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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게 보여 주리라 - 렘 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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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네게 보여 주리라- 렘33;1~3

어떤 나이 많은 어부가 젊은 손자에게 노를 맡겼습니다. 젊은 손자는 두 손으로 노를 젓다가 한쪽 노에는 '기도하라', 그리고 다른 한 쪽 노에는 '일하라' 고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할아버지께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사람이 일만 열심히 하면 되지, 기도는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자 노인은 아무 소리 없이 '기도하라'고 쓰여진 노는 묶어두고 '일하라'고 쓰여진 노만 젓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배가 앞으로 나가지 않고 뱅글뱅글 원을 그리면서 제자리에서 돌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 때 노인이 말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일하면 전진이 없단다.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는 법이지. 또 일은 안하고 기도만 해도 안 된다. 그것 역시 아무 것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란다."

워싱턴이 미국독립전쟁을 하고 있을 당시 두 사람이 워싱턴에 관한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이번 전쟁에서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워싱턴이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확신을 가지게 됐습니까?”. “얼마 전 추운 겨울 어느 날, 워싱턴이 이끄는 부대 부근을 지나는데 숲 속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워싱턴이 눈 덮인 땅에 얼굴을 대고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워싱턴이 반드시 승리하리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부르짖고 기도한 사람마다 응답을 받았고 문제를 풀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예레미야 역시 하나님께 기도하여 문제를 해결 받은 선지자입니다. 그 당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걱정하지 말아라. 기도하면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시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언어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의 대상인 그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믿는 사람에게는 상식적인 일만 나타나고, 심리적으로 믿는 사람에게는 심리적 위로만 나타나고, 문화적으로 믿는 사람에게는 문화적인 만족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기적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본문은 영적인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것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우리에게 보여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주십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는 기도에 대해서 정의하기를,'기도란 하나님과 손을 잡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손을 잡아주시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하나님께서 동업하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또한 기도한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도 도중에 의심하고 포기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진실한 기도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주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 많이 역사해 주시고, 기도를 적게 하면 적게 역사 하십니다. 기도를 길게 하면 하나님의 역사도 길어지게 되지만, 기도를 짧게 하면 하나님의 역사도 짧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은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친히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이를 위해서 내가 어떤 수고를 해야할까 하며 염려합니다. 모든 일을 자기가 해야 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일을 행하는 여호와'라고 말씀합니다. 일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것이지, 나의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첫째 날에 사람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사람이 존재한 것도 아닙니다. 마지막 엿새째 날에 사람이 창조되었습니다. 창조의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일이지, 사람의 손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일에 대한 염려 근심이 나에게 유익이 될 수 없습니다. 걱정한다고 해서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먼저 필요한 것은 인생의 무거운 짐을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처리하시도록 내어 맡기고, 우리는 하나님 주시는 평안을 얻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해야할 이유입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복음성가 중에 '주만 바라볼찌라' 란 곡이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옳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십니다. 주만 바라보고 기도할 때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일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의 일은 적게 하더라도 기도의 분량이 많아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일하시며 증거를 보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보여주십니다

어떤 여행객이 영국 런던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장엄한 사원 안에 들어가자마자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본 사원 경비원이 즉시 경찰에 연락해 그를 연행했습니다. 그러나 판사의 배려로 풀려난 여행객이 경비원에게 물었습니다. "왜 기도를 못하게 하느냐"고. 그랬더니 경비원의 대답은 "우리가 만일 기도를 허락하게 된다면 사람들은 아무데서나 가리지 않고 기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기도 못하게 하는 곳, 기도하지 않는 곳, 기도가 없는 곳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기도하지 않는 기독교인, 기도에 힘쓰지 않는 기독교인, 기도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더 이상 기독교인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3절은 말씀합니다.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리라 부르짖으라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도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기도로만 가능합니다. 불교에도 기도가 있고 회교에도 기도가 있고 무당도 기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와 우리의 기도가 다른 것은 우리의 기도는 현존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기도를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우리가 드린 기도에 응답하여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해변 가에서 인명구조대원으로 일하는 사람에게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해변은 시끄럽습니다. 재잘거리는 소리, 파도소리, 웃음소리, 고함소리가 어우러져 시끄러운데도 당신은 사람들이 물 속에 빠져 살려달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까?”. 구조대원이 답하기를 "물론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외쳐대는 고함소리와 떠드는 소리는 같지 않습니다. 뛰놀며 휘젓는 손과 물에 빠진 사람이 살려달라고 휘젓는 손의 모습은 같지 않습니다. 저는 물에 빠진 사람의 고함소리나 휘젓는 손놀림을 듣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함소리를 들으십니다. 나의 손놀림과 아우성을 보고 들으십니다.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리라 내게 부르짖으라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여러분 물에 빠진 사람의 심정처럼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풍성하신 하나님의 응답을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크고 비밀한 응답을 보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치료하심을 보여주십니다

미국 죠지타운 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인 데일매슈스 박사는 "신앙이 병을 낫게 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그러나 신앙은 사람을 평안하게 만들고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에 살고 있는 5,286명의 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흡연, 음주, 비만, 운동부족으로 사망하는 사람들 가운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훨씬 사망률이 낮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의학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일수록 우울증, 자살 충동, 알코올 중독, 마약중독에 빠질 확률이 낮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도 고치시고 거기 사는 사람도 고치셨음을 믿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고치시고 우리가 살고 있는 황무한 땅도 고쳐주심을 믿습니다. 6절을 보면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강과 성실함에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은 예루살렘입니다. 그 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범죄 할 때마다 하나님은 그 성을 치셨습니다. 그러나 그 성 사람들이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회개하면 그 성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예루살렘 성 뿐 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십니다. 흥하게도 하시고 망하게도 하십니다. 되게 하실 수도 있고 되지 않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지으셨습니다. 나를 아십니다. 그러므로 부르짖어 기도하면 나를 고쳐주십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면 황무한 땅같은 우리의 질병도, 우리의 환경도, 우리의 삶도 고쳐 주실 줄로 믿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기도의 제목을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저의 기도 제목은 오직 하나입니다. 언제나 기도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이 사람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밀 중 가장 중요한 진리를 터득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최고로 좋은 상황에 있더라도 기도의 세계 속에서 살지 않는다면 곧 최악의 상황으로 떨어질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또한 현재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기도의 세계가 있다면 아무것도 염려 할 것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환경이나 여건이 우리를 붙들어주고 있는 것이 아니요, 기도로 이어진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리를 붙들어 주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삶의 최우선 순위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가장 강한 사람은 가장 무릎을 잘 꿇은 사람이다. 가장 오래 서 있는 사람은 가장 오래 엎드린 사람이다" 란 말이 있습니다. 즉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고침을 받아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되고, 기도하는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회복케 하심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금 장수 집에 나귀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늘 등에 무거운 소금을 싣고 다니며 불평 불만이 많은 나귀였습니다. 어느 날 소금을 싣고 개울을 건너다 실수로 넘어졌는데 소금이 물에 녹아 짐이 가벼워졌습니다. 나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 후로 나귀는 종종 넘어져 짐을 가볍게 하곤 했습니다. 나귀의 얕은꾀를 알아차린 주인이 괘씸하게 생각하고 하루는 꽁꽁 뭉친 솜을 잔뜩 실었습니다. 나귀는 여느 때처럼 미끄러지는 척하고 물에 넘어졌습니다. 그러나 등에 실은 솜뭉치는 천근 만근 더 무거워졌습니다. 주인은 무거워 쩔쩔매는 나귀에게 "네 꾀에 네가 넘어졌지"라고 했습니다.

이제 인간적인 잔꾀와 재주를 부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저 단순하게 눈을 들어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손을 내밀어 주님의 옷자락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의 입을 열어 주의 이름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크고 비밀한 응답을 보여주시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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