드시 말썽을 일을킬 위험이 있습니다.
모두가 하늘의 영광을 맛보며 사는 예배자가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3) 기도:

“ 직분자는 항상 무시로 성령안에서 기도하는 오중복음 기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엡6:18). 영혼구원을 위해서 기도하고, 성령충만을 위해서, 병고침을 위해, 사명을 따라 복을 받기 위해, 천국과 재림을 준비하는 종말론적 신앙을 위해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디까지 기도하느냐가 그 교회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기도수준 이상 그 교회는 갈 수 없습니다.
사실 기도를 하지 않는 교인은 내 혼자 힘으로 살 수 있다는 지독한 교만에 빠져있는 자입니다.  직분자는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이 영적 발전소가 되도록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역사를 위하여 기도로서 계속 발전기를 가동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Power Station이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서 직분자들은 교회도 우주적 파워 스테이션으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4) 헌 금 (물질관리에 대한 신앙고백)

헌금은 직분자의 기본입니다. 물질에 대한 청지기적 신앙고백이 헌금입니다.
십일조 문제로 막힌 자는 절대로 물질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정직한 십일조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성도의 신앙 고백적 행위이며, 축복의 하늘 창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목사는 축복받는 성경적 원리를 가르쳐서 성도들이 복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따라서 목사나 직분자들은 요셉처럼 언제 어디서나 신령한 축복을 몰고 다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의 축복의 원리에 정통하고 그 은혜를 받고 누리는 자로서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감정보다 원리에 충실하십시오.  성경의 성공원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성경적 원리로 install되어 있어야 하고 이 원리를 지켜야 합니다.
목회원리를 성경원리로 잘 세우십시오.
목회철학은 성경에서 가져온 성경적 원리로 목회원리를 적용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원리와 지도력이 있어야 혼란이 없기 때문에 원칙 중심의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곡된 지도자일수록 자기 감정에 치우치고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합니다.
아침에는 얼굴이 활짝 피었다가도, 저녁에는 지옥에서 출장 나온 사람같은 사람은 절대로 지도자의 자격이 없습니다.
리더자는 성경원리를 붙잡고 지속적으로 헌신하는 겸손하면서도 의지적 결단이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감정적 결단 은 금물입니다. 절대로 겸손하십시오. 감정원리로 헌신하는 자는 리더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만이 복의 통로가 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말씀에 따라 아멘 신앙으로 충성하십시오. 속 상하고 기분상하는 일이 많아도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대로 살고 충성하십시오.

2. 충성스런 자세 (12)

직분자에게 두번째 필요한 것은 충성스런 자세입니다. 본문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직분을 맡기신 이유는 그를 충성스럽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일할 때 유능함이 도움이 되긴 하지만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충성하는 자세입니다. 그 자세만 있으면 조금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사실 주님은 능력이 많은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능력을 보시지 않을 것은 당연합니다. 부족한 그대로 나와도 충성 한 가지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늘의 상받을 충성으로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십시오 (히3:1-6).
성경에서는 충성이라는 말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 자체가 아멘이시오 충성이시라고 부릅니다(계 3:14).

구약성경 잠언 25:13에서 충성스런 사람의 가치를 이렇게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충성스런 심부름꾼은 그를 보낸 주인에게 마치 무더운 추수 때에 시원한 얼음 냉수같아서,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충성된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항상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일인가를 점검하며 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충성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작은 일에 충성하라

예수님은 작은 충성이라도 매우 고귀하게 칭찬하십니다(마 25:23).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WEC이라는 선교훈련원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모든 선교사 지망생들에게 시키는 첫 과정이 감자깎는 일입니다.
그가 대학원을 나왔든,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든 최소한 한 학기 동안은 주방에 들어가 감자깎는 일만 해야 합니다. 거기서 그 사람의 모든 성질이 다 정화된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눅 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매사에 주께 하듯 충성하십시오.

(2) 맡은 일에 충성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일꾼이요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 따라서 맡은 자에게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일을 맡은 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성입니다(고전 4:1-2).
우리가 얼마나 일을 탁월하게 해냐느냐 보다는, 얼마나 충실하게 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3) 초지일관 충성하라

충성이란 말 자체가 내포하고 있듯이, 충성이란 변함없이 신실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충성스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초지일관입니다.
다니엘 같은 사람은 20대에 공무원이 되어 90이 넘도록 약 70여년 동안 초지일관 충직한 공직자상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을 시원케 하는 다니엘에게 엘리야의 갑절의 영감이 임하듯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축복의 영감으로 성공자로 만드셨다.

구약시대 갈렙이라는 사람은 40세때부터 85세까지 45년 동안이나 초지일관 충성을 다하는 훌륭한 모범을 보여줍니다(수 14:7-10).
갈렘은 에돔 족속으로 유다 지파의 족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사냥개 같은 그의 충성스런 믿음때문이었다. 들쑥날쑥하는 일꾼보다 초지일관하는 일꾼이 됩시다.

(4) 죽기까지 충성하라

히3장을 보면, 충성의 가장 원형적 모델을 보여줍니다.
모세의 충성과 예수님의 충성입니다.
충성이라는 말은 네 번이나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모세는 그의 나이 120세가 되기까지 사환으로 충성을 다하였습니다(히3:5절).
여기 사환이라는 말은 순수한 우리말로 머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정말 머슴으로 충성을 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모세의 충성을 자랑스럽게 인정해주십니다(민 12:7).
"내 종 모세, 그는 나의 온 집을 위해 충성스럽게 일하고 있다"

모세는 종으로 충성한 반면에, 예수님은 아들로서 충성을 다하셨습니다.
얼마나 충성을 다하셨는지 히2:17을 보면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결국 대속의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빌 2:8을 보면, 십자가에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셨음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히3: 1절에서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격려합니다. 에수 그리스도의 충성심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도 죽도록 충성한 사람입니다.
그는 "사명과 생명"을 동일하게 여긴 사람입니다(행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은 우리를 끝까지 충성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우리를 능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이 부르신다면 어디에나 가서 무엇이나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작은 일에 충성, 맡겨진 일에 충성, 초지일관 충성,  사명을 위해 죽도록 충성!
이는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자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인생을 즐겁고 아름답게 살자!

3. 겸손한 자세 (13)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엄청난 죄인이지만 은혜를 입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본문 15절 후반부에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따라서 바울은 그의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고백합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없어도 넉넉해집니다. 성격이 부드러워집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14절 말씀처럼 겸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더 넘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더욱 겸손해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욱 크신 은혜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우리 인생 대부분의 문제는 겸손의 결핍에서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삶의 원칙인 겸손의 원칙에 복종하여야 합니다. 내 감정에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참 겸손한 일꾼이 되십시오.

4. 본이 되는 자세 (16)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바울이 은혜 받은 이유는 다른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본이 되게 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남에게 네가 본이 되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본이 될 수 있습니까?
그 사람 위치로 가서 그를 이해하고 받아주어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상대방을 받아주면 모든 오해는 풀리고, 모든 사랑은 회복될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닮은 자로서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항상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사랑하고, 순종하고 죽기까지 복종하는 본을 보이도록 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고 행하는 본을 보여야 합니다.
"본이 된다"는 것은 남의 변화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변화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나의 변화를 인식하면서 내가 죄인의 위치에 내려갈 때 진정한 사랑이 나오게 됩니다. 의인의 자리에 서서 죄인에게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처럼 우리가 서로 남의 위치에 서 줄 때 우리들은 더 아름다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더러운 제자들의 발씻기는 섬김의 본을 보이시면서 "너희도 이렇게 행하라" (요한복음 13:1-15)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지도력을 말할 때마다 강조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섬김의 지도력, Servant leadership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섬김을 받는 사람이 크지만, 너희 가운데서는 그렇지 않다.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사람은, 위대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그리스도인의 지도력은 세상의 지도력과는 다른 모습을 갖습니다. 섬기는 종으로서의 리더쉽, 이것이 주님께서 보여준 리더쉽의 참 모습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 된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발을 씻어주는 사랑이란 어떤 사랑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 얼룩지고, 때묻고, 일그러진 모습을 그대로 감싸주고 씻어주는 사랑입니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같은 사랑은 예수 안믿는 사람도 합니다. 이런 정도의 사랑을 위하여 예수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서로 발을 씻어 주라는 말씀은 마음에 안드는 사람, 추하고 더러운 삶의 모습, 그 모습까지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가 배신할 줄 알면서도 그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입니다. 대적하는 반역자까지도 발을 씻어 주신 사랑, 이런 사랑의 삶을 살라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루 사랑하는 것 어렵지 않습니다. 한달 사랑하는 것 할만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끝까지, to the last moment의 사랑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사랑의 삶을 결코 포기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다가 지칠 때도 있을 것입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성질대로 한번 내뱉고 싶은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사랑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끝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사랑은 바로 이같은 사랑입니다.

목회자는 깊은 좌절을 느끼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때는 교우들의 삶 속에서 좀처럼 변화가 보이지 않을 때입니다. 그만큼 설교했으면 변해야 되지 않을까? 그만큼 신앙생활 했으면 이제는 변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기대해 보는데, 변화의 열매가 보이지 않으면 정말로 안타깝고 답답합니다. 내가 뭐하고 있는가? 자책해 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만큼 인간의 변화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기다림과 참음이 요청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사랑, 이 끝까지의 사랑을 행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라는 말씀 속에서 이 끝까지의 사랑을 부탁하셨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섬김의 삶을 원하십니까? 진정한 사랑의 삶을 살아가시렵니까? 낮추셔야 합니다. 낮춤이 없이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같은 낮춤을 위해서는 비우셔야 합니다. 학벌도 비우셔야 합니다. 경력도 비우셔야 합니다. 비움이 없이는 낮춤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낮춤이 없이는 진정한 사랑,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사랑의 삶은 불가능합니다.

지난 1996년 9월 세상을 떠난 Henry Nouwen 교수는 바로 그런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예일대학교 신학대학원, 또 하버드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로 명성을 날리던 그였습니다. 그가 써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어 우리의 영혼을 울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는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려가던 삶을 멈추었습니다. 유명 신학대학원 교수직을 사임하고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정서장애인들이 모여사는 Daybreak Community에 가서 섬기는 삶으로 남은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는 그의 말년을 섬기는 자로서의 사랑을 베푸는데 보냈습니다. 이 낮아진 삶을 위하여 타이틀도, 명예도, 자부심도 비웠습니다. 비움으로 진정한 사랑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지도력은 바로 본을 보여줌에서 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섬기라고 말씀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도 서로 씻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본을 보여주는 지도력, 이것이 주님께서 보여주신 지도력입니다. 말만 앞서는 지도력은 결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먼저 본을 보여줄 때, 먼저 앞장서서 걸어갈 때, 그 지도력은 능력있게 역사할 수 있습니다. 열매맺는 새 날을 열어갈 수 있습니다.

[3] 결 론

오늘 모든 제직들과 성도님들은 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일교회 최일도 목사님의 말씀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최 목사님께서는 "섬김이 무엇입니까?" 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시며 이런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다일공동체가 점차 알려지면서 교회들 가운데서 그곳으로 수련회를 오는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연세가 지긋하신 장로님께서 청년 39명을 데리고 다일공동체로 수련회를 오셨습니다. Homeless People처럼 길에서 자면서 고생을 하는 수련회인데 잠자리는 그냥 길에서 잔다고 해도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화장실이었습니다. 화장실이 하나 밖에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최목사님께서 하루는 일찍 일을 보려고 화장실에 가셨는데 벌써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금방 뒤로 두 명이 줄을 섰습니다. 그런데 화장실에 들어가신 분이 도무지 나오시지를 않는 것입니다. 앞에선 학생이 장로님께서 들어가셨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장로님, 대강 끊으시고 나오시지요. 지금 다섯 명이 줄을 섰습니다." 장로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금방 끝납니다." 그리고는 또 2분이 흘렀습니다. "장로님, 급합니다. 대강 끝내시고 나오시라니까요." 그런데 장로님은 "조금만 .., 조금만 더 .." 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 참다못해 문을 쾅쾅 두드리면서 문 좀 여시라고 하니까 그제서야 문이 조금 열렸습니다. 보니까 놀랍게도 장로님께서는 맨손을 넣고 막힌 변기를 뚫고 계셨습니다. 누군가 넣지 말아야 할 것을 넣어서 변기가 막혔던 것입니다. 장로님께서는 최목사님을 보시며 "이제 됐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깜짝 놀란 목사님께서 "장로님, 우리 공동체 사람들에게 말씀하시지 그걸 맨손으로 뚫으셨어요?"라고 말하자 장로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목사님, 장로가 뭡니까? 궂은 일 하는 게 장로지요. 죄송합니다. 조금 빨리 했어야 하는데." 최목사님께서는 그 장로님을 보내고, 자신의 부족한 섬김의 자세를 회개하며 목이 매여 기도하셨습니다.
"아! 아! 세상에, 한국교회에 아직도 이런 장로님이 계시다니." 그리고 그날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께는 제가 아무런 설교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장로님만 본받으면 됩니다. 이런 장로님과 함께 신앙생활하는 여러분들이야말로 진정 행운아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사랑의 삶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사랑의 삶을 살라는 주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의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우리는 이 땅에 그냥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명을 주어서 보낸 존재입니다.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좋은 세상을 찾아다니기보다는 좋은 세상으로 변화시키려고 하고 좋은 사람만 찾아다니기보다는 만나는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변화시키려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요셉처럼 가는 곳마다 그곳을 변화시키고, 축복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 되고, 결국 '천만 만민'이 우리를 통해서 복을 받게 하리라는 원대한 꿈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꿈을 가지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큰복을 예비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착하고 충성된 일꾼에게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원을 허락하십니다.
 
물적 자원 (신8:18)과  인적 자원 (삿7:7 기드온 용사 300명같은 동역자)과  영적 자원 (딤전 3;13; 롬8:32 믿음과 은사)을 하나님이 주셔서 사역을 잘 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롬8:32) “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All in Jesus! 예수님께 올 인 하라!” "주안에서만 자랑하라!” (고후10:17).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엡1:23). ”

당신도 축복의 부메랑 인생을 사십시오.  머리로만 헌신하지 말고, 마음의 감동으로 올 인하여 헌신하십시오. 하나님이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주실 것입니다(눅6:38).
주님은 당신의 헌신에 대하여 흑자인생을 절대적으로 보장하십니다.
올인 예수롤 헌신하는 이에게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히6:14 “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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