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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한 정복자 (창 13: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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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서정호 목사

현재 한국 축구계의 최대 '핫이슈'로 떠오른 선수가 박주영입니다. 지난 목요일(27일) 끝난 '2005카타르 8개국 초청 청소년대회'를 통해 9골을 넣어 슈퍼스타로 부상한 박주영 선수에 대해 하나같이 '한국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될 것이니 당장 A 대표팀에 보내라’는 목소리에 정작 본인은 "아직은 때가 아니다. 청소년 대표팀에서 배울 게 아직 많아서 천천히 해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A 대표팀에는 아직 욕심을 안내고 있다"고 겸손해 했습니다. 주위의 찬사에 어깨가 으쓱해질 법도 한 분위기이지만 정작 본인은 '익은 벼'처럼 고개를 숙입니다. 실력과 함께 당장 찬사에 대해 스스로 겸손해하며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그 선수가 온 국민의 마음을 차지한 셈입니다.

누군가를 때리고 고통을 주고 상처를 입히거나 아프게 한 사람이 사과를 하거나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면 잠을 이루지 못할 수 있지만 고통을 당해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고 억울한 마음으로 가득 찼으나 진심으로 용서한 사람은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맞은 자가 때린 사람을 정복한 경우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믿는 순간 하나님께서 그에게 소원을 주시고 그 소원을 이루어가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절대로 넘어지지 않으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며 하나님께서 주신 소원을 위하여 땀과 눈물과 피의 세 가지 액체를 흘리며 삽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따라 살기 때문에 환경을 초월하고, 나이를 초월하고, 사람의 말을 초월해서 살아갑니다. 소원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인생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다 이 소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 소원들이 그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바울의 고백이 빌립보서 3:13-14절에 들어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예수님만을 따르고자 하는 바울의 소원입니다. 이 소원이 바울의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소원으로 인생의 운명을 바꾼 믿음의 사람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도 소원으로 인생의 운명을 바꾼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주시고 한 가지 소원 즉 꿈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땅을 기업으로 얻는 것과 그의 이름이 창대케 되는 것과 자녀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진 소원 중 하나는 넓은 땅을 차지하는 것이었고 땅을 기업으로 얻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소원을 붙들고 갈대아 우르를 떠났으며 이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갖은 수고를 다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소원했던 땅이 이스라엘 민족의 땅이 되었습니다. 그 땅에 예루살렘이 있게 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왔고 그곳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세워졌으며 그곳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고 아브라함은 땅을 차지하는 꿈을 이룬 것입니다. 소원으로 인생의 운명을 바꾼 사람이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믿음이 고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땅의 문제는 별 것 아닌 것, 사소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인생 살면서 성공하고, 형통하게 되는 것을 소홀하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믿음만 있으면 되지. 무슨 땅이 필요하고 돈이 뭐가 필요하고 형통함이 무어가 필요해” 라고 말합니다. 물론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 이외에도 땅과 돈과 명예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기쁨을 주셨습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믿음을 세우고, 믿음을 아름답게 하고, 믿음의 축복을 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은 성공해야 하고 유명해져야 하고 존경받아야 하고 패배자가 아닌 승리자가 되어야합니다. 결국 이 세상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스려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주신 땅을 차지하는 믿음의 법칙이 무엇일까요?

떠나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큰 땅을 얻는 자는 먼저 작은 것, 옛것, 낡은 것, 좁은 것을 포기할 줄 압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시려고 부르실 때 첫 말씀은 갈대아 우르,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익숙했던 삶, 환경, 사람들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떠나게 되면 새로운 땅, 더 좋은 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조카 롯을 데리고 떠났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고 그래서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많은 것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싸우고 맙니다. 좀 더 많은 목축지를 얻으려고 종들이 서로 싸웁니다. 떠날 것을 떠나지 않으니까 싸움만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결단을 내리고 롯에게 양보합니다. 좋은 땅을 포기합니다. 창세기 13장 9절 말씀입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조카 롯은 사실 아브라함 때문에 부자가 된 사람이고 아브라함의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조카 롯이 먼저 기름진 땅을 선택해서 떠납니다. 먼저 욕심을 부리고 먼저 탈취합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마음은 얼마나 힘이 들고 괴롭겠습니까? 허탈합니다. 그 머나먼 길, 자신과 동행했던 롯입니다. 아브라함의 기쁨이 되고, 힘이 되기도 했던 조카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롯에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 내주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남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포기한 그 자리에 새로운 땅, 멸망 받지 않을 땅, 축복의 땅을 허락하십니다.

창세기 13장 14절입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하나님은 포기한 아브라함에게 찾아 오셔서 더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 롯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포기할 수 없었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포기하고 롯에게 주자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집착을 버리면 더 크고 넓은 세계가 보인다

여기서 배우는 교훈이 있습니다. 집착하고 있는 것을 버리기 전까지 더 좋은 것이 보이지 않지만 집착을 버리면 더 크고 넓은 세계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내 것을 집착하고, 내 생각을 집착하고, 내 뜻을 집착하는 한 넓은 세계, 넓은 생각, 넓은 뜻을 이룰 수 없지만 내 생각과 내 집념, 내 욕심을 포기할 때 더 넓은 세계를 맛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11절에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하였습니다.

장성하기 위해서는 버릴 줄 알아야 하고 더 누리기 위해서는 떠날 줄 알아야 하고 더 풍성하기 위해서는 포기할 줄 알아야합니다. 옛 정욕을 버리고, 옛 습관을 버리고, 옛 생각을 버려야합니다. 그래야만 내 생각이 충만해지고, 내 마음이 풍성해집니다. 내가 양보해야 하고, 내가 손해를 보여주어야 하고, 내가 겸손히 섬겨야 이웃이 생기고 인정을 받고 사람들이 따르게 되고 동료가 생기고 더 넓은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한 알의 밀알처럼 내가 죽고, 내 것을 포기하고, 내 욕심 버리고 이웃을 사랑하고, 주고, 섬길 때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버리고, 양보하고, 포기하며 이웃 섬기고 베풀고 사랑하는 것 이것이 땅을 정복하는 믿음의 첫 번째 법칙입니다.

포기하는 곳에 힘이 있고 섬길 때 풍성함이 있습니다. 내 것을 웅크리고, 내 것을 주장하고, 내 것을 욕심 부릴 때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지만 내 것을 포기하고 내 것을 줄 때, 내 것으로 사랑할 때 거기에 정복하는 위대한 힘이 나옵니다. 포기하고 주고 사랑하며 섬길 때 거기에 새로운 세상, 영원한 세상, 넓은 세상, 축복의 세상이 다가올 것입니다.

포기는 응답이며 회복의 은혜다

포기는 응답이며, 포기는 회복의 은혜입니다. 포기는 응답과 치료를 가속화 시킵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헤일 수 없는 축복과 은혜 속에 삽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또한 예수님 때문에 포기해야할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지금 어떤 한 사람이 그렇게 갈등하고 그렇게 힘들어하고 그렇게 속상해 한다면 포기 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포기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침묵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막힘을 통하여 여시며, 아픔을 통하여 성숙케 하시며, 포기를 통하여 응답하십니다.

축복이 신앙의 꽃이라면, 포기는 신앙의 열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매보다, 눈에 화려하게 보이는 축복을 선호하지만 생명은 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열매 속에 숨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없는 포기의 쓴 열매들을 통하여 생명에 속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게 되고 진짜 '명품신앙인'으로 성화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출발은 소유와 누림이지만, 신앙의 마지막은 포기와 내려놓음 입니다. 그러므로 초보 신앙인들은 믿음 때문에 얻은 것이 많다고 간증하지만, 신앙이 성숙하신 분들은 예수님 때문에 버리고 포기한 흔적이 많다고 간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치명적인 약함을 아십니다. 다 포기해도 이것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그것을 내놓으라 하십니다. 무엇을 건드리시면 우리가 꼼짝없이 하나님께로 나올 것을 아시고, 어떤 치부를 드러내시면 우리가 겸손하게 설수 있는지도 아십니다. 혹 예수 안 믿을까봐. 혹 지옥 갈까 봐. 혹 교만하여 하나님 무시할까봐. 혹 기도 없이 자신의 힘으로 살까봐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항복을 이끌어 내시려 하십니다. 그 방법 외에는 어쩔 수 없는 극약처방으로 몰고 가십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때는 없었으면 했던 것들이 지나고 나면 있었던 것들이 감사와 축복이 되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독자를 결코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질도, 건강도, 자신의 생명도 포기할 수 있었으나 사랑하는 아들 이만큼은 내놓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독자를 포기하라 하십니다. 포기하는 것이 쉽다면 무슨 연단이 될까요? 누구나 포기할 수 있다면 그 포기가 무슨 축복이 될까요? 하나님은 때때로 무정할 정도로 우리를 다그치시고 몰아 부치십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그때마다 우리는, 처절하게 저항하고 도망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번도 도망가는 우리를 포기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우리가 포기할 수 없다고 저항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지경으로 몰고 가십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그냥 포기한 분들 보다, 맞고 포기한 분들이 훨씬 더 많은 걸 보면, 우리는 분명히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왜 응답이 더디 오는가요? 포기하지 않고 움켜쥐고 구하기 때문이며 자기 자신을 위해 구하기 때문입니다. 왜 늘 목마르고 답답한가요? 하나님의 포기요구와 나의 탐욕과의 충돌현상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포기를 통한 성숙과 자아의 죽음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녀들에게 불같은 시험과 고난을 왜 주시는가요? '너의 옛사람, 편견, 고집, 자존심, 고정관념 등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방법과 은혜로 살라고 하시는 싸인입니다. 하나님의 길은 포기하면 열리고 하나님의 치유는 포기하면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항복할 때 비로소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포기하라고 하심은 우리를 망하게 하심이 아니라, 흥하게 하심이며 우리의 것을 빼앗기 위함이 아니라, 더 주기 위함이며 우리를 어렵게 하심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더 좋은 것이 생기면, 덜 좋은 것은 포기하듯이 주님이 더 좋으면 덜 좋은 세상 것은, 무엇이라도 저절로 포기하게 됩니다. 더 큰 은혜, 더 깊은 은혜 받으면, 포기 안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포기하려 노력하지 마시고 포기되는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포기의 현장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크고 많은 문제가 있더라도 그것은 주님 앞에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문제는 내 자신 입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못하는, 그래도 엎드리지 못하는, 그래도 매달리지 못하는 그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은, 우리가 엎드리는 시간이며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타이밍은, 내가 포기하는 순간임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눈을 들어 새로운 땅을 바라보는 것

바라본다는 것은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영어 단어에 see와 look가 있는데 둘 다 본다는 뜻이지만 그 의미는 다릅니다. see는 눈에 들어오는 것을 생각 없이 그냥 보는 것이고 look는 목적을 가지고 의미를 생각하며 찾으면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눈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그냥 보면 안 되고 목적을 가지고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무엇인가, 무슨 뜻인가, 무엇이 있는가를 늘 보고 탐구하고 추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13장 14절 다시 한 번 봅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하나님은 롯이 떠난 후 아브라함에게 막연히 바라보라 하지 않으십니다. 롯이 좋은 땅을 차지하고 갔지만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이제 남은 땅을 한번 주의 깊게 살펴보라고 하십니다. 거기에 무엇이 있다, 거기에는 분명히 더 넓은 것이 있고 거기에 분명히 더 영원한 것이 있으니 찾아보라는 말입니다.

바라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무슨 의미가 담겨있습니까?

잃어버린 것을 바라보지 말고, 새롭게 주어질 것을 기대하라는 말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버리면 얻고 취하게 됩니다. 비운 그릇에 보배를 담을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것을 바라보면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도 내게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새롭게 열린 것들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라' 잃어버린 것을 보지 말고 새롭게 얻게 될 더 좋은 것을 바라보십시오.

지나간 과거를 바라보지 말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라는 말 

과거는 돌이킬 수 없고 이미 지나간 것입니다. 날아 가버린 화살이기에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과거를 가지고 울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새로운 미래는 우리가 새롭게 창조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8절, 19절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의 강을 내리니" 과거는 실패했을지라도 미래는 성공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잃었지만 미래는 얻을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과거를 생각하지 마시고 창조하는 미래를 생각하며 없어진 과거를 붙들지 말고 형통할 미래를 설계하시기 바랍니다. 지나간 과거를 탓하지 말고 내일을 위해서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으십시오. 이것이 땅을 정복하는 믿음의 법칙입니다.

땅을 바라보지 말고, 위를 바라보라는 말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로 난 자들입니다(요 1:12, 13). 위로부터 난 자들이기에 위를 보고 살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땅을 소유하고, 땅을 정복하여야 하지만 그래도 땅을 바라보고 살아서는 안 되고 위를 보고, 위에 것을 생각하며 위엣 것으로 땅을 정복하여야합니다. 위를 바라보고 신령한 것을 보고 날마다 새로운 미래를 바라봅니다. 과거에 묻혀 살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합니다. 땅의 원리, 인간의 원리, 세상의 원리로 살지 않고 하늘의 원리, 하늘의 방법으로 삽니다.

추구하는 것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 한 가지를 더 말씀하고 계십니다. 17절 말씀입니다.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바라보았느냐 그러면 움직이라고 하시고 행동하라 하시고 적극적이 되라 하십니다. 꿈을 꾸고, 소원을 가졌으면 대가를 지불하라 하십니다. 그 소원을 위해서 모험을 하라, 전진하라, 뒤로 물러서지 말아라. 뒤를 돌아보지 말아라. 끊임없이 전진하라 하십니다. 인내하면서 소원을 이루어나가라는 것입니다.

바라보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인내하며 계속해서 추구하는 것입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때 마침내 우리는 얻을 것입니다. 성경의 축복의 역사는 다 이것을 증명합니다.

여러분! 꿈을 향해서 집념을 가지고 행동하십시오. 씨를 부지런히 뿌리십시오. 그러면 마침내 얻을 것입니다.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하십시오. 마침내 거두기 위해서는 땀과 눈물과 피의 세 가지의 액체를 흘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자기희생 없이, 눈물 없이, 각고의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인생에는 승리의 비결이라는 것이 따로 없습니다. 땅을 정복하는 믿음의 비결은 비법이 아닙니다. 특효약이 없습니다.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저는 절대로 땅을 정복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성경적인 성공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땅을 정복하는 데는 정로를 걸어야 합니다. 좌우로 치우침이 없는 걸음으로 걸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승리를 위한 정당한 지름길이 있다면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불한 대가만큼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야 하고 인내하여야 하고 집념을 가져야 합니다. 바라본 것을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는 신념을 가져야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온유함을 잃지 마시고 따뜻함으로 하십시오. 거칠고 천박하게 싸우지 마시고 거칠게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지 마시고 온유함으로 인내하시고, 온유함으로 십자가를 지시고, 온유함으로 자기를 부인하시고, 온유함으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십시오. 왜냐하면 성경이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 말씀하시 때문입니다.

땅은 애쓰고 힘쓰는 자가 차지합니다. 그러나 온유함으로 애쓰고 힘쓰는 자들이 얻습니다. 땅은 무력으로 정복할 수 없습니다. 싸움과 난폭함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들은 땅을 정복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은 약한 자들이 아닙니다.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자들입니다. 다윗처럼 골리앗을 정복하는 자들입니다. 아브라함처럼 땅을 얻는 자들입니다.

인생에서 패배하지 마시고 승리하십시오. 병에서 승리하시고 사업에 승리하시고 자녀 교육에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정복하는 것입니다. 가나안을 정복하고 헤브론 산지를 정복하고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먼저 자신의 것을 포기하십시오.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면 자기 이상 벗어날 수 없고 우물 안의 개구리밖에 되지 못합니다. 잘못된 자기 습관, 자기 생각, 자기 욕심, 옛 세상에 속한 것들을 버리시고 하나님이 주신 꿈을 바라보시고 그것이 무엇인가 생각하십시오. 잃어버린 과거를 생각하지 마시고 새로운 미래를 바라보십시오. 땅을 바라보지 마시고 위를 바라보십시오. 땅의 논리, 세상의 생각으로 살아가지 마시고 하늘의 생각, 성경의 생각, 하나님의 원리, 기도의 논리로 인생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애쓰십시오.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십시오. 인생은 집념하는 것이고 신념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따뜻하게 하시고 온유함을 항상 나타내십시오. 억누르지 마시고 배려를 하면서 하십시오. 그럴 때 땅은 여러분의 수중에 들어오게 될 것이고 여러분은 정복자가 될 것입니다. 행복한 정복자가 축복된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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