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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심을 품으라 (롬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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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김광일목사 (벧엘감리교회)

  구세군 118년 역사상 개인으로 최고의 기부금을 낸 분이 있습니다. 1,120억을 기부한 맥도널드 창업주의 부인 조안 크록 여사였습니다. 그녀의 남편 크록은 원래 종이컵 행상을 하였습니다. 크록은 종이컵을 팔아 모은 돈으로 시카고에 ‘맥도널드’ 라는 가게를 차리고 ‘빵이 가장 맛있게 익는 온도와 고기를 가장 부드럽게 익히는 법’ 을 열심히 연구하여 성공하였습니다. 맥도날드는 현재 자산 가치 3백 30조원으로 114개국에 24,500개의 매장을 두고 햄버거를 팔고 있는 대형체인입니다. 맥도널드 창업주 크록의 경영철학은 “열정” 이라고 합니다. 크록은 직원들에게 “사업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박사학위가 아니다. 재주나 기술이나 능력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열정” 이라고 늘 말합니다.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은 “열심이 없이 성취된 위대한 일은 하나도 없다” 라고 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배후를 보면 하나같이 열심 때문에 성공하게 되었고, 열심 때문에 능력 있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열심을 가진 자만이 사회에서 빛을 발하는 위대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을 보더라도 열심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열심입니다. 열심은 부지런하고 적극적인 삶의 태도입니다. 

  교회는 교인의 수가 많거나 적거나 누가 열심을 가지고 봉사를 하는지 드러나게 됩니다.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힘이 남거나 시간이 많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이 들어도, 시간이 없어도 넉넉하지 못해도 열심이 있기에 묵묵히 봉사할 뿐입니다. 아무쪼록 열심을 품고 봉사하는 일군들이야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교회학교 교사들을 임명하는 주일입니다. 임명받는 교사들은 열심을 품고 섬기는 교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들에게 맡겨진 영혼들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을 다하여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품어야 할 열심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게으르지 않는 부지런한 열심이어야 합니다
 
  히말라야 산맥에 카투만두라는 왕국에는 새에 대한 전설이 있습니다. 새의 이름은 ‘날이 새면 집 지으리’ 입니다. 카투만두 왕국은 낮에는 따뜻하다가 밤이 되면 온도가 급격히 떨어져 몹시 추운 곳입니다. 이 새는 따뜻한 낮에는 종달새나 꾀꼬리처럼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즐깁니다. 그러다 해가 지고 차가운 눈바람이 날리는 밤이 되면 둥지가 없어서 이곳 저곳을 방황하면서 울어댑니다. “아, 날이 새면 집 지으리! 날이 새면 집 지으리.” 날이 새면 반드시 찬바람을 막아낼 수 있는 집을 지으리라고 다짐하면서 고통스러운 밤을 보냅니다. 그러다가 날이 밝아 따스해지면 지난밤의 고통이나 다짐은 다 잊어버리고 따뜻한 낮을 즐깁니다. 다시는 밤이 안 올 것처럼 집짓기를 잊어버린 채 마냥 노래를 부릅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다시 추위를 이기지 못하며 “아아, 날이 새면 집 지으리” 하고 애절하게 울부짖으며 방황한다고 합니다. 게으른 자의 숙명적인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게으름의 헬라어는 ‘오크네로이’ 로서 근심이나 걱정으로 인해 늑장을 부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이러한 상태의 신앙을 토하여 내치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부지런함을 강조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신앙생활의 나태를 경계하기 위함입니다. 사실 처음 믿을 때에는 열심히 하다가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타성에 빠져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마음으로 항상 변화되어야 합니다. 절대로 게으르거나 나태해져서는 안됩니다. 모든 죄악은 게으른 자의 마음속에서 발육되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제 부지런한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에 공적에 따른 보상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부지런한 자에게는 부지런함에 상응한 복이 약속되며 부지런히 일하는 자에게는 그 손이 일하는 대로 복을 주십니다.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하는 일에 열심과 부지런함이 있는가? 교회에서 가정에서  바른 목적에 합당한 열심과 부지런함으로 일을 하고 있는가? 부디 영적인 열심과 부지런함의 지수를 날마다 높여 가시기 바랍니다. 본디 믿는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부지런해야 합니다. 영적 관심 없이 살아가는 사람에 비하여 영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게으르지 아니하고 부지런한 열심을 내는 바른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성령과 함께 하는 열심이어야 합니다

  독일의 진젤돌프 백작이 어느 미술관에 가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성화를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운명하신 예수님의 머리에는 굵은 가시로 만든 관이 씌워져 있고, 그 찔리신 상처에서는 붉은 피가 얼굴로 방울방울 흘러내렸습니다. 그림 밑에는 “나는 너를 위해 몸을 주었건만 너는 나에게 무엇을 주느냐” 라고 씌어져 있었습니다. 진젠돌프는 주님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의 마음이 성령의 역사로 뜨겁게 감동된 것이었습니다. 후에 그는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교회를 위해서 불붙는 열심을 내게 됩니다. 모라비안 교단을 창설하게 되었고, 계속 기도하던 중에 100명의 선교사를 세계에 파송하기에 이릅니다. 

  본문의 ‘열심을 품고’ 의 원어는 ‘토 푸뉴마티 제온테스’ 입니다.  ‘성령과 함께 하는 열심을 품고’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표준새번역 성경은 ‘성령으로 뜨거워진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십시오’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여기의 열심은 성령께서 주시는 불타는 열심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열심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끔 보면 신앙 생활은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이상하다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잘 하는 것 같다가도 결정적일 때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성령께서 주시는 열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서 나오는 열심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역시 예수를 만나기 전에 이러한 인간적인 열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유대교를 섬기는 열심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면 밤낮 가리지 않고 그들을 쫓아가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들을 죽이는 일에도 가담하였습니다. 자기 의에서 나오는 열심, 자기 만족에서 나오는 인간적인 열심을 가지고 생활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열심 있는 신앙생활을 기뻐하십니다. 따라서 성도는 계속적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우리 심령 가운데 불타게 함으로써 그 열심으로 섬겨야 합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아 우리의 생각을 주님 중심에 두고 헌신하며 봉사할 때 열심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은 믿음 없이도 열심히 할 수가 있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이러한 열심은 결코 오래 못 갑니다. 그러므로 성령과 함께 하는 불붙는 열심을 가지고 일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열심이 믿음에 의해서 나오는 열심입니다. 이제 후로 성령의 도움을 받아 섬기며 성령과 함께 열심히 일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주님을 위한 열심이어야 합니다

  서기 350년 경 로마 교황을 지냈던 율리우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매우 고결한 신앙을 가지고 있어서 성자로 칭호를 받았습니다. 어느 날 그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 어떤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율리우스는 그 사람에게 자기의 열심이 많은 것을 자랑했습니다. 그 사람은 그 열심을 좀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율리우스는 가슴에서 열심 덩어리를 꺼내어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것을 저울에 달았습니다. 그리고 열심 덩어리의 무게가 100근 이라고 했습니다. 율리우스는 자기의 열심이 그렇게 많은 무게가 나가는 것을 보고 매우 흐뭇해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바로 그 열심 덩어리를 뜨거운 물 속에 넣고 녹였습니다. 그리고 그 열심의 구성 성분을 밝혀주었습니다. 성분은 야심이 30근, 자기자랑이 25근, 명예심이 40근, 하나님 사랑이 5근, 합계 100근 이였습니다. 열심 속에 들어 있는 주님을 사랑해서 내었던 열심은 고작 5근 밖에 안 되는 것을 본 율리우스는 너무나도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열심이란 말은 ‘enthusiasm’ 으로 헬라어 ‘en’ 과 ‘theus’ 란 말이 합성어가 된 것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 안에 있다” 는 뜻입니다. 즉 자기를 위한 열심이 아니고 주님을 위한 열심임을 분명히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내려는 열심이 누구를 위한 열심인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올바른 믿음에 근거하지 않는 열심은 오히려 많은 피해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제나 이제나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열심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많은 어려움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런 열심을 경고합니다.  “너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롬10:2). 유대인들이 초대 교회를 박해하였던 열심들이 바로 이런 열심이었습니다. 열심은 있었으나 잘못된 열심이었습니다. 

  기업 경영 컨설터이며 리더쉽 연구가인 스티브 코비(Seteve Covey)박사는 “시계를 보지말고 나침판을 보고 살라” 고 말합니다. 목표와 방향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는 열심도 바른 방향과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열심의 방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열심히 섬기되 주님을 위한 열심을 가지고 섬기는 충성된 종들이 되어야 합니다. 부흥하는 교회를 보면 주님을 위한 열심을 가진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 부흥의 조건은 지리적인 여건이 아닙니다. 좋은 건물이 아닙니다. 주차장의 유무가 아닙니다. 길목이 문제가 아닙니다. 설사 이러한 조건이 구비되어 있지 않다고 해도 주님을 위한 열심을 가지고 성도들이 바르게 섬겨 간다면 그 교회는 반드시 부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벤처기업은 남이 안 하는 새로운 것들을 발견해서 모험적으로 일을 진행해 큰 수확과 이익을 거두는 기업을 말합니다. 그런데 벤처기업들의 공통점을 보면 모두가 밤잠을 자지 않고 연구합니다. 열심히 일합니다. 젊은이들이 모여서 열심히 하다보니까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부지런하여 열심을 품고 일하면 교회는 반드시 부흥됩니다. 부흥 안 되는 것이 기적입니다. 부지런한 열심, 성령과 함께 하는 열심, 주님을 위한 열심을 가지고 교회를 섬겨나가는 교사와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부디 성령의 뜨거운 역사와 함께 주님을 위한 바른 열심을 내는 교사들과 성도들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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