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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큰 은혜 받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마 11: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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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은혜 받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마11:20-24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전하시며 병든 이들을 고치시는 그의 사역 속에서 그가 부딪치신 장벽과 그로 인한 비통함의 일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앞부분에 보면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 있을진저 ..."(20-21 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하신 것은 저주하는 말이 아니라 비통해 하며 경고하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여섯 도시의 이름이 나옵니다. 먼저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의 북서쪽에 위치한 도시로 예수님의 "본 동네"(마9:1)라 불리던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거기서 세금을 내셨습니다(마17:24), 마4:12-17은 이 도시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에 유익합니다: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여기서 우리는 가버나움이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의 주된 활동무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외치시며 복음전파의 사역을 시작하신 곳도 이곳임을 볼 수 있습니다. 자부심이 강하고 야심이 컸던 도시였다고 합니다.

고라신은 갈릴리 호수 북단으로부터 북서쪽으로 조금 들어가 있었던 도시였고 가버나움으로부터는 북쪽으로 약 2마일(그러니까 3.2킬로 정도) 떨어진 곳,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었습니다. 벳새다는 가버나움에서는 동쪽에 위치한, 갈릴리 호수 북단에 있던 고기 잡는 마을이었습니다. 요1:44에서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한 것으로 보아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적어도 4분의1을 배출한 동네입니다. 고라신과 벳새다에서의 예수님의 사역에 관한 기록은 별로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본문 20-21절에서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한 것으로 보아 예수님께서는 이 두 도시에서 많은 사역을 하셨으며 그 두 도시는 가버나움과 더불어 예수님의 갈릴리 전도사역의 중심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역을 행하신 고라신과 벳새다였지만 그 두 도시가 예수님의 복음사역에 노골적으로 반대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관심했고 따라서 무반응이었습니다. 무관심은 종교를 태워 죽이지는 않으나 얼어 죽게 만듭니다. 무반응은 신앙을 탄압하지는 않으나 질식시킵니다. 고라신과 벳새다의 죄는 그들이 누린 특권에 따르는 책임을 망각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서 가장 많은 권능을 행하셨다는 것은 그곳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하심을 확실히 믿었어야 하는 것이고 자신들을 하나님 앞에 세우고 스스로의 행실들을 돌아보며 회개했어야 함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회개라고 하는 일차적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비통해하시며 책망하신 것입니다. 본문 21-22절을 봅니다: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예수님께서는 고라신과 벳새다의 완악함과 죄를 드러내기 위하여 두로와 시돈을 끌어들여 언급하신 것입니다. 두로와 시돈은 이스라엘보다 북쪽에 있는 지중해 연안의 이방도시들이었습니다. 그 두 도시는 수세기에 걸쳐 크고 강한 도시들이었지만 성경은 그 두 도시를 악한 도시로 말하고 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시돈이여 너는 부끄러워할지어다"(사23:4) 했습니다. 사23:7-11에 따르면 두로와 시돈은 "옛날에 건설된 너희 희락의 성 곧 백성이 자기 발로 먼 지방까지 가서 머물던 성읍"(사23:7)이었습니다. "면류관을 씌우던 자요 그 상인들은 고관들이요 그 무역상들은 세상에 존귀한 자들이었던 두로"(사23:8)라고 한 것으로 보아 명예와 부귀와 권력이 집중되어 있었던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온갖 영화를 누리며 교만에 빠져있는 도시들이었고(사23:9) 그 성들은 견고했었습니다(사23:11). 예언자 요엘은 두로와 시돈에 관한 더욱 나쁜 기억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너희가 내 은과 금을 빼앗고 나의 진기한 보물을 너희 신전으로 가져갔으며 또 유다 자손과 예루살렘 자손들을 헬라 족속에게 팔아서 그들의 영토에서 멀리 떠나게 하였음이니라"(욜3:5-6)

그러나 그렇게 악한 두로와 시돈이었지만 만일 예수님께서 고라신과 벳새다에서 행하신 권능을 거기서 행하셨더라면 그들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21절)하는 것은 구약에서는 그렇게 행하는 사람이 그가 지은 죄에 대해 깊이 후회하고 슬픔하며 회개하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표하는 행위였습니다. 고라신과 벳새다는 예수님께서 그토록 많은 권능을 행하여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죄와 책임은 두로와 시돈의 죄와 책임보다 훨씬 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22절) 말씀하신 것입니다.

21-22절에서 고라신과 벳새다를 책망하신 예수님은 23절에서는 가버나움을 책망하십니다. 가버나움의 완악함과 죄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소돔을 언급하십니다. 소돔은 그 악함과 타락과 교만과 완악함의 대명사와도 같은 도시로 더 설명이 필요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행하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셨다면 소돔은 망하지 않고 아직 존재할 것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가버나움은 그토록 많은 권능을 보고서도 완악하고 교만하여 믿고 회개하지 않았으므로 심판 날에 소돔보다도 더 견디기 힘든 형벌에 처해질 것이라 경고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23-24절).

오늘 본문말씀의 요점은 하나님께서 권능을 많이 행하신 곳일수록, 즉 진리의 빛을 많이 받고 은혜를 많이 입은 이들일수록 그 하나님의 은혜에 상응하는 회개의 응답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회개의 응답이 없을 때에는 하나님의 책망과 심판을 면할 수 없으리라는 것입니다.

마4:17에 보면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처음부터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회개 없이는 하나님나라를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회개는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는 첫 발걸음입니다. 회개는 악한 행실로부터 돌아서는 것입니다. 회개는 단지 자기가 저지른 어떤 악행에 대하여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온 삶의 방향이 통째로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죄 가운데 빠져있던 삶으로부터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서는 것입니다. 죄를 미워하고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삶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특징적인 삶이며 은혜 입은 이의 도리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가버나움과 고라신과 벳새다가 주님께서 가장 많이 권능을 행하신 지방이라면 오늘날 하나님의 복음사역이 가장 힘있게 이루어졌고 그 은혜가 가장 충만한 곳은 어디겠습니까? 우리 한국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복음이 전해진지 120년이 안 되는 사이에 교회가 이렇게 많이 세워졌고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의 4분의1에 이르며 주일마다 3부, 4부, 5부, 6부의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허다하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선교를 많이 하도록 성장한 나라가 어디 또 있습니까? 외국에서 상당기간 살기도 하고 여러 나라를 다녀보았지만 우리나라만큼 길거리에서건 지하철 안에서건 그렇게 전도하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나라는 없었습니다.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만큼 24시간 라디오로 TV로 인터넷으로 그것도 자국어뿐 아니라 여러 외국어로 선교방송이 이루어지는 나라도 본 적이 없습니다. 성경책이 우리나라만큼 많이 만들어지고 팔리는 나라가 없습니다. 전세계의 성경 제작 판매의 15%가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집니다. 미국에서 1년간 제작, 판매되는 성경이 400만부 정도인데 우리나라에서 제작,판매하는 성경부수는 600만부에 달합니다. 우리나라가 지상 최대의 "하나님의 말씀 반포국"이 된 것입니다. 대한성서공회는 세계 대부분의 언어로 성경을 제작하여 전세계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은혜는 직접적인 교회의 성장과 선교활동의 확대에서만 충만한 것이 아닙니다. 일본의 강점과 탄압으로부터 독립을 주시고, 공산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한 전쟁의 참화와 공산화의 위기로부터 구해내시며,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부흥을 이루게 하시고, 일본을 제외하고는 동양에서 유일하게 올림픽과 월드컵경기를 모두 유치한 유일한 나라로 우뚝 서며 세계 4위의 스포츠강국으로까지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정말 우리의 힘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권능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고 믿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실로 우리나라는 현대에 와서 하나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나라라고 믿을 만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가 옛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처럼 회개하지 않아 주님으로부터 책망 받고 화를 당하며 잊혀진 나라 황폐화되거나 지도에서 사라지는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어느 나라사람들보다도 은혜를 많이 받고 진리의 빛을 많이 받았으면 그만큼 더 분명하고 철저한 회개와 삶의 변화를 통하여 하나님께 응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진리와 권능의 은혜를 그 어느 나라보다도 많이 받은 만큼 그 책임도 더 크며, 그 책임을 감당하지 못할 때 받을 심판과 재앙도 더 엄중하고 견디기 힘들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우리가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기를 촉구하고 계십니다. 한국사회는 지금 이대로 계속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화 있을진저 한국교회야, 화 있을진저 대한한국아"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 회개하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이제부터 주저앉기 시작할 것이며 한국이라는 나라는 역사 속에서 침몰하고야 말 것입니다. 이 책임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다른 사람 아닌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남 아닌 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진정 회개하는 주의 백성들 됩시다. 회개하는 믿음으로 교회를 변화시키고 나라를 살립시다. 이것은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촉구하시는 가장 급한 일입니다. 피해서도 안 되고 미루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이 시대에 이 세상을 위하여 계속해서 더욱 크게 더욱 귀하게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시는 도구가 되는 한 우리나라는 번영할 수밖에 없고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회개 속에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개인적, 교회적, 사회적 국가적 어려움을 푸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의 회개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기뻐하시고 그 어떤 제사보다도 통회하는 마음을 받으시며 회개하는 이에게 넘치는 복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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