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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실패에서 성공으로 (요 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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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송선옥 목사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세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일어난 사건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타난 제자들의 모습은 대단히 실망스럽다. 그들은 이미 예루살렘에서 두 차례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러나 마치 실직당해 고향으로 내려와서 할 일 없이 떼거지로 몰려다니는 젊은이들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 본문에 대하여 주경학자들의 의견은 크게 세 가지 입장으로 나뉘는 것을 볼 수 있다.
1)예수님의 약속을 받기 위해서 갈릴리로 내려와 기다리는 중에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고기잡이를 했다고 옹호하는 해석이 있다.
막16:7,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2)사명을 포기하고 옛날 어부의 직업으로 돌아갔다고 혹평하는 해석이 있다. 예수님을 배신하고 도망친 주제에 무슨 염치로 사명을 감당할 있었겠느냐? 더군다나 베드로는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장담했다가 세 번씩이나 부인한 사람이 목회자나 선교사로 헌신할 수 있겠느냐?

3)중간 입장을 취하는 해석이 있다. 사명을 포기한 것이 아니고 당분간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영적 재충전을 하기 위해 내려와 있는 동안 무료함을 달래고 생활비도 벌기 위해서 고기잡이에 나선 것이 아니겠는가? (핸드릭슨)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왜 내려왔느냐?” “왜 고기잡이를 시작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그들은 몰려가서 바다에 들어가 고기를 잡고 있었다. 문제는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2-3절,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그곳에 7명의 제자들이 있었다. 그 중에는 적어도 3명은 전문 어부 출신이다. 그들은 언제 어디에다 그물을 던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3년 반 동안 그물질을 안했기 때문에 실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일까요? 그렇다면 몇 마리라도 잡혀야 할텐데 이상스럽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밤이 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들 스스로도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야 정말 이상하네, 왜 이렇게 안 잡히지..? 고기들이 우리가 온 것을 알고 다 피했나?”

그러나 오늘 본문은 제자들의 실패에 대해서만 언급한 것이 아니다. 이어서 그들은 성공을 맛보게 된다. 이제 우리는 본문에 나타난 제자들의 행동을 보면서 그들의 실패 원인과 성공의 비결이 무엇이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그들은 실패한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1.실패의 원인
1)사명감의 약화를 그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3년 반 전,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부르실 때 이와 똑 같은 사건이 있었다. 바로 그 호수에서.., 그 때도 베드로는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명하셨다. 베드로는 마지 못해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더니 정말 놀랍게도 많은 물고기가 잡혔었다. 그는 충격을 받고 예수님 앞에 나와 무릎을 꿇었다. 그 때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눅5:10-11,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그때 그곳에 함께 있었던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도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 사람을 낚는 어부로 베드로와 함께 부름을 받았다. 그 이후 그들은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3년 반이란 세월을 사명자로서 훈련을 받았다.

그물을 버렸던 사람들이 사명을 잃어버리고 다시 옛생활로 돌아가는 것을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 예)명문대 출신의 어떤 유능한 젊은 이의 실패

이 이야기는 주의 제자나 전문 사역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다. 주께서 구원하신 모든 신자들은 사명자다. 새들백교회 릭 워렌 목사는, “모든 신자는 사역자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삶의 현장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하는 일마다 잘 안되고 꼬이는 사람들은 이 말씀에 의지해서 자신을 돌아보기 바란다. 왜 수고한 만큼 열매가 맺혀지지 않는가?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2)부화뇌동 때문이다.
베드로의 선동에 나머지 제자들도 합세했다. 친구따라 강남 간다고 생각해 보지도 않고 재미 있을 것 같아 따라 나선 것이다. 만약에 6명 중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제동을 걸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도 있었을 것이다.
“이거 뭐하는 짓이야. 안돼! 이건 제자답지 못한 행동이야.” “우리가 누구야, 지금이 어떤 때야.” 막았더라면 밤새도록 함께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학생들이나 청년들 보면 근심이 되고 답답할 때가 종종 있다. 핸드폰, mp-3는 기본이고, 헤어 스타일, 귀걸이, 목걸이. 복장등이 지나치게 유행에 민감한 모습을 보게 된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그런 분위기가 청소년 문화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남들은 다 세상 유행과 문화의 흐름을 따라 간다해도 그리스도인은 분별해서 행동하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한다고 무조건 따라가거나 따라하지 말자. 그리스도인이면 주의 말씀에 근거해서 가지 않아야 할 곳은 가지 말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은 금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남들이 투자한다고 투자하고, 남들이 바꿨다고 바꾸고, 남이 산다고 덩달아 사지 않았으면 좋겠다. 반드시 손해보고 후회할 날이 온다. 그러나 주의 뜻에 합당한 것이라면 얼마든지 따라가도 좋고, 따라해도 좋다. 부화뇌동하지 말고 기도하고 말씀에 의지해서 행동하기를 바란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적어도 진리를 알고 사명을 받은 제자들이었다면 베드로의 선동에 넘어가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합당하지 않은 일에 합세할 때 실패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3)영적 둔감 때문이다.
4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고기 잡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곳에 와 계신 것도 알지 못했다. 8절에 보면 제자들과 예수님의 사이가 “한 오십 간”쯤 된다고 했다. 환산하면 약 100m가 채 안되는 거리다. 이미 날은 밝아 오고 있었고 왠 낯선 사람이 물가에 이른 아침에 서 있었다면 누구인가 관심있게 쳐다 봤을 것이다. 그러나 알아 보지 못했다.

세상 재미에 빠지면 영적인 일에 둔감해질 수 밖에 없다. 학생들이 결석하는 이유는 공부가 싫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다른 재미거리를 찾게 되고 그러다 보면 결국 탈선하게 되는 것이다. 신자가 예배에 빠지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예배에 참석했다 해도 영적인 일에 둔감하기 때문에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지루하고 싫증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다른 재미 있는 일을 찾게 되고 계속 반복되다 보면 예배 참석을 소홀하게 되고 결국은 믿음에서 떠나게 되는 것이다. 예배 출석이 사소한 것 같지만 결국은 인생의 실패를 불러 오는 것이다.

사명감의 약화, 부화뇌동, 영적둔감이 실패의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제자들을 통해 배우게 된다. 그러나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심으로 인해 현재의 국면이 180도로 전환되는 것을 보게 된다.
5-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2.성공의 비결
1)주님의 사랑의 부르심과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다.
5절,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예수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찾아 오셔서 그들을 부르셨다. 저주 아래 있는 인간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비결은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주님은 그들이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고생만 하고 있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 그들의 헛 수고를 멈추게 하고 수고의 댓가를 얻을 수 있도록 그들을 부르신 것이다. 따뜻하고도 온유한 주의 음성이 조용한 새벽 공기를 가르고 제자들의 귓가에 전달되었다.

제자들은 그 음성이 주님의 음성인 줄도 모르면서도 어떤 신비한 힘에 이끌린 것 처럼 대답했다. “없나이다.”

실패에서 벗어나는 첫 번째 방법은 주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응답해야 한다. 가까이 있어서 언제든지 주께서 말씀하시면 들을 수 있어야 하고, 부르시면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복이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을 준비하는 가운데 놀라운 사실을 한 가지 발견했다. “음성”이란 낱말이 요한계시록에 제일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그 음성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주의 음성이요, 다른 하나는 짐승의 음성이다. 말세에는 주의 음성을 잘 들어야 할 때라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요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주의 음성을 잘 듣는 것이 사는 길이요, 실패에서 벗어나는 길이요 성공적인 삶을 사는 비결이다. 특별히 청년들에게 권한다. 시편기자의 말씀에 유념하라.
시119:11,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주님께서 부르실 때, “네,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만큼 늘 주님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라. 어느 목사님의 설교집을 보니까 주님께서 예배때 마다 출석부르는신다고 했다. 주일낮, 주일저녁, 수요일, 금요기도회. 결석이 잦은 만큼 성적도 나쁘게 나온다고 했다. 주님의 음성을 늘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성공적인 삶의 지혜이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새벽에 제자들을 부르셨다.

2)순종
6절,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일반적으로 경험이 많은 어부일 수록 낯선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한다. 베드로나 야고보 요한, 이 세 사람은 갈릴리 어촌에서 잔뼈가 사람들이다. 그들은 언제 어디에 그물을 내려야 할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실패했다. 자신의 실력과 경험도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신비한 힘에 이끌려 제자들은 고집부리지 않고 그 말씀에 따라 오른쪽에 그물을 던졌다. 11절 말씀에 보니 잡힌 물고기가 대어로 153마리나 되었다. 그물도 찢어지지 않았다. 순종의 결과가 무엇인가를 제자들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게 된 것이다. 그 때야 비로소 무엇인가 마음에 와 닿는 것을 느꼈고 주님을 바라본 것이다.

지금 내 주머니 안에 모나미 153이 볼펜이 있다. 42년 전 이 회사는 도산 직전에 놓이기 되었다. 그 때 그 회사 사장이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기도원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매달렸다고 한다. 기도하면서 생각해보니 하나님 앞에 죄 지은 것이 너무 많이 생각이 났다고 한다.
1)주일 성수하지 않은 것
2)십일조 떼먹은 것
3)새벽기도하지 않은 것

회개하면서 기도를 마치고 성경을 읽고 있는데 바로 본문이 요21장이었다고 한다. 이 놀라운 기적의 기사를 읽고 “모나미 153” 이란 제품을 만들었다. “이 볼펜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손에 다 들려지기 원합니다. 50억 자루가 팔리게 해주세요.” 얼마 전에 50억 자루 목표가 달성되었다고 한다. 지금 모나미는 세계 최고의 필기용품 제조회사로 발전했다. 그분이 바로 모나미 회장 송삼석씨란 분이다.

내 능력 가지고 주일도 안 지키고 십일조도 떼먹으면서 성공하겠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이 간증의 내용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기도하며 순종하는 삶이 성공의 비결이다. 믿음이 가면 실천에 옮겨 보기 바란다.

3)열심
7절,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내리더라

예수님을 먼저 발견한 것은 요한이지만 예수님 앞으로 달려간 것은 베드로였다. 실수도 많고 허물도 많은 사람이었지만 주님께로 향한 열심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예의를 갖추기 위해 벗었던 옷을 입고 물로 뛰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좀 뻔뻔한 사람이다. 그러나 때로는 주님 앞에서 이와 같은 뻔뻔스러움이 필요하다. 사람들에게는 허물과 흉이 될 수 있지만 주님 앞에서는 괜찮다. 주님의 넓은 품으로 용납해주신다.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서 주님께로 향하는 자세를 배울 필요가 있다. 허물과 실수가 있어도 용감히 주님 앞에 나오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아갈 때 문제가 해결된다.

우리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봉사의 일을 감당할 때도 마찬가지다. 빠지고 미루는 자세는 주님 앞에 기쁨이 되지 않는다. 부족해도 실력이 없어도 배우면서 믿음으로 하고자 하는 열심이 우리의 실패를 성공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것이다.

맺는 말

9-14절, 육지에 올라 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신대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저희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위해 준비하신 조반 식탁에 모두들 모였다. 제자들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책망하지 않으셨다. 도리어 잡아온 생선을 가져오라 하셔서 함께 구우셨다. 그리고 지쳐 있는 제자들에게 친히 떡도 집어 주시고 생선도 주셨다.

결론적으로 제자들에게 주신 멧세지가 있다. 제자들도 이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성공적인 삶의 비결은 주님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제자들의 실패는 주님의 말씀을 잊었던 까닭이요, 주님 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께서 다시 찾아 오셔서 조용한 음성으로 부르신다. 제자들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앞에 순종했을 때 잃었던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들의 사명을 다시 깨닫게 된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 못 박히신 손을 우리에게 내미시며 물으신다.
-“네게 고기가 있느냐?”
우리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된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순종하면 문제들을 해결될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처럼 돌진하듯 주님 앞으로 주님 앞으로 달려 나가는 삶이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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