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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평안 믿음 위로로 전진하는 교회 (행 9: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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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임대식 목사

2005년도 새 해 첫 주일입니다. 이 귀한 시간 주님을 예배하며 주님 앞에 나온 우리 성도님들, 이 한 해 하나님과 동행하시고, 꿈과 비전을 성취해 나가시며, 시련과 어려움을 이겨 나가시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 한 해를 살아갈 때, 우리 삶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는 가운데 “평안, 믿음, 위로로 전진하는 교회”로 정했습니다. 사도행전 9장 31절 말씀을 우리 교회 금년도 표어로 따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이 말씀은 정말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 평화교회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이 표어를 이 성경구절에서 찾게 된 것입니다.

첫째로 본문에 나오는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는 평안한 교회였습니다. 평안한 교회, 누가 뭐라고 해도 교회는 평안해야 합니다. 교회는 그 존재 이유가 “평화의 공동체”입니다. 또한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 평안을 찾아야 합니다. 피곤한 영혼들이, 지친 몸과 마음의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평안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평화의 공동체인 교회에 와서 사람들이 평안을 얻지 못하면 어디에서 평안을 얻을 것입니까? 우리 주님의 초청은 분명합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 29절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누가 뭐라 해도 믿음의 사람들이 보면 교회가 편안해야 집안도 편안해 집니다. 집안이 편안해야 성도 개인 개인도 편안해 집니다. 교회가 편안치 못하면 성도는 영적으로 불안해 집니다. 영적으로 불안한 마음으로는 절대 가정을 편안하게 꾸릴 수 없습니다.

오늘날 편안치 못한 교회가 더러 있다는 일은 참 슬픈 일입니다. 편안히 예배드리지 못하는 교회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케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고린도 전서 7장 15절입니다.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에베소서 4장 3절입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하였습니다. 진정 우리 성도님들, 이 한 해 우리는 평안한 교회에서 평안한 신앙 생활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분이 미국에 여행을 갔는데, 주일날이 되어서 예배를 드리러 교회를 찾았습니다. 처음 방문하는 길이라 교회가 어디에 있는지 잘 몰라 마침 서 있는 교통경찰에게 물었습니다. 이 근처에 어디 예배드릴 좋은 교회가 있습니까?

교통경찰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 길로 쭉 네 블록을 가다가 우측으로 꺾어지면 거기 교회가 있습니다 하고 안내를 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농담 삼아 다시 물었습니다. 당신 그 교회 교인입니까?

아니요. 나는 교회를 다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근처에 몇몇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에서 나오는 사람들 표정이 제일 밝고 평안해 보였습니다. 아마도 괜챦은 교회인가 봅니다 하고 말했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성도님들, 우리 평화교회 성도님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우리 평화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여러분들이 행복해 보이고, 평안해 보이고,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내 보이시기를 바랍니다.

진정 하나님께서 이 한 해 우리 모두에게 복 주셔서, 평안한 교회를 든든히 세워 나가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성도님들, 그런 교회를 세워 나가시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믿음으로 든든히 서 가는 교회입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평안하기만 한 교회가 아니라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는 믿음 안에서 든든히 서 가는 교회였습니다. 평안하기만 한 교회는 비유컨대 밀가루 교회입니다. 밀가루는 가만히 두기만 하면 편안합니다. 그러나 바람이 불면 콩가루가 되어서 날아가 버립니다. 결코 든든할 수가 없습니다. 편안만 한 교회는 아차하면 먼지만 쌓이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뿌리를 깊이 박고 든든히 서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 “든든히 서 가고”라는 헬라어는 “집을 건축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번역 성경에는 “터전을 든든히 잡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든든히 서 가는 교회가 되려면 두 가지 피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터전이 든든해야 합니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외모를 꾸며도 터전이 바로 다져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교회가 든든히 서 가려면 말씀의 터전이 바로 다져져야 합니다.

사도행전 20장 32절입니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그 말씀이 능히 너희를 든든히 세우사.” 그렇습니다. 성도든 교회든 든든히 세워지려면 말씀 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읽고 말씀을 듣고 말씀을 공부하고 말씀을 외우고 말씀을 묵상하는 삶의 성도와 교회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오직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올 한 해 주님의 말씀 위에 든든히 서 가는 우리 성도님들의 귀한 믿음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교회가 믿음으로 든든한 집으로 세워지려면 든든한 기둥들이 든든히 세워져야 합니다. 우선 기둥이 든든해야 합니다. 기둥이 연약하면 집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든든한 기둥이 든든히 서야 합니다. 아무리 든든한 기둥이라도 삐딱하게 서 있으면 그 집은 쉽게 무너집니다.

그런데 교회의 기둥은 교회의 직분자만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나야 뭐, 조용히 신앙생활 하는 사람인데 뭐. 교회의 기둥이라면 장로님이나 권사님이나, 이런 사람을 말하는 거지 뭐. 이렇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로 우리 교회에 등록하는 그 순간에 하나님은 우리 성도님들을 이 교회 어느 구석에 기둥으로 세우셨습니다.

영어의 기둥을 나타내는 단어는 post입니다. 이 단어는 또한 지위, 있는 곳을 뜻하기도 합니다. 기둥은 한 번 세워지면 그 밑둥이 썩어 빠질 때까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기둥이 자꾸 움직이면 집이 든든할 수 없습니다.

성도님들,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려면 모든 성도 하나하나가 자기 자리에서 자기 사명을 바로 감당해야 합니다. 결코 내 자신을 함부로 생각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있게 한 그 자리에 충성스럽게 이름 없이 있을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 나는 비록 교회 안에서 별로 보이지 않는 존재라고 스스로 소홀히 여기지 말기 바랍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 내가 지키고 있는 이 예배의 자리에 내가 기둥으로 버티고 서 있는 것입니다. 내 자리가 비면 교회는 흔들릴 수밖에 없음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 하나쯤 주일 예배에 빠져도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는다고, 자신의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나 하나하나가 우리 교회를 세우는 기둥입니다. 내가 내 자리를 지켜야 교회가 믿음 위에 든든히 서 나가는 법입니다.

어느 시골에 자그마한 교회가 새로 단장했습니다. 새로 함석 지붕을 깨끗이 씌우고, 거기 못을 단단히 박았습니다. 지붕에 박힌 못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야 뭐 별 쓸모가 없는 존재야. 저 기둥처럼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저 창문처럼 아름답지도 않고, 여름에는 더위와 씨름하고, 겨울에는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나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야.

게다가 함석 지붕을 페인트로 칠을 하니 새 못이 새까맣게 되었습니다. 못은 신세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못은 견디지 못하고 몸을 비비틀다가 지붕에서 쑥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침 그날 밤 태풍이 몰아 닥쳤습니다. 빠진 못 자국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고, 바람이 휘몰아 불더니 그만 함석 지붕이 날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교회당 안에는 빗물로 가득 차서 다음날 교인들이 왔지만, 도저히 예배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내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내 위치를, 내 자리를 굳게 세워 지켜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교회는 믿음으로 든든히 세워지게 되는 줄 믿습니다.

골로새서 2장 7절 “믿음 위에 굳게 서고.” 베드로전서 5장 12절 “은혜에 굳게 서고.” 데살로니가전서 3장 8절 “주 안에 굳게 서는.” 그러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서로 굳게 서서 주의 몸 된 교회를 굳게 세워가는 축복된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성령의 위로가 넘치는 교회입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그렇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위로가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위로와 응답이 나타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상처받은 몸과 마음이, 삶에 지친 육체가, 병든 영혼과 몸이 이 교회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치료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위로와 치료도 필요하지만 실제로 교회에서 성령의 성도들을 통해서 위로를 받고 격려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위로가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끼리끼리 모이고, 끼리끼리 친교하고, 끼리끼리 어울리는 동안에 모처럼 위로가 필요해서 교회에 찾아 왔다가 그 끼리끼리에 끼지 못하고 더 큰 상처를 받고 더 큰 고독을 체험하고 철새처럼 흔적 없이 사라진 성도가 우리 교회에는 왜 없겠습니까?

우리 모두 자기만 위로받고 인정받으려고 하지 말고, 그래도 또 한번 우리 주위를 돌아봅시다. 바로 나에게 그 위로를 기다리고 있는 성도가 있는 성도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느 날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니던 발가락이 그만 큰 돌부리에 걸려 다치고 말았습니다. 아파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눈이 말합니다. 눈도 없어 뵈는 것도 없는게 저렇게 돌아다니니 다치지. 손이 말합니다. 저 냄새나는 발을 내가 어떻게 만져 줄 수 있어? 입도 한마디 합니다. 바보 같은 녀석 같으니라구.

과연 다친 그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런 몸이 과연 제대로 성할 수가 있겠습니까? 발가락이 다치면, 먼저 입이 아이구, 하고 소리지릅니다. 입이 아픈 것도 아닌데 소리를 먼저 지릅니다. 눈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립니다. 손이 얼른 그 발가락을 껴안습니다. 이런 몸이 정상이 아닙니까?

과연 나는 남의 위로를 받으려고 하는 존재입니까? 아니면 남을 위로하며 살려고 하는 존재입니까? 이미 나는 하나님의 풍성한 위로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과 더불어 나누는 성숙한 존재들이 모두 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교회는 성령의 위로가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그 위로와 격려에 푹 잠길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가 되어 네 번째의 교회의 모습에 함께 뛰어들어야 합니다.

그 성령의 위로로 주어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물론 우리 모두 위로받고 격려 받고 용기를 얻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목적은 분명합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그렇습니다. 전진하는 교회입니다. 진행하는 교회, 곧 선교적 교회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비전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그것은 곧 퇴보입니다. 나는 가만히 있어도 세월은 흘러갑니다. 나는 머물러 있어도 세상은 정신없이 변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어제 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우리 신앙과 생활에 있어서 발전이 있고, 진보가 있어야 합니다. 마땅히 전진하는 교회가 되어야만 합니다. 앞으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럴 때 오늘 본문 말씀의 결론과 같이 “수가 더 많아지니라” 부흥하고 성장하는 교회로 세워지게 될 줄 믿습니다.

성도님들, 금년도 표어를 기억합니다. “평안 믿음 위로로 전진하는 교회.” 우리 모두 성령의 도우심으로 평안한 가운데 함께, 믿음 위에 믿음을 더하며, 서로 위로와 격려를 나누며, 손을 잡고 주님을 향해 힘차게 걸어 나가십니다. 그래서 2005년 이 한 해, 주님이 함께 하시는 축복의 역사를 함께 체험하고 함께 나누어 가지는 복된 성도가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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