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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단은 하나, 우리는 둘 (마 12: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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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덕만 목사

이번 주에는 헌법재판소에서 수도이전은 위헌이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9명의 재판관 중에 8명이 위헌결정을 내렸고 전효숙 재판관만 각하의견을 내렸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입니다. 환영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의 이익과 관계된 일이기 때문에 환영도하고 반대도 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위헌 판결이 잘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잘못된 판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 가운데는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환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반대하였습니다. 적극적으로 반대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당시에 기득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여러분 귀신들렸다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데 귀신이 볼 것을 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말할 수도 없게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혼자의 힘으로는 예수님께 나올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이 그들 데리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절망적이고 혼자는 살아가기 힘든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누군가가 데리고 왔습니다. 누구일까요? 누가 데리고 왔을까요? 모릅니다. 무명의 성도입니다. 무명의 성도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는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보게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무리들이 놀랐습니다. 무리들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보통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은 놀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경이롭고 위대한 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분이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라고 반응하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란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를 말하는 것입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그들이 지금까지 기다렸던 메시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종교지도자이었던 바리새인들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혹평하면서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낸 것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었기 때문이라고 비방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적극적으로 반대하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의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어떻게 하면 잡아 죽일 수 있을까? 궁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리새인이 말한 것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그러시면서 “사단이 사단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이 말은 쉽게 표현하면 “같은 편끼리 싸우면 그 나라는 황폐하여 질 것이다. 그리고 같은 동네 사람들끼리 싸우고 같은 집안사람끼리 싸우면 동네나 집은 설 수 없을 것이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같은 편끼리 싸우면 그 나라는 황폐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그러지 않았습니까? 6.25전쟁으로 말미암아 종족상전의 비극이 있었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우리나라가 황폐해 졌습니까?
오늘 우리 아름다운교회와 다사랑 교회와 경기를 갖습니다. 그런데 경기를 하면서 우리끼리 싸운다면 자멸하고 말 것입니다. 족구하는데 자중지란이 일어난다면 우리가 실력이 월등하다할지라도 우리는 지고 말 것입니다. 축구하면서 서로 탓하면서 같은 편끼리 싸우면 이길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사탄은 서로 싸우지 않습니다. 사단이 사단을 쫓아내지 않습니다. 서로 공존하면서 함께 잘 삽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단이 사단을 쫓아내면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설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약에 사단들이 서로 쫓아내고 세력싸움을 한다면 그들의 나라는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사단의 세력은 막강합니다. 사단의 나라는 건재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싸우지 않습니다. 서로 쫓아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미스터 사탄보다 못하지 않습니까? 교회가 사단의 무리들보다 못하지 않습니까? 교회들이 어떻습니까? 서로 사랑하며 하나가 되어 있습니까? 서로 하나 되어 사단을 대적해야 하는데 서로 이간질하고 분열하고 싸우고 쪼개집니다. 하나 되지 못하고 원수처럼 지내는 성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싫어서가 아니라 성도가 꼴 보기 싫어서 교회에 못나오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남을 이간하고 교회를 분열시키는데 명수인 사단은 그들끼리는 분열하지 않고 싸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서로 쫓아 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심각하게 우리의 모습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심각하게 한국교회들을 바라봐야 합니다. 사단보다 못한 우리들이 아닌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고 말씀하셨습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도 똘똘 뭉칠 때 부흥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이 이상한 소문을 만들고 있습니다. 서로 하나 되지 못하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서로를 존중하며 아껴주는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와서 보시라고 하십시오. 우리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집사님이 너무 너무 부럽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부러워할 만큼 서로를 존중하며 아껴주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도록 더욱 힘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동포끼리 싸우면 그 나라는 망하는 것입니다.
고구려는 막강한 나라였습니다. 연개소문이 활약할 때까지만 해도 당나라의 대군을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연개소문이 죽은 후 권력을 둘러싸고 그의 아들 남생과 남건, 그리고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게 되었고 결국 장남인 남생은 당나라에 항복하고 연정토는 신라에 항복하고 결국 고구려는 멸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근대사도 사색당파로 분열되었던 이조는 임진왜란이라는 큰 곤욕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지금 서로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입니다. 지금 서로 힘을 모아도 힘든데 서로 비방하고 대립하고 대적하는 것이 정치적이 현실입니다. 상생정치를 한다고 공헌하였지만 여전히 대립과 갈등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념적 갈등으로 분열되는 모습이 적지 않습니다. 또한 집단 이기주의로 서로 이해하기는커녕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살기가 정말 어려워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는 500만 명이 고통 받고 4,000만 명이 잘 살았는데 지금은 500만 명이 잘 살고 4,000만 명이 고통 가운데 있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서로 하나 되지 못한 것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박정희 대통령 때는 “잘 살아보게 잘 살아보세 우리 한번 잘 살아보세”라고 함께 한마음으로 힘썼지만 지금은 개인주의가 팽팽하여 너는 너 나는 나 뿔뿔이 흩어져 있지 않습니까?

정말 나라를 위해서 우리가 먼저 하나 되는 마음으로 기도해 될 줄 믿습니다. 서로 양보하고 협력하며 하나가 되어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되길 위해서 우리가 기도해야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 2:2-4)

그렇습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고 살 때 사단은 우리를 분열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말처럼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억지주장입니다. 예수님은 귀신들의 대적자입니다. 예수님은 마귀를 멸하려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바알세불이 아닌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내셨습니다.
2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대적하기 위해서는 거룩하신 성령을 힘입어야 합니다.

여러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이란 뜻은 어원적으로 보면 똥파리 왕이라 뜻입니다. 똥파리를 보셨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은 거룩하신 성령님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똥파리가 들어오지 못합니다. 여러분 거룩하신 성령님은 죄송한 말인데 똥파리를 잡는 파리채입니다. 똥파리 잡는 것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똥을 치워야 합니다. 여러분 똥을 치우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면 똥파리 때가 수없이 많이 날아와서 또 그 똥 위에 앉습니다. 또 아무리 팔로 쫓아 보려고 해도 조금만 있으면 또 날아와 앉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은 똥파리 떼들이 나타나서 똥 위에 놓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같은 사건에 대해서 누가복음 11장 24절부터 26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눅 11:24-26)

그렇습니다. 똥을 치우지 않으면 더 많은 똥파리들이 기승을 부릴 것입니다. 그러나 똥을 치우면 똥파리는 존재지 못하고 날라 갑니다. 똥이 무엇입니까? 죄입니다. 우리가 죄짓는 자리에 사단은 더 많이 꼬이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버리면 사단은 저절로 떠나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깨끗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깨끗하면 똥파리는 저절로 없어질 것입니다. 거룩한 성령님으로 우리는 사단을 무찌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사람은 귀신들렸기 때문에 눈멀었습니다. 귀신들렸기 때문에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본문의 귀신들려 귀먹고 보지 못한 것처럼 귀신에게 이용당하고 묶임을 당하며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오시면 사단은 쫓겨 가고 우리는 볼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말해야 할 것을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하나님을 봅니다. 천국을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 보입니다. 또한 말할 것을 말하게 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말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향하여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합시다. 그리고 사단을 대적하기 위해서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으십시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삶 가운데 거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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