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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 예배자가 받는 축복 (요 4: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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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참 예배자가 받는 축복
보문 : 요한복음 4:20~24

성경에 나오는 실화입니다마는.. 한 청년이 주일 예배시간에 3층 창문틀에 걸터 앉았다가 그만.. 떨어져 죽는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사도행전 20:7-11).
다행히 사고 직후 사도 바울은 그 청년 위에 엎드려 기도해 회생(回生)하게 되었는데 이 사건을 놓고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 어떻게 예배 시간에 창문틀엘 걸터앉았는가?
  그렇게 창문틀에 걸터앉았다는 것 자체가 좋지 않았다. 자리를 잘못 잡은 것이다.
- 아니다. 꼭 그렇게만은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 많으면 창문틀에도 걸터앉을 수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가 떨어져 죽은 것은 단지... 그가 앉은 위치가 3층이고 창문틀임에 불구하고 그 위험한 위치에서 졸았기 때문에 떨어져 죽은 것이다. 그러기에 그것은 그의 부주의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과 예배 자세를 놓고 이런 저런 의견을 내 놓는데
성경은 예배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23절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참 중요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람을 찾으시되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고!
특히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찾으시는 예배자... 기뻐하시는 예배자가 있고...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찾지 않는 예배자..
보지도 않으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싫어하시는 예배자도 있다는 점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이사야 1:11-1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를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말라기 1:8-10)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어떤 때는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말씀하시면서도.. 또 어떤 때는 "받지 아니하겠다".. "기뻐하지 아니한다" "견디지도 못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예배, 받으시는 예배란 어떠한 예배인 것입니까?

오늘 우리의 관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배를 한번 드려도...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려야지!
예배는 무수히 드리는데.. 그 예배가 하나님이 받지도 않고 기뻐하지도 않는 예배가 된다면!
그 예배의 실패는 결국 인생의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예배는 그점에서 있어서 아주 중요한 교훈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은 둘 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사람의 예배는 받으시고 한 사람의 예배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예배 이후 그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려 예배에 성공한 사람은 인생에 성공하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리지 못한 사람은 결국!
인생에도 성공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예배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인가를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22절입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알지도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믿지도 못하는 것을 예배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예배하는 그 대상이 신(神)인지 신(神)이 아닌지도 모르면서도 예배합니다.
복(福)을 달라고 거기다 비는 것입니다. 그래서....
돼지 머리를 놓고 그 앞에 절하기도 하고... 큰 나무나 큰 돌 앞에서 빌기도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신(神)의 이름을 외워가며 밤새도록 비는 사람도 있습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그런데 주님의 말씀은... 그런 예배는... 백날 드려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지 말고!!... 아는 것을 예배하라!!!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23-24절입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우리는 이 예수님의 말씀에서 아주 중요한 개념 두 가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첫째는 참으로 예배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신령과 진정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라는 개념을 공동번역성경은 "진실하게"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이 말은 예배를 드리되 참되게 드리고.. 진실하게 드려야 예배가 예배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중요한 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참예배도 있고.. 참예배 아닌 것도 있으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도 있고.. 신령과 진정이 아닌 예배도 있기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어떻게 예배드리는 것이 참예배일 뿐만 아니라 영적예배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로마서 12:1)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시간을 드립니다. 그리고 예물을 드립니다.
그리고 더 드리게 되는 경우 재산도 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드리게 되는 것은.... 자신의 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최종적으로 드리게 되는 그 자신의 몸! 그 소중한 자기 몸을 드릴 수 있는!
그러한 자세로... 또 필요하면 그 몸도 아낌없이 바치는 예배가 될 때에! 비로서 그 예배가!
예배가 되는 것이며 영적 예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주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로마서 12:1)

참된 예배가 바로 이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몸까지 진실로 바쳐가며 예배드리는데 신경쓰기 보다
어디서 예배드리느냐 어느 산에서 예배드리느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본문 20절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이것은 전통이었습니다.

전통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은 좋습니다.
그러나! 전통 가운데 생명력이 있는 전통은 계속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과감하게 뜯어 고치고 개혁해야 하는데...
그들은 이러한 면에 실패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전통을 중요시 여긴 것도 어느 정도는 있었지만
사람들의 눈!! 그렇게 했을 때 자기에게 돌아올 불이익!!... 이런 것에 계산이 너무 빨라!!
아무런 힘도 없고 생명력이 없는 것을 붙들고 그냥 그렇게 살아 온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부분을 아주 정확하게 짚어 주셨습니다. 21절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그들은 예배 장소에 깊이 얽매여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비본질것인 것에 깊이 얽매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에발(Ebal)산이냐 그리심(Gerizim)산이냐!....
사실 이런 것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데도!!...
그들은 아직도.. 거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즈음!... 이 여자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점점 눈이 떠지게 된 것입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한복음 4:22-24) 

우리는 예수님과 이 여인이 예배라고 하는 주제를 놓고 대화하는 그 내용 속에서 처음에 말씀한 내용이 아주 가슴 속에 와 닿는데... 그것은..
하나님은...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는 점입니다.

저는 설교 준비를 하면서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 이 말씀을 하시던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는 아마 예배자들로 넘쳐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예배자들이 다 참예배자들이었을 것인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누가 참 예배자들인가?
  하나님은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만!! 찾으시는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스로 한번 자문자답(自問自答)해 보시기 바랍니다.

-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참예배자인가?

굉장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예배자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예배하는 대상을 아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예배하는 자가 예배하는 대상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예배한다는 것은 참예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예배자는 자신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과거에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하셨으며 현재 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으며, 그리고 미래엔 무엇을 하실 것인지를 바르게 알아야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달라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참예배자란 이렇게 자신의 예배 대상인 하나님을 분명히 아는 사람만이 될 수 있으며!!
또 그런 사람만이 하나님께 진실된 감사와 찬양의 예배를 드릴 수 있지!!
그렇지 않고서는 그 무수한 예배가 결국은 허공만 치는 예배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뜻하는 원어인 히브리어 '아바드'와 '샤하'는 '섬긴다, 부복한다'는 뜻이고 헬라어 '프로스퀴네오' '라트류오'는 '경배한다' '받들어 섬긴다'는 뜻으로서 이것들은 종종 종(從)들이 주인(主人)을 섬길 때 사용되는 단어들이었습니다.

왜 이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예배의 정확한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 말씀드리는 것인데 이러한 단어들이 생길 당시의 종들의 삶을 보면... 주인을 섬길 때는 무릎을 꿇고 주인의 발에 입을 맞춤으로 섬겼으며 그들이 그렇게 주인의 발에 키스를 하고 섬기는 순간 그들 자신은 없어져버렸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들의 자존심이나 인격... 그런 것은 이미 다 버렸고 초월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인의 발에 입맞춤도 할 수 있었고.. 그렇게 섬길 수 있었는데...
그들이 그렇게 주인을 섬길 때에 영광 받는 사람은 오직 그 종의 주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종들은 주인들을 위하여 최상의 서비스를 하며 살았는데 이와같은 의미를 같이 갖고있는 단어가... 바로!! 예배라고 하는 '워쉽'(Worship)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라고 하는 말은... 가장 가치(Worth)있는 것을 그분에게 드리는 것이 예배로서 인간이 하나님에게 최고로 높은 가치를 올려 드릴 때!!!
그리고 그때 인간은 없어지고 하나님만 드러나게 될 때!!
그때 그 예배가 참 예배가 된다는 것이며... 예배자는 참예배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또 참예배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자가 신령으로 예배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영이시기 때문에 그러한데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영(靈)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한복음 4:24)

하나님은 영(靈)이신데... 예배하는 자가 육(肉)으로 예배하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안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받지도 않으실 뿐 아니라!!.. 받으실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은 靈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신령으로 예배해야한다고 하는 이 신령으로 예배한다고 하는 그 의미에 대해서 좀더 살펴 보십시다.

사람의 세계에는 육(肉)의 세계가 있고 영(靈)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靈)의 세계란 늘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는 세계로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 때는 영(靈) 세계가 기쁘지만 불순종하며 살 때는 영(靈)의 세계가 기쁘지 않습니다. 슬프고 괴롭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영(靈)의 세계는 죄의 문제에 대해서만은 아주 민감한 세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를 짓게 되면 그 상태로는 하나님 앞에 참예배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다만 참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 먼저 자신의 죄와 허물을 참회하고 이어 하나님께서 그의 크신 사랑과 자비하심으로 용서를 베풀어 주시면 그후에야!! 마음에 평안을 얻게되어.. 기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이!!..
영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때 그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며, 새힘을 얻으며, 희망을 가지게 되는데 이러한 모든 일들이 영적인 일들이기에... 예배는 신령(神靈)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회자(膾炙)되는 정치적인 용어로 말한다면... 예배도 하나님과 코드가 맞아야 하는데 하나님이 신령한 분이시니 우리도 신령으로 나아가야만 하나님과 코드가 맞고 신령한 예배를 드릴 때 만이!! 신령하신 하나님을 만나 재충전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진정으로 예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진정(眞情)이란 말은 "진리(眞理), 진실(眞實)"이라는 말로서..
공동번역에서는 "참되게"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이 말도 조금 전에 드린 말씀과 같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은 진리이고 진실이시니...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에게 나아갈 때는 반드시!!... 코드가 맞아야 하므로!!
진리(眞理)로 나아가고 진실(眞實)로 나아가야만 그 예배가 참예배가 되고!!...
받으실만한 예배, 기뻐하시는 예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진실이 아닌 비진실 가운데 예배드리고, 진리가 아닌 비진리 가운데 예배를 드린다면.. 그 예배가 어찌 참예배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를 바르게 드리려면... 예배드리는 자가 먼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도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마는 곰곰이 이 말씀 앞에서 생각해 볼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나는 매주일...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가?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는가?
그래서 내 마음이 기쁘고... 예배를 통해서 새 힘을 얻으며...
죄의 용서함도 받으며.. 살아갈 방향도 제시받고.. 그래서 힘차게 교회 문을 나서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질문을 드리는가 하면...
바로 이것이... 참예배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은 맥락에서 볼 때 구약시대의 솔로몬이 드린 그의 일천번제는 참예배이며...
그때 그는 헛예배자가 아니라 참예배자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열왕기상 3:3-15).

그가 행한 일천번이라는 횟수도 대단한 횟수이거니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때 그의 마음은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과 진실로 경외하는 마음으로 가득찬 가운데 예배드렸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왕이된 신분으로 그 많은 국사(國事)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천번제를 강행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가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을 지어 헌당(獻堂)한 것이나... 일천번제를 드린 것은...
쇼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용어로 본다면... 신령한 것이었으며 진정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는... 자신의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게됩니다.
그래서 지혜(智慧)도 선물 받고... 부(富)와 장수(長壽)는 덤으로 받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 가운데는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나에게 축복해주시지 않는가?
나도 매주일 예배에 빠지지 않고 출석하고... 봉사도 열심히 하는데 복을 안주시는가?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혹 있으시다면 오늘 말씀을 깊이 묵상해보시고 그동안의 자신의 예배를 한번 반성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동안의 나의 예배는 정말 신령과 진정의 예배였는가?...
하나님은 그동안의 나의 예배를 기뻐 받으셨겠는가?...
나는 그동안 얼마나 예배에 지극 정성을 쏟았는가?...

한 평생을 절에 다니다가 예수님을 믿게 된... 한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과거에 유별나게 믿으셨던 분이셨습니다.
매일 새벽 불공을 드리셨는데 새벽 불공 전에는 매일 목욕 재개하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부터는 곧바로 새벽 기도부터 하기 시작하셨는데..
과거와 마찬가지로 매일 새벽엔 반드시 목욕을 하고 나서야 새벽기도를 나오시는 것입니다.
자 이분이 그 다음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어떤 축복을 받았겠습니까?

모두다 새벽기도나 주일예배 전에는 반드시! 목욕하고 나와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 알아들으셨겠지만... 나의 예배는.. 나의 예배자세는.. 얼마나 정성이 담겨 있는가?
그리고 신령과 진정의 예배인가?...를 다시금 재확인해 보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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