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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삶을 축제의 인생으로 펼쳐나가십시오 (요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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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축제의 인생으로 펼쳐나가십시오

청년대학부설교 홈 myhome.naver.com/chapelainkhj 천안외대 김홍진 목사
요한복음 2:1-11


  <로버트 풀검>이 쓴 흥미로운 제목을 가진 책 한 권이 있습니다. 『제 장례식에 놀러 오실래요?』라는 책입니다. 흥미 있지 않습니까? ‘제 장례식에 놀러 오실래요’ 이 책은 출생에서부터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모습 속에 결국은 계속적으로 축제적인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생일축하, 졸업식, 결혼식, 동창회 그리고 영결식, 영안실 앞에서의 장례식. 이렇게 사람들은 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의식과 의례로 연결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 아주 멋진 <마샤 카터>라고 하는 할머니의 장례식 하나를 소개합니다. 사실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그 할머니는 세상을 떠날 때, 자기 삶도 명랑하게 아름답게 살았고 또 삶의 절정인 죽음을 가장 아름답게 스스로 장식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유서를 통해서 장례식에 올 모든 손님들에게 절대로 상복은 입지 말고 화사한 옷을 입으라고, 그리고 그날 슬픈 이야기나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말고, 아주 밝은 노래, 기쁜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치고 만장하게 웃음으로 가득 찬 아름답고 경쾌한 프로그램으로 장례식을 지내달라고 목사님께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고인의 편지가 낭독됩니다. "지금까지 저는 멋진 인생을 살았습니다. 제게 베풀어준 모든 고마운 분들에게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문 앞에 죽음이 얼른거리면 저는 따라나설 겁니다. 춤 신발을 바꾸어 신고 훌쩍 떠날 겁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사랑을 띄우며 마샤." 이렇게 세상을 떠났고 그 장례식은 그야말로 굉장한 음악회요 굉장한 축제로 그렇게 치루어졌습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 인생을 축제로 살수는 없을까요? 성경의 인생관은 이렇습니다. 인생은 축제다. 기독교의 인생은 삶을 축제로 선포합니다. 인생을 축제로 살라고 가르칩니다. 어떻게 삶을 축제의 인생으로 펼쳐나갈 수 있을까요?

  첫째, 인생의 모든 과정을 축제의 기회로 삼으십시오. 인생을 축제로 보라는 말입니다.
 
  인생의 모든 일을 축제의 기회로 삼으십시오. 인생은 축제입니다. 삶 자체가 축제입니다. 믿기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는 자체가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인생은 축제를 선포합니다. 인생을 축제의 장으로 만드십시오.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혼인잔치에 갔습니다. 축제의 장에 찾아갔습니다. 예수님이 처음 이적을 베푸신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축제의 장에서 이적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인생을 축제의 장으로 보시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80년, 길게는 90년의 크고 긴 잔치입니다. 그러나 왜 축제의 장인 인생이 어둠과 고통의 장이 돼버렸을까요?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죄로 인하여 축제의 삶은 고통의 삶이 돼버렸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을까요? 어둠과 고통에 쌓인 삶을 구원하여 광명의 빛이 찬란한 축제의 인생으로 만들어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분과 인생을 시작하면 당신의 인생도 축제의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아멘>

  독일의 신학자 <몰트만>은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라고 하는 책에서 '예수의 영광'이라는 제목 하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선택하셨기에 부활의 영광을 누렸다. 예수의 생애라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축제의 생애였다. 지배자의 생을 산 것도 아니요. 노예적인 생을 산 것이 아니다. 자유와 자유의 선포와 사랑의 실천과 그 자유 속에 있는 영광을 누리며 살아가는 생이었다. 이 영광의 절정이 바로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님의 인생은 축제의 인생이었습니다. 인생을 축제로 만들어야 합니다. 인생을 축제의 기분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죄인들의 어두운 인생을 밝게 비추어 축제의 장으로 회복시키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분을 믿는 순간 마음의 어두운 죄악이 해결되어 기쁨과 환희의 축제의 삶을 다시 찾게 됩니다. 그 분과 함께 축제의 인생에 참여합시다.

  불교는 ‘인생은 고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인생은 축제라고 합니다. 인생을 즐거움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인생을 기쁨의 잔치로 살라는 것입니다. 모든 삶을 축제로 보십시오. 모든 순간을 축제의 순서로 생각하십시오. 인생을 축제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왜 인생을 어둡게 사십니까? 왜 인생을 고통으로 보십니까? 왜 인생을 어두운 터널로 보십니까? 아직 마음에 어두운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 예수를 영접하는 순간 이제 새로운 인생의 광명을 찾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눈으로 인생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인생은 축제입니다. 인생 여정에 광야의 메마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도 축제의 한 과정입니다. 인생은 거센 파도와 폭풍우를 지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도 축제의 한 순간으로 생각하십시오. 인생은 내가 축제로 보면 모든 것이 기쁨을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삶에 새로운 눈을 뜨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삶을 축제의 인생으로 새롭게 출발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삶을 축제의 인생으로 펼쳐가기 위해서는 인생길에 예수 그리스도를 초청하십시오.

  본문 2절에 보면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그랬습니다. 신랑과 신부는 혼인축제에 예수님을 초청했습니다. 이 주인은 하인이 있었으니 남과 비교해서 풍족하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신랑신부가 예수를 초청했기에 그들의 축제가 빗날 수 있었습니다.

  한 참 축제의 잔치가 벌어졌는데 포도주가 모자랐습니다. 이 포도주는 술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포도주 하니까 와인을 생각하는데 와인이 아니고 식음료 포주주스와 비슷한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음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음료 대용으로 포도주를 만들어 썼습니다. 그런데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포도주가 모자랐습니다. 축제의 분우기기가 무르익을 때 쯤 포도주는 떨어졌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삶의 축제를 벌이면서 인생을 살아갈 때 우리는 포도주가 떨어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성실하고 충실하게 축제의 인생을 펼쳐나가는 어느 순간 우리는 무엇인가 부족한 것 때문에 중도에 축제가 망신으로 변하는 수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축제의 인생을 펼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축제의 인생을 펼칠 때는 축제를 망치는 악제가 항상 있다는 것입니다. 한참 축제의 인생을 펼칠 때면 건강을 잃습니다. 인생 꿈을 펼칠 때쯤 되니 이제 회사가 어려워져 직장을 잃고 맙니다. 무엇인가 잡은 듯 인생의 축제를 펼칠 때쯤 되니 자식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축제의 어느 날에 악제가 있어서 부도가 납니다. 경제적으로 파산합니다. 직장에서 밀리고 사업에서 밀리고 건강에서 밀립니다. 무엇인가 부족하여 인생의 축제를 망치고 맙니다. 이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때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나도 어찌 할 수 없는 그 때 우리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줄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초청한 집안에는 결코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의 해결 자 예수님 그 분이 계신다면, 그 축제는 여전히 기쁨으로 계속될 것입니다. 가나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예수의 어머니가 포도주가 모자란다고 예수께 말합니다. 7절에 예수는 하인들에게 돌항아리 여섯에 물을 채우라고 말합니다. 아구까지 채웠습니다.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가져다주라 합니다. 순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무슨 요술 같지만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순간, 나도 어찌 다른 방도가 없는 순간, 하나님의 손길이 내 축제의 인생에 끊어지지 아니하면, 그 축제는 영원한 잔치로 연결될 것입니다. 순간 포도주가 떨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초청한 인생은 결코 그 축제가 시들어지지 않습니다. 부족함이 있을 때 그분은 우리에게 기적의 순간을 연출할 것입니다. 예수를 초청하여 모시고 있는 인생은 인생의 부족한 일들이 오히려 더 빛나는 축제를 만드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초청하여 잔치 인생을 사는 순간부터 그 분은 우리를 높이시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축제 인생을 빛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축제의 주인공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기적을 일으켜 물로 포도주로 만드신 주님을 보십시오. 부족한 포도주를 채워 놓고 예수님은 여전히 축제를 살려 놓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신랑신부가 주인공이 되게 만들어 놓으시고 예수님은 조용히 사라지셨습니다. 우리의 문제의 해결사 예수님은 인생을 축제로 만들어 놓으시고 인생 축제 중심에 우리를 올려놓고 조용히 사라지셨습니다.

  예수님을 초청하는 순간부터 인생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축제의 인생이 시작됩니다. 그 분을 초청하였습니까? 오늘 이 시간 누구를 초청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인생에 축제만 벌려 놓고 예수 그 분이 없으십니까? 그 축제는 포도주가 떨어질 때 보장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 부족함 없는 축제의 인생을 위해서 예수님을 초정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삶을 축제의 인생으로 펼쳐가기 위해서는 기쁨을 나누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삶을 더 기쁜 축제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축제의 기쁨을 서로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잔치에 참석한 수많은 사람들은 이 집에서 기쁨을 누리며 축제의 환희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신랑신부 때문에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축제의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신앙신부의 기쁨을 서로 나누며 서로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 때 진정한 축제의 분위기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인생은 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인생은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축제의 날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축제는 베푸는 데에서 더 빛납니다. 신랑신부는 축제를 사람들과 나눴습니다. 기쁨을 나누면서 축제를 벌였습니다. 그들은 더욱 기뻤습니다. 기쁨을 신랑신부 둘만 나눴다면 그리 기쁜 축제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과 함께 나눌 때 그 축제는 더욱 빛나게 되었습니다. 신랑신부는 더 큰 기쁨을 얻게 되었습니다. 축제는 나눌 때 그 기쁨이 배가 됩니다. 인생의 여정에서 나누는 삶은 더 큰 기쁨을 얻고 살게 됩니다.

  나의 축제의 인생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쁨을 누리고 있나요? 본문에서 보면 사람들이 기뻐했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내 축제의 인생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내 축제의 삶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기쁨과 구원과 환희의 감격을 누려야 하지 않을까요?

  옛날 희랍의 전제국가의 한 왕이 24시간 여색과 육림에 탐닉하면서, 자기를 더 즐겁게 하기 위하여 쾌락도와 행복도를 더 높이는 수단과 방법을 상금을 걸고 천하에 널리 구하게 하였습니다. 별별 기발한 새 아이디어들이 실험되었으나 그의 불만도와 갈증은 날로 가중되기만 했습니다. 새 아이디어의 제공자들은 그를 실망시킨 벌로 사형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왕 앞에 행복의 새로운 제안자가 나타났습니다. 아름다운 소녀였습니다. 소녀는 왕 앞에 나타나서 꾸짖는 눈빛으로, “왕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기쁨을 단념하십시오. 남을 행복하게 하거나 기쁘게 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기쁨과 행복을 원하신다면 남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십시오.” 이 말을 들은 왕의 표정은 숙연해지고 두 눈에는 눈물이 맺히며, “딸아 그대의 말이 옳도다”하고 상을 내렸다고 합니다. 미국의 한 가요 가운데 “행복 하고 싶어라. 그러나 그대를 행복하게 못하면 나는 행복해질 수 없네”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생은 나눌 때 그 삶이 풍요로워집니다. 인생은 나눌 때 그 기쁨이 배가 됩니다. 그 인생이 참으로 축제의 인생입니다. 축제의 삶으로 계속 되기를 원하십니까? 당신의 축제 인생에 사람들을 초대하십시오. 널리 사람들에게 기쁨과 환희를 주는 인생의 축제는 손님이 끊이지 않을 것이며 그 인생은 더욱 빛나는 축제의 인생이 될 것 믿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내 축제의 인생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그 인생이 정말 축제의 인생입니다. 그 인생은 더욱 빛날 것이며 그 기쁨의 환희는 더욱 찬란할 것입니다.

  맺는 말

  인생을 어떻게 보십니까? 힘들고 더디고 괴롭고 고통스럽게만 느껴지십니까? 당신의 인생을 새롭게 바라보십시오. 인생은 축제의 한 마당입니다. 당신의 인생을 축제로 만들어 보십시오. 시작은 미약하나 그 축제의 크라이막스는 찬란할 것입니다.

  어떠십니까? 삶의 인생을 축제로 만들고 싶지 않으세요? 그렇다면 당신의 인생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초청해보십시오. 결코 외롭지 않는 축제의 인생, 쓸쓸하지 않는 축제의 인생이 펼쳐질 것입니다.

  축제 인생의 여정 중에 우리는 수많은 문제에 부딪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참석한 축제의 잔치는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그분의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어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한계 상황들, 이 모든 축제의 장애물들은 오히려 축제를 더욱 빛나게 할 기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그분의 능력을 믿고 그분에게 문제를 맡기는 순간 기적은 시작됩니다. 그분과 함께 잔치의 크라이막스를 만들어나가십시오.

  그 분이 계십니까? 축제의 분위기는 좋고, 먹을 음식이 풍부하지만, 주인의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그 축제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축제의 주인공이신 여러분, 환경이 되어 있고, 먹을 음식이 준비되어 있지만, 손님은 많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면, 그 축제는 흥미가 없습니다. 왜 마음이 편치 않습니까? 마음에 죄가 있으면 그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집에 초청할 뿐 만 아니라 예수님을 마음에 초청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초청하는 순간 마음의 여러 가지 죄악들이 깨끗하게 해결되면서 진정한 축제의 기쁨이 찾아올 것입니다. 죄를 용서받은 순간 마음의 평안이 찾아옵니다. 그 축제는 진정으로 환희에 찬 축제가 될 줄 믿습니다.

  삶을 더욱 풍성한 축제의 장으로 만드십시오. 당신의 인생은 축제의 인생입니다. 그 축제의 기쁨을 홀로 만끽하지 마시고 많은 사람을 초청하여 함께 누리십시오. 더욱 빛나는 잔치가 될 것입니다. 이제 축제의 인생을 펼칠 때입니다. 인생은 축제이어야 합니다. 이 축제의 인생을 펼쳐나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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