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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순종의 계승자 (창 2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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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관지 목사

오늘은 교사임명순서와 졸업감사순서가 있어서 설교가 짧습니다.
이 말을 듣고 아쉬워하는 분은 경건의 훈련이 잘 되어 있는 성도입니다.
이 말을 듣고 좋아하는 분은 아직 믿음이 더 진보해야 하는 성도입니다.

여러분에게 오늘 본문에서 제일 중요한 단어를 찾아내라고 하면 어느 단어를 찾아내시겠습니까?
예배 전에 ‘오늘 설교의 본문과 제목이 무엇인가?’ 미리 확인하고 본문을 읽어보는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은 이 질문에 어렵지 않게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일까요?
“순종”입니다. 5절에 나오지요.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오늘 설교 제목이 ‘순종의 계승자’이니까 설교 제목과 본문을 연결하면 금방 대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예배 전에 설교의 제목과 본문을 확인하고 본문을 읽는 좋은 습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의역하면 이렇게 됩니다.

이삭아,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는 나의 명령에 순종하였다. 너도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는 나의 명령에 순종해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큰 복을 주겠다.

이삭은 하나님의 이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겠다는 약속이 이삭을 통로로 해서 이루어집니다.

순종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에는 순종이라는 말이 129번이 나옵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삼상 15: 22b~23a)

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순종에 대한 많은 교훈들, 많은 사례들 가운데 오늘은 이삭의 순종을 통해서 세 가지 은혜와 교훈을 얻기 원합니다.

첫째, 우리는 순종하기 어려운 것을 힘써 순종해야합니다.

이삭은 순종하기 어려운 처지에서 순종을 했습니다.

먼저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순종을 했습니다.

이삭은 원래 순종을 잘 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할 때 이삭은 순순히 순종하였습니다.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의 여러 기록을 가지고 추정해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고 했을 때 이삭의 나이는 37세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나이는 137세가 됩니다.
37세의 혈기왕성한 청장년이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137세의 노인을 뿌리치려면 얼마든지 뿌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하자는 대로 순순히 순종했습니다.
창세기 22장에 기록되어 있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한  이야기를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보지 않고 이삭의 입장에서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버지에게 끌려 제사 드리러 갈 때  이삭은 번제 드릴 나무를 지고 갔는데(창22: 6) 이것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는 예수님의 예표로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순종은 보이는, 눈앞에 있는 아버지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본문 2절의 말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2절은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라고 되어 있는데 하나님께서 어떤 형태로 나타나셨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꿈에 나타나셨는지, 아니면 어떤 사람이 이삭에게 와서 ‘나는 하나님의 사자이다.’ 하면서 이렇게 말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큰 음성으로 이렇게 들렸는지, 아니면 이삭의 마음 속에 이와 같은 확신이 생겼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니면 애굽으로 가려는 길이 자꾸 막혀 ‘아, 하나님이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하시눈구나!’
알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어느 경우든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눈에 확실하게 보이는 존재에게 순종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순종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삭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점을 본받아야합니다.

바울사도는 고린도후서 4장 18절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존재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영원과 연결되는 일입니다.

그 다음, 이삭은 지금 하나님을 신뢰하기 어려운 처지인데 하나님을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1절을 보세요.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삭은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갔다고 했는데 식량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고 했으면 풍년이 들어야할 텐데, 이게 무슨 일이야!’ 하기 쉬웠습니다.

이삭은 그 때까지 아이가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 에서와 야곱이 태어난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성경은 반드시 시간순서대로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이삭은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 거주하면서 자기의 아내를 누이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미인이어서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뺏어갈까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때 아이가 딸려 있었으면, 더구나 쌍둥이를 데리고 있었으면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때까지 이삭은 아이가 없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겠다고 하더니 이것이 무엇이야?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믿어? 어떻게 순종해?’ 하기 쉬웠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여러분,  순종하기 어려운 형편에서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을 더욱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순종하기 쉬운 것을 순종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순종하기 어려운 것을 순종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순종하기 더 어려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큰 믿음입니다.

성경 인물들의 경우를 보세요. 거의 여기에 해당됩니다.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 순종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순종했습니다.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 순종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순종했습니다.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내라는 하나님의 명령, 순종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순종하였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저 땅에 내려가서 마구간에 태어나고 많은 고생을 하고 끝내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라는 하나님의 명령, 순종하기 정말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 예수님은 순종하였습니다.

순종하기 어려운 처지에서 순종하여 믿음의 큰 역사를 이루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아까 신구약성경에는 순종이라는 말이 129번이 나온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내용은 대부분, ‘하나님께 순종하면 이런 복을 받는다. 순종하지 않으면 이런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삭은 하나님께 순종해서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아들을 얻었습니다.

구약의 잘 알려진 여인들 가운데는 오랫동안 아이를 낳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이삭의 아내 리브가,  야곱의 아내 라헬,  삼손의 어머니, 한나도 모두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기도를 많이 하게 하라고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태를 여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응답의 기쁨을 더욱 크게 하려고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아렇게 해서 얻은 자녀들, 큰 인물들이 되었지요.
출산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있는 가정들은 이 사실을 알고 소망 가운데 더욱 열심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삭은 하나님께 순종해서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창대해지는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이 땅에 거류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도 사실은 마음에 들지 않는 명령이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는 떠나라고 하고, 자기에게는 머물라고 하고,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이 명령에 순종합니다.
애굽으로 가지 않고 그 땅에 머뭅니다.
이삭이 머문 곳은 그랄이란 곳인데 이곳은 가나안과 애굽의 경계선에 있는 곳입니다.
조금만 더 가면 자기가 가려고 했던 곳, 애굽입니다.
거기가면 이 흉년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그 땅에 머뭅니다.
애굽에 가고 싶은 유혹을 눌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가라고 하실 때 가야하고, 하나님이 머물라고 하실 때 머물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곳으로 가야하고, 하나님이 머물라고 하는 곳에 머물러야 합니다.
때와 장소, 모두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삭, 어떻게 되었습니까?
창세기 26장 12절에서 14절 상반절까지를 보세요.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그 종이 심히 많으므로

큰 복을 받았습니다.
이삭과 같이 순종하여 큰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우리는 순종의 계승자들이 되어야합니다.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순종을 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창12: 1)라는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이삭은 이와 같이 순종 잘 하는 것을 계승했습니다.

이삭은 아버지의 바람직하지 않은 성품도 계승했습니다.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도 자기의 안전을 위해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인 일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비겁한 짓이지요.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던 고생도 계승했습니다.
흉년, 늦게까지 아이가 없는 일, 다 겪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갈등이 있었는데 이삭은 아들들끼리의 갈등을 겪습니다.

만일 이런 것만 이어받고 순종은 이어받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아브라함의 순종, 이삭의 순종, 모세의 순종, 예언자들의 순종, 예수님의 순종, 믿음의 선배들이 보여준 순종, 순종을 계승하는 순종의 계승자들이 되어야합니다.
순종을 계승한다는 것은 곧 믿음을 이어받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이어받는다고 하면서 순종을 이어받지 않으면 그것은 껍데기만 받는 것이 됩니다.
야고보 사도는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였지만 순종 없는 믿음은 아예 믿음이 아닙니다.
순종은 믿음의 알짜배기입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가, 이 사람이 저 사람의 아들인 것이 맞나, 확인하려고 할 때 유전자 검사를 합니다.
순종이 믿는 사람들의 유전자가 되어야합니다.
여러분, 순종의 유전자를 지닌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순종을 계승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복의 계승을 약속하십니다.
3절과 4절을 보세요.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을 이삭에게 반복해서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 복의 약속 첫 마디, “내가 너와 함께 있어” 이것만 해도 엄청나게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만 한다면 우리는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요한 웨슬리 목사님이 임종하실 때 한 말이 ‘제일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이었습니다.
이 말은 요한 웨슬리 목사님의 기념비에도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오늘 예배 중에는 교회학교 교사 임명순서가 있습니다.
교회학교 교사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 19~20a)

라는 명령에 더욱 더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여러분과 항상 함께 계실 것입니다.

졸업생들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는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더 짜질 수 있는 힘, 더 밝은 빛을 낼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목양교회는 떠나라는 명령에 순종하여 전에 있던 곳을 떠났습니다.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대 성전이라는 복을 주셨습니다.
IMF, 그리고 IMF보다 더 어렵다는 불경기 속에서 이 많지 않은 성도들을 가지고 이 정도 규모의 성전 건축이 가능한 것입니까?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저는 어제 ‘마음 따로, 얼굴 따로, 입 따로, 눈 따로’라는 체험을 했습니다.
오늘 지방회를 대 성전에서 하게 되어 어제까지 1층에만 1,500석의 의자와 강대상과 강단 의자들을 들여놓고 청소를 했습니다.
지난번에 송구영신 예배를 그곳에서 드렸습니다만 그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어제 현장점검을 하면서 마음으로는 ‘담담해야지’ 하고, 애서 웃는 얼굴을 하고, 입으로는 ‘이것은 이렇게, 저것은 저렇게, 이것은 여기에, 저것은 저기에’ 말하는데 눈에서는 자주 눈물이 맺힙니다. 따로, 따로입니다.
따로 국밥이 아니고 따로 눈물, 재미있는 체험이었습니다.

이제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14: 23)라는 명령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성도들이 심히 많게 하시며 떼를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지금 대 성전 입당준비를 겸한 사순절 특별새벽기도회에 평소보다 4~5배의 성도들이 모이고 있는 것은 그 예표요, 약속의 무지개입니다.

성도 여러분,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순종하기 어려운 처지,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일수록 순종하기 바랍니다.
순종의 계승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놀라운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고, 교회가 되기를 순종의 모범을 보이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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