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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엘리멜렉가(家)의 불행한 생활 (룻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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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상현 목사

아모스 선지자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면 외식하는 자는『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암5:19)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작은 고통을 피하려다가 더 큰 불행을 당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룻기 1장 1-5절 말씀에 나오는 엘리멜렉의 가족은 유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모압지방으로 흉년을 피하여 갔습니다. 그런데 이사한지 10년만에 가장인 엘리멜렉과 두 아들인 말론과 기룐이 죽고 말았습니다. 행복을 찾아갔는데 더 큰 불행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찾아 나선 엘리멜렉가의 불행을 살피면서 사자를 피하려다 곰을 만나는 경우를 봅시다.

엘리멜렉의 집에 왜 불행이 찿아왔습니까?

󰊱 불신앙의 길을 갔기 때문입니다.

엘리멜렉의 가족이 모압으로 흉년을 피하여 간 것은 믿음으로가 아닌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베들레헴은 오직 굶주림과 고통의 땅으로만 보였습니다. 반면 모압은 풍요의 땅으로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들의 결정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모압은 이방 땅입니다 모압 사람들은 거짓 신들을 숭배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의 원수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신명기 23장 3절에『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암몬 족속과 모압족속은 근친상간 행위의 결과로 얻은 롯의 후손들이었습니다. 롯이 소돔에서 구출되었을 때 그와 그의 딸들은 동굴에서 살았습니다. 그의 딸들은 아비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한 후 그와 동침해서 낳은 자식이 바로 암몬과 모압입니다(창19:30-38).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엘리멜렉과 그 가족은 집을 떠나 원수에게 의존하며 함께 살고자 모압으로 갔던 것입니다.

『베들레헴』이란 「떡집」이란 뜻이요, 『유다』는「찬양」이란 뜻입니다. 그리고『에브라다』는 「수확이 많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엘리멜렉과 그의 가족은 수확이 많은 떡집에서 잠시 동안의 흉년으로 찬양 대신 불평하며 저주의 땅 모압으로 믿음이 아닌 눈에 보이는 것을 좇아 갔던 것입니다. 만약 성도가 보이는 것만을 따라 살고 믿음으로 살지 않는다면, 잠시의 흉년이 절망적으로 여겨져서 도망하는 것만이 최선의 해결책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인생이 기근, 곧 흉년을 만나면 피하여 도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엎드려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얻게 됩니다.

만일 성도가 믿음으로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살기를 시작한다면 모든 어려움을 이기도록 도움을 주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문제와 죄들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할 것입니다. 축복의 땅을 떠나 저주의 땅으로 갈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합니다.

《찬송가 344장》 이 눈에 아무증거 아니뵈어도

󰊲 육신의 길을 갔기 때문입니다.

모압 땅으로 간 것은 영적인 것보다는 육적인 것 때문이었습니다. 육적인 사람들은 언제나 사람이 우선 살고 봐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곳에서 풍족하고 만족한 삶을 살아가기보다는 도리어 하나님의 뜻안에서 굶주리기를 원합니다.

마귀는 40일을 금식하신 예수님께 천사처럼 나타나 걱정하며『돌덩이가 떡덩이가 되게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육을 위하여 살것이 아니라 영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 댓가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오직 살아야만 한다고 하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삶의 모든 안락을 얻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안에서 가난하고 주리게 되는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는 더 낫습니다.

『사람이 우선 살고 봐야 한다』는 말은 우리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사탄의 말입니다.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사탄의 속삭임입니다. 이것은 바로 에서의 길을 걷게 합니다. 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장자권을 경홀히 여겼습니다.그러던 그가 어느날 사냥하러 나갔다가 시장하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마침, 야곱이 맛있는 팥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에서는 사람이 우선 살고 봐야 한다고 그의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의 생애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생각하기에 앞서 육신의 욕구를 채우기에 바빴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영적인 것보다 육적인 욕구를 앞세우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곧, 육적 삶을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육신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적인 일보다 육적인 일을 더 먼저 앞세우셨다면 일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육의 일만 생각하여 주의 고난의 길을 가로막고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16:23)고 하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하는 자로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16:23)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바울은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느니라』(롬8:5-8)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육을 좇지 말고 영을 좇아 살아야 합니다. 육신의 길이 아닌 영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 세상의 길을 갔기 때문입니다.

본문 1절에『사사들이 치리하던 때』라고 했습니다.

사사기 17장 6절에는『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엘리멜렉과 그의 가족은 무질서의 시대속에서 살았습니다. 그 시대에 인기있는 구호는『모든 사람은 자기 소견대로 행하고 있다. 왜 우리는 못하겠는가?』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도 신세대라고 하는 젊은이들의 구호는 개성 시대라하여 옷도 머리도 자기 멋대로 하고 거리를 활보합니다. 아니, 모든 사람들이 자기에 편하면 그만이지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의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살아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보아스는 모압으로 가지 아니했습니다.

성도는 세상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엘리멜렉』이란「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라는 뜻입니다. 『나오미』는「기쁨」이라는 뜻입니다.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My God is King), 나의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시고 왕이 되신다』라는 신앙고백을 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살 때는 그 가정에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바라보고 자기의 소견대로, 세상 중심으로, 모압 땅에 가서 이방 여인과 결혼을 하고 그 곳에서 행복을 찾았으나 행복과 기쁨은 변하여 슬픔과 눈물만이 가득했습니다.불행의 연속이었습니다.

지금도 세상 중심으로 살면서『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고 있다』고 변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 결과는 불행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생활 원리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습니다.

󰊴 무지 했기 때문입니다.

나오미와 엘리멜렉과 그들의 두 아들이 모압으로 내려갈 때 그들은 그들의 문제까지도 같이 가지고 갔습니다. 그들의 문제가 무었이었습니까? 그것은 영적 퇴보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보다도 더 나은 일을 스스로 행할 수 있고, 또 자신의 삶도 스스로 영위하며 조종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습니다. 모든 문제의 핵심은 마음에 있습니다. 우리는 환경을 탓하고, 이웃을 탓하고, 하나님까지 탓하지만 그 문제의 근원을 추적해 보면 탓해야 할 대상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천주교회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표어가운데 「내탓이요」하는 것은 참 마음에 듭니다. 모든 문제는 내탓입니다.

우리가 바로 하나님을 의심하였고, 말씀에 불순종하였으며, 하나님의 뜻 대신에 세상과 육신을 우선적으로 따랐습니다.

우리가 문제를 피하여 도망하고 그 문제의 원인을 타인에게 돌린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를 더 확대시켜 더 큰 불행을 불러들이고 맙니다.

엘리멜렉이 살던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으나 그 흉년을 피하여 모압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흉년 가운데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문제를 피하여 가는 것은 더 큰 문제를 일으키고 맙니다.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말하기를『지리적인 변화가 성격의 결함을 결코 보충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수확이 많은 떡집에서 기쁨으로 찬양하며 살던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흉년이 오자 믿음으로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곳으로, 영이 아닌 육을 위한 곳으로, 하나님 중심이 아닌 세상 중심으로, 문제의 근원을 망각하고 하나님이 저주한 모압으로 가서 10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풍성한 열매를 맺던 모압의 밭들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의 매장지로 변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오미를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하여 그의 가족을 연단시켜야만 했습니다. 그를 괴롭게 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연단하실 때, 도망가지 말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은총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히12:11).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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