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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안에서의 삶 (살전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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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안에서의 삶
살전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루는 신촌에 있는 이화여자대학교 앞이 하얀 배꽃으로 온통 뒤덮였습니다. 그곳에 배나무가 많아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대생들 모두가 배꽃처럼 하얀 소복을 차려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학교의 총장을 지냈던 고 김활란 박사의 관을 들고서 발인을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엄숙하고 장엄하던지 지나가던 사람들은 모두가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는 옷깃을 여민 채 기침소리 하나 내지 않고서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더더욱 특이한 광경은 김활란 박사의 관을 따라가면서 학생들이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그들은 슬픈 곡조의 조가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야"에 나오는 할렐루야를 힘차고도 우렁차게 합창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 김활란 박사는 본시 첩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수모를 겪으면서 자랐겠습니까? 그는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노래를 했습니다. 찬송가 461장에 그 가사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불때 만경창파 망망한 바다에 외로운 배 한 척이 떠나가니 아 위태하구나 위태하구나
비바람이 무섭게 몰아치고 그 놀란 물 큰 파도일 때에 저 뱃사공 어쩔 줄 몰라하니 아 가련하구나 가련하구나
절망 중에 그 사공 떨면서도 한줄기의 밝은 빛 보고서 배 안에도 하나님 계심 믿고 오 기도 올린다 기도 올린다
아버지여 이 죄인 굽어 보사 성난 풍랑 잔잔케 하시고 이 불쌍한 인생을 살리소서 오 우리 하나님 우리 하나님
모진 바람 또 험한 큰 물결이 제 아무리 성내어 덮쳐도 권능의 손 그 노를 저으시니 오 맑은 바다라 맑은 바다라."

그는 첩의 딸이라는 사실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신앙심으로 자신의 모든 환난을 극복했습니다. 그리고는 부지런히 서양의 문물을 깨우쳤습니다. 그는 자신이 배우고 익힌 것을 한국의 여성들에게 아낌없이 다 쏟아주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겪었던 수모를 다른 사람만큼은 겪도록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63세에 이화여대 총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후 그는 느지막한 나이에 신학교에 들어가서 성경을 좀더 체계적으로 배웠습니다. 그리고는 강원도, 충청도, 시골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신의 여생을 바쳤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울지말아. 나는 내 인생을 값있게 살았어. 나는 내가 할 일을 다 마치고 이제는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로 가는 거야. 그러니 내가 죽거들랑 장송곡을 부르지 말고, 헨델의 할렐루야를 힘차고도 멋있게 불러 줘."
그러면서 그는 평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는 정말 멋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날 그의 무덤을 찾는 사람들은 다시 한번 숙연해진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의 묘비에 숱한 찬사의 말이나 화려한 경력과 학력들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무덤은 다른 사람의 무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지극히 평범한 무덤입니다. 단지 그의 무덤 앞에는 돌로 만든 자그마한 성경 한 권이 놓여있을 뿐입니다. 그곳에는 이러한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입니다. 이는 고 김활란 박사께서 일평생토록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던 말씀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이 세 가지를 그는 삶의 지표로 삼고 살았습니다. 그리해서 언제, 어디서, 어떠한 형편에서라도 그는 항상 기뻐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도 그토록이나 값있는 인생을 살게 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항상 기뻐하라"의 기쁨, "쉬지 말고 기도하라"의 기도,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라"의 감사, 이 세 가지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너무나도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를 비유적으로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이 세 가지는 믿음의 동산에서만 피어나는 아름다운 세 송이의 장미꽃이다. 이 세 가지는 믿음의 광산에서만 캘 수 있는 아름다운 세 종류의 보석이다. 이 세 가지는 믿음의 바다에서만 얻을 수 있는 세 개의 값진 진주이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크신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우리 모두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우리의 삶 속에서 언제나 아름답게 꽃 피우기를 바랍니다. 그리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축복된 삶, 젖과 꿀이 흐르는 삶이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항상 기뻐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 믿지 않는 불신자들도 기뻐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우리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쁨의 근원을 물질적인 것, 환경적인 것, 세상적인 것에 두면서 살아갑니다. 따라서 그들은 때로는 기뻐할 수 있지만, 때로는 기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기쁨의 근원을 세상적인 것, 물질적인 것, 환경적인 것에 두고서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쁨의 근원을 어디에 두면서 삽니까?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를 위해 삽니다."
찬송가의 가사처럼 우리는 기쁨을 근원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면서 살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변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간에 항상 기뻐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합3:17∼18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우리 주변의 환경을 바라보면서 기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소망의 하나님, 살아 계신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변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간에 항상 기뻐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송명희씨를 아실 것입니다. 그는 뇌성마비 중증장애인입니다. 여러 해 전에 구역장 모임에서 그를 한번 초청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의 두 발로 걸을 수가 없습니다. 휠체어에 앉혀져 왔습니다. 앉아 있기도 힘이 들어 거의 대부분을 누워서 지냅니다. 목에는 힘이 없어서 고개는 언제나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는 손으로 글을 쓸 수도 없습니다. 발가락에 연필이나 볼펜을 끼워서 겨우 힘들게 몇 자 적을 수 있을 뿐입니다. 말 한마디를 하려면 온몸을 비비 틀어야 합니다.
그러한 그가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 같은 장애인들도 변함없이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한마디의 말을 하는데 온몸을 비비 틀면서 어릴 때 젖 먹던 힘까지 다 끄집어내어서 일분이 넘도록 애써야 합니다.
"고오옹∼펴어엉∼"
보는 사람이 애간장이 타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송명희씨가 찬양시를 많이 썼습니다. 책도 많이 출간했습니다. 그가 쓴 찬양시 가운데 "내가 행복한 이유는"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걷지도 못하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 송명희씨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가 행복한 이유를 들어보십시다.

"내가 행복한 이유는
내게 재물 많은 이유 아니요
주 내게 분깃된 때문에

내가 행복한 이유는
내게 친구 많은 이유 아니요
주 내게 친구된 이유 때문에

내가 행복한 이유는
내게 영광 많은 이유 아니요
주 내게 기쁨된 이유 때문에."

송명희씨는 자기에게 세상 물질이 많고, 세상 친구가 많고, 세상적인 영광이 많아서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영원한 분깃이 되어 주시고, 주님께서 그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시고, 주님께서 그의 참된 기쁨이 되어 주시기 때문에 자기는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송명희씨가 행복하다면 우리는 당연히 행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송명희씨가 행복하다면 우리는 당연히 행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투정하는 것이며, 사치를 부리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기쁨의 근원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 에게 두었습니다. 그들은 주 안에서 누리는 기쁨으로 언제나 충만했습니다. 그러길래 그들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기뻐했습니다. 매를 맞고 감옥에 끌려 들어가면서도 기뻐했습니다. 사자 굴에 던지움을 당하면서도, 풀무불에 던지움을 당하면서도 그들은 기뻐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기쁨의 근원을 세상적인 것에, 변하는 환경에 두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이미 천국의 기쁨을 주셨습니다.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그런데 악한 마귀, 우리의 원수 사탄은 우리의 마음에 있는 기쁨을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물질 때문에 빼앗길 필요가 없습니다. 환경 때문에 빼앗길 필요가 없습니다. 나와 너와의 인간 관계 때문에 빼앗길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주 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아름답게 간직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쉬지 말고 기도하라입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 먹은 대로 쉽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우리의 힘만으로, 우리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예수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의 손을 붙들고 날마다 매 순간마다 예수님과 더불어 동행하는 삶이 바로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모래 위의 발자국"이라는 제목의 시를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그는 예수님의 손을 붙들고 바닷가에 모래사장 위를 걷고 있었습니다. 한참 걷다가 그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모래사장 위에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나란히 찍혀져 있었습니다. 하나는 자기의 발자국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발자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서인가 한 사람의 발자국이 뚝 끊어지고 모래사장 위에는 한 사람의 발자국만 찍혀져 있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때에는 그가 몹시도 힘들어서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님, 저때에는 예수님이 잠시 제 곁을 떠났었군요. 그래서 제가 그토록이나 힘들었군요. 왜 예수님께서 저때에는 제 곁을 떠나셨습니까?"
그때 예수님은 웃으시면서 이렇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결코 너를 떠난 적이 없었단다. 저때에는 네가 너무나도 힘들어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내 품에 안고서 걸었단다. 저때에는 네가 너무 괴로워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내 등에 업고서 걸었단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 그 발자국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습니다. 과연 그 발자국은 자기의 발자국이 아니라 예수님의 발자국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임마누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홀로 내버려두지 아니하십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의 손을 붙들어 주시고 우리와 동행해 주십니다.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과 중단없는 영적인 교제를 누리면서 살아가는 삶! 이것이 바로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시선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라도 결코 무심히 보지지 않았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공중에 나는 하찮은 새 한 마리도 잊지 않고 먹이시는구나."
예수님은 들풀을 보시면서도 무심히 보시지 아니 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오늘 있다가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지우는 하찮은 들풀조차도 잊지 않고 입히시는구나."
예수님은 아름다운 꽃을 보실때도 그 꽃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저토록 아름답게 입히셨구나."
예수님의 시선은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종종 자신은 하나님 아버지 안에 계시고, 하나님은 자신 안에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와 자신은 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늘 연합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매 순간마다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우리의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오늘은 참으로 힘든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내 곁에 계셔서 손잡아 주셨기 때문에 모든 시련 이겨내고 오늘도 승리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오늘은 제가 속상한 일을 당했습니다. 화라도 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제가 끝까지 참았습니다. 예수님, 저 잘했지요? 예수님 보시기 에도 제가 예쁘지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손을 붙들고 예수님과 오손도손 대화를 나누면서 재미있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입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의 영이신 성령으로 충만한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범사에 감사하라입니다.

우리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면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롬8:28의 말씀을 잘 압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미 창세 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자녀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해 주십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나님께서 섭리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였던 스펄전 목사님이 하루는 어느 시골 농가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농가의 마당 한쪽 구석에 큰 풍향계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풍향계 밑에는 바람의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촉이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그 모습을 재미있게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화살촉 밑에는 기다란 천이 달려 있었습니다. 그 천에는 무엇인가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는 궁금한 생각으로 풍향계 밑으로 다가갔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God is love,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일4:16의 말씀이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의아스러운 생각을 가지고 그 집 주인인 농부에게 물었습니다.
"설마 하나님의 사랑이 바람 부는 대로 바뀐다는 뜻은 아니겠지요?"
그러자 농부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물론입니다. 정반대의 뜻입니다. 바람은 어떠한 방향으로 불든지간에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이 우리의 가정과 함께 하신다는 뜻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을 거기에 적어 놓았답니다."

그렇습니다. 살아가다보면 우리가 형통할 때도 있습니다. 곤고함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형통할 때도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와 함께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곤고함을 당할 때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합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몸에 있는 것을 모두 다 빼앗겼습니다.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집으로 돌아와서 기도하는 가운데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오히려 몇 가지로 감사했습니다.
첫째, 그는 지금까지 한번도 강도를 당하지 않도록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지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했습니다.
둘째, 몸에 있는 것을 다 빼앗겼지만 목숨을 잃지 않은 것에 대해서 감사했습니다.
셋째, 자기는 강도를 당한 사람이지, 강도 짓을 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자기도 강도처럼 나쁜 사람이 되어서 얼마든지 못된 짓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넷째, 이번 일을 통해서 앞으로 조심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얻게 하신 것에 대해서 감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곤고함을 당했을 때,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도 얼마든지 우리는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의 "think, 생각하라"와 "thank, 감사하라"는 같은 어근입니다. 또 "grace, 은혜"와 "gratitude, 감사"도 같은 어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에 깊이 노 저어 가면 갈수록, 얼마든지 감사의 물결도 더욱 넓게 퍼져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떤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도 목사님이고 아들도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들은 섬기는 교회가 달랐습니다.

어느 주일날이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난 뒤에 아버지가 먼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평소보다도 아주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들은 상기된 모습으로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가 정말 놀랍습니다. 제가 돌아오는 길에 차 사고를 당했습니다. 급하게 달려드는 차를 피하려다가 그만 제 차가 미끄러져서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순간 제가 핸들을 꼭 잡을 수 있도록 지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 몸은 조금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차도 별로 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구나.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나는 너보다 더 감사하구나."
아들은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아니, 아버지도 돌아오시는 길에 차 사고를 당하셨습니까?"
아버지는 고개를 흔들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다. 나는 예배를 잘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차 사고를 당한 네가 감사하다면, 예배를 잘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나야말로 하나님께 더 감사를 드려야 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잊었던 감사를 드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평안할 때, 형통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 버리고 감사하지 않는 수가 많습니다. 내 노력으로 잘 되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곤고할 때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해야 되겠지만, 형통할 때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인 사실을 생각하면서 감사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범사에 우리는 감사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항상 기뻐하십시다.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다. 범사에 감사하십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약속하신 축복된 삶,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한 삶이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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