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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길 (시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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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길
성경본문 : 시편 1편 1~6절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길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 1편 1~6절) 

<목회기도>
 
세상과 시간을 초월하여 계시는 하나님!
세상과 시간에 얽매여 살던 저희들이 모였습니다.
허물과 죄를 뉘우치며 부끄러운 마음으로 앉아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옵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가 앉은 이 자리가
- 타지 않는 떨기나무 앞에서 소명을 받으며 신을 벗었던
  모세의 거룩한 장소이기를 원합니다.
-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하며
  야곱이 하나님을 만났던 장소이기를 원합니다.
-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하며  자신을 드렸던
  이사야의 헌신의 장소이기를 원합니다.
-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눈물로 침상을 띄웠던
  다윗의 회개의 장소이기를 원합니다.
능력의 하나님, 연약하여 흔들리며 사는 우리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영적으로, 육적으로, 경제적으로 힘들고 지쳐 있는 성도들
걷기도 하며 뛰기도 하는 기쁨을 주시옵소서.
치유와 회복의 기적을 체험하며 간증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이 복된 시간 함께 있지 못한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군대에 나가 있는 젊은이들, 객지에, 외국에 나가 사는 성도들
병상의 환자들… 하나님 저들에게도 평안의 복을 허락하여 주시오며
은총의 날개 아래 품어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성령께서 함께 하여 주실 줄로 믿고
부활과 영생의 길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2월 1일입니다.
2월엔 웃을 일이 많기 바랍니다.
옆의 분들과 인사합니다. [2월엔, 웃고 사십시다]
2월의 삶이 복 있는 삶, 승리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월에는 좋은 말을 하고 사십시다.
저는 지난 주에 중국에 갔었습니다.
집회를 인도하러 간 것이 아니었기에
분홍색 셔츠를 입고, 선그라스도 끼고, 모자도 쓰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우리 팀을 안내하던 두 아가씨가 저를 보고 소근거리면서 웃는 것이었습니다.
중국 말도 모르는 제 느낌에도 두 아가씨가 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쳐다보고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냐"고 제스처를 했습니다.
그러자 한 아가씨가 제게 다가오더니 "You 예쁘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옆에 있던 제 아내는 그 말을 듣더니 배꼽을 잡고 웃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요.
지금까지도 그 생각만 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여러분, 옆의 분에게 "You 예쁘다"하고 인사해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아름다운 말(beautiful word)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른 말(right word)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한 말(good word)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를 변화시키고 죽은 자를 살리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본 훼퍼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living word)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2000여년 전의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으로 주신 생명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깨닫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저는 찬양대에게 시편 1편 말씀에 곡을 붙인 [복 있는 사람은]이라는 곡을 계속 찬양하게 하고 시편 1편 말씀을 본문으로 정하여 다섯 번째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송구영신예배 때부터 오늘까지 빠지지 않고 계속해서 예배를 드린 분들은 시편 1편에 선언된 복(福)있는 삶이 무엇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았기 때문에 복(福)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복(福)있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의지적인 투쟁을 하며
복(福)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기쁨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고, 읽으려 할 뿐 아니라
그 말씀대로 삶의 현장에 실천하며 살려 노력하는 사람,
악인과 죄인과 오만한 사람들 틈에 살지만
그들과 연합하여 하나되지 않고
그 환경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형통함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이런 복 있는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
 
왜 복 있는 삶,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이 되어야 합니까?
그 답이 6절에 나와 있습니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1:6)
여기 "대저"라는 말은
'대체로 보아서(generally)' 또는 '무릇'이라는 부사(adverb)입니다.
의인의 길은 어떤 길일까? 의인은 어떤 사람일까?
 
사실 어떤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는 의롭지 못합니다.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시143:2)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 곳곳에는 사람들을 의롭다고 표현했습니다.
예를 들어, 다윗은 이런 저런 허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 신실 하려고 노력했고
심지어 자신을 해하려 하는 사람에게까지 선을 베푼 
다윗을 의롭다고 하였습니다.(삼상24:17)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려고 하는 사람을 의인이라 하시고
- 복을 주셨고(시 5:12)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저를 호위하시리이다" (시5:12)
- 붙들어 주셨고(시 37:17)
  "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도다" (시37:17)
- 번성케 해 주셨고(시 92:12)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하리로다"(시92:12)
- 영원히 기억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시 112:6)
  "저가 영영히 요동치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념하게 되리로다"(시112:6)
 
절대적인 의미에서 이 세상에 의인은 없습니다.
아브라함 같은 사람도 의롭지 못했습니다.
그에게도 인간적인 부끄러운 면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4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니까
그로 인해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롬4:1~3)
그러므로 성경에서 가르치는 의인은 완전한 사람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생활 속에서 주야로 묵상하는
다시 말해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 애쓰는 사람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말씀의 냇가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의 길은 인정하신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보살펴 주신다>는 말입니다.
"For the Lord watches over the way of the righteous,~"(NIV)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 의로운 길을 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버려 두시지 않고 동행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길,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는 길,
하나님께서 살펴 주시는 길을 가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여러분, 선한 싸움을 싸우는 의인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 말씀을 즐겁게 지킬 수 있어야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주일에 교회에 오는 것도 즐거워 해야 합니다.
한주간의 시작을 먼저 하나님께 예배 드림으로 시작할 수 있음에
기쁘게 감사히 여기고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매 주일 다가오는 것이 귀찮고, 불안하고 지겹다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쁘게 여길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런 사람을 돌보아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매 주일 교회에 나와 예배 드리는 것을
감사와 기쁨으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영원히 사는 복을 누린다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시기 바랍니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것
 
행복은 물질이 있다고, 많다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권력과 부유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지만
그런 것은 시편 1편 4절 말씀처럼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형통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형통은 자기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의 형통은 하늘을 향해 가는 길이지만
세상 사람들의 형통은 지옥을 향해 가는 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형통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둔 것이지만
세상 사람의 형통은 자기 욕심에 기초를 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사는 것이 어렵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아무에게도 말 할 수 없는 고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그 어려운 세상의 삶을
악인의 조언과, 죄인의 길과, 오만한 자의 자리에서 해결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 간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하나님을 등지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행복은 유지하는 것입니다.
한 순간에 믿음을 저버리지 말고 세상적인 계산과 비교로 판단치 말고
세상 적인 것 때문에 하나님을 등지는 어리석음이 없기를 바랍니다.
 
어떤 마음을 가졌느냐,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이 세상이 다르게 보입니다.
 
독일의 우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임금님이 신하 두 사람을 불러,
한 사람에게는 나라의 전역을 다니면서
잡초가 얼마나 있는 지 조사하라고 했고,
다른 사람에게는 꽃의 종류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1년이 지난 후에 잡초의 종류를 연구했던 신하는
  "우리나라는 온통 잡초나라입니다.
  온 나라가 잡초로 뒤덮여 있습니다"라고 보고했고,
꽃을 찾아 나섰던 신하는
  "우리나라는 온 국토가 수많은 꽃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꽃동산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잡초와 살고 있습니까, 꽃과 살고 있습니까?
사람이 어떤 마음과 눈으로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주변 환경에 대한 인식도 달라집니다.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우리가 의인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까?
왜 하나님이 보시는 길을 가야 합니까?
답은 간단합니다.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이기 때문입니다.
 
악인의 길은 망하는 길이기 때문에…
힘들어도, 눈물나도, 손해 보아도, 바보라 손가락질 받아도…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악인의 길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비바람의 고통도 있고, 가뭄의 어려움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결국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도 고통이 있고 어려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라시는 대로 가도 풍랑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길인데도 불구하고 고통이 닥친다면
그 고통에는 섭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말입니다.
 
기독교 최초의 역사 철학서인 [신국(神國)]을 쓴 아우구스티누스는
[고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고통은 동일하나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동일하지 않다.
    악한 사람은 똑같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을 비방하고 모독하지만,
    선한 사람은 그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으며 찬양한다.
    모든 사람이 무슨 고통을 당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당하느냐가 문제다.
    똑같은 미풍이 불지만 오물은 더러운 냄새를 풍기고
    거룩한 기름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긴다.]
 
악한 사람은 똑같은 고통을 당해도 하나님을 비방하고 모독합니다.
그러나 뿌리를 바르게 내린 사람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거북이나 자라는 위험한 일에 처하면 발을 집어넣고 목을 쏙 집어넣습니다.
그럴 때의 거북이와 자라를 보면 꼭 솥뚜껑처럼 딱딱한 등만 보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위험해도
자라나 거북이가 앞으로 나가려면 목과 발을 내밀어야 합니다.
움츠린 상태에서는 앞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습니다.
목을 내놓고 다리를 내놓아야 걸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위험하다고 어렵다고… 움츠리고 감추어 버리면 안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오히려 우리의 목을 내놓아야 합니다.
목을 내놓고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고 부르짖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와 동행하실 것을 믿고 내 발을 움직여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렵다고 목을 집어 넣고 손발을 감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영원한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목을 내놓고
하나님께서 동행하심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 길을 인정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그 길이 복된 길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고 했습니다.
자기 모면을 위해 핑계대지 마십시오.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 나는 어떤 습관을 가지고 사는지?
- 하나님의 음성을 즐거워하는 지
- 귀에 듣기 거북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아멘을 하는지
-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의로운 길을 가려고 노력하는지 한번 살펴 보십시오.
만약 뿌리를 잘못 내렸다면 힘들어도 아파도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뽑아서 바른 곳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아깝지만 잘못된 곳에 박힌 것은 상처가 나도 뽑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냇가에 뿌리를 묻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습관 그대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가 없습니다.
 
 
육체가 건강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군대에 갑니다.
군대에 가기 전에 제 사무실에 기도 받기 위해 오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저는 군에 가는 청년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감사해라. 건강하게 잘 자라서 국방의 의무를 감당할 수 있는 부름을 받았으니
얼마나 감사하냐. 힘들고 어렵겠지만 기도하고 믿음 가지고 가라.
널 위해서 기도하마."라고 이야기하고 기도해 줍니다.
 
군대에 가서 제일 먼저 훈련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인사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철 들면서 배우는 것이 인사입니다. 그런데 왜 가르치고 배웁니까?
20년 넘게 인사하고 산 젊은이들에게 인사를 가르칩니다.
세상 인사는 군대에서 필요 없기 때문에 다시 가르치는 것입니다.
- 그 다음에 가르치는 것이 걷기 훈련입니다.
군대 말로 제식훈련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가는 법, 뒤로 가는 법, 옆으로 가는 법, 줄 맞춰 가는 법을 배웁니다.
20년 넘게 멀쩡하게 걸어다닌 젊은이들에게 걷는 법을 왜 가르칩니까?
세상에서 보통 사람으로 걷던 걸음자세는
군대에서 필요 없기 때문에 다시 가르치는 것입니다.
- 그리고 다음으로 가르치는 것이 숫자 세는 법을 가르칩니다.
저는 포병이었는데... 숫자 세는 법이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릅니다.
포병은 <하나, 둘, 삼, 넷, 오, 여섯, 칠, 팔, 아홉, 공>이라고 숫자를 말합니다.
세상에서 알고 세던 방식은 군대에서 쓸모 없기 때문에 다시 가르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살던 태도와 세상에서의 모든 습관은
교회 안에 들어와서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려면
바꿔야 합니다. 달라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교육 받고 새로워 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모두 지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베드로는 어부에 불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지적인 예루살렘 사람들이 베드로에게서 배워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배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다시 훈련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얻은 지식, 세상에서살던 태도 그대로 교회 안에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말씀으로, 성령으로, 주의 손에 이끌려서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도구로 쓰일 때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기를 다시 조명하고
갈 길을 다시 한번 수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를 통해서,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 영혼이 다시 한번 바로 서야 합니다.
 
힘이 들고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으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를 부르셔서 의인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길, 하나님께서 봐 주시는 길을 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형통한 삶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요1:12)
우리는 예수 믿음으로 망하지 않는 백성이 되었습니다.(요3:16)
우리는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빌3:20)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 답게, 복 있는 사람답게, 복 받은 사람답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의 길을 가야 합니다.
복된 길, 의인의 삶을 살아서 하나님께서 언제나 동행해 주시고
지켜주시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하는 말씀을 가슴 속에 새기며
힘이 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말씀대로 사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에서 세상 방법대로 욕심을 가지고 살았던 우리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길을 가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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