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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 렘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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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본문 : 예레미야 1:4~10 

로스엔젤레스에서 센프란시스코까지 자동차를 타고 운전할 기회가 있었다. 엄청난 목장도 있고 농장도 있었다.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 간판이 있었다. 내용은 “물이 흐르는 곳에 먹을 것이 생긴다." 물이 흐르는 곳이면 반드시 그곳에 먹을 것이 생기고 먹을 것을 통해서 우리는 삶을 유지하게 된다.

이사야 선지자는 외치기를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물이 흐르는 곳에 먹을 양식이 생김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는 이렇게 풍성한 은혜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모든 것이 풍요롭게 느껴진다. 먹을 것도 많고, 입을 옷도 다양하고, 재미있게 놀거리도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겨야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렇게 물질의 풍요로움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어느 랍비에게 무척 사랑하는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이 갑자기 죽게 되었는데 부인이 먼저 알고 남편 랍비에게 알려야 했다. 부인이 지혜롭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귀한 보화를 맡겨서 잘 간직하고 있다가 주인이 그 보화를 다시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렇게 묻자 랍비는 아뭇 소리 하지 말고 다시 드려야지요. 부인은 남편을 데리고 아들의 시신으로 데리고 갔다. 이 아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보화입니다.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다시 돌려달라고 하셨으니 우리는 순종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이같이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은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이 문제가 해결된다. 죽고 사는 일도 그렇게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이 대답이 있다.
이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소중한데, 미국에 롤 라이스 목사님이 목회하시는 교회에서 예배 드릴 기회가 있었다. 갈보리채플골든스프링스라는 교회이다. 이 목사님은 청년 시절에 얼마나 난폭했는지 모른다. 사람을 마음데로 죽이고 싶은 것이 소원이었는데 살인 면허를 받기 위해서 베트남 전에 갈 정도이다. 부인이 이혼을 요구하자 처갓집 식구를 모두 살해하려고 마음 먹고 집에 갔다가 텔레비전 설교를 통해서 회심하고 기적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 후에 목사님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목회를 하고 있다. 말씀은 이렇게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식물이 오래 사는 비결"이라는 글 속에 담긴 지구상에 가장 오래된 나무의 이야기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살고 있는 식물은 캘리포니아 화이트마운틴에 있는 '브릿슬콘 파인'이라는 소나무과 종류의 나무다. 최고 나이가 4,600세다. 예수님 오시기 전 2600년 전부터 있던 나무이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생물로 알려져 온 것은 캘리포니아의 세코이아 나무로 3,000년의 장수를 자랑해 왔었다. 우리의 질문은 어떻게 브릿슬콘 파인이 수천년 동안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느냐로 압축된다. 이 나무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이 나무의 끈질긴 생명력이 어떻게 해서 가능한지를 짐작 할 수 있다. 우선 나무 가지나 나뭇잎이 별로 없고 몸통 전체가 뿌리로 이루어져 있다. 나무의 생명은 물을 어떻게 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가지나 잎이 많을수록 수분을 많이 끌어 올려야 하고, 그만큼 수분 증발량도 많아진다. 엄밀히 말하자면 뿌리가 먹여 살려야 하는 식구가 많은 셈이다. 뿌리를 소중히 여긴 채 오랜 기간 동안 장수해온 이 나무에게서 뿌리를 가꾸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몸통 전체가 뿌리로 되어 있는 이 나무에게서 뿌리깊은 영성의 한 모습을 배워야 한다.

나무가 생명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뿌리로부터 물을 어떻게 끌어 올리느냐에 달려있다. 나무의 생명력이 뿌리에서 물을 끌어 올리는데 있다면 우리 인생의 생명력은 어디에 있는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말씀을 전한다. 오직 하나님 만을 잘 섬길 것을 강조해서 말씀한다. “너희 자녀에게 명령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슴을 지켜 행하게 하라. 이는 너희에게 헛된 일이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말미암아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 차지할 그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모세의 입으로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생명을 주는 말씀이었다. 시편기자가 고백하기를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우리로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이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살리는 하나님의 생명이다. 말씀은 곧 말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숨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말씀을 참으로 귀하게 여겨야 한다. 어거스틴이 성경을 읽으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하나님은 이같이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어떻게 말씀하고 계시는가? 깊은 명상 속에 잠겨들었다. 그러다가 어거스틴의 마음 속에 분명한 확신이 들었다. 내가 지금 강단을 통하여 계속하여 말씀하고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된다. 이러한 어거스틴의 확신이 후대에 종교개혁의 기초가 되었고, 오늘날 교회도 역시 이러한 전통위에 서 있다. 하나님은 지금 강단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다.

미국에 잠시 머물면서 중요한 세권의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 책 들을 통해서 얻은 결론은 교회의 강단에 맡겨진 말씀 선포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마음으로 새롭게 다짐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청와대에는 대변인이 있다. 대통령의 생각을 대변인을 통해서 말을 전한다. 교회는 어디인가? 하나님의 대변인이다. 하나님의 입술이 바로 교회이다. 교회가 왜 소중한가?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맡겼기 때문이다.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가 왜 중요한가?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그 입술에 맡겼기 때문이다.

본문의 말씀을 보라. 북 이스라엘은 이미 망하고 남 유다만 이스라엘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었다. 강대국들이 서로 남 유다를 잡아 삼키려고 한다. 국제적인 정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회복하지 못할 상태로 이끌고 갔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을 맡기셨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망하게 된 것은 정치를 잘못해서라기 보다는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말씀한다.

예언자는 누구인가? 앞에 일어날 일을 점치듯이 예견하는 사람이 예언자가 아니다. 예언자의 예자는 맡긴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금이라는 뜻은 돈을 맡긴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언자는 곧 말씀을 맡겼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님께서 예언자를 택하셔서 그들에게 말씀을 맡기셨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교회를 택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셨다.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이 말씀은 단지 예레미야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이 아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교회에 해당하는 말씀이다. 설교자들에게 해당하는 말씀이다. 온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위탁받은 사람들이다. 모세가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내 산 정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친히 써 주신 말씀을 받은 그 현장에 한번 서 본다는 것은 얼마나 의미가 있는가? 그 시내 산 정상을 올라가 보기 위해서는 1,500 미터 지점에서부터 걸어 올라간다고 한다. 정상의 높이가 2,285 미터니까 약 720미터를 올라가야 한다. 해뜨기 전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새벽 1시부터 걸어 올라가야 한다. 마지막 코스는 얼마나 난코스인지 등산전문가들 조차도 몇 번을 쉬어야 한다. 어떤 분이 시내산 정상에 올랐을 때 참담한 심정이 들었다고 한다. 시내산 정상에 조그마한 예배당이 세워져 있는데 예배당 문에 걸려 있는 쇠사슬은 녹이 슬어 있었다. 예배당 문은 잠겨 있는 반면, 그 조금 아래에 불야성을 이루고 온갖 기념품들과 한국 라면을 파는 아랍 상인들의 가게였다. 문 닫힌 시내산 정상의 예배당, 하나님도 예수도 전혀 상관없는 아랍 상인들의 가게들 만이 시내산 정상을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던 곳에 이제는 그 말씀은 사라지고 한국에서 성지순례간 사람들을 위한 컵라면과 기념품만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다시한번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 봐야 한다. 시내산의 생명력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지 한국 컵라면이 아니다. 교회의 생명력은 어디에 있는가? 곧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셨다. 교회는 곧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입술이다. 교회는 곧 하나님의 대변인이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세상을 향하여 과감하게 전해야할 책임이 있다. 교회뿐만 아니라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도 역시 하나님의 입술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예레미야에게 위탁하신 말씀은 무엇인가?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탁하신 말씀은 곧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다.

하나님을 떠난 결과는 뽑혀지고 파괴하고 파멸하고 넘어뜨리지만 하나님에게로 가까이 가면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말씀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술을 대변인으로 사용하셨다. 이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오늘날 교회를 하나님의 대변인으로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말씀에는 누구든지 똑같다. 많이 가진 사람이나 적게 가진 사람이나, 많이 배운 사람이나 적게 배운 사람이나, 건강한 사람이나 약한 사람이든지 누구에게든지 적용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엘젤레스 쪽으로 내려오는 도중에 17마일즈라는 유명한 코스가 있다. 이곳은 태평양 연안 17마일에 걸친 자연 경관을 아름답게 꾸며놓은 곳이다. 정말로 미국에서도 부자들이 사는 곳이다. 이곳에는 그 유명한 페블비치라는 골프장이 있다. 세계에서 제일 좋은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 숙박료가 하루에 비싼 방은 3000불 정도 된다. 하루에 360만원이다. 나는 이곳 17마일즈를 운전하고 내려오면서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였다. 그렇게 부자들이 사는 곳이 어쩧면 우리 나라 한센병 환자들이 있는 소록도하고 분위기 비슷한지 정말로 많이 놀랐다. 내가 지금 미국의 17마일즈를 운전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소록도를 운전하고 있는 것인지 혼돈스러울 정도이었다. 깊은 생각 속에 잠겼다. 왜 나는 비슷하게 느꼈는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집과 호텔은 분명히 소록도의 집과는 다르다. 그러나 하나님께 만들어 놓으신 자연경관은 소록도나 17마일즈나 너무나도 비슷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총은 세계 부자들이 모이는 페블비치나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소록도에나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페블비치나 소록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에서 성공해서 페블비치에서 많은 사람들과 고급 사교를 즐긴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면 결국에는 파멸하고 넘어지는 것으로 끝이난다. 그러나 세상에서 버림받고 육신의 질병으로 인하여 괴로운 시간을 지나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다면 그곳에 “넘어진 자가 다시 일어나고, 파괴되었던 자들이 다시 세워지는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는다.

이같이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말씀을 맡기셨다. 이스라엘의 심판과 구원의 복음을 전하도록 맡기셨다. 하나님은 교회에 말씀을 맡기셨다. 이 시대의 심판과 구원의 복음을 맡기셨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말씀을 맡기셨다. 하나님을 떠나면 그곳에 심판이 있지만 아무리 무너지고 넘어진 상태라고 할지라도 주 안에 있기만 하면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워주시고, 무너졌던 곳을 다시 세워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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