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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을 위해 죽을까? (눅 22: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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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기홍 목사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주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전 세계를 경악케 하는 무서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남학생 두 명이 자동소총을 들고 들어와 방마다 아이들을 찾아다니며 총을 쏘아댔습니다. 13명이 죽고 20여명이 부상당했습니다. 경찰과 대치하게 되자 두 남학생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다시 한 번 안전지대는 없음이 밝혀졌습니다.

마구 총을 쏘며 도서관에 들어오자 아이들은 책상 밑으로 숨었습니다. 기도하는 한 여학생의 다리를 쏘고 묻습니다. “하나님 믿냐?” “그렇다”고 대답하자 머리를 쏘아 죽입니다. 그리고 고함칩니다. “하나님 믿는 놈들은 다 죽여주겠다!” 그 다음에 다른 기도하는 아이의 머리에 총을 대고 묻습니다. “너도 하나님 믿냐?” 그것이 나라고 생각해 보세요.

총구 앞에 있는 여학생은 17살 캐시 버넬입니다. 잠시 머뭇거립니다. 얼마나 많은 생각이 오갔을까요?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요? 결국 대답합니다. “그렇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총 든 아이가 소리 지릅니다. “왜?” 그러면서 총을 쏩니다. 다섯 발이 발사되고 몸은 피투성이가 됩니다. 이렇게 평범한 그러나 꿈 많은 어린 여학생은 순교합니다.

1. 무엇을 위해 죽을까?

죽음을 앞에 둔 여학생의 담대한 고백이었습니다. 그 당시 주변에 떨고 있던 학생들로부터 시작해 미국 전역에 엄청난 신앙적 충격과 대대적인 각성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캐시 버넬의 길을 따르자!” 모든 청소년들은 가슴에 “Yes, I Believe”라고 쓴 셔츠를 입고 다녔습니다. 교회마다 학교마다 기도회가 열렸습니다. 교회는 청년들로 넘쳤어요.

한 달 뒤인 5월 31일자 <타임>입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확실한 신앙고백은 청소년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만들었다. 학생들은 캐시를 모범 삼아 결단했다. ‘학교에서 그런 일이 생기면 나는 친구들을 대신해 총에 맞을 수 있습니다. 죽은 후 어디로 갈지 확실히 알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일들이 나라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건 날 방과 후 교회에서 중고등부 아이들 모임이 있을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그날 토의하기 위해 읽은 책은 크리스토프 아놀드의 <평안 추구하기>란 책이었습니다. 캐시가 표시한 구절입니다. “찾을 때까지 구하라. 포기하지 말라. 믿음이 없다고 생각되어도 기도를 그치지 말라. 하나님은 ‘믿음 약한자’의 신음까지도 들으시니까 반드시 도와주신다.”

다음은 무엇을 위해 죽을 까입니다.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죽음까지도 신앙에서 오는 확신과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다. 마르틴 루터 킹도 분명 죽기가 두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1963년 평등권을 위해 모인 흑인들에게 외쳤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자유를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죽음의 공포를 정복해야 당신은 자유의 몸이 됩니다.’”

그리고는 마르틴 루터 킹의 결정적인 말이 나옵니다. “아직 자신이 무엇을 위해 죽을지 찾지 못했다면 당신은 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감히 말하겠습니다.” 과격한 표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삶의 목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캐시는 그 날 밤 모임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에 대한 반응을 직접 실천에 옮긴 것이지요.

이미 일 년에 쓴 일기에는 자신의 결심이 나타나 있습니다. “비록 위험한 일일 찌라도 내가 어떤 일 하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은 내게 알게 해주실 것이다. 그것이 나를 실망시킬 수 있겠지만 보람이 있으리라. 나는 하나님을 위해 죽고 싶다. 나는 믿음을 위해 죽을 것이다. 그것이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이다.”

16살의 어린 나이에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앞으로 영국에 가서 의과대학을 다니고 산부인과 의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펴기 위해서이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는 목숨을 드릴 수 있다는 결심입니다. 옳다고 확신하는 것을 붙잡고 두려움, 불안과 싸울 것을 다짐하고 있었어요.

우리 각자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어떤 이해를 하고 있나요? 만약 목숨을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위해서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젊고 아름다운 생명을 받으신 하나님이 그 대가를 어떻게 돌려주실까요? 참으로 사랑은 귀한 것을 줍니다. 꽃보다 더 아름다운 생명을 드렸다면 그보다 더 큰 사랑이 있을까요? 모두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2. 순교자는 만들어진다

캐시가 본래 그렇게 신앙이 좋은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5, 6학년 때부터 부모와 멀어졌습니다. 중3 되었을 때는 성적이 형편없었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결석도 잦아졌습니다. 아주 친한 친구들이 문제아였습니다. 그 아이들은 주술적인 장식들을 하고 다녔습니다. 음악은 잔인하고 폭력적 록그룹만 들었습니다. 어울리는 사람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이메일은 부모를 죽이고 도망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총들고 선생님과 동료 학생들을 죽였던 아이들이 그런 상태였던 것입니다. 캐시의 부모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었어요. 아무리 친구들을 못 만나게 해도 소용이 없었어요. 엄마는 한동안 직장을 그만 두었고 부모는 24시간 딸을 감시하게 됩니다. 학교도 옮기고 집도 이사를 갔어요.

무엇보다도 교회에 출석 하고 목사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아이는 몇 달 간을 소리 지르고 난리를 부립니다. 교회에 데려다 주면 어느새 도망칩니다. 악한 친구들에게 무서운 충성심을 가졌어요. 그러니 부모는 24시간 아무 것도 못하고 자식을 지킵니다. 캐시는 자포자기 빠져 어느 날 억지로 청소년 집회에 끌려갑니다. 감시받는 요주의 인물이었어요.

하나님은 일하셨습니다. 거기서 성령 체험을 하고 극적으로 달라집니다. 예수를 영접하고 자신 속에 있는 귀신을 몰아냅니다. 이처럼 교회출석과 성령의 감화는 사람의 근본을 바꾸어줍니다. 물론 예수 영접하면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캐시도 여전히 신앙적인 갈등을 겪었지만 모두 성장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성적도 3.5 이상이 됩니다.

죽는 날 아침 친구에게 안부 쪽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끝에 덧붙인 말입니다. “나는 오로지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어. 진심이야. 힘들고 두렵겠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그 말대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총을 쏜 아이들은 모두를 슬프게 하고 부끄러운 목숨을 끊었습니다. 여기서 친구와 교회의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어요.

같은 반 남학생은 캐시의 죽음으로 인생관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고백합니다. “전에는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십대이기 때문에 먼 훗날에나 죽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 순간이든 세상을 떠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나이순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오늘이 마지막이다 생각하며 하루를 맞는다. 바르게 살아야지.”

한 교수는 일주일간 휴가를 냅니다. 친구, 교회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어서였어요. 그저 함께 있는 게 고마웠다고 해요. “캐시의 죽음은 우리를 흔들어 정신이 들게 한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수업준비 해 더 잘 되려고 도서관에 있었던 게 중요한가? 아니다. 캐시는 그날 그 자리에서 언제든지 세상 떠날 준비가 되어있었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귀한 삶과 죽음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줍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캐시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거짓스럽고 추하게 사느니, 남들을 괴롭히고 망하게 하느니 자신의 믿음을 위해 죽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의인의 흘린 피는 헛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받으시고 그 영혼을 영원히 존귀하게 만드십니다.

3. 하나님은 죽을힘도 주신다

아마도 여러 분은 생각할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죽고 싶지 않다. 너무 비참하고 아깝다.” 일부러 죽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다 죽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제대로 죽을 자세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우리는 매일 조금씩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매일 어떻게 사느냐도 같은 자세에서 나올 것입니다.

단번에 영웅처럼 죽을 수 있지만 주기철 목사처럼 오래 동안 감옥에서 고문당하며 죽을 수도 있어요. 테레사수녀처럼 평생 남을 위해 자신을 부정하며 매일 죽을 수 있어요. 그러기에 사도바울도 “나는 매일 죽노라”했지요. 여하간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죽습니다. 준비하지 않아도 죽습니다. 그러면 좋은 기회를 낭비하고 맙니다. 마음을 정하세요.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순교할 힘을 주십니다. 혼자 힘만으로는 안 됩니다. 신자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나님의 힘으로 됩니다. 신자의 모든 시련은 선택의 기회입니다. 비참한 얼굴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군처럼 맞을 수도 있습니다. 몰상식한 대접을 받고 억울한 비난을 듣고 매 맞고 욕먹을 수 있습니다. 그때 참된 나를 보여주는 겁니다.

베드로는 처음에 혼자 힘으로 하나님을 섬기려 했습니다. 심지어 주를 위해 감옥에도 죽는 데도 가겠다고 각오하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는 그러기가 어렵습니다. 예수 말씀입니다.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우리도 총구 앞에서 얼마든지 믿지 않는다고 부인할 수 있습니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어요.

우리는 세상에서 끊임없이 도전 받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단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예수는 도움을 약속하십니다. 사실 캐시도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순교자의 반열에 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정리해 봅시다. 첫째 우리는 반드시 죽습니다. 또한 매일 조금씩 죽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장엄하게 죽을 능력을 주십니다. 선택만 하면 됩니다. 총구 앞에서 하나님을 부정하고 살아남겠습니까? 그래서 평생 부끄러워하며 후회하겠습니까? 아니면 캐시처럼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품으로 산화되겠습니까? 또한 매일을 그렇게 살겠습니까?

“하나님은 살아계시다”고 고백하면 두려울 게 없습니다. 못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한 주간을 보내기 바랍니다. 특별히 그 마음으로 새생명축제에 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며 너를 돕니다. 그러니 너는 돌이켜라. 그리고는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주의 명령입니다. 순교의 자세로 교회와 가정과 직장에서 봉사하기 바랍니다.

QT를 위한 질문 (괄호 안은 묵상할 내용의 위치)

1. 총구 앞에서 “너도 하나님을 믿느냐?”는 말에 뭐라고 대답할지 자신이 있나요?(서/2,3)
2. “믿음 없는 자”의 신음까지 듣는 하나님께 기도하겠습니까?(1/3)
3. 당신은 무엇을 위해 죽을 수 있나요?(1/2,3)
4. 교회에 나오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일의 중요성을 말해보세요.(2/3,4)
5.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요?(2/7)
6. 순교 그리고 세상살이는 무슨 힘으로 합니까?(3/3-5)

오늘 말씀은 미스티 버넬이 쓴 <20세기 마지막 순교자 캐시 버넬>/상상북스/2002를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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