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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요새에 있지 말고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삼상 22: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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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황요한 목사

우리가 기다리던 2005년이 다가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 또 그 기대를 이루기 위한 여러분의 열정이 얼마나 뜨거운지, 2005년에 하나님의 기대에 부합된 삶을 여러분의 열정이 끝까지 식지 않는 변함없음이 올 한 해를 온통 가득차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2005년도에도 우리는 계속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를 원하는 우리의 열정들이 이제는 사무엘상에서 계속 되고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살인의 위협에서 피신해서 블레셋이라고 하는 사실은 가지 말아야 할 땅까지 피신을 갔습니다. 오죽하면 얼마나 급했으면 자신이 골리앗을 죽였던 원수의 나라라고 할 수 있는 블레셋으로 피신을 했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가드라고 하는 도시에 가서 아기스 왕 앞에서 자신의 몸을 좀 피하기를 사울의 위협에서 조금 안식하기를 요청을 했습니다.

왕은 그런 다윗의 요청을 들어주려고 하는데, 신하들이 반대합니다. 그리고 과거의 전쟁의 역사를 끄집어냅니다. 우리가 알기로 과거에 저 다윗이 엘라골짜기에서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투를 벌일 때 우리의 최고의 무적 골리앗 장군을 물맷돌로 쓰러뜨린 장본인이 저 다윗입니다.

세월은 변했지만, 그 사람은 그대로 저기 있습니다. 우리의 원수입니다. 블레셋이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기회를 무산시킨 그 장본인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죽여야 합니다. 그렇게 신하들이 이야기하기 시작을 했어요. 정말 다윗은 사면초가였습니다. 독 안에 든 쥐와 같았습니다.

다윗이 기지를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이 미친체 하여 왕 앞에서 말하면서 침을 흘리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왕은 신하들에게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미친 사람이 부족해서 이 사람을 그 숫자를 더하려고 우리가 그러냐? 내가 보니까 이 다윗 죽일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그냥 쫓아내라.

사자굴에 들어갔던, 사자의 아구 속까지 들어갔던 그 위기의 상황에서 다윗은 기지를 발휘해서 다윗은 겨우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은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그곳을 떠나... 그 위기의 상황, 위험한 장소를 떠나서 이제 이스라엘 유다 골짜기, 사해 골짜기 아둘람이라는 굴로 도망을 쳤습니다.

사해 주변에는 석회암 지역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들이 많습니다. 크고 작은 동굴들이 많은데, 이 아굴람이라는 굴은 굉장히 규모가 큰 그런 굴이었습니다. 다윗이 그 곳으로 피신해 있다는 소식이 입으로 입으로 전해지면서 네 그룹의 사람들이 다윗에게 몰려들기 시작을 했습니다.

첫째는 1절에 보면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다윗에게로 몰려들었습니다. 다윗의 부모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새입니다. 이새의 내외가 모여들었습니다. 다윗의 형, 다윗은 여덟 번째 말째라고 그랬습니다. 사실은 사무엘이 하나님의 종으로써 기름부음을 위해서 찾아갔을 때만 해도 말째인 다윗은 숫자에 넣어주지도 않았습니다.

주의 종과 면담할 때 부모와 형제들이 기회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설움을 받았던 다윗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외모를 보지 말고, 중심을 보라고 하는 말씀 속에 나머지는 더 없느냐? 말째가 있기는 있는데, 들에서 양을 치고 있습니다. 데리고 와라.

전혀 몸을 다듬을 만한 어떤 준비의 시간도 가지지 못하고, 목동의 그 모습 그 대로 주의 종을 만났지만,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을 통해서 이가 그라. 내가 찾던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야. 그에게 기름을 붓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랬던 그 연약하고 보잘 것 없던 다윗이 세월이 지나면서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윗을 중심해서 모든 형제와 부모까지 다윗에게로 찾아와서 다윗에게 의탁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다윗의 위로 세 형제는 이스라엘 군대의 장군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을 미워하는 사울왕에게서 그 형제들도 덩달아 미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이제는 그런 권위있는 자리에서 밀려나서 이제는 초라하게 마지막 말째 다윗에게 위로받기를 원하고, 자신의 삶을 맡기기를 원하는 형편과 처지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그룹은 환란당한 모든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인생에서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삶에서 낙오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아둘람에 있는 다윗을 찾아온 것입니다. 저는 본문말씀을 생각하면서 22년전에 평안의 공동체를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에 이 역곡은 2층건물이 몇 채 밖에 있지 않은, 그리고 오늘 우리 교회가 있는 자리, 공원있는 자리, 그리고 부안초등학교 있는 자리, 청실,현대아파트가 있는 자리는 아카시아 나무가 듬성듬성한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는 동산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개척을 했을 때 지금 여러분들이 큰 길에서 들어오시면 가보시끼라고 하는 한 작은 가게가 있는데 그 바로 옆집 2층집 지하가 우리 교회가 시작을 했던 곳입니다. 18평 지하실이었습니다. 담임목사집도 지하실이고, 교회도 지하실이고, 그리고 우리 평안의교회 나오는 성도들도 등록해서 심방을 가 보면 지하실이었습니다.

번듯한 지하실은 괜찮은데, 방공호 같은 지하실입니다. 고개를 반 쯤은 숙여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지하실입니다. 교인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예배에서 설교를 듣는 사람은 아내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교회, 하루에 200가정씩, 일주일이면 1000가정, 한달에 4000가정을 전도를 다녔습니다.

4000가정을 다니면서 한 가정, 두 가정이 전도가 됐어요. 여러분 전도할 때에 한 두 번 벨을 눌러보고서 뭐, 요거 했다고, 소금 뿌렸다고, 전도 어렵다고 그리고 전도 다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적어도 4000가정을 다녀야 한 가정, 두 가정이 영접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평안의교회가 시작이 되어서 오늘의 이 영광을 누리게 된 줄 믿습니다. 거저 될 수가 없습니다. 4000가정을 다녀도 물 한 모금 주는 가정이 없었어요. 왜? 교인 집은 피해서 다녔기 때문에, 교패가 있는 집은 가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여러 가지로 견디기 어려운 욕설과 비난과 조롱을 받으면서 다녔습니다.

성도여러분, 그렇게 다니면서 한 가정, 두 가정이 온 가정들도 심방을 가보면 지하실, 더 기가 막힌 것은 3년간 제가 전도사로 있었는데, 전도사로써 그들 가정에 심방을 가 보면 그 분은 그렇게 저에게 응답합니다. 전도사님, 기대하지 마세요. 우리 6개월 있다가 서울로 올라갑니다. 잘 해야 우리 1년 있다가 올라갈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전도사님 실망치 않게 하기 위해서 미리 알려드리는데, 기대하지 마세요.

돌아오는 발걸음이 맥이 풀립니다. 흔히 하는 말로 김 새는 거지요. 그런데 그렇게 좌절감을 맛 보고 의욕이 떨어지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로운 도전이 생깁니다. 그래, 저들이 서울에서 살다가 인생에서 실패해서 가족이 해체되고, 어떤 삶에서 고통을 받고, 좌절을 맛봐서 원치 않게 이 역곡 땅에 와서 6개월 아니면 1년 후에 재기해서 올라가겠다고 하는 저들에게 내가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겠다. 기대하지 말라고 했지만, 저들에게 소망을 주어야 되겠다.

그리고 제 마음 속에 과제가 생기고, 숙제가 생겼어요. 저들은 분명히 6개월, 1년을 이야기 했지만, 저들과 분명히 평생을 같이 간다. 지하실이 1층이 되고, 사글세가 전세가 되고, 전세가 자기집이 되어가면서 이사를 열다섯번씩 하면서 이 자리에 이 평안의 공동체에 함께 하고 있는 그들 때문에 우리 평안의공동체가 이룩된 줄 믿습니다. 6개월 있다가 가겠다고 한 분들이, 1년 있다가 가겠다고 한 분들이 집도 올라가고 있지 않고 있어요. 언제 올라갈지 저는 궁금합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다윗의 공동체가 환란당한 사람들, 인생에서 실패를 맛보고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그래서 할 수 없이 찾아왔던 아둘람 공동체.

세 번째 그룹은 빚진 자였습니다. 경제적으로 약자들입니다. 사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잘 나갔더라면 주님을 못 만났을 사람들이 아마 이 자리에도 있을 거예요. 사업 하면 잘 되고, 모든 경제, 모든 물질, 마음껏 생각하는 데로, 계획하는 데로 잘 되었다면 아마 주님을 못 만나고 건방떨고 있을 사람들이 이 자리에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경제를 꺾으시고, 그들의 경제의 물꼬를 막으셔서 더 이상 내 인생 가지고는, 내 인간적 방법 가지고는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 이제는 바라봅니다. 이렇게 고백하고 주님을 만난 그들에게는 화가 변하여 복이 된 줄 믿습니다.

네 번째 공동체들은 마음이 원통한 자들입니다. 소위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모든 사람들에게서 상처를 받습니다. 그 상처 받은 사람들은 우리가 말 한마디만 잘 못 해도, 그들은 또 상처를 받고, 또 상처를 받습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다른 사람을 위로한다고 하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저 위로만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400명 가량이나 다윗에게 몰려 들었습니다. 사실 다윗도 필요하고, 사실 다윗에게도 많은 물질이 필요하고, 다윗에게도 여러모양으로 하나님께서 공급하셔야 할 일이 많은데, 다윗에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다윗은 부모를 그동안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모압왕에게 가서 부모를 의탁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동편에 있었던 이 모압은 이방이었지만, 다윗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알고보면 다윗은 증조할머니라고 할 수 있는 룻의 인연으로 모압여인이었던 룻, 나오미의 여인이었던 룻으로 인해서 모압과 다윗은 인척관계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어려움이 있을 때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내가 지금 동굴에서 피난생활을 하고 있으니 다는 맡기지 못하고, 우리 부모님들은 조금 맡아 주십시오. 그렇게 부탁을 했을 때 모압왕이 기꺼히 다윗의 제안에 응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세 그룹의 사람들과 아둘람 공동체를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당장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이 없어요. 그냥 동굴입니다. 물 한모금 얻기 위해서도 계곡을 내려가야 했고, 어떤 음식을 위해서도 유다 광야에 펼쳐져 있는 촌락들을 찾아가서 먹을 것을 요청해야 했습니다. 그러려면 당연히 사울의 군대에 노출되기 마련이고, 그것은 생명을 거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기에게 찾아온 그 4백명이 환란 당한 자, 빚진자, 원통한 사람들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평안의 공동체가 환란 당한 자, 빚진 자, 원통한 자들이 모여서 평안의 공동체가 됐어요.

제가 처음에 너무 어려워서 우리 지하실 18평에 형광등 8개가 있었는데, 한 달에 전기료가 5,000원이 나왔습니다. 22년 전에 그 5천원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제가 무슨 궁상을 떨었냐 하면, 나머지 형광등 6개는 끄고, 강대에 2개만 키고 예배를 드린 적이 있었어요.

설교는 어두워도 집사람은 들을 것 아닙니까? 그렇게 하다가 제가 기도를 하면서 제 모습을 보았는데, 너무 답답하고 한심한 제 모습을 보았어요. ‘야, 황전도사, 너 개척하면서 그렇게 사람이 궁색맞아지고, 그렇게 작아져? 너 오천원 전기료가 없어서 예배시간에 불을 끄고 예배 드리니?’ 제 모습을 보는데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을 보았어요.

‘하나님, 제가 개척하면서 이렇게 어려움이 있지만, 예배를 드리면서 불까지 꺼야하는 이 초라한 제 모습, 이게 원래 제 모습이 아닌데, 용서하십시오. 다시 불을 키겠습니다.’ 그리고 불 다 키고, ‘하나님 한 사람이 와서 은혜를 받고, 헌금을 해도 오천원은 더 할텐데, 내가 왜 이렇게 작아지고, 왜 이렇게 초라해 졌습니까?’

우리 교인들이 없어서 헌금을 못하면, 서울 가는 교인이 늦잠 잤다고, 서울 가려면 한 시간은 시간 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늦잠 자고서 서울까지 못 가니까 우리 지하실 교회 찾아와서 예배 드리고, ‘아이고, 전도사님 은혜 되었어요.’ 그리고 감사헌금을 하고 가는거 보니까 만원을 했어요. 두달치 전기료가 나오는 거예요.

사람이 작아지면 한없이 작아지더라구요. 초라해 지면, 너무너무 초라해 지는 거지요.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 정말 한 사람을 바라봐도 정상적으로 목회하기 원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하나님께서 넘치게 채워 주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의 공동체, 그 때 우리가 무슨 마음을 가졌는지 아세요? 부자가 와 가지고 한 일억 정도만 헌금을 하면 이 지하실은 우리가 탈피 할 수 있을텐데, 그런데 제가 목회자들 목회세미나 가서 물어보니까 그런 생각을 다 가졌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멍청한 생각 하지 말라고, 나도 그랬는데 근데 그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인지,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왜? 하나님은 그릇대로 주시는 거예요.

지금 개척교회 전도사에게 1억을 헌금하는 교인이 온다면, 그게 서로 수준이 맞겠습니까? 안 맞아요.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하실 사는 교인들만 보내신 것 같아요. 이제 보니까 얼마나 감사한지 너도 지하실 살잖아. 너네 교회도 지하실이잖아. 그러니까 너네 교인도 지하실 사는 교인을 보내야지. 뭐가 조금 수준이 맞아야지.

그런 그들과 두 사람 이상만 보내 주시면 성경공부 하겠습니다. 훈련하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베델성서대학이예요. 지금 15기까지 오고 있습니다. 작지만 우리 평안의교회의 힘은 거기에 있어요. 2년동안 담임목사와 침 튀겨가면서 자리가 없어서 성가대석에서, 자리가 없어서 조립식 구석에서 공부했던 그들이 지금 평안의교회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집사가 되었어요.

이제 그들이 지하실에서, 전세에서, 자기 집에서 하나님께 주시는 은혜와 은총을 입어가기 때문에 제가 입주예배를 드리면 그렇게 좋아하는 거예요. 그들의 삶을 제가 알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성전을 지키고, 교회를 지키고, 그러면서도 땅을 사고, 교회를 지으면서 온갖 헌금을 다해 가면서, 자신들의 삶은 나중으로 미뤄가면서 그렇게 입주예배를 드릴 때 저는 감격한 거예요.

아둘람 공동체로 400명이 모인 그들을 다윗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내게 부담스럽다고 다윗은 내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장차 하나님께서 내게 큰 일을 맡기실 때 내가 그들을 잘 양육하고, 챙김으로써 장차 하나님이 더 큰 공동체를 주실 때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다윗은 이 아둘람 공동체에서 훈련으로 터득한 줄 믿습니다.

또 400명의 원통한자, 환란당한 자, 빚진 자들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훈련을 시켜서 다윗이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워 주셔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국가를 이루어 가는 일에 그들이 장관으로, 방백으로, 지도자로써 크게 쓰임을 받은 줄로 믿습니다.

5절의 말씀입니다. 선지자 갓이 다윗을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충고합니다. 이 요새에 있지 말고,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유다땅, 유다땅은 위험이 있는 땅입니다. 지금 사울왕이 정예군사 3천명을 거느리고, 다윗이 굴에 숨어 있다고 하니까 지금 샅샅이 찾아 뒤지고 있는 중입니다.

24장에 가보면 다윗이 굴에 있을 때 3천명의 군사를 데리고 사울이 찾아 왔다가 용변이 마려워서 입구에 보초를 세워두고 자기 혼자 이 아둘람 굴로 들어왔어요. 환한 곳에 있다가 어두운 곳에 들어온 사람은 안을 볼 수 없지만, 어두운 곳에서 환한 곳을 보는 사람은 훤히 볼 수 있습니다. 마치 극장에 들어가면 아무 것도 안 보이다가 나중에는 다 보이는 것과 같아요.

4백명의 공동체가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누구 하나 기침이라도 했다가는 큰 일 날입니다. 3천명의 정예군사가 굴 밖에 대기하고 있고, 왕이 성경에는 왕이 그 발을 가리려고 라고 표현 했지만, 사실 왕이 용변을 보려고 혼자 들어왔어요. 등을 돌리고 용변을 보고 있는 왕에게 아둘람 공동체의 측근이 뭐라 그런줄 아십니까?

24장 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대로 행하라. 라고 내게 말씀 했으니까 왕이여, 죽여버려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고통을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피난생활 청산하는 것입니다. 이거 하나님 주신 기회입니다.

아직 아둘람 공동체는 신앙적으로 성숙해 있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유리하다고 생각되면 아전인수격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하나님의 뜻을 막 가져다가 붙이는 그런 수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혹 우리 안에도 하나님의 뜻을 자의 적으로 해석해서 내 멋대로 붙이는 사람들 없습니까?

저는 가끔씩 그런 사람들 만나는데 어떤 사람이 그럽니다. 목사님, 기도하고 응답받고 평안의교회 왔어요. 이런 사람들은 떠날 때도 거의 기도하고 응답받고 떠납니다. 아주 웃기는 사람들이예요. 다 제멋대로예요. 오는 것도 응답받고 오고, 가는 것도 응답받고 간답니다. 그런 사람들을 뭐라 그래요. 저의 집에 오면서 해태 봉봉쥬스를 사오면서 이거 어떻게 사오셨어요? 떠날 때 성령께서 해태 봉봉 사가라고 그랬대요. ‘난 롯데 좋아하는데?’ ‘아니예요. 목사님 해태 사가라고 그랬어요.’ 웃기는 사람들 가끔 있습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아주 맹랑한 이야기 많이 합니다. 자기 식으로, 자기 좋은대로 하나님의 뜻을 가져다 붙이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다 붙이고, 마음대로 해석합니다.

지금 이 아둘람 공동체가 다윗에게 말합니다. 지금 등을 돌리고 있는 사울의 등에 한번에 내가 창으로 꽂을 테니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내게 말씀해 주셨다는 거예요. 내게 유리하면 다입니까? 내게 유리하면 다 하나님의 뜻입니까? 그런 식으로 신앙생활 하지 마세요.

다윗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칼로 용변을 보고 있던 사울왕, 그 왕의 옷자락이 얼마나 크고 넓어요. 뒤에 가서 옷자락 한 모퉁이를 베었습니다. 왕이 용변을 끝내고, 계곡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얼마나 순수하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사람이었는지, 곧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세우신 종의 옷자락을 베는 죄를 범했습니다. 자기가 옷 자락을 벤 것을 하나님 앞에 회개했어요. 그리고는 자기 공동체와 함께 자기 굴 앞에 서서 건너편에 있는 왕에게 소리를 지릅니다.

왕이여, 왕이여! 하고 소리를 지르니까 사울이 돌아보니까 자기가 찾던 다윗입니다. 손에 뭘 흔들고 있어요. 이게 왕의 옷 자락이 아닙니까? 자기 옷자락에서 한 모퉁이가 베어져 나간 것을 보면서 사울은 깜짝 놀랐습니다.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는데, 나는 저를 죽이려고 찾는데, 그는 나를 살렸노라. 다윗아, 나를 용서해다오. 내가 어찌하여 이렇게 했는지, 다시는 너를 찾지 않을께. 하면 감동해서 돌아갔는데, 곧 다시 찾아왔어요. 철저하게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는 것, 상황에 따라서 그 때 그 때 감격하는 사람들은 상황이 바뀌면 또 사탄에게 붙잡힙니다.

그러한 위기 속에서 다윗이 공동체에서 훈련을 거듭하고 있는 어느 날 선지자 갓이 찾아왔습니다. 다윗이여, 이 요새를 떠나셔야 합니다. 떠나서 유대땅으로 들어가십시오. 유대땅은 어떤 땅입니까? 사울왕이 군대를 동원해서 자기를 죽이려고 시퍼렇게 자기를 찾고 있는 땅입니다. 위험한 땅입니다. 두려움이 있는 땅입니다.

그런데 주의 종은 다윗에게 말합니다. 아닙니다. 이 요새에 안주하지 말고, 유다땅으로 가십시오.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은 이 동굴이 아니라 유다땅입니다. 당신의 사명의 자리는 위험이 있으나 당신이 감당해야 할 자리는 유다땅입니다.

2005년에 하나님께서 우리 평안의교회 많은 일꾼들을 세우셨습니다. 한 가지 한 가지 만만한 일이 없습니다. 속장이 쉽습니까? 강사가 쉽습니까? 지역장이 쉽습니까? 성가대가 쉽습니까? 교사가 쉽습니까?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습니다. 눈물겨운 희생과 헌신이 따라가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요새에 있지말고 유다땅으로 들어가라. 사명의 자리로 가라는 것입니다. 눈물이 있어도, 고통이 있어도 가라는 것입니다. 저와 사랑하는 평안의성도여러분, 2005년 사명의 자리로 사명의 땅으로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담대함으로, 단 한가지를 의지하고 갑니다. 하나님은 나를 돕는 자시라.

그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라. 그래서 우리는 갑니다. 왜 가냐? 누가 묻거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셨기에 갑니다. 당신들에게 왜 그 일을 하느냐고 묻거든 하나님이 맡기셨기에 한다고 말하잖아요. 2005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기대에 부족함이 없는 충성된 사명자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난과 순종을 통해서 당신의 목적을 이루어 가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 믿습니다. 고난의 자리지만, 때때로 어려움의 자리이지만, 주님 원하시고, 주님 명하시니, 유대땅으로, 사명의 자리로 가기 원합니다. 주님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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