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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수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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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황금성 목사

2004 년은 그 어느 해보다 사건과 사고가 많았습니다. 모두 힘겨운 한해를 보냈습니다. 각 언론사마다 올해 10 대 뉴스를 뽑아서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동아시아에 일어난 해일 참사로 인해 10 대 뉴스를 정정해야만 했습니다.

며칠 전에 서울 코엑스에서 ‘2004 년 중소기업 일자리 대전’이란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모두 107 개의 업체가 참가했습니다. 오랜 불경기와 청년 실업자 시대에 일자리를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이 몰린 부스는 취업 운세를 봐주는 ‘타로카드관’이었답니다. 타로카드는 서양에서 유행하는 점보는 카드입니다.

이제 새해가 되면 역술인들이 점을 봐주면서 한몫을 챙기게 될 것입니다. 불경기이지만 점집들은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역술인만 20 만 명이 넘는 세계 최대 규모입니다.

이렇게 점보는 문화가 번성하는 까닭은 불확실한 미래 때문입니다. 인생에는 예기치 못한 일들이 생깁니다. 예컨대 죽음, 이별, 실패, 질병, 재난 등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문화와 인종을 초월해서 미래를 예기해 보려는 시도가 일어납니다.

인간은 미래를 알려는 욕망으로 과학을 이용합니다. 과학은 이미 일어났거나 일어나고 있는 자연현상에서 일정한 규칙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그 규칙에 따라서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합니다. 과학의 능력으로 자연계의 미래에 대한 예측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는 과학의 예측보다 훨씬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측이 번번이 빗나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인간은 1 분 후의 일도 알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미래를 들여다보려는 허황된 시도를 합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잡신들을 의지하는 것들입니다.

미래를 들여다보는 행위는 그것이 ‘재미삼아’이더라도 죄가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금하신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은 과거와 현재 뿐입니다. 미래는 오직 하나님만이 보실 수 있는 영역입니다.

그럼에도 미래를 보려는 것은 사단의 장난과 유혹입니다.

성경에서는 점, 복술, 길흉을 맞히려는 것을 가증하게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미래를 알지 못하게 하신 것일까요? 미래에 관한 지식은 인간에게 결코 유익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불행한 일이 미리 예고되고, 이 인생행로를 바꿀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이 세상은 엄청난 혼란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미래를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한 선물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이 미래를 보려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본문 말씀을 통해서 그 불안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본문 여호수아서 일장은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의 일대기가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을 이끌던 모세가 죽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영향력이 워낙 막강했던지라 여호수아는 시작부터 겁이 났습니다. 모세만큼 지도력을 발휘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용기를 주십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쳐버리게 하십니다. 그리고 오히려 미래에 대한 소망과 과제를 주십니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그리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모세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전무후무한 지도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직접 대면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광채가 나서 누구도 그를 똑바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지팡이를 치켜들면 바다가 갈라지고 바위에서 물이 솟았습니다. 그가 손을 들어 기도하면 전쟁에 승리가 보장되었습니다. 모세는 자기 생명을 내놓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애굽의 왕자 출신입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계명을 직접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계명을 백성들에게 들려주어 그대로 따르게 지도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여호수아는 너무 부족했습니다. 평생 모세의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그늘에 가려 있었습니다. 모세가 있을 때에는 그저 모세의 심부름만 감당하면 됐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세가 죽었습니다. 모세의 시대는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습니다. 이제 여호수아의 시대가 새롭게 열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로 하여금 모세의 자리를 대신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스스로 작아졌습니다. 겸손하게 작아진 것이 아닙니다. 쫄아 들어간 것입니다. 모세의 행적과 업적에 눌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호수아에게 자신감 상실, 주눅, 의기소침 같은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모세의 죽음은 여호수아에게 충격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의 죽음은 갑작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앞두고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에 모세는 행렬에서 빠졌습니다. 혼자 느보산에 올라가 죽음을 준비했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의 머리에 안수했습니다.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전권을 여호수아에게 위임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여호수아는 아직 준비되지 못했습니다. 여호수아의 첫 번째 임무는 요단강을 건너는 일입니다. 요단강은 도강을 허락하지 않고 둑까지 물이 차고 넘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물이 창일한 요단강을 건너는 일은 기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풀기에는 너무 벅찬 과제였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처럼 지팡이를 치켜들고 전진을 명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한 번도 그런 능력을 베풀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망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눅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이 때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눌려있는 여호수아에게 용기를 주려하심이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이 하신 첫마디가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입니다. 그 다음은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보장이 되어 주십니다. 그러기에 여러 가지 약속을 하십니다.
5 절입니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하나님의 격려와 명령이 이어집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수 1:9>

하나님은 모세에게 했던 것과 같이 여호수아에게도 그러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호수아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하셨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자기와 그렇게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이 용기를 주고 계십니다.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득 담고 계십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품었습니다. 그는 담대하졌습니다. 당장 제사장들에게 법궤를 메우고 넘실대는 요단강을 향해 전진을 명했습니다. 요단강은 마른 길을 내면서 갈라졌습니다. 여호수아는 막강한 요새 여리고 성을 오직 침묵과 함성으로 무너뜨렸습니다. 기골이 장대한 가나안 족속들을 차례로 무찌르며 땅을 정복해 나갔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뤄냈습니다.

우리가 미래에 대한 불안을 푸는 방법은 바로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래를 들여다보게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미래를 품게 하십니다.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입니다. 이 비전은 순종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은 미래에 일어날 흉한 일 때문에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를 운명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설령 우리가 미래를 알아맞히지 못하여 시련을 당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그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기쁨을 주십니다.

우리는 새해 출발점 앞에 서 있습니다. 과거를 통해 우리를 격려해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요단이란 강물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 요단을 건너야 합니다. 물길이 넘실대는 요단강을 배도 없이 어떻게 건너겠습니까?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속에는 세 가지 명령어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2 절에 일어나란 명령입니다. 둘째는 7 절에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9 절에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명령이 바로 2005 년을 향한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2004 년 한해가 지나가고 이제 새로운 아침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정말 눈 깜빡하는 사이에 일 년이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 만화 비빔툰 - 눈깜빡

지나간 아쉬움과 회한은 잊어버리고 이제 다시 새로운 마음과 결단으로 시작하십시다.

첫째, 새해에는 지금보다 훨씬 하나님께 잘하십시다. 하나님께 잘하려면 나는 어떤 영적 습관을 가져야 할까요?
오늘 본문 말씀 속에도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는데 한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수 1:7-8>

여러분! 새해에는 지금보다 더 많이 성경을 읽으십시다. 적어도 구약성경 한 번, 신약 성경은 두 번 이상씩 읽으시기 바랍니다.

기도도 자주 하십시다. 기도수첩을 만들어 가지십시다. 그래서 기도할 내용들을 메모하면서, 응답 받은 것들을 표시하면서 기도의 영성을 쌓아 가십시다.

1월 둘째 주일은 멋진교회 창립 4 주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이번 창립 기념 선물로 기도의 의자를 만들었습니다. 한 가정에 하나씩 드리겠습니다. 이 기도 의자는 하루 종일 무릎 꿇고 기도해도 발이 저리지 않게 합니다. 이 기도 의자가 닳고 닳도록 기도하십시다.

새해에는 찬양을 실컷 하십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에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실 때 일어나 춤을 추십니다. 그렇게 좋아하시는 찬양을 하루 종일이라도 하십시다.

둘째, 가족에게 잘 하십시다. 어떻게 하면 내가 가족들에게 기쁨이 될까? 가족을 위해 내가 할 일을 찾아봅시다. 지금의 어떤 내 모습을 가족들이 싫어할까?

셋째, 이웃에게 잘 하십시다. 빌 4:5 말씀에도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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