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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2005년 (렘 31: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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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서정호 목사

꿈과 희망이 있는 새해

200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해를 보낼 때마다 못다 이룬 꿈과 수많은 아쉬움 때문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새해를 맞이할 때는 기쁨에 마음이 들뜨게 됩니다.

지하철역, 플렛폼 구석에 걸려 있는 글귀 가운데 “당신이 살고 있는 오늘은 어제 세상을 떠난 사람이 그토록 기다리던 날입니다” 라는 글이 있습니다. 또 한 해가 밝았습니다. 새삼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자세를 가다듬게 하는 아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을 기다렸으면서도 막상 ‘오늘’이 오면 그 소중함을 모르고 지나쳐 버리곤 합니다. “밤늦은 시간, 막차를 기다리는 두 사람이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그들은 무척 괴로워 보였다. ‘그 때 일만 생각하면 잠이 안 와.’ ‘난 앞날만 생각하면 아득해.’ 서로 지난일과 앞일만 생각하며 탄식하는 사이 버스가 도착했지만 그들은 타지 못했다.”(잠언집 ‘풍경소리’·샘터) ‘오늘’은 기다림의 의미를 알고 전력투구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내면에 무한한 가능성과 에너지를 동등하게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럼에도 사람 사이에 격차가 생기는 이유는 인간이란 존재가 스스로 꿈꾸는 것만큼 생각하는 것만큼의 범위 안으로 삶이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2005년 한해를 새로운 희망의 선물로 받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좀 더 크고, 좀 더 넓고, 좀 더 깊게 꿈꾸면서 자신의 삶을 가꿀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꿈이 있어야 희망이 있고 또 희망이 있어야 꿈이 있습니다. 꿈도 희망도 없으면 살아갈 에너지가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꿈과 희망이 있을 때 삶의 에너지가 충천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희망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밑으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에 대한 꿈이요, 희망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희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새롭게 시작하려는 노력 

한 여인이 잔뜩 근심 어린 얼굴로 목사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저는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어요. 새로운 삶을 살고 싶지만 늘 작심삼일이어서 새해에 세운 계획도 지금은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목사는 여인의 말을 듣고 창고로 가더니 먼지가 하얗게 내려앉은 낡은 소쿠리를 들고 나와 그 인에게 건네며 말했습니다. "이유는 묻지 말고 여기에 물을 가득 담아 오시기 바랍니다." 구멍이 숭숭 난 소쿠리에 물을 담아 오라는 말에 여인은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목사의 말을 따라 우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소쿠리에 물이 담길 리 없었고 여인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돌아와 목사에게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쿠리를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쿠리에 물을 담지는 못했지만 소쿠리의 먼지는 깨끗이 사라졌지요? 마음먹은 대로는 안 되도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려고 노력하는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작은 시작이요, 반은 반이지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은 과장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이 속담 속에는 시작하기 전 어려운 결정에 대한 갈등과 고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시작을 했다는 것 자체가 큰일을 해낸 것입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전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시작을 결심하게 되는 거룩하고 경건한 시간입니다. 두려워 마시고, 희망과 함께 무한한 가능성을 허락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한해를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진 것에 대한 미련이나 집착의 삶이 아닌 시작과 끝이 한결같을 수 있는 삶이 진실로 아름다운 삶입니다. 

언약의 중요성

세상에는 많은 약속들이 있습니다. 이 약속들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파란 신호등이 켜지면 가고 빨간 신호등이 켜지면 멈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약속을 어기고 빨간 신호등이 켜있는데도 앞으로  질주하다가는 사고나 나든지 잘못하다 가는 죽습니다. 이런 약속들을 우리는 법으로 규칙으로 만들어서 그 법대로 행하며 살게 됩니다.

하나님도 인류 시조 아담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언약을 어기고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언약의 말씀대로 죽게 되었습니다. 인류 시조 아담은 언약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여 그들과 언약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새 언약에 대한 약속은 구속사적으로 볼 때 성경 전체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새 언약은 불완전한 율법과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로 이룩될 완전한 은혜의 언약인 것입니다(고전 11:25, 히 8:8-9).

성경에 보면 언약이라는 말이 참 많이 나오는데 오늘 본문에는 무려 4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맺은 언약을 비롯해서 노아와 맺은 언약,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다윗과 맺은 언약 등 많은 언약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성경은 언약의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언약에 있어서 구약이 약속의 책이라면 신약은 성취의 책입니다.

우리의 삶이 다 약속에 의해 이루어지듯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다 언약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언약이 없으면 신앙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약을 따라 이 땅에 오셨고 그 언약대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고 약속대로 성령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그 약속을 다 지키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구원을 받고 또 구원을 확신하고 살아 갈 수 있는 것도 다 언약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바벨론에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을 예언하면서 새 언약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씀하면서 새 언약에 관하여 예언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31절의 말씀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31절) 여기서 "날이 이르리니"라는 말씀은 좁게는 바벨론의 포로생활 70년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날을 말하고 넓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는 그 날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유다와 이스라엘은 신약 시대에 구원받은 하나님의 교회를 말하니까 오늘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그 날에 그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백성들과 관련된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새 언약을 세우신 이유

32절을 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32절) 32절은 왜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세우셔야만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세우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옛 언약을 파기하였기 때문입니다. 옛 언약은 시내 산에서 주신 십계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사 시내 산으로 인도하여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조직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기로 언약을 맺으셨고 그들에게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그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들의 신랑이 되었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남편으로 자신의 본분을 다하셨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과 동거하시며 그들의 모든 필요한 것들을 채워 주셨고 대적들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오게 하사 땅을 차지하게 하시고 그 땅을 기업으로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남편으로서의 본분과 책임을 다하였습니다. 남편으로서의 순결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떠했습니까?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은 이렇게 남편으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순결을 지켰지만 이스라엘은 그 남편을 버렸습니다. 그들은 순결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말씀하였지만 그들은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에서 우상의 제단을 세워 놓고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선지자를 보내사 그들을 깨우치고 돌아오게 하려고 했지만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누가 이 언약을 파기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이렇게 그들이 일방적으로 남편 된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고 언약을 파기하였기에 하나님은 다시 그들에게 새로운 언약을 세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

그러면 옛 언약과 새 언약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옛 언약은 시내 산에서 맺은 언약이고 두 돌 판에 새겨졌으나 새 언약은 마음에 새겨져있습니다. 돌 판에 새겨진 옛 언약은 언제든지 깨어져버릴 수 있으나 마음에 새겨진 새 언약은 깨어질 수 없고 지워질 수 없습니다. 옛 언약이 짐승의 피로 맺어진 언약이라면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언약입니다. 옛 언약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어진 언약이라면 새 언약은 예수를 믿고 거듭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과 맺은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예수를 구주로 믿고 영접했다면 여러분 한 사람은 한 사람은 이미 새 언약을 맺은 사람들입니다.

새 언약의 백성이 누리는 축복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말씀을 순종하게 된다.

32절 중반 절에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였다"는 말씀의 구체적인 의미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들에게 새 영과 새 마음을 부어 주어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율법을 지킬 수 있도록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겔36:26-27절을 보십시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겔 36:26-27)

우리가 예수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영접하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무엇을 하십니까?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날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되심과 내가 그분의 백성인 것을 깨닫게 하시며 고백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깨달은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것도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하게 하십니다. 억지로 하는 것은 언제나 한계가 있고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과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하는 것은 오래갑니다. 그리고 열매가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법을 만들어도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옛 언약의 백성들은 십계명 외에도 612가지라는 많은 법을 만들어서 율법을 지켜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실패했습니다. 아무리 많은 법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실패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새 언약의 백성들인 우리 안에 성령을 부어 주셔서 억지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감동된 마음으로 그 말씀을 지켜 행하도록 도우십니다. 오늘도 새 언약의 백성들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힘입어 살아갑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을 힘입어 성령께서 주시는 힘과 지혜를 따라 살아갑니다. 억지로, 마지못해서 하는 자들이 아니고 심판이 두려워서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명을 잃어버리고 수제자로서의 권위를 잃어버리고 옛 직업으로 돌아가 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에게 찾아 가셔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동기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새 언약의 백성들인 우리는 성령께서 주시는 새 마음으로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새 언약의 백성들인 저와 여러분이 누리는 축복입니다.

모든 죄와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된 삶을 살게 된다.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34절 하) 옛 언약 시대의 사람들은 범죄할 때마다 짐승을 잡아 그 피로 제사를 드렸으나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단번에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단번에 우리의 죄를 사하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는 그 죄를 기억치 않으십니다.

영원히 포기될 수 없는 관계 속에 살게 된다.

옛 언약은 돌 판에 새겨진 언약이었지만 새 언약은 마음에 새겨진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깨어지지 않고 지워지지 않습니다. 35절-36절을 보면 낮과 밤이 뒤바뀌는 수는 있어도 자기 백성을 버릴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었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규정하였고 바다를 격동시켜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내가 말하노라"(35절)

이 모든 자연의 법칙을 정하신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도 이 자연의 원리와 원칙을 거스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규정이 폐할 수 있겠습니까? 아침에 태양이 솟아오르고 저녁에는 달과 별들이 비취도록 되어 있는데 아침에 태양 대신에 달이 떠오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36절을 볼까요? "이 규정이 내 앞에서 폐할진대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폐함을 입어 영영히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36절) 자연의 원리와 법칙도 폐할 수 없을진대 어떻게 자기의 피로 맺은 새 언약의 백성을 버릴 수 있겠느냐? 다시 말하면 이제 새 언약의 백성인 우리는 영원히 포기될 수 없는 관계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새 계약의 축복을 주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시내 산에서 계약을 맺으실 때 돌 판을 주셨습니다. 이 돌 판에는 계약의 말씀, 곧 십계명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이 인간과 맺은 영원한 계약입니다. 그러나 이 계약마저 잘 지켜지지 않자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새 계약을 선포하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33절).

여기서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한다”는 말씀은 우리가 곧 성령에 의해서 새 사람이 될 것을 가리키신 것입니다. 바울도 이런 현상을 가리켜 "너희는 우리로 하여금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쓴 것이라"(고후 3:3)고 하였습니다.

결국 예레미야를 통해서 선포하신 새 계약의 말씀은 성령이 오셔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시므로 우리의 삶과 인격을 변화시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계명을 따를만한 선한 것이 없음을 보시고 하나님의 성령께서 친히 인간의 영혼에 내주하심으로 하나님과의 새로운 계약백성으로 살아가게끔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말씀인지 모릅니다. 이 은혜로 말미암아 과거에는 마귀가 시키는 대로 살았는데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 사는 사람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이렇게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은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33절)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마음속에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성령을 모셨다는 것은 언젠가 예수 그리스도를 내 생애의 구세주로 고백하고 영접했다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영접할 때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셔서 영원히 떠나가지 않을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고전 3:16 참조).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의 내주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이 곧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을 아는 자입니다.

우리 다시 새롭게 시작해 보자

하나님께서는 왜 새 언약을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고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으며 새 언약 백성들이 누리며 살아야 축복들에 대하여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어떻게 하든지 이 새 언약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하시는 그분의 간절한 마음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방적으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했습니다. 남편 된 하나님의 사랑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계약을 파기했으면 계약이 무효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언약 무효를 선언하시고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고 그들의 하나님 되심을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언약을 파기한 그들이 할 말이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일방적으로 언약을 파기하였을지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하였을지라도 그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그들에게 찾아와 새로운 언약을 맺자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이제 우리 새롭게 다시 시작해 보자! 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옛 언약을 파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새 언약을 주신다는 것은 이제 우리 다시 새롭게 시작해 보자는 그런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은 내가 새 마음과 새 영을 너희 마음에 부어 주어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도록 해 줄 터이니 우리 다시 새롭게 시작해 보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전에는 내 힘으로 계명을 지키려 할 때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는가? 이제 내가 성령을 너희 안에 두어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모든 명령을 감당할 수 있게 할 터이니 우리 다시 새롭게 시작해 보자고 말씀하십니다.

기도생활에 실패하였느냐? 사랑하는 일에 실패하였느냐? 자녀를 돌보는 일에 실패하였느냐? 예배에 실패하였느냐? 낙망하지 마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또 내가 너의 죄를 사하고 너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을 테니 우리 다시 시작해 보자! 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줄 테니 그리고 너의 모든 죄와 죄책감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할 테니 이제 우리 새롭게 시작해 보자!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보라 낮과 밤이 뒤바뀌는 수는 있어도 나는 너희를 폐할 수 없다. 나는 너희를 버릴 수 없고 포기할 수 없으니 이제 우리 다시 시작해 보자!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오늘 이 아침에 우리 모두에게 이제 우리 새롭게 다시 시작해 보자!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단은 언제나 끝장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번도 끝장이라고 말해 본 적이 없으십니다. 새 언약의 백성에게는 끝장이 없습니다. 새 언약의 백성은 언제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이 넘어졌어도 아무리 망가졌어도 아무리 실수를 많이 했어도, 아무리 많은 죄를 지었어도 성령님께서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내 죄를 사하시고 내 죄를 기억치 않으시기에 언제든지 죄를 자백하고 돌아서기만 하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제 다시 믿음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2005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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