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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악순환의 고리 끊기 (삿 3: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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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홍문수 목사

송구영신예배 드리면 새해를 맞이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지나갑니다. 이제 2005란 숫자에 제법 익숙해졌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신년 초에 여러 가지 결심을 했는데, 과연 잘 지켜지고 있는지 말입니다. 혹시 흐지부지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남자분이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담배를 끊겠다고 단단히 결심했습니다. 며칠은 잘 됐죠. 그러던 어느날 밥을 먹고 나서 무심결에 호주머니를 뒤적거렸습니다. 그리고 중얼거립니다. “아니, 담배가 어디 간 거야? 분명히 여기 넣어두었는데 ... 참 이상하네.” 한참 그러다 번뜩 생각이 났습니다. “아이고, 내가 담배 끊었었지~” 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절에 다니던 분이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수개월이 지나 제법 교회생활에 익숙해지고 있는데, 어느 날 궁금한 게 있어서 교회로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마침 마당에 관리집사님이 일을 하고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무심코 물었습니다. “집사님! 주지 목사님 어디 계세요? 잠시 상담을 하고 싶은데 ... ” 아직 담임목사라는 말에 익숙지 않아 생긴 해프닝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오래된 습관을 고친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또 여러분 중에 혹시 이런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새해에는 하루에 성경 3장씩 꼭 읽어야지” 하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은 꼬박꼬박 읽다가 바쁘고, 잊어버리고, 결국은 창세기 몇 장 읽다가 그만 둡니다. 그래서 창세기 부분만 새까맣게 때가 묻은 성경책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왕왕 봅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우리 대부분 비슷한 모습일 겁니다. 종류는 각각 다르지만 신년 초에 했던 결심들이 하나 둘 무너져가고 있을 겁니다. 그 중에는 나쁜 습관을 버리겠다는 결심도 있을 것이고, 혹은 좋은 습관을 만들겠다는 결심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결심들이 하나 둘 식어지고 나면, 우리는 또다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가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발전도 성숙도 없이 그저 지금까지 살아오던 대로 나쁜 습관에 질질 끌려 다니며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한 마디로 ‘악순환’입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이 과연 무엇입니까? 물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대속을 믿으면 즉시 하나님 자녀가 됩니다. 그리고 언제라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미 구원을 받은 겁니다. 하지만 이 세상 살 동안 우리가 감당할 책임이 있음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동시에 특권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를 가리켜 ‘성화’(거룩할 聖 + 화할 化)라고 부르죠. 하나님 자녀의 신분을 취득하면 그에 합당한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평생 그 과정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모습은 더욱 거룩하고 아름다워지며 예수님을 닮아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엡4:15 보면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삶 속에 더 풍성한 생명과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요10:10에서 예수님이 약속해 주셨습니다. “...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므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좋은 습관, 거룩한 습관으로 우리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켜 가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로 유명한 고대 신학자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앙이란 거룩한 습관을 들여가는 것이다.” 습관은 우리의 인격을 형성합니다. 그리고 인격은 곧 우리의 생애를 좌우합니다. 결국 나쁜 죄악의 습관으로 이어진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거룩하고 좋은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또 그렇게 살아갈 때 금년이 그 어느 해보다 더욱 풍성하고 복된 해가 될 것이며, 더 나아가 우리 인생이 복되고 아름다운 생애가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 죄악의 악순환을 끊어버리고, 새로운 삶으로 힘차게 전진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사기는 구약 이스라엘의 사사시대를 그 배경으로 하는 책입니다. 사사시대라 함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시대를 가리킵니다. 좀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여호수아 사후부터 왕정 시대 초대왕인 사울 이전까지의 시대를 가리킵니다. 사사는 왕이 없던 시대에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직분입니다. 직역하면 재판관(Judge)이란 뜻인데,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정치 및 종교 지도자입니다. 흥미롭게도 사사는 왕처럼 세습되면서 항상 이어졌던 게 아니고, 필요에 따라 하나님이 그때그때 세워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사시대의 특징이 있습니다. 흔히 ‘암흑시대’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여 바알 신 아세라 신 등 우상 신들을 섬기고,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하였던 시대입니다. 그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진노로 끊임없이 외적의 침략과 지배를 당했습니다. 대개 사사시대를 3백년으로 잡는데, 그중에 무려 1백년 정도 전쟁을 치르며 외세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런 고난은 사실 당하지 않을 수도 있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계속 고통을 당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사기를 보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있을 수 있는 ‘죄악의 악순환’ 문제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실패했지만,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복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1] 죄악의 악순환 : 범죄와 징계의 반복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이 반복하던 악순환의 패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함께 분석해 봅니다.

① 범죄 : 7절을 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숭배의 범죄를 저지릅니다. 광야를 지나 가나안에 정착한 그들은 세속적인 욕망에 눈이 멀었습니다. 이제 하나님보다 가나안의 토속신인 바알과 아세라를 더 가까이 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리고 죄악에 점점 깊이 빠져들어 갔습니다.

② 징계 : 범죄한 이스라엘을 오래 지켜보던 하나님은 마침내 진노하십니다. 8절에 기록된 대로 메소보다미아 구산 리사다임 왕을 통해 징계의 채찍을 내리십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을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다(히브리어 ‘마카르’)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소유권을 양도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일종의 방임인 셈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구산 리사다임의 압제 하에서 8년 동안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오래 참으시지만, 한편 공의로우셔서 끝까지 참지 않고 반드시 징계하십니다. 선민에게는 그것이 또한 사랑의 다른 방법이기도 합니다. 히12:6~8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③ 일시적 회개 : 고통 중에 빠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울며 간구합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긴 하나님이 옷니엘 사사를 일으킵니다. 옷니엘이 성령(여호와의 신) 충만하여 전쟁에 나가 구산 리사다임을 쳐부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평화가 회복됩니다.(9절~11절) 평화의 시기가 무려 40년 동안 지속됩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8년이었지만 평화는 40년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엿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정말 주고 싶으셨던 것은 평화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들의 회개가 온전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고통만 면하려는 임시변통이었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그들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닥쳐옵니다.

④ 범죄와 징계의 반복 : 12절을 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 ” 이 구절에서 ‘또’(히브리어 ‘야사프’)라는 단어를 주목해 보십시오. 이것은 사사시대를 묘사하는 데 반복된 단어입니다. 또, 또, 또 ... 그들은 끊임없이 범죄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징계도 계속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옷니엘 사사가 죽은 후 이스라엘은 다시 범죄하고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로 모압 왕 에글론에게 압제를 당하게 됩니다. 에글론은 암몬과 아말렉 족속까지 모아 연합군을 편성해서 침략합니다. 종려나무 성읍(여리고성)이 함락되고, 그후 18년 동안 압제를 당하게 됩니다. 점점 그 징계의 강도도 심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악순환을 되풀이했습니다. 사사시대는 한 마디로 ‘악순환’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2] 악순환의 고리 끊기 : 철저한 회개와 새로운 삶

이스라엘은 어리석게도 고통을 당하면 일시적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비로 숨통이 트이면 또다시 그 은혜를 망각하고 범죄하는 악순환을 거듭합니다. 말하자면 악순환의 근본 원인은 일시적인 회개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라도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정말 철저하게 회개하고 새롭게 변화되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어리석은 거죠.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들이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애굽의 바로왕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내보내 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그는 거절합니다. 그래서 재앙이 시작됩니다. 만일 단번에 순종했으면 전혀 불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재앙을 당할 때는 잠시 순종하는 척했다가 상황이 호전되면 또다시 고집을 부리는 식으로 되풀이하면서 10가지 재앙을 다 겪게 됩니다. 정말 멍청하죠? 그런데 우리 중에도 신앙 생활을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마늘 도둑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마늘을 훔치다 들켜서 원님에게 끌려갔습니다. 원님은 호통을 치면서 벌을 줍니다. 그런데 그냥 벌을 주지 않고 3가지 중에서 선택하라고 합니다. 마늘 100개 먹기, 곤장 50대 맞기, 벌금 한 냥 내기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면 그대로 벌을 주겠다는 겁니다. 그 도둑은 돈이 아까우니까 마늘 100개를 먹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20개쯤 먹으니까 속이 쓰리고 눈물이 나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곤장을 맞겠다고 말합니다. 곤장을 20대쯤 맞으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고 도저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 결국 벌금 한 냥을 내고 풀려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진정한 회개 없이 빠져나갈 궁리만 하다가 쓸데없는 고통까지 당한 겁니다. 신앙 생활을 이렇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불쌍한 노릇입니다.

우리는 혹시 잘못된 습관에 빠져 있거나, 죄를 범할 때 우물쭈물하거나 꾀를 부리지 맙시다. 그렇게 하면 계속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우리의 삶은 계속 꼬이고 혼란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혹시라도 잘못이 생기면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회개하기를 바랍니다. 온전한 회개가 있을 때 신앙이 성숙하고, 우리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법입니다.

그러면 온전한 회개, 철저한 회개는 과연 어떤 것일까요? 한 마디로 ‘전인격적 회개’입니다. 인격의 3요소는 지(知), 정(情), 의(意)입니다. 따라서 온전한 회개란 지적인 회개, 정적인 회개, 의지적인 회개를 포함합니다.

① 지적인 회개 : 죄의 고백

회개는 우선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고백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지적으로 죄를 인식하지 못하면 회개는 불가능합니다. 이것을 병의 치료와 비교하며 생각해 보면 이해가 빠릅니다.
병자가 자신에게 병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건강하다고 고집을 부리면 치료는 불가능합니다. 의사를 찾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병의 치료는 ‘병식’(病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마찬가지로 회개와 용서, 그리고 변화는 죄를 솔직히 인정하고 고백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막2:17 참조)

② 정적인 회개 : 죄에 대한 애통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입술로 시인해도 만일 그 사실을 애통하게 느끼지 못하면 온전한 회개가 될 수 없습니다. 욜2:12~13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 ” 구약 이스라엘 백성은 회개할 때 외적인 표현을 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옷을 찢고, 머리에 재를 뿌리고 ... 그런데 이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마음 속에서 죄를 깊이 뉘우치고 통회할 때 유효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엘 선지자 당시 그들은 옷을 찢으면서도 마음 속에서는 무덤덤했습니다. 요엘은 그런 모습을 안타깝게 여겨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고 외친 것입니다.

③ 의지적인 회개 : 죄악에서 돌아서 하나님에게 나아감

아무리 지적으로, 감정적으로 회개해도 마지막으로 의지적인 회개가 없으면 철저한 회개가 되지 않습니다. 회개의 본질적 의미는 ‘돌아서는 것’입니다. 회개를 표현하는 구약 히브리어 ‘슈브’나 신약 헬라어 ‘메타노이아’ 모두 방향전환을 가리킵니다. 180도 방향을 트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순한 방향 전환이 아니라 역동적인 의미가 내포됩니다. 종합적으로 말씀드리면, 의지적인 회개는 두 단계를 거칩니다. 하나는 죄악에서 떠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Turning from sins to God) 즉 회개는 버림과 취함, 떠남과 향함으로 이뤄집니다. 이것을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죄악된 습관을 버리고, 거룩한 습관을 들이는 것입니다.
i) 죄악의 습관 버리기 : 일반적으로도 발전을 위해서는 냉정한 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잘못이나 습관을 얼마나 철저하게 끊어버리느냐가 성숙과 변화의 관건입니다.

세계 일류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의 이야기입니다. 「이건희 개혁 100년」이란 책에서 본 겁니다. 옛날 불량품이 나올 때 이 회장이 공장 마당에 2천명 전 사원을 집합시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불량품이 나온 모델의 제품들을 몽땅 쌓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산더미처럼 쌓인 제품들은 해머로 때려부수고 불로 태우게 했습니다. 불량품 화형식을 한 겁니다. 그때 맷더미가 된 제품이 시가로 500억원이었다고 합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사원들은 눈물을 흘리며 비장한 각오를 했고, 그후 회사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전기가 됐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비슷한 원리입니다. 철저한 회개는 나 자신의 악한 모습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것입니다. 렘23:29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철저하게 악한 모습을 깨뜨려 버리고 불살라 버리라는 겁니다. 한 마디로 ‘거룩한 파괴’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역사해 주십니다.

야곱에 20년만에 가나안에 돌아왔을 때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벧엘이 아닌 세겜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딸 디나가 세감 추장 아들에게 강간당하는 무서운 일이 생깁니다. 그러자 오빠들이 몰려가서 거짓으로 세겜 일족에게 결혼을 빙자하여 할례를 받게 합니다. 수술의 고통이 며칠 계속되는 동안 대학살을 감행합니다. 그 소식을 야곱이 듣게 됩니다.
잘못하면 그들의 보복으로 몰살당할 위기 상황입니다. 그때 야곱이 집안에 있던 온갖 우상을 버리고 벧엘로 올라갑니다. 믿음의 족장이 아직도 품고 있던 죄악을 이제 단호하게 끊은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도우셔서 한 사람도 그들을 추격하지 않았습니다. 당시로서는 큰 기적이었습니다.

ii) 거룩한 습관 들이기 : 습관은 인격을 형성하고, 결국은 인생을 좌우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습관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일반적인 차원에서도 졿은 습관을 가고 사는 것은 유익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100세까지 무병장수하려면 생활습관을 바꾸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의학자들의 연구 결과 건강 문제는 유전적인 요인은 불과 20~30%에 그치고, 생활 습관이 70~80% 연관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습관, 거룩한 습관을 가질 때 예수님을 닮은 인격을 형성하게 되고, 풍성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좋은 습관을 새로 만들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반면 허물어지는 것은 너무 쉽습니다. 나쁜 습관은 가만히 있어도 잘만 형성됩니다. 반면 버리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좋은 습관을 들이고 유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이런 예를 생각해 봅니다. 청년들이 군대 갔다 오면 생활이 절도 있게 됩니다. 일찍 일어나고 식사도 제 시간에 하는 등 ... 그런데 제대하고 나면 그게 얼마나 가나요? 본인이 특별한 결단을 하고 잘 관리하지 않으면 한 달도 못 가서 원 위치가 됩니다. 그러므로 좋은 습관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결단이 필요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자신의 결심이나 노력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로 성령의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좋은 습관을 새롭게 형성하도록 도와주시고, 또 그것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코카콜라 창업자 아사 G. 캔들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본래 알코올 중독자로 밤낮으로 취해 있었습니다. 그러니 일이 잘 될리 없죠. 주위에서도 권면하고, 본인도 여러 번 금주 선언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술에 취해 귀가하던 중 마음 속에 벼락같은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일종의 영음이었겠죠. “너 자신의 본능적 욕망을 거절하지 못하면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다!” 그는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러자 아내는 바로 그 시간에 남편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 말을 들은 캔들러는 통회했고, 부부가 서로 손 잡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후 그는 평안을 얻었고,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납니다. 그리고 경건한 습관을 들이기 시작합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면서 기도하는 습관, 충실한 예배 습관, 수입의 십일조를 정확히 드리는 헌금 습관 등 ... 그후 회사는 번창에 번창을 거듭하여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혹시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처럼 악순환 속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만일 조금이라도 그런 모습이 있다면 우리는 악순환의 고리를 과감히 끊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진정한 회개를 실천해야 됩니다. 작심삼일이라면 매일 매일 결단하고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연약하기에 기도하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삶은 ‘악순환’이 아니라 ‘선순환’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금년은 최고의 한 해가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남은 생애 정말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풍성한 삶이 펼쳐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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