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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이 살아있는교회 (느 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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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살아 있는 교회
느8:1-12
2004. 01. 25

어느 목사님이 심방을 갔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집사님 가정이 있어서 그냥 지나가면 섭섭해 할 것 같아서 그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느닷없이 목사님이 들여 닥쳤으니 반갑기도 하고 당황도 되지요. 목사님이 앉자 말자 잠간 말씀 한절 보고 기도 하고 가겠습니다. 성경책 좀  가져오세요. 했더니 이 집사님이 목사님이 모처럼 왔으니 내가 얼마나 믿음생활을 잘하나 보여 주어야 겠다. 하고 아이에게 책을 가져오라 했습니다. 얘 가서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책 좀 가져오렴. 아이가 조르르 달려가더니 책을 하나 가지고 나오는데 주간잡지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당황한 엄마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 가져오라 했잖아.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 뭔데 어제도 이 책보고 조금 전에도 이 책보지 않았어. 하더랍니다. 여러분이 제일 좋아하는 책이 제일 많이 보는 책이 무엇입니까?  말씀 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대구지하철 참사 때의 이야기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희생이 되었는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분명히 지하철을 탔는데 물적 증거가 없어서 시신도 찾지를 못하고 사망자명단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중에 장로님 한분이 있었습니다. 지하철 참사가 나는 날 집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자기가 지금 지하철역에서 죽을 것 같다고 그리고는 소식이 끊겼습니다. 그 가족들이 시신을 찾아 헤치고 다녔지만 모두가 새까맣게 타서 얼굴도 형체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 시신 옆에 타다 남은 성경책이 있습니다. 펼쳐보니까, 타다 남은 그 책 속에 장로님 나가는 교회주보가 있고 장로님 손때가 묻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신을 찾았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의 배경은 이스라엘이 포로로 있던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한꺼번에 다 돌아 온 것이 아니라 3차례에 걸쳐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느혜미야는 바샤 왕실에서 술 맡은 관원으로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2차 귀환 때 귀환했던 하나니라는 사람에 의해서 예루살렘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 소식은 참담한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훼파되고 성문은 불타고 무너진 채로 그대로 방치되어 있으며 잡혀가지 않고 남아있던 이스라엘 백성도 잡혀간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금식하며 기도하며 울었고 왕의 허락을 얻어 예루살렘이 돌아와 예루살렘 재건을 위하여 성벽을 52일 만에 완성을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신앙회복운동을 전개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중요한 것은 성벽도 아니고 조직도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 입니다. 말씀이 있어야 신앙이 살아납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무엇이 필요 합니까?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인 교회는 말씀 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움직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라고 말만 하고 능력은 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살아계신 교회. 그분이 함께하는 교회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교회, 말씀이 죽어 있는 교회는 아무런 역사도 기대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 하셨고 오늘날도 말씀으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에도 말씀으로 부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1 모든 백성들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그 자세가 벌써 된 것입니다. 그자세가 뭐예요 듣겠다는 것입니다. 내생각과 마음과 관심이 말씀으로 쏠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에게는 말씀이 잘 들려 올 수밖에 없지요. 교회는 말씀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이 살아 있으려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다해도 귀를 기울이는 자가없다면 장마 속에 가뭄이든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떨어지면 역사가 일어나지요. 내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 보세요. 마음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놀라운 경험은 귀를 기울이는 자에게서만 일어납니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행전에 보면 바울이 오래 동안 말씀을 강론할 때 유듀고가 졸다가 창가에서 떨어진 사건이 나오지요. 이유가 무엇인가요.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까? 말씀이 들려오지 않지요. 그러니까 졸리는 거예요. 우리 모두에게 항상 말씀 이 들려오기를 바랍니다.

2.말씀에 대한 존중입니다.

저희는 어려서 어른들이 말씀 할 때 무릎을 꿇고 경청했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이 말씀 할 때 딴 짓을 했다가는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말씀은 곧 그분의 분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존경해야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예수님이시지요. 말씀은 곧 하나님이지요. 그럼으로 말씀을 들을 때 존경해야 합니다. 언젠가도 그런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마는 왕의 어명이 떨어질 때 그 어명을 가지고 간 사신이 어명이요 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 어명을 받는 모습을 사극에서 많이 보지 않습니까? 어명이기에 존경하는 것이지요. 본문 5절에 “학사에스라가 모든 백성위에 서서 저희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펴니 모든 백성이 일어났습니다. 말씀에 대한 존경이지요.
3,셋째는 아멘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6절에“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손을 드는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요. 아멘, 아멘 하는 것은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이요. 몸을 굽히는 것은 복종의의미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을 때 우리에게도 이러한 자세가 필요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옆 사람과 잡담하는 사람. 집안 걱정하는 사람. 예배마치고 누구 만나러 갈 생각하는 사람. 그러니 그 인생이 변화가 있겠어요.

말씀이 떨어져 싹이 나야 하는데 이것은 길가 밭과 같아서 말씀이 떨어지자 말자 새들이 와서 다 주워 먹으니 10년을 믿어도 그 턱이요 20년을 믿어도 그 턱이지요. 따로 성경을 공부하지 않아도 예배시간에 졸지 않고 딴 짖 안하면 사람이 바뀌고 인생이 바뀌고 운명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런데 변화가 없다 응답이 없는 것이지요. 말씀을 아멘하고 받아들이세요. 그러면 하나님의 은총이 임할 것입니다. 말씀이 나를 더 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새롭게 바꾸어 줄 것을 믿습니다.
 
4.말씀을 깨닫는 것입니다.

설교나 성경공부는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기위하여 들려주는 말씀 입니다. 그러기에 설교 시간에 잘 들어야 합니다. 말씀 공부도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설교 속에는 오늘 이 시대에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깨달은 것만큼 실천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말씀의 홍수 속에 산다고 합니다.

이 본문이 쓰여진 때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자해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지천에 성경책입니다. 원하기만 하면 성경을 무료로 주는 곳도 많습니다. 얼마든지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 방송이 있습니다. 기독교 tv 가 있습니다. 한 시간에 몇 편의 설교가 쏱아져 나옵니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 종일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깨닫는 자가없는 것입니다. 말씀 이 다 죽어 있던지, 귀가 다 막혀 있던지, 심령이 다 죽었던지 그중에 하나이겠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원인은 사람들의 무관심입니다. 말씀에 대한 열정이 없어요. 저는 요즈음 부흥회를 오라면 별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사람들이 모이질 않아요.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없는 것이지요.
저 어릴 때는 물론 전도사 시절만 해도 이웃교회 부흥회 한다 하면 며져라 터져라 했어요. 제가 전도사 때도 부흥회를 인도 했는데 시골교회 부흥회 인도하러 가면 앉을자리가 없어서 강단 위까지 사람들이 올라와 앉고 다리를 펴지도 못하고 앉아서 은혜 받았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요즈음에는 무슨 종교행사로 치르는 기분이예요. 안하자니 섭섭하고 그래서 하는데 모이지는 않고 그 교회 담임목사가 죽어나지요. 말씀에 관심을 갖고 깨달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은 능력입니다. 깨닫고 행하면 축복이 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5.말씀을 들은 자들이 감동이 되었습니다. 

준비 된 자만이 감동을 받습니다. 쉽게 말하면 교회 와서 다 은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준비된 자만이 은혜를 받습니다. 무엇을 준비 합니까? 앞에서 말한 것들입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존경입니다. 말씀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런 준비된 사람은 말씀을 들을 때 오늘 본문에 있는 것처럼 감동이 오는 것입니다. 눈물이 날만큼 감동이 옵니다. 오늘 본문에도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다 울었습니다. 기뻐하였습니다. 이들에게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말씀의 부흥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수년전 공산주의가 무너지기전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극장에서는 “턱시도를 입은 예수”라는 제목의 기독교를 조롱하는 반신적인 연극이 상영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 주인공 예수 역으로 출연한 사람이 알렉산더 로스톱제브(Alexander Rostovzev)라는 미남배우 였습니다. 그가 어렸을 때 교회 나가본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 그가 주인공으로 결정되는 한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연극의 절정에서 그는 예수의 산상수훈 두 구절을 낭독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태5:3-4) 이 말씀을 읽던 그는 두차례 더 반복하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연극을 지휘하는 스탭들은 다음을 진행하라고 무대 뒤에서 싸인을 주고 있었지만 그는 무대에 무릎을 꿇습니다. 무대의 막은 내려졌고 연극은 엉망이 되었지만 그날 그는 예수를 모독하는 역할대신 예수 앞에 돌아와 예수를 증거하는 역할을 감당한 것입니다. 말씀이 가져온 승리요 부흥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감동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이 살아 있는 곳에는 감동이 있습니다.  눈물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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