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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중요한 결단 (잠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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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정근두 목사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예배의 자리에 함께 나아오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구주대망 2004년이 서서히 퇴장하고 있습니다. 한 해를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면서 새해를 어떻게 살 것인지 새로운 결단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은 바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동으로 움직이는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하는 이성적인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선물을 잘 활용하는 최선의 방법은 중요한 결단을 바로 하는 것입니다.

보통사람들은 하루에 300가지 내지 17,000가지 결정을 내린다고 합니다. 물론 그 가운데 많은 것 대부분의 것은 무의식적으로 내리는 것들이긴 하지만 엄청난 결정을 우리는 내리고 있습니다.

자명종 소리를 들으면서 바로 일어날 것인지 조금 더 자고 일어날 것인지 고민합니다. 용수철 튀듯이 일어날 것인지 아니면 돌쩌귀처럼 이리 한번 저리한번 구르면서 뜸들여 일어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일어나서 곧장 세면대로 달려갈 것인지 아니면 떨어져 있는 신문을 주워서 본다든지 뉴스라도 좀 보고 들어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되지요. 세면대 앞에 서서도 따뜻한 물을 얼마나 받아야 될 것인지를 생각해야 되고 그리고 어떤 세제를 가지고 세수를 해야 될 것인지를 사실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하기 때문에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사실 이런 일들이 참 많습니다.

세수하고 나와서 밥 먹고 옷 입을 때는 무얼 입고 오늘 나갈 것인지를 여러분은 결정해야 합니다. 하다못해 볼펜 하나를 써도 파란 볼펜을 쓸 것인지 검은 볼펜을 쓸 것인지도 결정합니다. 자세히 관찰하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수많은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차를 몰고 막 네거리에 진입하는데 노란 불로 바뀌면 가속페달을 밟아야 할 것인지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것인지 순간적인 고민을 해야 합니다. 기질과 성격에 따라서 그날 기분에 따라서, 아니면 그날 상황에 따라서 다른 결정을 내리기도 할 것입니다.

이런 결정들은 크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보다 더 복잡하고 그 영향이 오래 미치는 결정들도 해야 합니다. 수능 점수에 따라서 어떤 학과와 대학을 선택해야 하는지도 결정해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교육도 잘 받았고 직장도 좋은 자매가 장래를 두고 고민합니다. 혹시 독신의 은사도 없는 것 같은데 또 내년도 올해처럼 보내야 하는지 아니면 웬만하면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만 합니다. 그림이 괜찮아 보이는 바깥에 있는 남자를 택해야 하는지 아니면 좀 어설퍼 보여도 교회 안에 있는 형제를 배우자로 정해야 하는 지로 고민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선택은 사소한 것이 아닙니다.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1세기 동안 사는 날 동안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어제 새 생명 면접을 하다가 우리 젊은 형제 한 사람이 그러네요. 당신 결혼 할 당시에는 상당히 염세적이어서 그냥 될 대로 되라고 “너 나하고 결혼할래?” 채팅하면서 저쪽에서도 하겠다고 해서 했다는 것입니다. 그쪽에서 안 하려고 했으면 안 하려고 했는데 하겠다고 해서 했다는 겁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결정은 굉장히 오랫동안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어설프게 해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선하게 만들어 주셔서 망정이지 잘못하면 굉장히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평생 고생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인생은 이런 수많은 결정들로 이뤄진 조각그림 같습니다. 하나의 결정들이 서로 정교하게 맞추어진 큰 그림처럼 보입니다.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면 그 결과로 복된 삶을 살고,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면 그 결과로 불행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면 무엇이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리게 하고 그 결과 다른 삶을 살게 할까요? 그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는데 꼭 필요한 중요한 결정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방법대로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이것을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ꡒ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ꡓ(롬12:1)#

고대사회에서는 짐승을 잡아 제사하는 일은 흔한 일 이었습니다. 제단 위에 짐승을 잡아 목을 꺾고 피를 흘리도록 해서 죽은 짐승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로 바쳤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제사라는 말이 늘 헷갈렸습니다. 성경에는 주로 짐승을 잡아 목을 꺾는 이런 제사를 이야기하는데 내가 아는 제사는 그런 제사가 아니거든요. 자다가 보면 왁자지껄해서 눈을 떠서 보면 사람들이 모여 떡 한덩이를 얻어먹고 늘 이런 제사를 생각했으니까요. 그렇죠?

이 성경말씀은 더 이상 죽은 짐승으로 바쳐지는 제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달리 말해 우리의 삶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언제나 ꡒ예ꡓ라고 응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전폭적으로 양도하는 것입니다. 항복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손들고 백기를 들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자신이 운전석에 앉았다가 뒷자리로 물러가고 “하나님, 이제 핸들을 잡으십시오. 당신이 이제부터 운전을 하십시오.” 라고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삶의 결정권을 전폭적으로 위탁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방식을 매사에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전폭적으로 그 분의 뜻을 수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삶 전부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작업입니다. 몇 가지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 삶을 전체다 이양하면 그 순간부터 무슨 재미로 살지? 삶이 비참해질 것을 사람들은 두려워합니다.

인생의 즐거움은 그 순간으로 끝날 것으로 걱정을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상한 광신자로 만들어서 저 땅 끝에 선교사로 보내면 어떻게 할까? 그런 불필요한 걱정까지 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있습니다. 어떻게 사람들이 하나님께 자기 삶을 드리면 지금보다 더 비참해 질 거라고 생각을 하는지 참 이상해요.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첫 설교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복을 우리에게 맨 먼저 설교해 주시고 있습니다. 주님께 우리 삶을 드리면 우리 삶이 어떻게 불행해 질 수 있습니까? 

빌립보서는 책 전체가 어떻게 이 변하는 세상 속에서 내적인 평안을 그리고 기쁨을 확보할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주님은 당신이 오신 것이 우리에게 비참한 삶을 안겨주려고 오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ꡒ. . .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서 풍성함을 얻게 하려고 왔다.ꡓ(요10:10)# 풍성한 삶을 우리로 하여금 누리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인생의 운전대를 하나님께 맡겨 드리는 것을 힘들어할까요? 그 이유는 누구의 수하에 자신을 맡기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 서너 살 때부터 우리는 그런 경험들을 했을 겁니다.

ꡒ그것해서는 안돼! 이것을 주워! 저것을 주워!ꡓ 우리 위에 있는 부모라는 권위에 의해서 이것저것을 하라고 그렇게 우리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그래서 일곱 살 되어 학교에 가면 참 이제 자유가 온다고 생각하지만 학교에 가보면 여선생 님의 권위 아래서 지금부터는 살아야 되는 겁니다.

어떤 친구는 고등학교에 다니다 말고 학교가 귀찮아서 그만두고 자원해서 군대에 갔대요. 군에 갔더니 거긴 훨씬 심하더랍니다. 무서운 고참이 있어서 상급자들이 먹고 자는 시간조차도 내버려두질 않았다는 겁니다. 군에도 간신히 제대를 하고 내 마음에 드는 여자를 택해서 결혼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결혼 한 남자들 다 아시지요? 그러면 자유가 찾아옵니까?

우리 마음 깊숙이 권위를 싫어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 위에 있고 싶지 매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결단하기를 원합니다. 세월이 한참 지나가야 권위에 복종하는 것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을 터득하게 됩니다. 우리도 남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남의 도움말도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항복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우리 인생의 안내자로 삼으면 우리가 바른길 복된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생의 모든 세세한 부분까지 다 조종하시려 들것이라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여러분의 삶 전부를 드려도 여전히 여러분은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날것인지 알아서 결정해야됩니다. 여러분에게는 자유가 남아있어요. 아침밥을 무얼 먹을 것인지 여러분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몇 부 예배에 참석하실 지 여러분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요.  교회에서 여러 번 2부예배나 1부예배에 참석하실 것을 권해도 역시 여러분에게는 3부예배에 선택해서 오실 자유가 여러분에게는 있습니다. 그렇지요?

다만 기왕 오실 바에는 옛날 11시 예배 생각하고 조금 일찍 나오셔서 월마트에 차를 대면 그나마 돕는 것이 될 겁니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 대어 보신 분의 이야기인데요. 그렇게 편할 수가 없대요. 지난 달에 한번 3시30분에 예배한다고 교회로 차를 몰고 와서는 그날은 힘들었다고 실토를 하더라고요. 한번 해 보세요 좀 믿고...

주일날이 되면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 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아닐까? 고민하는 것은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몇 시 예배가 좋을지 여러분이 선택할 수 있습니다. 차를 몰고 와도 어떤 길을 택할지를 얼마나 속도를 내야할지를 여러분이 결정할 수 있어요. 물론 너무 빨리 달리다가는 딱지를 뗄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여러분이 물어야 됩니다.

로마서 12장 1절은 말합니다. #ꡒ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십시오.ꡓ#그것은 이 시대의 풍조를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을 날마다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삶입니다.

눈여겨보아야 할 구절은 #ꡒ이 세상 사람들의 행동이나 관습을 본뜨지 말라ꡓ#는 부분입니다.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이면서 그냥 이웃 사람 살 듯이 직장 동료들이 살 듯이 그렇게 산다는 겁니다.

집을 사도 그렇고 아이들 교육을 시켜도 마찬가지입니다. 취직을 해도 다를 바 없으며 결혼을 시켜도 동일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말합니다. #ꡒ너의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의뢰하고, 너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네가 하는 모든 일에서 주님을 인정하여라. 그러면 주님께서 네가 가는 길을 인도하실 것이다.ꡓ(잠3:5-6)#

여러분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이것저것 다 따져보고 결론을 내리되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지 생각해 봐야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시도할 필요는 없습니다.ꡒ하나님, 네가 다음 신호등이 파란 불이 딱 들어오면 내가 이번 계약서에는 서명을 하겠습니다. 내가 이건은 성사시키겠습니다. 그라든지 “오늘밤 9시전에 그 형제에게서 전화가 오면 내가 내일은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데이트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왜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는지 압니까? 성경을 몰라서 그래요. 성경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가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성경을 더 잘 알아가기로 오히려 결심해야 합니다. 성경이 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까?

#ꡒ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유능하게 하고 온갖 선한 일을 할 준비를 갖추게 하려는 것입니다.ꡓ(딤후3:16-17) #

“저는 할 줄 몰라서, 교사로 봉사하라면 성경이 아는 것이 없어서.”  누가 아는 것이 없으라고 했습니까? 예수 믿은 지 몇 년째인데. 예수 믿은 지 지금 5년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모른 것 가지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안됩니다. 결심을 하고 지금부터는 배워보겠다고 마음먹고 하다못해서 내년부터는 배우면서 가르치겠다고 결심하면 됩니다.

제 친구 어느 대학인지 학교 명예상 밝히지 않겠지만 결국 그 대학 졸업하고 솔직히 말해 무엇을 아는 것이 있습니까? 그런데 느닷없이 가르쳐야하는 것이 기독교 교육입니다. 그래서 구할 수 있는 대로 기독교육에 대한 원서를 구해서 열심히 먼저 보고 한 시간 먼저 읽고 강의했다는 겁니다.

뭐 그 사람은 대학교수는 날 때부터 대학 교수가 될 지식을 다 가지고 태어난 줄 아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지식이 좀 부족하다고 느끼면 내년부터 배워가면서 한다. 아이들보다 한 시간 먼저 읽고 가서 준비한다고 이렇게 생각하면 못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 66권은 단지 좋은 도움말을 제공하는 책은 아닙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주요 결정을 내리는데 기초를 제공해 줍니다. 살아나가는데 맞닥뜨려야 하는 주요 문제를 모두 성경은 다루고 있습니다. 바른 결정을 내리는데 우리를 도와줄 하나님의 지혜의 보고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며,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지혜를 공급합니다. 이 책을 한번 여는데 25원씩 줘야합니까? 아닙니다. 책한 권 가지면 아무 때 펴 보아도 괜찮아요. 10,000원 주고 한 권사면 자주 펴보아도 만원 짜리 책이고 안 펴보아도 만원 짜리 책입니다. 활용한다고 돈을 더 물어야 되는 것이 아니니까 열심히 좀 읽어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하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답게 행동하도록 하는데 도와주는 지혜가 여기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모든 성경을 연구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누구인지 알도록 도와줍니다. 우리의 모습을 비쳐주는 거울역할을 합니다. 거울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주님을 닮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주님을 닮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주님의 모습만 나타날 수 있도록 성경연구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동시에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소중히 여기시는지 예수님은 무엇을 우선시 하는 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무엇을 하나님이 즐거워하시는 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골로새 성도를 향해서 바울은 도전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살아 있게 하십시오”  (골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살아 있으면 우리가 지혜로워집니다. 주님의 말씀을 더 많이 알면 알수록 말씀의 주님을 우리가 더 잘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더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라고요? 아직 구도자 내지 초 신자에 불과하다고요? 아직은 성경도사가 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요? 그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성경지식을 가지고 바른 결정을 하기에는 무리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은 이전처럼 살수는 없습니다. 이전에는 잔머리를 굴려서 살았지만 신앙인이 되고 나면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는지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는지 읽어 봐야하는데 아직 누구 말처럼 가방 끈이 짧아서 성경 한 장 읽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이래서  제대로 아는 것이 없으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됩니까? 그렇다고 옛날처럼 살 수는 없잖아요. 아~ 성경 말씀을 많이 읽고 신앙생활을 오래 한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보면 됩니다. 성경책을 읽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앞의 예수 믿는 사람들의 신앙 좋은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은 사람들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합니까? 아~ 이런 경우에 우리 주님 같으면 어떤 결정을 하실까? 예수님이시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까? 그렇게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나마 성경을 읽지 않는 사람은 그렇게 물어 보았자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서도 아직 덜 되었는데 예수님이 어떻게 이런 경우에 하셨을까? 하고 답이 나오겠습니까? 그럴 때는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나를 인도하신 우리 집사님께서는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할까?  소그룹인도자는 이런 경우를 당하면 어떻게 행동할까? 이렇게 질문해 보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ꡒ나를 본 받는 자들이 되라ꡓ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영적으로 그들을 낳은 아비인 자기를 본받는 신앙생활을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우리가 어떤 사람을 인도했다는 것은 그런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그냥 데리고  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의식해야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바울처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아직 잘 모릅니까? 그럼 나보고 따라 오세요.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답을 얻기 위해서 가뭄에 콩 나듯 성경을 펴지 마세요. 오히려 여러분의 미래에 밝은 빛을 얻으려고 성경에 접근하십시오.

ꡒ나는 예수 믿는 사람인데 안 믿는 사람하고 조건만 좋으면 결혼을 해도 될까?ꡓ 이런 질문을 가지고 성경에 접근해서는 안됩니다. 비 그리스도인과 결혼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것이고 아무 성경에서는 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반대로 말합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하지 말아라’ 사업도 결혼도 할 것 없이 소중한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방향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ꡒ나는 예수님을 믿는데 세례를 받아야 될까 말아야 될까?ꡓ 그런것 가지고 고민할 것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했고 예수님이 우리의 리더라고 하면 이제 부터는 그분이 나의 주인입니다” 라고 공적으로 고백을 해야됩니다. 오늘밤에 있을 학습 입교 세례식은 그런 의식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가르침과 명령에 따라 살겠다는 것을 공적으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특정한 경우에는 수정같이 분명한 입장을 성경은 밝힙니다. 그렇다고 성경이 우리 삶의 모든 경우에 대해서 분명하게 다 말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대체로 전체적인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지나가는 경우도 없지를 않습니다. 세세한 부분은 우리들에게 맡겨놓습니다.

게임의 규칙은 말해주되 게임을 어떻게 풀어 갈 것인지는 우리에게 맡겨주는 겁니다. 여기에 개인 규칙이 있습니다. 이 룰에 따라 살되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내가 경기를 진행시킬 것인지를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코치입니다. 이 게임 규칙에 따라서 우리가 플레이를 해야합니다. 순간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법칙 안에서 바른 결단을 내려야합니다. 그러므로

#셋째로, 매일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

이것을 우리가 기도라고 합니다. #ꡒ여러분 가운데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아낌없이 주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러면 받을 것입니다.ꡓ(약1:5) #구하십시오 그러면 무엇 한다고? 받을 것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주시리라

그래서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지혜를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말로 구체적인 상황을 하나님께 아뢰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어렵다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드려도 좋습니다. 지난 주간 개신교에서 앞으로 사용할 주기도문을 새로 번역해서 내년 총회를 통해 채택하기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새로운 번역을 따라 함께 기도해 보실까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함께 지냅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 삶에 필요한 결단을 내리도록 도우십니다. 때로는 구체적으로, 때로는 일반적으로 도와주십니다.

ꡒ하나님 아버지, 성령께서 우리의 스승이 되셔서 제가 하나님말씀을 볼 때에 말씀의 진의를 본뜻을 잘 깨닫게 하시고 이 깨달은 말씀을 구체적인 삶의 상황에서 잘 적용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ꡓ그렇게 정말 소원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들어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성령님께서 오셔서 어떤 일을 하실지 미리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ꡒ#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듣는 것만 일러주실 것이요,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ꡓ(요16:13)#

우리의 인도자가 되시고 우리의 교사가 되시고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혜로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왜냐면 지혜의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잖아요.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데 이래라 저래라 말씀하시는데 따라만 하면 지혜로운 결정을 할 것인데 문제는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성령께서 일러주시는데 우리가 잘 안 듣는다는데 있습니다.

아니 듣기는 하지요. 그런데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니까요. 제가 40분간 설교를 해도 딱 듣고 싶은 것 10초만 듣고 집에 간다니 까요. 그래서 상대방을 향해서 배우자를 향해서 말한다니까 목사님께서 오늘 설교를 하셨는데 이렇게 하라고 하셨지 않나. 자기가 어떻게 해야 될  것인지 하나도 안 듣고 상대방이 어떻게 해야 될 것인지 들어서 주일날도 싸웁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우리는 신앙의 사람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ꡒ주님, 주의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시고, 주께서 가시는 그 길을 내게 가르쳐 주십시오. 주님은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가르쳐 주십시오. 나는 종일 주님만을 기다립니다.ꡓ(시25:4,5)#

구약의 신앙의 시인이 이렇게 소원을 아뢰고 있습니다. 이런 소원을 닮아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날마다 우리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좋은 충고가 많은 곳에는 승리와 번영이 보장됩니다. ꡒ지휘관 없이 싸우러 나가는 군대는 패할 수밖에 없으나, 슬기로운 참모가 많은 부대는 이길 수밖에 없다.ꡓ(잠언11:14, 현대어성경)

구약 지혜의 보고인 잠언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지혜로워지는지에 대해서 많이 말합니다. ꡒ지혜로운 사람과 함께 다니면 지혜를 얻지만, 미련한 사람과 사귀면 해를 입는다.ꡓ(잠13:20) ꡒ충고를 듣고 훈계를 받아 들여라. 그리하면 마침내 지혜롭게 된다.ꡓ(잠19:20)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충고를 하는 사람입니까? 제너럴 모터스 사의 큰 자동차 회사의 사장님 한 분인 알프레드 슬로운 씨는 중요한 이사회를 주도를 했습니다. 회사의 명운이 걸려있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놓고 토의를 했는데 투표를 했더니 결과가 만장일치로 그렇게 하기로 된 겁니다. 그러니까 그분이 하는 말이 이 계획이 만장일치로 가결된 이 계획을 추진하는 것을 나는 보류하겠습니다. 만장일치가 되었기 때문에 다음 회에 반대토론이 나올 때까지 다시 한번 검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너럴 모터스 사의 회장인 자기의 의지가 실려 있는 안이라는 것을 알고 모두 다 침묵하고 좋다고만 말하고 그렇게 결정되어서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간파를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결정은 무효입니다. 

그런 면에서 요즈음 우리가 다루고 있는 청소년 예배문제는 제대로 다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두 차례의 설교를 통해서 어떤 분의 말처럼 또 두 번의 칼럼을 통해서 분명하게 나의 의중을 드러낸대도 불구하고 아직도 왕성한 토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우리는 제대로 한 것 같습니다.

무슨 문제를 우리가 다루더라도 성경적인 원칙을 가져야 됩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은 학원에 가는 유혹을 받아야 하는 청소년 문제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주일날 예배만 참석하고 가서 가게 문 여는 것, 울산교회는 권장하지 않고 허용하지 않습니다.

우리 한번 새해에는 말씀의 원칙에 따라 살기로 한번 결심해 보십시오. 제가 보장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까지 벌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까지 일 한다고 여러분 칭찬 받을 수 있는지 압니까? 아닙니다. 주일은 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른들도 쉬십시오. 아이들도 쉬는 날이 되어야 됩니다.

그리고 경험에서 나오는 논의라면 전문가의 의견을 귀담아 들을 줄 알아야합니다. 저는 우리가 지어 논 교육관을 보면 현장에서 일하는 현장에서의 의견이 전혀 수렴되지 않은 건물입니다. 그러니까 교육관을 지으면서 큰 기둥들을 넣고, 뒤에는 냉온풍기의 바람에 의해서 교육환경이라고는 도무지 고려되지 않는 공간이 나오지요.

그리고 정직하게 논의하고 있는지 살펴야 됩니다. 나하고 평소에 서로 의기투합하는 사람이 말하면 무조건 칭찬해 주고 찬성을 하고 자기와 껄끄러운 사람이 이야기를 하면 어떤 이유를 대던지 반대를 하고 그렇게 해서는 정말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 부서가 내가 유익한가 이것을 따져서는 안됩니다.  교회전체에 어떤 유익이 있을 것인가 그것을 결정 해야지요.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는 중요하게 시간을 두고 다루어야 합니다.

어떤 일을 결정해도 충분한 시간이 없을 때는 순간적인 기도라도 드려야 합니다. 잠깐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지혜를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의 모범입니다.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은 낯선 동네에 해질녘에 들어가면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묵도합니다. ‘하나님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나로 하여금 그 며느리 될 사람을 순적하게 만나게 해 주십시오.’ 기도가 채 끝나기도 전에 정말 아리따운 건장한 마음씨 좋은 처녀가 물동이를 이고 등장합니다.

느헤미야가 그렇지 않습니까? 한번은 어느 때같이 왕궁에 들어가서 왕 앞에 섰는데 사람이란 원래 자기 얼굴을 잘 모르지 않습니까? 왕이 갑자기 물었습니다, “너 왜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냐?” 여러분 우리는 그 상황을 몰라서 그렇지 그렇게 왕한테 지적이 되면 등골에 땀이 흘러내리는 순간입니다. 니가 뭔데 왕을 기분 나쁘게 할 일이 뭐 있냐? 그래서 어떤 사람이라도 왕 앞에 나갈 때는 표정관리를 해야됩니다. 들키면 왕이 시답지 않게 생각하면 그건 목숨이 날라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등골에 식은땀이 날만하지요.

그런데 순간적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그리고는 그 위기를 기회로 만듭니다. 사실은 이만저만 고해서 선조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파손되었고 성전이 불타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근심했어 왕께서 내게 좋게 보시면 나를 그곳에 보내주셔서 성벽을 새로 쌓고 성전을 새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절대 절명의 위기에서 회생의 기회로 삼았던 사람입니다. 순간적인 간구 묵도가 사람의 생을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태도로 인생을 사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은 복 주십니다. 사소한 문제는 급히 결정해도 큰 탈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라면 신중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하긴 처음에 사소해 보여도 심각하게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직원과 함께 점심식사 하는 것이 무슨 큰 대수이겠습니까? 그러나 상대방이 이성이고 그 점심식사 하는 일이 반복되고 그 일을 배우자에게 숨겨야 한다면 문제는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점심식사 뿐이겠습니까? 문자 메시지 한 통도 마찬가지 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기도 드려야 합니다. #ꡒ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ꡓ#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 보면 급히 내리는 결정은 후회하기 쉽습니다. 웬만하면 이미 세운 원칙에 따라서 행동하십시오. 그리고 마음이 평안하지 못할 때는 무슨 결정이라도 내리는 것을 보류해야합니다.

특별히 화가 났을 때 그날 교회에 갔는데 은혜가 별로 안 되었을 때라든지 안 그러면 비가 내려서 온 몸이 쑤시고 할 때는 중대한 결정을 하지 말고 보류해 두었다가 햇볕이 화창하게 쨍쨍할 때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를 다스릴 때, 중요한 결정을 내리도록 원칙을 정하십시오.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서 인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습니다. 인생길에서 날마다 만나는 수많은 결단을 지혜롭게 하기 위해서 꼭 중요한 결단을 바로 하십시오.


#1)ꡒ하나님의 방법대로 삶을 살기로 결단하십시오ꡓ

2)ꡒ하나님의 말씀을 더 알아가기로 결단하십시오ꡓ

3)ꡒ날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기로 결단하십시오ꡓ# 그 때 여러분의 삶의 모든 부차적인 결정은 제자리를 찾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함께 하는 결정들이 뒤따르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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