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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과 고난 (마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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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병의 목사

9절에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셨습니다. 세상에 귀 없는 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것을 모르실리 없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심은 주님이 하신 말씀이 그 만큼 중요하기에 깊이 깨닫고 새기라는 뜻이라고 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란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어떤 농부가 씨를 뿌리는데 씨앗이 길가에도 가시밭에도 돌작밭에도 그리고 옥토에도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길가나 가시밭이나 돌작밭에 떨어진 씨앗은 결실이 불가능하지만 옥토에 떨어진 씨앗은 100배 60배 30배 결실을 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하여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이해되는 말씀입니다.
귀를 기울여야할 만큼 새로운 내용이 아닌데 주님은 이 이야기에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을 풀어서까지 주셨습니다. 이것 역시 전혀 새로운 이야기도 아닙니다. 삼척동자도 다 알아들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구태여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을까?
너무나도 당연하고도 평범한 이야기지만 매우 중요하고 깊은 의미가 담겼기 때문입니다.

오늘 씨앗이 뿌려진 네 장소 중 결실이 가능한 옥토와 결실이 불가능한 세 장소의 결정적인 차이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길가, 돌밭, 가시떨기 밭은 본래 있던 모습 그대로이지만 옥토는 갈아지면서 흙이 뒤집어진 땅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곡괭이 삽 호미 쟁기 등이 그 땅을 깨고 부수고 갈아 없는 과정을 거친 땅이라는 말입니다. 그 과정에서 풀뿌리가 제거되었고 돌멩이를 추려냈고 결과적으로 남은 것은 옥토입니다.

그러므로 옥토라 부르는 땅은 반드시  땅의 입장에서 보면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아픔을 당한 셈입니다.
쟁기로 갈아엎을 때마다 곡괭이로 찍어낼 때마다 호미로 긁어낼 때마다 으서지고 깨어지고 부서지고 가루가 되는 아픔과 고통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은 바로 그 고난의 결과로 가능했습니다.  주님께서 귀 있는 자는 들으라하신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고난을 외면한 길가, 돌밭, 가시밭이라면 여전히 결실과 무관합니다.
고난을 마다하지 않은 땅만이 결실을 맺는 좋은 땅입니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주님의 말씀을 듣고 100배의 결실을 얻는 사람은 먼저 마음이 깨어지고 부셔지고 으깨어진 사람입니다. 아픔이 없이는 옥토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에게 고난은  많은 결실을 맺기 위한 은총입니다. 귀 있는 자라면 이 사실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난을 통하여 우리 마음을 옥토로 일구어 주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죄에서 돌아서게 합니다.
요나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니느웨로 가서 전도하라고 하였는데 요나는 반대 방향으로 갔습니다. 그가 탔던 배는 풍랑에 휩싸였고 요나는 마침내 바다에 던져집니다. 큰 물고기 뱃속으로 삼키어졌습니다. 요나는 그 고난을 인하여 요나의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에게 폭풍이 고난. 바다에 던져지는 고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는 고난은 그에게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인가요? 고난은 삶의 방향을 바꿔놓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잘못된 길을 걸어갈 때 고난이 있다면 그것은 은총입니다. 죄를 지었는데도 방치해둔다는 것은 더욱 무서운 심판입니다.

2.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더욱 깊고 성숙하게 합니다.
죄의 현장에서 방향을 바꾸었다고 다 성숙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삶의 현장에서 크고 작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신뢰하게 되면서 더 깊은 신앙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시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3.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참된 인간의 가치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봉사하며 살아가는데 있습니다. 진정한 삶의 기쁨역시 타인의 유익을 위해 살아가는데 있습니다. 타인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곧 자기 확장입니다.
그런데 고난은 자기 확장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가장 확실한 도구입니다.

흙이 깨어지고 부서지고 쟁기에 갈리고 뒤집어지고 곡괭이로 찍히고 으서지는 과정을 통하여 옥토가 되어 100배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 결실은 땅 자체에 있지 않고 타인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점을 귀를 기울어 들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자만이 십자가를 질줄 압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이 단순히 고난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교회 우리나라 십자가를 지는 자를 필요로 합니다. 십자가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은 드뭅니다.
여기 십자가가 몇 개나 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니 인류가 살아났습니다. 오늘 당신이 십자가를 지시면 우리교회가 살아날 것입니다.
십자가는 피하면 피할수록 무거워집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당신이 지면 십자가가 당신을 져주실 것입니다.
부활은 고난의 십자가 없이는 전혀 불가능합니다. 고난 없는 부활과 영광은 허구요 거짓일 뿐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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