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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이비 인생목적 (마 1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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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인생목적
(마태복음 11:7-9)

지난 주 우리가 얼마나 귀한 존재로 지어졌는지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우연히 지구에 던져진 외로운 존재가 아닙니다. 분명한 목적과 설계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오장육부와 마음과 생각까지 옷감을 짜듯 만드셨습니다. 사랑의 기술로 날실과 씨실을 재료로 하여 짜셨습니다. 어떤 물건이든 만든 사람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듭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 목적과 존재 목적은 같아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 목적을 잘못 설정하도록 만드는 요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럴듯한데 아닌 목적이 많습니다. 저는 그런 잘못된 인생의 목적을 사이비 목적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사이비(似而非)’란 아주 다른 게 아니고 겉으로는 그럴싸한데 아닌 것을 말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광야에 갔던 이들이 왜 갔느냐는 질문을 통하여 목적을 밝혀주는 내용입니다. 사람들이 광야에 간 이유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러 간 것도,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을 보러 간 것도 아닌 선지자 요한을 보러 간 것이라는 말씀을 하면서 요한은 선지자보다 나은 자라고 평가하십니다.

이 말씀과 똑 같은 상황이 우리 인생에서 오늘날 벌어집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무엇을 위하여 사느냐?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냐? 선한 일을 많이 하기 위해서냐? 그럼, 물질을 남기기 위해서냐? 아니라 영생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니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교묘히 속이는 사이비 인생목적에서 해방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름 남기기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참으로 멋있 속담입니다. 그러나 이 속담이 무수한 호랑이들의 가죽을 벗겼습니다. 우수개 소리이지만 그래서 지금은 한국의 호랑이를 볼 수 없나 봅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람들의 껍데기를 벗기려고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름을 남기면 된다고 말입니다. 이 말은 주객이 전도될 수 있는 위험한 속담입니다. 참되게 살다보니 이름이 남는 것이지, 이름을 남기기 위해 사는 게 아닙니다.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명예를 위해, 권력을 위해 산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잠22:1]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여기서 ‘명예’는 히브리어 ‘쉠’으로 ‘지위, 명예, 명성, 평판’ 등으로 번역됩니다. 쉽게 말해 타인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얼마나 굴욕적인 말인지 알면 놀랄 것입니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얼마든지 거짓을 행할 수 있습니다. 비굴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목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를 속이고 이름을 남기는 것은 옳은 삶의 방법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항상 염려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대해 가지고 계시는 목적이 중요하지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사람은 자기 수준에서 평가합니다. 인생의 진정한 평가는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잠언의 말씀은 재물보다는 명예를, 은금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추구하라는 말로, 보이는 세계보다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것이 있음을 말씀한 것입니다. 이름 남기는 것 너무 좋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보다는 자기 이름 남기려다 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성경에서 사울 왕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갈멜에 자기 기념비를 세웁니다. 그러나 그는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좋은 전리품과 살진 가축들을 진멸하지 않고 자기 소유를 삼으려다 자기가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삼상15:23). 그가 세운 전쟁 기념비, 그의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여러분의 명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예입니다. 삶의 진정한 목적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선행 쌓기

개나 돼지처럼 자기를 위하여만 살지 않고 남을 생각해 주고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선행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숭고한 정신이요 앞으로 후손에게 남겨줄 위대한 유산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고등종교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입니다. 성경도 이런 삶을 가치 있는 삶으로 말씀하십니다. [잠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하나님께서도 그런 삶을 사는 사람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게 인생의 목적은 아닙니다. 이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작은 목표이지 인생의 목적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무엇을 바라고 하는 덕목이어서는 안 됩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과거의 업보를 선행과 자비를 통하여 상쇄하고 더 나아가 미래를 준비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그 의미가 다릅니다. 이미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사랑이 고마워 이웃을 사랑하는 차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고아나 과부,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라고 하신 이유는 그들도 애굽의 종살이의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니 과거를 생각하며 선대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선행은 이 세상에 국한된 이야기입니다.

삶의 목적은 이 세상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이 세상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요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만 국한된 존재라면 선행이 가장 귀한 덕목입니다. 그러나 저나 여러분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세상만의 존재가 아닙니다. [요일4:5]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세상에 속한 자는 세상의 목적으로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선행은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만족을 위해서 하면 안 됩니다.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해도 안 됩니다. 왼손이 하는 걸 오른손이 모를 정도로 은밀히 해야 합니다. [마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구제도 선행도 모두 하나님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물질 모으기

한국인의 의식구조 속에 건강과 재물보다 귀중한 것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불길한 징조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쓰다가 놓고 가는 것들입니다. 영원을 선물로 받은 인간이 한시적인 것만 누리려고 아등바등한다면 만드신 하나님 기분 나쁘실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소유하기 위해 사는 것보다 피곤한 일은 없습니다. 소유의 속성상 만족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것을 얻고자 노력하며 그 결과가 올 때 잠시 만족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은 많으면 많을수록 사람의 삶을 구속합니다.

삶의 가치는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가졌느냐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존재 가치와 소유 가치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만약 같다면 부자는 행복하고 돈이 조금 없는 사람은 불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혼율, 자살률은 잘 사는 나라일수록 더 많습니다. 많이 가질수록 현실에 불만을 더 많이 가진다는 증거입니다. 영원을 위해 창조된 성도가 세상이 다 그런다고 재물 모으기로 인생을 탕진하면 안 됩니다.

[잠27:24] “대저 재물은 영영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 영원한 것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물질에 대한 교훈은 대부분의 성도들이 많이 들은 말씀이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딤전6:1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올해는 이 물질에 관한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자 청년의 쓸쓸한 뒷모습이 여러분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럴 듯하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지만, 삶의 목적이 아닌 것들이 있습니다. 이름을 남기며 명예를 얻는다는 것이 그것이고, 선행을 베풀며 물질을 모으는 것이 그것입니다. 땅에 소망을 두는 이와 같은 목표가 아니라 영원을 위해 창조된 하나님의 목적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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