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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꿈꾸는 교회 춤추는 교회 / 행 28: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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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교회 춤추는 교회 / 행 28:30~31


올해 우리 교회의 비전은 ‘꿈꾸는 교회, 춤추는 교회’입니다. 저는 교회를 생각하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편, 세상에서 비난을 받는 교회도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병들어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교회의 진정한 모습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런 교회는 세상의 희망이 될 수 있고, 또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저는 진정한 교회를 ‘꿈꾸는 교회, 춤추는 교회’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진정한 교회는 존재하는가?

교회에 대해 몇 가지를 질문하고 싶습니다. 하나, 세상에 진정한 교회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진정한 교회는 사도행전 시대에도, 2,000여 년이 지나 다양한 욕구가 분출되는 오늘날에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둘, 교회가 이 시대의 진정한 희망이고 대안일까요? 저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이 시대의 희망이고 대안입니다. 교회가 살면 세상이 살고, 교회가 죽으면 세상도 죽습니다.

교회가 많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많아도 세상은 어둡고 복잡하기만 합니다. 그것은 교회가 내용을 상실한 채 형식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분연히 일어나야 교회를 다시 살려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살아있는 교회를 실현해야 합니다.

저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교회가 대안이라고 믿습니다. 정치계에 몸담고 있는 성도는 많은 비난을 무릅쓰고 정치 현장에서 순교하겠다는 각오로 정직하게 정치해야 합니다. 저는 그런 정치가들이 우리 교회에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사업하시는 분들은 정직하고 투명하게 기업을 운영해야 합니다. 탈세하지 않고 노동력 착취하지 않으며 성실하게 사업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대학교 총장님, 교수님, 교장 및 교감 선생님 그리고 일선 학교의 선생님들이 계실 줄 압니다. 이런 분들로 인해 한국의 교육계와 학교가 크게 변화할 줄 믿습니다.

교회는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대안이 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권위주의를 버리며 물질 왕국을 만들지 않는다면, 세상의 빛이 되고 희망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상적인 교회의 모형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교파나 교단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Kingdom Church)를 교회의 이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세상에 오신 것처럼, 새 하늘과 새 땅이 세상에 온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새 하늘과 새 땅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적 교회의 특징

이제 사도행전의 교회를 살펴보면서 온누리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아보겠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는 열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성령으로 잉태한 교회
첫째, 성령으로 잉태해 성령 사역하는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2장 1~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해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신 것처럼, 교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태어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는 공동체요,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세례가 임한 것입니다.
성령의 경험이 없고, 성령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사도행전적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교인들이 많고 건물이 크다 해도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다면 사도행전적 교회가 아닙니다.


2) 서로 통용하는 예수 공동체 교회

둘째, 예수 공동체를 이루는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2장 42~47절 말씀을 읽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사도행전의 교회는 성도들이 모여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예배를 드리며,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극장이 아니고 헌금은 입장권이 아닙니다. 모두 함께 기도하고 성경 말씀을 배우며, 찬양하고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이 교회입니다. 현대에서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한 사회, 예수님의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3) 기적을 체험하는 교회

셋째,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는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3장 6~10절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태어날 때부터 앉은뱅이여서 희망도 미래도 없던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 발과 발목에 힘을 얻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걷고 뛰었습니다. 영적 앉은뱅이, 영적 청각 장애, 영적 백치가 교회에 와서 기도하고 찬송하며 예배를 드림으로써, 날마다 뛰고 들으며 깨닫는 기적들이 교회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의 교회입니다.


4) 고난에도 복음을 전하는 교회

넷째, 고난 중에도 계속 복음을 전하는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4장 1~4절을 보겠습니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저희를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문 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들을 환영하지 않고 잡아다 감옥에 가뒀습니다. 그리고 칼로 찌르거나 성전의 높은 꼭대기에서 떨어뜨리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고난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위기를 넘길 수 있는 영적 능력을 주십니다. 곧 ‘고난당하는 교회(Suffering Church)’인 것입니다. 교회는 고난을 겪으면서도 굴복하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영적 공동체입니다.


5) 재물을 나누는 교회

다섯째, 재물을 나눠 쓰는 공동체입니다. 사도행전 4장 32~35절 말씀을 봅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

초대 교회는 물질에 대한 유혹을 초월했습니다. 교회엔 부자도 있고 가난한 자도 있습니다. 배운 자도 있고 배우지 못한 자도 있습니다. 건강한 자도 있고 건강하지 못한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것을 개인의 소유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물질을 초월하는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6) 정직, 순결, 거룩한 교회

여섯째, 정직과 순결과 거룩한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5장 1~4절 말씀입니다.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초대 교회에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땅을 팔아서 얼마를 감춘 후에 헌금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헌금의 액수에 관심이 없습니다. 부부가 원해서 땅을 팔았고, 팔고 나서 받은 땅 값도 그 부부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전부를 냈다’고 말해 하나님과 사람을 속인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교회가 정직과 순결, 거룩을 원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교회가 많은 일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는 게 아니라, 중심을 보고 취하십니다. 저는 온누리교회가 진실하고 정직하며 내적 성숙이 있는 사도행전적인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7) 영적 지도자를 세우는 교회

일곱째, 영적 지도자를 세우는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6장 3~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교회의 리더십은 한 사람이 독점하지 않고 여러 사람들이 나눠 가집니다. 교회의 주역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우리는 모두 조연에 불과합니다.
교회에서 사람이 영광을 받으면 죽은 교회가 되고 맙니다. 사람 중심의 교회가 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교회의 리더십은 나눠지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시대를 이끌 수 있는 리더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8) 이방인을 품는 교회

여덟째, 이방인을 가슴에 품는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10장 44~48절을 읽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로마의 군대 장관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을 사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 고넬료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방인에게 세례를 줄 수 없다며 거부했다가 하나님께 야단을 맞았습니다. 그런 후에 베드로는 고넬료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교회에서 백인과 흑인, 동양인과 서양인, 남자와 여자, 어른과 어린이들은 모두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1, 2, 3차 전도 여행을 통해 이방인들을 찾았습니다. 저는 한국이 복 받는 방법은 이 땅에 찾아온 이주 노동자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 안에서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복을 받을 방법이 없습니다. 불법 체류 이주 노동자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많은 문제들이 있겠지만, 우리는 그들을 포용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는 힘없고 약한 자를 찾고 소외된 자를 품어야 합니다.


9)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교회

아홉째,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13장 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사도행전적인 교회에서는 담임 목사가 선교지로 가야 합니다. 그곳에는 이방인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비전과 열정이 있습니다.
서울 시내는 우리의 선교지입니다. 우리 모두는 서울의 선교사들입니다. 서울의 환경, 교통, 쓰레기 문제 등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우리가 사는 곳이 바로 선교지입니다. 우리는 가정의 선교사이고 직장의 선교사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순교할 각오가 돼 있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8시간 일하라고 한다면 10시간 일할 각오가 돼 있어야 합니다. 수당을 주지 않아도 기쁜 마음으로 밤새워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선교사의 마음입니다. 서울시에 사는 사람들이 서울을 변화시키고, 대전에 사는 사람들은 대전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10) 사도행전 29장을 쓰는 교회

마지막으로 사도행전 29장을 쓰는 교회, 새로운 교회를 낳는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28장 30~31절 말씀입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사도들의 행적은 끝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28장 끝 부분에 보면, 사도 바울은 2년 동안 셋집에서 성경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찾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서로 왕래해도 금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과 2년 동안 성경을 공부한 사람들은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분명히 어딘가에 새로운 교회를 세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 주님의 기적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9장을 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29장을 쓰는 사람들입니다. 교회가 교회를 낳는 일은 2,000여 년 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저는 온누리교회가 사도행전적인 교회의 열 가지 모습을 모두 갖추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교회를 꿈꾸며, 그로 인해 즐겁게 춤추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주님,
온누리교회가 사도행전 29장을
쓸 수 있도록 하옵소서.
온누리교회가 사도행전 29장을 만드는
사람들로 가득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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