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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가 없이는 (요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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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없이는
요 1:1-3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 요한 복음 강해를 시작하면서

오늘부터 주일마다 요한 복음서를 강해할 작정입니다. 요한 복음서는 주후 약 90년 경에 예수님의 제자 사도 요한이 기록한 책입니다. 앞의 세 복음서 마태, 마가, 누가 복음서와 달리 요한은 에수님의 연대기적 행적보다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기 위한 표적 중심의 사건 기록이 그 특징인 책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이 책의 목적대로 앞으로 요한 복음을 주일마다 강해할 때에 이런 믿음과 생명의 열매가 우리 교회 안에 가득히 맺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교회의 문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참신자가 줄어들고 그 믿음이 약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연 교회의 생명력이 약화되고, 복음의 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숙제를 옳게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올해 표어대로 기도하며 전도하고 건축하기 위하여는 오직 그리스도의 은총과 생명력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렇게만 되면 우리의 목표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2.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요한 사도는 복음서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을 세 가지 개념(term)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로 "태초", "말씀" 그리고 "하나님"이란 낱말입니다. 1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 태초에 계셨던 예수님

예수님은 시간 속에 나타난 역사적 인물이지만, 즉 태어난 날도 있고 죽은 날도 있는 분이지만, 우리와 다른 것은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시기전에 본래 태초부터 계셨다는 것입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분이 때가 되매, 즉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사람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태초에"라는 낱말을 통하여 예수님의 본성 중에 죄 없으심을 강하게 암시 받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과 모든 만물 가운데 깃 든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 계셨던 분, 비록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시어 사람의 연약함을 체휼하신 분이시지만, "태초에" 계셨던 것은 곧 우리와 달리 죄가 없으신 분이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죄 없으신 분이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것은 곧 이 세상의 죄를 씻어주실 분으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세례자 요한의 입을 통하여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b)

동시에,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죄 씻음을 받고 구원을 얻으면, 우리도 예수님의 그 죄 없으심의 자리인 "태초"를 체험하게 됩니다. 일컬어 "초월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체험을 "세째 하늘에 올라간 체험"으로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신비적 표현이지만 바울은 그것을 매우 교리적인 표현으로 옮겨두었는데 그것을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예수님을 만남으로 "태초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이 세 가지를 하나로 대신하자면 바로 "자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고 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목마름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의와 희락과 평강입니다. 곧 자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 안에서 아무 죄의 오염이 없던 "그 태초"에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목마름을 해갈하시길 바랍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x2)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오- 자유 오- 자유 나는 자유하리라
비록 얽매였으나 나는 이제 자유하리
자유 주시는 내 주님께

2) 말씀이신 예수님

두 번째로 사용한 용어가 "말씀"입니다. 이 낱말은 당시 헬라어에서 "로고스"란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은 "원리" 혹은 "道"(길)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본래 의도는 히브리어인 "다바르"를 뜻하고 있는 듯 합니다. 히브리어에서 "말씀"은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매우 동적인 힘(생명력)을 갖고 있는 단어입니다.

창세기 1장에 천지 창조의 현장에 나타난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 . . "

그래서 오늘 본문 3절에서 요한 사도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래서 요한 사도는 예수님은 곧 창조의 힘, 곧 창조주이심을 가르치려 한 것입니다. 그래서 2장에 나오는 가나 혼인집에서 일어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을 통하여 한번 더 예수님이 창조의 주인이심을 확증하려는 의도를 보게 됩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 없이는 아무 것도 되지 않음'을 다음처럼 매우 강렬하게 표현했습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 11:36)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
이 예물을 주께 바치나이다 (찬 7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대신 예수님과 함께만 하면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이신 예수님

그러므로 요한은 결국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심"을 가르치려 한 것입니다. 그래서 1절에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고 하는 복음의 선포는 "예수는 곧 하나님이시다"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은 바로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 땅에 와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던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한 위대한 성현의 생애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하여 죽으신 분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시며 지켜주시고 인도하시는 분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어 자기 모든 것을 희생하셨던 그 분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그래서 곧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우리 시대가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까닭은 하나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봅니다. 신을 찾으나 하나님을 보지 못하여 방황하는 자들에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시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심을!

3. 마무리하며

요한 복음서를 읽는 중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의 풍성함을 보며 체험하며 그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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