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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사 43: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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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한용근 목사

  우리는 때로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사망의 골짜기로 인도하시는 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인생이 그냥 평안하고 기쁨으로 가득찼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가끔 성도들이 자신에게 당한 일로 인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볼 때 목사로서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모릅니다. 기도할 때마다 ‘성도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라고 기도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님께서 마음에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단단한 흙에서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이렇습니다. 봄이 되면 집에서 기르던 화초를 보다 큰 화분으로 옮겨 심는 분갈이를 합니다. 분갈이를 할 때 꼭 해야 할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난 해 동안 묶었던 단단한 흙덩어리들을 반드시 깨야 합니다. 완전히 고운 가루가 되도록 부셔야 합니다. 한해에 좋은 밭농사를 지으려면 반드시 땅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기경되지 않은 땅은 아무리 좋은 씨를 뿌려도 결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단단한 땅에서 어떻게 좋은 열매가 맺을 수 있겠습니까? 논농사에 성공하는 길은 오직 먼저 논에 물을 집어넣어 가두어 놓고 몇날 며칠 그 단단한 땅을 부드러운 땅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단단한 흙에서는 결코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깨어짐이 있어야 합니다. 단단한 마음의 밭이 기경돼야 합니다. 교만한 마음이 기경되어야 합니다. 깨어져야 하나님께서 거기에 물을 주시고, 그럴 때 씨가 떨어져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의 마음의 밭을 기경하는 호미와 같습니다. 뒤엎는 삽과 같습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는 정금같이 되는 것이고, 고난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욥은 말하기를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23:10)라고 했고, 시편 119:67절에는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했고, 71절에는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보면 그들처럼 고난을 많이 당한 민족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욱 번성했고, 더 큰 믿음의 열매를 맺어 오늘까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고난을 준 백성과 민족은 사라졌지만 그들은 오늘도 살아남아 그들이 당한 고난을 기억하고, 더 좋은 밭을 만들어 갔습니다. 그들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더욱 신실한 믿음의 열매를 키워갔으며,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과 선하신 목적을 깨달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고난 가운데 고통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놀라운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고난당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소망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하나님은 오늘 말씀하십니다. “내가 새 일을 행할 것이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진실로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들과 이 교회 위에 새롭고 놀라운 일, 기적과 같은 일, 좋은 일들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새로운 일에 우리들이 참여하고 경험할 수 있습니까? 그 첫째는 하나님이 새 일을 만드시는 절대적인 창조자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1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은 거룩한 자이시며 창조자이시며 우리의 왕이십니다.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하면 무엇보다 하나님이 자신들의 왕이시며 인생의 창조자 되심을 믿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야곱이 고향을 떠났을 때에 그에게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는 거지와 같았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아무 것도 없다는 알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서원하여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고,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제가 안전하게 저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시면, 주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제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열의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표준새번역 창28:20~22). 그는 그 인생을 통해 하나님을 전능하심을 믿었습니다.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자신의 길을 인도하시고 평안을 주시며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며 다시금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게 하실 절대자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이사야 43:1절을 보면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많은 믿음의 조상들 중에서 하나님은 특별히 이스라엘을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요셉이라고 부르지 않고, 오직 야곱아라고 부르셨습니다. 이처럼 야곱의 믿음은 하나님을 자신의 창조자로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자신의 인생 길을 가는 동안 자신에게 모든 것을 채우시고 부족함이 없게 하실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조성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그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인생에 좋은 일과 새로운 일이 일어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인생의 창조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그의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을 믿어야 합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전능하시고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삭을 아들로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창조자이며 전능자이심을 적극적으로 확신 속에서 의지하고 믿었습니다. 그는 그 전능하신 창조자 하나님을 믿음으로 소망을 잃어버리지 않고, 15년을 견뎌냈고 그리고 약속의 자녀 이삭을 아들로 얻었습니다. 이제 이사야 45:7절을 찾아 함께 읽겠습니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하나님께서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새로운 일 좋은 일 기쁨의 일이 일어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며 인생의 창조자이심을 믿어 승리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는 옛 것을 기억하지 말고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즉, 과거의 삶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바라 봐야 합니다. 18절에 분명히 말씀하기를 “너희는 이전 것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지난날의 슬픈 일, 괴로웠던 일,  실패하였던 일들은 오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손해입니다. 잊을 것은 잊고, 끊을 것은 끊어야 합니다. 마음에는 악을 담아서는 안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마음에는 선을 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범죄 한 것이 있으면 빨리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형제와 자매끼리 상처받은 것도 잊어버려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받은 상처도 용서하고 잊어야 합니다.

  옛 것에 붙들려 있으면 그 사람은 멸망의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롯의 아내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녀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에 과거에 얽매여 있었습니다. 옛 것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묶여 있었습니다. 그녀는 결국 뒤를 돌아보았고 그 자리에서 후회와 눈물의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기를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9:62)고 하셨습니다. 바울 선생은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3:13~14)고 했습니다.

  성경은 뒤에 것은 잊어버려라고 말씀합니다. 옛 사람에게 붙들려 살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1963년 10월 19일 새벽 2시, 강원도 인제군 남면 어론리에서 이덕주 중령 일가족 6명을 도끼로 몰살시킨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른바 고재봉 도끼 살인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야전 공병단에 속해 있었던  고재봉은 부대에서 부대장인 박중령의 사택에 자주 사역을 갔다합니다. 주로 물을 긷거나 장작을 패는 일, 또는 청소를 하는 일과 이것저것 잔심부름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박중령 사택으로 가서 청소와 장작 패는 일 등을 끝내고 박중령의 서재에 들어가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고재봉은 견물생심이라고 그만 박중령의 서재에서 작은 물건 하나를 집어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때 이것을 가정부가 본 것입니다. 가정부는 아주 험한 욕설을 해가면서 그를 야단을 쳤고, 저번에 박중령 군화도 훔쳐가 도둑놈이라고 외치며 고재봉을 몰아 붙였습니다. 졸지에 고재봉은 박중령 집안의 모든 도난 사건의 책임을 져야 할 판이었습니다. 화가 난 고재봉은 순간 옆에 있는 도끼를 집어 들었고, 까불면 모두 죽이겠다고 위협을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살인미수로 7개월간 육군형무소에 복역 하게 되었습니다. 형무소에서 그는 박중령 을 용서하고 잊었으면 되었는데, 7개월 동안 그는 출소하면 원수 박중령을 죽이겠다고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는 출소하자마자 예전에 박중령이 살았던 사택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그가 수감되어 되어있는 동안에 박중령이 다른 곳으로 전속을 가고 그 사택에는 이덕주 중령이 들어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그는 오직 박중령에 대한 원수를 갚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무작정 박중령이 살았던 사택으로 찾아가 보이는 데로 사람에게 도끼를 휘둘렀던 것입니다. 이 바람에 어이없게도 박중령이 아닌 이덕주 중령이 가족들과 함께 무참히 살해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과거를 잊지 못하고 과거를 용서하지 못하고 뒷걸음치는 인생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왜냐하면,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옛날과 전혀 다른 일을 계획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메마른 광야에 길을 내고 물이 없는 사막에 강을 내는 일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놀라운 생명의 역사를 계획하고 계십니다. 이제 이곳에 있는 우리는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옛 일을 잊고 새롭게 인생을 출발하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인생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옛것을 잊고 우리에게 새로운 일을 창조하시는 그 하나님을 오직 믿음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21절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 창조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찬양하는 일을 쉬어서는 결단코 안 됩니다.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이 세상사람 날 몰라줘도 이 세상사람 날 몰라줘도 뒤돌아서지 않겠네"

  사형수 고재봉의 별명은 “눈깔 파먹는 지옥의 염라대왕”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별명이 붙은 것은 어느 날 구치소장이 고재봉이 수감되어있는 방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는데, 살인마 고재봉이 갑자기 구치소장의 눈을 손가락으로 찌르는 바람에 구치소장의 안경이 깨지면서 눈을 멀 뻔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포악했던 사람이지만 그곳에서 전도를 받아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주님을 영접하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을 때 구치소에서 그는 온종일 기도와 말씀 그리고 전도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전도한 죄수는 무려 1.8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가 사형 당하는 날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교도관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고재봉은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고재봉의 목소리는 한적한 주위공간을 울렸습니다. "또 할 말 있는가?" "검찰관님, 제가 웃을 때 방아쇠를 당겨 주세요." 고재봉은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소리를 높여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내가 천성바라보고 가까이 왔으니...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영광나라 계신 임금 우리 구주 예수라”(545장). 이 찬양을 마친 후 그는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차마 헌병들은 그에게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습니다. 찬송을 부르고 있는 그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주여 주여 내말 들으사 죄인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후렴을 부르면서 하늘을 바라보며 밝게 웃었습니다. 그 순간 총성이 들렸고, 그는 죽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형장에서 지켜본 간수들과 헌병들 그리고 그에게 복음을 전했던 차남진목사는 깊은 감명을 받았고, 믿음없었던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말하기를 "내가 일찌기 예수를 알았더라면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을텐데..."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과연 고재봉보다 천국에서 하나님께 더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들의 인생에서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고통 중에 있을 때나 병 중에 있을 때나 언제나 찬양이 퍼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지 모르지만 주님께 찬양을 드려 보십시오. 여러분에게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새롭고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신다고 했으니 반드시 여러분들과 이 교회와 저에게 새롭고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이 한 주간도 어떤 상황에 있던지 이 말씀에 의지해서 범사에 감사의 찬양이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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