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빈들에서 (마 14:13-21)

  • 잡초 잡초
  • 268
  • 0

첨부 1


- 설교 : 서해원 목사

  지난 1월 17일은 미국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기념일’이었습니다. 해마다 1월 셋째 주 월요일에 미국은 이 사람의 기념일로 만들어 공휴일로 정하고 의미 있는 행사가 전국에서 있었습니다. 킹 목사님은 1929년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출생하여 1968년 4월 4일 암살 당하기까지 평생 흑인인권운동을 위해 일했던 사람입니다. 미국은 건국 때부터 인종차별이 대단히 심한 나라였습니다. 링컨의 노예해방을 통해 어느 정도는 회복되었지만, 실제로 는 아직도 멀었습니다. 지금도 백인과 흑인은 잘 친구가 되지 못합니다. 함께 일하지도 못하고, 같은 동네에 살기도 힘듭니다. 결혼은 상상할 수 없고, 심지어는 교회도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런 미국 사회에서 흑인에게는 인권회복과 백인에게는 반성의 기회를 주며 지도력을 발휘했던 인물입니다.

  그가 남긴 명언과 설교가 오늘까지 많은 젊은이와 성도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연설이 있습니다. 1963년 8월 28일,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의 링컨 메모리얼 센터에서 수십만 명이 모인 가운데 행한 것입니다. 제목은 ‘I have a dream,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주의 붉은 언덕에 노예후손들과 노예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불의와 억압이 존재하는 미시시피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가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그의 꿈은 망상이나 욕심이 아니라 비전이었습니다.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이었습니다. 그 꿈과 비전이 그를 평생 살게 했고, 그 꿈과 비전이 모든 흑인과 미국인과 세계인에게 커다란 도전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인간은 꿈으로 사는 존재들입니다. 결국 꿈과 소망과 목표가 우리를 이끄는 것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우리 교회에, 내 신앙의 삶에 하나님은 꿈과 비전을 주셨습니다. ‘성령과 함께 생각하고 행동하자’는 목표입니다. 금년에는 좀더 우리의 신앙이 깊어지고, 성숙한 변화와 열매를 갖기를 다짐하는 표어입니다. 그 목표를 향해 가면서 우리가 이 한해동안 처할 수 있는 삶의 현장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때론 홍해 앞에서, 그리고 갈멜산에 서야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 우리가 어떠한 믿음과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오늘 또 다른 삶의 현장을 하나 더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바로 빈들이요, 광야입니다.

  본문은 빈들에서 있었던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거기에서 있었던 일은 한마디로 ‘기적’이었습니다. 주님과 더불어 사는 우리의 인생도 어떻게 보면 기적입니다. 우리가 사는 것이 기적이요, 믿은 것이 기적입니다. 우리는 기적을 믿는 사람이요, 기적을 연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기적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 바로 빈들입니다. 그런데 그 기적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과연 그 기적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이었을까요?

  첫째는 작은 것의 헌신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소위 ‘오병이어의 사건’입니다. 이 말씀은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보기 드물게 사복음서 모두에서 나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사역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한 어린아이의 ‘오병이어’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 보리떡 다섯 개가 전부였습니다. 이것은 당시 한 사람이 먹을 점심 도시락이었습니다. 어른도 아니고 어린아이가 먹을 양식입니다. 당시에 모인 수만 명의 사람들을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 작은 것에서부터 기적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하나님은 못할 것이 없는 분이십니다. 놀라운 힘과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는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도 모든 것을 있게 하신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려면 얼마든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만들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에서부터 출발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기적의 사역입니다.

  왜 그렇게 하실까요? 생각해 보면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 귀하고 소중하여 늘 감사하며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받는데 있어서 그냥 나눠주는 것하고, 자기가 어느 정도 지불하고 사는 것하고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공짜로 주면 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고 얻으면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 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를 대하십니다. 하나님이 다 하실 수 있으나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 일이 너무도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워주어 감사하며 살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기적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엘리야 시대에 한 과부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당시 너무도 가난한 시대라서 그녀가 가진 것은 당장 먹을 기름과 밀가루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 마저 자기 집에 찾아온 엘리야를 대접하는데 썼습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기적은 시작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아주 작은 것이지만 바로 거기에서부터 놀라운 기적이 나타납니다. 이제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보십시오. 그것을 헌신하십시오. 하나님은 그것에서부터 기적을 만드십니다. 그것이 주님 손에 드려질 때 역사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과 자발적인 헌신을 통해 기적을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나의 수고와 노력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시면 주님은 이 기적을 행할 때, 그냥 하지 않고 끊임없이 제자들에게 뭔가를 주문하는 것을 봅니다. 15절을 보시면, 제자들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때가 저녁이고, 또 지금 있는 곳이 빈들이기에 사람들을 마을로 보내어 먹을 것을 사먹게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16절에서 이렇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요한복음에서는 이 사건을 조금 다른 각도로 접근합니다. 주님은 제자인 빌립을 시험하셨다고 강조합니다. 주님이 그를 모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다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제자들에게 뭔가를 주문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기적의 현장에 그들의 수고를 동참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을 봅니다. 결국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도 제자들이 찾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일도 제자들이 했습니다. 주님은 바로 이것을 원하셨습니다. 주님이 하실 수 있지만, 제자들의 수고를 끌어 들였습니다. 바로 그들의 수고와 노력를 통해 기적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인간을 향한 수고와 노력을 강조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잠언에 보면 개미에게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늘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동화가운데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더운 여름날 개미는 추운 겨울을 준비하며 열심히 일했지만, 베짱이는 나뭇가지에 앉아 춤추고 노래 부르며 놀기만 했습니다. 추운 겨울에 개미는 그간 준비한 양식을 먹으며 행복하게 살았지만, 베짱이는 먹을 것이 없어 구걸하러 다니다가 결국 얼어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현대판으로 꾸며 만들었습니다. 개미는 열심히 일하면서 살았지만 말년에 그만 신경통을 얻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여 번 돈은 병원을 다니느라 다 소모했습니다. 반면 베짱이는 춤과 노래를 열심히 하다가 지나가던 기획사 감독의 눈에 띄었습니다. 감독은 가수가 될 것을 제안했고 베짱이는 흔쾌히 응했으며 그의 탁월한 춤과 노래는 금방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유명한 연예인이 된 것은 물론 음반을 만들어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행심리나 바라고 성공주의 한탕주의를 꿈꾸는 자들의 마음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완결편이 나왔습니다. 개미는 죽기 전에 친구의 권유로 교회에 나갔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에게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신경통을 하나님은 말끔히 낫게 해주셨습니다. 그는 주변의 도움으로 조그만 가게 하나를 운영했고, 그 가게는 날로 번창하여 큰 체인 마트를 경영하는 오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번 돈의 50%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나누며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반면 베짱이는 대박을 터뜨린 음반으로 인해 부자가 되었는데 갑자기 생긴 돈을 쓰는 방법을 잘 몰랐습니다. 그는 강남의 좋은 술집이란 술집은 다 돌아다녔습니다. 그는 늘 쾌락에 묻혀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대마초에 손을 대었고, 연예인 스캔들 메이커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병원에서 에이즈라는 진단까지 받았습니다. 이제 그 엄청났던 인기는 다 사라지고 베짱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졌습니다. 그는 말년에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는 것입니다. 개미가 그렇게 전도해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여러분, 수고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신앙도 노력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값없이 주어지지만, 우리가 성숙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은 나의 수고가 필요합니다. 신앙의 세계에는 나중 된 사람이 먼저 되고, 먼저 된 사람도 나중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지만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응답은 기도를 통해 오는 것입니다. 간절한 기도, 부르짖는 소원을 통해 하나님은 은혜를 주십니다. 신앙에 있어서 얼마나 수고해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기적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나의 수고와 함께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수고해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요행심리나 공짜심리만 갖는 것에서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서부터 기적은 일어납니다. 이런 수고와 땀흘리는 삶으로 기적을 꼭 이루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주님의 불쌍히 여기심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빈들에서 경험할 수 있는 놀라운 기적은 결국 주님이 간섭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병이어를 들고 하늘을 향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제자들이 나누어 줄 때 광주리가 비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실제로 놀라운 기적입니다. 과학이나 이성적으로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기적을 다르게 말합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한 어린아이가 자기 것을 주님께 드리니까 사람들이 감동을 해서 숨겨놓았던 점심을 꺼내었고, 서로 나눠 먹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럴듯합니다. 기적을 믿지 못하면 타당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이 사건은 주님이 행하신 기적입니다. 오병이어를 가지고 열두 광주리나 남게 하신 일은 주님이 친히 하신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기적의 출발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14절에 그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주님께서 큰 무리를 보시고 먼저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것이 출발입니다. 주님이 불쌍히 여기자 병들을 고쳤습니다. 주님이 불쌍히 여기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주님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어서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바로 그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서부터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나’라는 여인을 알고 계시지요? 그녀는 마음이 원통하고 괴로워서 눈물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던 여인이었습니다. 무슨 짧은 그녀의 인생에 한이 많았는지 서러워서 견딜 수 없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녀가 날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해 달라고,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한나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녀의 한을 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녀에게 놀라운 기적을 일어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압제에 놓여 오래 동안 고통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은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제도 고생했는데 오늘도 고통의 연속입니다. 내일도 그렇게 살아야 했습니다. 삶의 기쁨이 사라진지 오래였습니다. 가정의 즐거움도 옛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서로를 보아도 즐겁지 않았고, 늘 패잔병처럼 고개를 숙이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늘 예민했고 사소한 일에도 싸움이 많았습니다. 얼굴의 표정도 없어졌고, 근심과 염려로 속까지 병들어 갔습니다. 이런 때에 이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하나님은 그들의 간절히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기적을 행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회복을 선포하면서 백성들에게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이스라엘이 너무도 범죄하여 하나님은 진노의 채칙으로 그들을 치셔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곧 바로 큰 긍휼로 감싸주었습니다. 넘치는 긍휼로, 영원한 자비로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야 은혜가 임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그 긍휼이 우리를 살게 하고, 결국 하나님의 기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나님이여, 내 가정에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하나님이여, 이 교회에, 이 민족과 세계 열방에 큰 긍휼을 베푸소서”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엎드릴 때, 큰 기적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의 현장은 빈들이요, 광야입니다. 이제 이 삶에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살고 우리가 삽니다. 그 기적이 일어나도록 나의 작은 것을 드려야 합니다. 더욱 최선을 다하여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고 구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를 향하신 기적을 바라보면서 힘있게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