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가죽옷을 주옵소서 / 창 3:6-9,20-21

  • 잡초 잡초
  • 530
  • 0

첨부 1



가죽옷을 주옵소서
창세기3:6-9,20-21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거룩한 주의 날을 우리에게 주시고 또 하나님 앞에 나와서 이 귀한 예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우리를 권고하시고 은혜주신 아버지 감사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영광을 땅에 있는 모든 주의 백성에게 큰 평화가 있게 하여 주옵시고 부족한 종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듣는 귀를 열어주시고 또 마음 문도 열어 주옵소서. 종에게 은혜를 주셔서 주의 말씀이 잘 전해지도록 주께서 저도 권고하여 주시고 큰 은혜를 힘입게 하옵소서. 우리의 모든 찬양을 주님께 바치오며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인간이 필요한 것이 참 많지만 그 중에 가장 귀중한 것을 의, 식, 주 라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입는 것과 또 먹는 것과 우리의 생활하는 주거지가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의를 먼저 세웠던 것은 우리는 항상 사람 앞에 설 때에 의복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전체의 삶을 표시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혹은 굶거나 집이 없는 것은 숨길 수 있어도 벗은 것은 당장 숨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입는 의복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일생을 지나면서 참 기쁜 일이 많이 있지만 가장 기뻤던 일은 어렸을 때 부모님이 새 옷을 사서 우리에게 주실 때가 제일 기뻤던 것입니다. 설날이었지요. 그믐날 장에 다녀오신 우리 부모님께서 우리에게 새 옷 한 벌 주시면 우리는 천사가 되는 것 같고 뛰듯이 날 듯이 기뻤던 것입니다. 설날 아침에 세배를 마치고 너무 좋은 옷을 입고는 집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모든 사람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갑니다. 열심히 뛰어 다니다가 나중에는 스케이트장으로 가서 결국에는 얼음에 빠집니다. 참 큰일나고 낭패되는 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좋겠냐 그래서 불을 피워 가지고 우선 말립니다. 뒤로 돌아서서 말리다가 또 태웁니다. 이래가지고는 아 정말 어떻게 하면 좋겠나 그러다 집으로 돌아가면 사랑 많은 어머니께서 나를 꾸짖으시고 또 용서해 주십니다.

  옷을 갈아 입혀 주시고 또 이 옷을 씻어서 기워서 다시 입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어머니의 사랑은 참으로 우리에게 너무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여 언제나 이해해 주시고 사랑과 긍휼을 베풀어주시는 어머니는 우리에게는 천사와 같은 것입니다. 늘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잡고 우리가 다녔고 비가 오면 어머니께서 치마를 벗어 우산 만들어 주시고 잠을 자면 또 어머니께서 치마로 덮어주시고 항상 우리는 어머니의 사랑가운데 행복하게 자라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또 귀중한 것은 우리를 향한 헌신과 사랑도 참 무한하지만 우리로 하나님을 알게 해 주시고 우리의 손을 잡아 그리스도에게로 나를 이끌어 주신 어머니의 사랑은 참으로 큰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이 주신 제일 아름다운 선물은 세 가지라고 합니다. 하나는 꽃이고 또 하나는 어린아이의 웃음이고 하나는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한답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가운데도 가장 영원한 것은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꽃은 곧 시드니까요. 또 어린아이의 웃음도 오래 갈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잠깐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역시 영원한 것은 어머니의 사랑을 당할만한 견줄만한 일들은 이 세상에는 없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있는 한 이 사회는 우리가 웃음과 밝음과 건강으로 얼마든지 치유가 될 수 있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이 건강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 모두가 다 어머니의 손에 있다고 우리는 보는 것입니다. 그 어머니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의 품안에 안길 수 있도록 해 준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 가장 큰 기적이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문제아는 없답니다. 어머니가 어머니의 자리를 지키는 한 이 세상에 모든 문제될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인물, 영국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람을 셰익스피어라고 하지 않습니까? 셰익스피어는 여러분이 잘 아는 대로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 줄리어스 시저, 한 여름밤의 꿈 그리고 셀 수 없는 많은 작품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셰익스피어도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잡화상을 하는 아주 극히 어려운 가정에 태어나서 공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학교에 다녔지만 너무 재미가 없어서 학교 가는 중간에 숲 사이에서 풀 소리 물소리 꽃잎들 나무소리 새소리 들으면서 그는 그곳에서 일주일이 지나도록 공부를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나 정말 학교 가기 싫어 너무 너무 학교 가기 싫어. 어머니는 이 아들이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걸 잘 받아 주었습니다. 이해해 주었습니다. 그래 그렇게 가기 싫으냐 그러나 우리 가문은 귀족의 가문이니까 넌 그걸 잊으면 안 된다 너는 너의 책임을 다해야 된다. 예, 학교만 안보내면 나는 훌륭한 사람이 될 거예요. 집에서 어머니의 사랑으로 길렀습니다. 어머니께서 그에게 자유를 주어서 열심히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소질을 계발하게 했습니다. 이미 셰익스피어는 어려서 여덟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에 달랐습니다. 청년이 되어서 그는 런던으로 나가서 길거리에서 헤매면서 요사이로 말하면 서커스단, 이런데 들어가서 일을 하면서 어떻게 보면 그곳이 그에게 또 새로운 세계의 눈을 뜨게 하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문학적인 소질을 계발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좋은 터전이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어머니의 사랑을 받은 이 아들은 세계적인 작품을 쓰고 끊임없이 발전하여 오늘 인류가 낳은 가장 훌륭한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작품 속에도 항상 여성상을 높이고 어머니를 높이는 이런 표현을 끊임없이 했던 것입니다.
 
  어머니를  귀하게 보는 분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은 분들은 모든 여성을 존경하고 모든 여성을 귀하게 봅니다. 절대로 여성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낮추어 보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천사니까요. 모든 여자를 천사같이 보는 것입니다. 학자들에 의해서 의학적으로 통계에 보면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문제아가 될 뿐만 아니라 결혼하고 이성을 사귀어도 90% 이상이 변태 성욕자로 나아간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 받은 어머니의 넘치는 사랑은 우리를 절대로 비뚤어진 길로 갈 수 없게 만드는 것이지요. 힘인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를 그리스도의 품안으로 인도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의 품안에서 자라나게 하고 예수의 보혈의 옷을 덮어 주어서 주의 은혜 아래 살아가게 하는 것은 이것은 영원한 은혜요 구원이요 축복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은 범죄한 우리 인간이 아담 이브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범죄한 다음에 저들은 너무 부끄럽고 하나님이 없는 삶이 두려워서 하나님 앞에 죄 지은 자기 자신들은 견딜 수 없는 고통가운데 무화과나무 그늘 밑으로 숨습니다. 숨어서도 평안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무화과나무 잎을 가지고 자기를 가리는 옷을 제일 처음 만들어 입는 것입니다. 인간이 제일 처음으로 만든 작품이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치마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했던 삶, 부족함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에덴동산의 삶은 영광스런 삶이요 생명이 넘치는 삶이요 풍요로운 삶입니다. 악이 없습니다. 죄가 없습니다. 질병과 저주와 죽음과 고통이 없었습니다. 인간을 해롭게 하는 그 어떤 것도 없었습니다. 자연은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였습니다. 모든 생명은 우리에게 복종하였습니다. 우리를 괴롭히고 아프게 하는 일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그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하고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고 죄를 지은 다음에는 모든 것이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떠나갔습니다. 에덴동산의 풍요로움은 끝이 났습니다. 아름다운 과일들은 간 곳이 없고 이 땅에는 오늘 본문에 있는대로 가시와 엉겅퀴가 나게 되어서 우리를 괴롭히게 되었습니다. 곡식은 되지 않습니다. 잡초가 우거지는 들판이 되었습니다. 좋은 식물은 다 사라지고 나쁜 식물만이 이 땅을 덮게 되는 것입니다. 힘쓰고 애쓰고 땀흘려도 일이 되지를 않습니다. 열매가 맺어지지 않습니다. 인간관계는 파괴되었습니다. 미움과 증오와 시기와 악한 것으로 가득 차서 이기적인 면이 가득 차서 나는 나요 너는 너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으로 충만하던 그 모습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고 인간은 외롭고 고독하고 쓸쓸한 거지 의복을 입은 이런 불쌍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부모님 품안에 있는 어린아이가 전혀 부끄러움을 모르듯이 하나님 앞에 우리 인간은 부끄러운 줄 몰랐는데 범죄한 우리 인간은 너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어서 무화과나무 잎으로 먼저 자기를 가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두려웠습니다.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숨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우리 인간이 숨을 곳이 없습니다. 죄인은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야 하나님의 품안에서만이 숨을 길이 열리는 것이지 하나님을 떠나서는 참으로 숨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 인간이 범죄하고 독수리의 날개로 날아서 멀리 갈지라도 하나님이 거기에도 계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눈을 어디에 피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어디가서 벗어날 곳이 있겠습니까? 독수리를 요사이 비행기에 비유하지 않습니까? 외국으로 보면 많은 사람들이 범죄하고 멀리 가서 숨어보기도 합니다. 섬으로 가 보기도 합니다. 죄를 지으면 빛이 싫습니다. 사람이 싫습니다. 낮이 싫습니다. 드러나는 것이 싫습니다. 만나는 것이 싫은 것입니다. 좋은 것이 좋지 않습니다. 이것이 범죄한 사람들이 받는 형벌인 것입니다.
 
  제가 한 번 미국에서 현장에 어떤 촬영 한 것을 보니까 사람이 범죄해서 자동차 강도 죄를 짓고 자동차를 타고 도망치지 않습니까? 그러면 헬리콥터가 3분내로 떠가지고 그걸 추적하는 거예요. 밤인데도 딱 비추는데 길이 없어요. 숨을 수가 없어요. 지상하고 연락을 하고 경찰하고 연락을 하는데 피할 길이 없는 거예요. 결국 고속도로로 밑으로 지하로 다 다니다가 결국은 붙잡히는 거예요. 자녀가 부모에게 범죄하면 속히 부모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은혜요. 우리 인간이 범죄하여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서 은혜 받는 것이 사는 길이지 범죄하여 밖으로 나가는 삶은 고통스러운 삶이 되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 잎은 우리에게 완전한 부끄러움을 가리우는 능력이 없습니다. 무화과는 인간의 방법입니다. 인간의 노력입니다. 권력의 잎입니다. 물질의 잎입니다. 이 세상의 것으로 인간의 지식이나 어떤 종교도 무화과나무 잎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무화과나무 잎에다 하나를 더 할는지 몰라도 결국 말라지고 부서지는 것만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우리 인간의 능력은 오늘날까지 별의별 옷으로 우리의 부끄러움을 가리우려고 했지만 우리의 부끄러움을 가리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때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비록 죄인이지만 하나님 앞에 범죄한 아담 이브 불순종한 사람이지만, 무화과나무 밑에 숨어 있고 무화과 잎으로 옷을 가리우는 이 불쌍한, 아무것도 움직이지 못하고 숨어 지내는 이 아담과 이브를 부르시고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너 왜 거기 숨어 있느냐? 하시고 짐승을 잡아 가지고 하나님께서 최초로 또 가죽옷을 만들어서 아담과 이브를 입혀주신 이 놀라운 사랑이 여기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을 벌하시는 것보다는 멸하시는 것보다는 하나님께서 이 사랑의 옷을 다시 입혀 주셔서 에덴동산을 떠나서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 주어진 사명을 다하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옷은 앞으로 온 인류의 구세주로 인류의 의복이 되셔서 온 인류의 가죽옷이 되셔서 우리를 모든 죄의 저주와 부끄러움에서 가리워 주실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주제는 구원이요 성경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아담 이브에게 가죽옷이 되어 주시듯이 오늘 우리의 가죽옷이 되어 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했습니다. 너희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양털같이 희게 하리라고 주님이 말씀해 주셨어요. 어떠한 죄인도 사마리아 여인도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도 이 세상에 흉악한 강도도 주님이 주신 가죽옷으로 구원을 받은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가죽옷은 하나님의 사랑의 옷입니다. 은혜의 옷입니다. 긍휼의 옷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옷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행위로는 아무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죄인입니다. 백 가지를 잘 해도 죄를 지으면 죄의 능력이 우리를 다 침몰시키는 것입니다.

  나는 요사이 신문을 보면서 조금 안타까운 것은 김운용 씨라고 IOC 세계적인 참 존경받는 분이 죄 하나 걸리니까 이 분이 한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올림픽, 월드컵유치하고 우리 국가의 국위를 위해서 국가의 유익을 위해서 그 분이 끼친 공로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지만 죄를 지으니 모든 영광이 날아가고 떨어져 나가고 죄의 형벌만 남는 거예요.

  이러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거예요. 이러한 우리 인류를 위하여 하나님은 사람과 같이 열 번 잘 했다가도 한 번 못하면 버리는 인간과 같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열 가지를 잘못하다가 하나만 잘 해도 불쌍히 여겨주시고 긍휼을 베풀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 믿으면 잘 해야 합니다. 주일도 잘 지키고 기도생활도 잘 하고 깨끗한 삶을 살고 거룩하게 살고 이웃을 사랑하고 선한 일을 하고 악한 일을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나님 앞에 설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완전할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는 완전한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한 인간은 또 만들 수도 없습니다. 성경에 있는 대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완전 하라고 말한다면 한국에 있는 4천 7백만 가운데 구원받을 사람 한 명도 없습니다. 이 세상의 종교도 다 무화과나무 잎으로 우리를 가리우게 하는 것만은 다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무화과의 공로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시는 가죽옷으로 은혜를 받아 구원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에 따라 주일을 다 지키지 못하고 십일조생활 다 하지 못하고 기도생활 완전하게 하지 못하고 전도하지 못하고 빛과 소금이 다 못된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가죽옷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고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미국에 있는 어떤 노인 두 분이 LA에 있는 분인데 병원에서 좀 빨리 와서 수혈을 해 달라고 해서 가서 수혈을 했는데 보니까 옆에 청년 두 사람이 누워 있어요. 그래서 그 분 위해서 수혈을 하는데 미국은 우리나라도 지금 서서히 그렇게 됩니다마는 희귀한 혈액형이 있습니다. A형이나 O형이나 AB형이나 이런 형을 떠나서 이건 아주 특별한 사람만이 서로 이렇게 도와주지 않으면 생명의 위험을 당할 때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의 피가 서로 희귀한 사람끼리 오늘 서로 맞아 가지고 이 노인 두 분이 와서 수혈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수혈을 해 주면서 물었어요 저 청년들이 누구냐고, 그러니까 오늘 어버이날에 두 형제가 싸움이 붙어서 서로 칼로 찔러 가지고 저렇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노인이 생각하기를 야 내 이 아까운 피를 저렇게 불효막측한 놈 어버이날에 부모 있는데서 싸움질이나 하는 저런 자식들 위해서 내가 이 아까운 피를 주는 것, 너무 아까워서 안 주려고 하는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그런데 성령께서 마음에 그렇게 움직이시는 거예요. 얘야 피를 주는 것이 좋다 너는 더 나쁜 놈이지 않냐 내가 너를 위해 피흘려 주고 내가 너 위해 생명을 버려 준 것 너는 완전하냐? 너도 내가 피 빼 줄 때 아깝다고 생각하고 안 주면 너도 죽는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남에게 줄 때 피를 빼 주든 물질을 주든 어떤 사랑을 줄 때라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은혜주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남을 향하여 마음 문을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자격이 있어서 여기까지 산 사람이 몇 명 있습니까?

여러분 완전해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우리 교인들 가운데 돈 벌고 괜찮게 사는 여러분, 여러분이 정말 경제학적으로 경영학적으로 여러분이 모든 물질 관리를 완벽하게 잘 해서 여기까지 오셨어요? 건강하신 여러분, 의학적으로 만점이어서 여기까지 오셨어요? 행복하신 분, 여러분이 이 세상에 최고의 미인이고 가장 완전한 분이어서 행복하십니까? 우리는 들어가 보면 다 하나님의 은혜예요. 무화과 옷 입었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가죽옷 덕택으로 우리가 여기까지 온 거예요.
 
  저는 명성교회를 어느 것 하나도 내 공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시골에서 시골가운데도 왕 시골에서 웃기는 사람이에요. 비천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도 안 알아주었어요. 주님의 은혜에요. 당신의 은혜예요. 늘 도우시는, 한 번만이 아니에요. 가죽옷을, 영원한 가죽옷으로 영원히 순간순간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옷 덕택에 내가 여기 와 있는 거예요. ♬주의 은혜 크시어라 나를 항상 돌아보고 빛난 영광 주시는 주 나와 함께 함께 가시네♬ 순간 순간 위기와 어려움과 환난 중에 모두가
다 은혜예요. 그 많고 많은 일 주님이 주신 가죽옷으로 내가 여기까지 온 줄로 믿습니다.
 
  가죽옷은 능력 있는 무기예요. 이미 이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가 있는 곳으로 가죽옷을 입지 않고 무화과 옷을 입고 갔다가는 온 몸이 다 상할 수밖에 없어요.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고와 재난이 많고 환난이 많고 천재지변이 많은 땅에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수가 없습니다. 가죽은 참 큰 무기입니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저도 싸움을 좀 했는데요 제일 큰 무기가 뭔가 하면 가죽 장갑 끼고 나오면 그때는 꼼짝을 못했어요. 지금 젊은 사람은 잘 몰라요. 요사이는 가죽장갑이 너무 많지요. 그러나 옛날에는 가죽장갑을 몇 사람 못 꼈어요. 그래서 주머니에 가죽장갑 꺼내서 끼고 탁탁 이러면 그 다음부터는 기가 다 죽는 거예요. 싸움이 아예 되지를 않아요. 왜? 가죽장갑 낀 사람하고 어떻게 이겨요? 그 때는 가죽장갑뿐만 아니에요. 가죽잠바가 대단한 능력이었어요. 한 군에도 많지를 않았어요. 경찰서 수사과장이나 형사과장 정도 되어야 가죽잠바 뜨면 다 모두 설설설설 하던 때예요. 가죽장갑, 가죽옷 얼마나 귀한 걸 우리가 알아야 해요. 영적으로 이걸 알아야 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죽옷만이 우리를 보호해 줄 줄로 믿습니다. 우리를 해치는 세력이 높거나 낮거나 잘살거나 못살거나 얼마나 많은데요. 가시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내 생명을 해치는 세력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보호를 받으려고 하면 주님이 주시는 가죽옷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가죽옷이어야 합니다. 이 가죽옷은 생명의 옷입니다. 이 옷을 입는 사람은 영원히 삽니다. 죽을 자도, 죗값으로 어떤 경우의 죽을 자도 가죽옷으로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이 옷은 거룩한 옷입니다. 사람이 만든 옷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주신 옷이에요. 교회에 왜 나옵니까? 옷 입으려고 나오는 거예요. 거룩하지 못한 자들이 주님 앞에 거룩한 옷을 입으려고 나오는 거예요. 로마서 13장 14절에 보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롤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27절에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고 말했습니다. 교인은 예수로 옷입고 사는 거예요. 하늘 나라 갈 때 주님이 주신 세마포옷 거룩한 옷을 입고 하늘 나라 가는 거예요. 인간이 만든 이 무화과 잎으로는 갈 수 없어요. 내 행위의 옷으로는 아무도 갈 수 없어요. 하나님이 주신 십자가의 보혈의 옷으로 우리가 천국까지 갈 줄로 믿습니다.
 
  이 옷은 능력의 옷이에요. 어떤 원수마귀도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교인인지 교인이 아닌지를 제일 잘 아는 것이 마귀예요. 예수를 믿으면 예수의 옷이 있는 거예요. 예수의 의복이 우리를 두르는 거예요. 저는 어려서부터 예수를 믿는 사람이 없는 친척집에나 다녀보면 무당 데려다가 굿하는 집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 집안이 내 고모 이모가 내가 교회에 다니는 줄 몰랐어요. 그래도 무당 데려다가 굿 해보면 내가 예수 믿는 걸 무당이 찾아내는 거예요. 아무래도 신이 안 내리는 거예요. 팔짝팔짝 뛰어도 아무리 무당이 굿을 하고 춤을 추어도 안 내리는 거예요. 내가 주일학생인데도. 그래서 아이고 여기에 교인이 있지 않느냐고 우리 이모보고 그래요 그러면 이모가 아이고 우리 동네에는 교회가 없다고 여기 예수 믿는 사람 한 집도 없다고 이상하데요. 아무리 춤을 추어도 안 내리는 거예요. 저는 이걸 수 십 번 경험했어요. 그래서 내가 나중에 그 집에서 이모 댁에서 쫓겨 나오면서 느낀 것이 야 귀신이 그렇게 힘이 있다는데 나를 왜 그렇게 겁내냐 조그만 나를 어떻게 귀신이 저렇게 겁낼 수 있냐? 나중에 학교 다닐 때 가정교사를 해 보면 그 집에서 무당 데려다가 굿해보면 귀신이 안 내리는 거예요. 결국에는 한 시간 넘도록 고생하다가 날 찾아오는 거예요. 내가 부흥회를 해서 어느 동네로 들어가면 그 동네에 있는 귀신이 밤에 내게 나타나는 거예요. 내가 천년 만년 여기 있었는데 너 때문에 오늘 내가 망하게 되었다고 왜 여기 왔냐고 이런 일이 너무 많은 거예요. 내가 뭐예요? 아무도 모르는데 귀신만 날 아는 거예요. 귀신같이 아는 거예요. 왜 그래요? 하나님, 그리스도로 옷 입었기 때문에 예수 믿으면 얼굴이 달라요 뭐가 다릅니까 영적으로 주님이 주신 가죽옷을 십자가의 보혈의 옷을 입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주신 옷으로 승리하는 거예요. 악한 마귀가 이 세상에 우리에게 엄청난 수만가지 재앙으로 우리를 넘어뜨리려 할지라도 그리스도가 우리를 지켜주는 한 우리는 그의 옷을 벗어버리지 아니하는 한 우리를 해칠 자가 없는 줄로 믿습니다.
 
  의복을 입는 것은 네 가지의 목적이 있다고 합니다. 의복은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입는다고 합니다. 의복은 명예와 축복의 표시라는 말도 있습니다. 의복은 추위와 더위에서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서 입는다고 합니다. 의복은 부끄러움을 가리우기 위해서 입는다는 이런 정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이 가진 옷은 잠간의 우리 몸은 보호할지 몰라도 우리의 생명과 우리의 건강과 내 영혼과 자손만대 내 자자손손 나를 영원히 지켜줄 의복은 못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복은 자자손손 나와 내 집을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주신 의복은 우리의 명예와 축복과 영광을 줍니다. 존귀와 영광으로 관을 씌우시니 내 잔이 넘치게 하십니다. 예수 믿어 영광과 존귀를 못 얻는 나라가 한 나라도 없습니다. 예수 믿어서 영광을 누리지 못하는 개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옷을 벗어버리고 짓밟지 않는 한 주님의 옷은 우리에게 영광을 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천안에 우리교회가 개척한 교회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거기 가서 헌당 예배를 드렸는데 그 사모님이 저에게 그래요. 목사님, 목사님은 저를 모르시지요. 목사님이 옛날에 월전교회 제가 63년도에 시골에 월전교회라는 조그만 교회를 전도사로 시작했어요. 목사님 거기 유치원에 우리 삼 형제가 주일학교를 다녔는데 우리 삼 형제가 다 목사 사모님이 되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 은혜예요. 그건 내 은혜가 아니지요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인데 그 삼 형제가 시골에서 귀한 목사님 사모님이 되셨어요. 존귀와 영광으로 그 가정에 복을 내려주신 거예요. 우리 마을에 수많은 목회자들이 나왔어요. 목사 사모님들이 나왔어요. 그 분들이 다 너무 가난한 집 자녀들이고 부모들이 낳기만 하고 책임을 안 지고 그냥 버려진 아이들이 갈 데 없어서 교회에 나왔어요. 그래서 교회에 나가보면 애들이 거의 위의 옷만 입고 아래는 다 그냥 나와 앉아 있었어요. 그런 아이들이 모두 영광스럽게 되었어요.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천하고 사람 같지 않고 쓸모 없고 백해무익한 존재가 마흔 살 생일에 교회에 와서 그리스도로 옷 입고는 이 사람의 삶이 변하는 거예요. 이 분을 영화롭게 한 분은 지식도 아니에요. 학력이 아니에요. 그 아버지가 그렇게 해 준 게 아니에요. 이 분을 귀하게 만들어 주신 것은 그리스도의 가죽옷이에요. 보혈의 옷이에요. 주님이 주시는 옷이에요. 주님이 주시는 옷은 우리를 어떤 곳에서도 영원히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세상 끝날 까지 같이 하여 주셔서 우리
는 이 세상에 환난이 와도 어떤 재난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에요. 부모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 변함 없는 사랑이 아니에요? 옛말에도 부모의 사랑은 밥과 같고 아내의 사랑은 꿀과 같다고 했어요. 꿀은 달 때만 달지요 그러나 부모님의 사랑은 밥과 같아요. 평생 먹어도 싫증나지 않고 끝까지 변함이 없는 사랑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 주님의 사랑인줄로 믿습니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어요. 로마서 10장에 나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고. 기독교는 많은 행위를 가르칩니다. 그러나 행위는 역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가죽옷은 아닙니다. 열심히 구원받았기 때문에 최선을 다 할 뿐이지 내가 이 행한 것 가지고 천국 가는 것도 아니고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그건 교회를 교만하게 할 수 있어요. 율법주의로 빠질 수 있어요. 예수님이 오셨을 때 바리세인들 자기 행한 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서지 않아요. 교회는 오직 그저 조금 부족한 듯하고 나와서 은혜 받고 주의 옷을 갈아입는 성도가 교회의 귀중한 성도가 될 줄로 믿습니다.
 
  시골에서 과일을 길러보면 뭐든지 너무 익으면 안돼요. 약간 덜 익은 듯 해야 맛이 있지 예를 들어 수박이 너무 익으면 물러앉아 버려요. 그래서 여러분은 너무 익은 것 사지 말고 약간 덜 익은 것이 좋아요. 뭐든지 그래요. 어떤 것이든지 하여튼 모든 과일이 너무 익으면 안돼요. 사람이 교회가 너무 완전하다 그건 오히려 문제 있는 거예요. 교인이 너무 완전하다 그러면 문제가 있는 거예요. 명성교회와 제가 하나님 앞에 약간 덜 익은 듯 하면서 새 해에 주여 우리에게 가죽옷을 주시옵소서 가죽옷을
입으면서 2004년 오늘 구정을 맞이한 여러분의 모든 가정 위에 주님의 옷자락을 덮으시고 주의 사랑의 옷, 은혜의 옷, 긍휼의 옷, 생명의 옷, 능력의 옷으로 금년 일년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주의 보호를 받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이 주신 큰 은혜에 감사하며 이 예배를 주님께 바치옵니다. 살아 계신 만 군의 하나님, 우리가 주의 전에 나올 자격이 없지만 주님이 주신 가죽옷을 입고 나왔습니다. 이 보혈의 은혜의 옷을 입고 주님을 섬기며 이 세상을 살 때 어떤 악의 세력이 어떤 환난 시험 재난 사고와 불행한 일이 우리를 해치지 못하도록 어떤 대적이 우리를 해치지 못하도록 주의 가죽옷으로 우리를 안전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