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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협동단결의 정신 / 전 4:9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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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단결의 정신

본문: 전도서 4: 9 - 12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이솝우화에 보면 얼룩 소, 검은 소, 붉은 소 세 마리는 언제나 함께 다녔습니다. 사자는 그 소들을 잡아먹고 싶어서 매일같이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 마리의 소는 언제나 같이 다니면서 사자가 덤벼들면 셋이 한꺼번에 대항하였기 때문에 잡아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때는 서로 떨어져서 풀을 뜯고 있어서 한 마리에게 달려들면 다른 두 마리의 소가 달려와서 제 동무 소를 위해 덤비기 때문에, 사자는 싸우다가 지쳐서 돌아가곤 하였습니다. 하루는 풀밭에 얼룩소가 따로 떨어져 있으므로 사자는 가까이 다가가서 은근한 목소리로 "세 마리의 소 중에서 가장 힘센 것은 자기라고 붉은 소가 뽐내더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얼룩소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여태까지 셋이 똑같이 힘을 합해 적과 대항해 싸워왔고 무슨 일이든지 함께 도와 왔는데 붉은 소가 모두 제 힘으로 그렇게 된 것처럼 말을 했다하니 건방진 소리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사자는 얼룩소에게 거짓말을 해 놓고는 붉은 소와 검은 소 있는 데로 가서는 또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세 마리 가운데서 얼룩소가 제일 기운이 세고 다른 짐승에게 지지 않는 것도 얼룩소 때문이라고 하니 그게 참말이냐?"고 두 마리 소에게 물었습니다. 두 마리의 소는 얼룩소의 말이 건방진 소리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붉은 소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얼룩소에게 덤벼들었습니다. 얼룩소도 붉은 소가 자기가 제일이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던 터이라 있는 힘을 다해 덤볐습니다. 검은 소가 말렸지만 두 마리의 소는 뿔이 빠지도록 싸웠습니다. 그러나 두 마리 중 어느 편이 정말 센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 날부터 세 마리의 소는 같이 놀지를 않았습니다. 사자는 좋아라 하며 소들을 차례로 잡아먹었습니다.
누가복음 11장 14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한 벙어리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벙어리가 말하는 것을 본 사람들이 다 놀라며 예수님을 좇으려하자 이를 시기한 사람이 예수가 귀신을 내 쫓은 것은 저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말하자 이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단이 스스로 분쟁하면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하시면서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하셨습니다.
저는 역사공부를 하면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 때 신라가 통일시키지 않고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였더라면 지금의 만주 땅은 우리 것이 되었을 텐데 하며 아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고구려가 왜 망했는지 아십니까? 그 강성했던 고구려가 망한 이유는 막리지 연개소문에게 3아들이 있었는데 3형제가 서로 싸워 분쟁하는 통에 망한 것입니다. 이 3형제가 힘을 합하였더라면 결코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왜 협동 단결하여야 하는 가를 살펴봅시다.
첫째.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마을에서 가장 무거운 썰매를 끌 수 있는 건강한 말을 뽑는 대회가 열렸습니다. 그 대회에서 1 등을 한 말은 2,000kg이나 되는 썰매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2등을 한 말은 1,800kg이나 되는 썰매를 끌었습니다.
이 두 말의 주인들은 만약 두 말이 힘을 합하면 얼마만큼의 무게를 끌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두 말이 함께 썰매를 끌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5,500kg이나 되는 썰매를 끌 수가 있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교만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과 나누어 함께 하기를 거부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혼자서 끙끙거리면서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참으로 비능률적인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더불어서 일하기를 권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의 짐은 가벼워지며, 우리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둘째, 우리가 왜 협동 단결하여야 하면은 하나님께서 서로 도우며 공생하도록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서로 도우며 공생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코뿔소는 시력이 대단히 나쁩니다. 그러나 이 동물의 거친 살갗에 몰려드는 새들이 있습니다. 이 새들은 코뿔소의 등위에서 곤충들을 잡아먹는 대신 그들의 민감한 감지력으로 코뿔소에게 위험을 알리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레이틀이라는 오소리의 일종과 두견새는 모두 꿀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둘은 같이 행동합니다. 아주 좋은 시력을 가진 두견새는 꿀이 있는 벌집을 잘 찾아내고 레이틀의 강한 발톱은 벌집을 파헤쳐 같이 꿀을 나누어 먹습니다.
저는 T.V에서 방영하는 동물의 세계를 자주 보는데 사자들을 비롯한 많은 동물들이 서로 협동하여 사냥도 하고, 협동하여 적을 물리치기도 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덩치가 큰 코끼리도 떼지어 다닙니다. 코끼리도 함께 다니지 않으면 코끼리 새끼들이 위험하다고 합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부근에 '레드우드'라는 공원이 있습니다. 사막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공원에는 우람한 적성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심한 더위와 가뭄 때문에 아무 것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이 사막에 어떻게 레드우드 공원과 같은 숲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물을 주기도 하지만, 여러 나무가 함께 자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많은 나무가 함께 자라면서 바닥엔 늘 그늘이 지고 습기의 증발이 억제되어 나무가 죽지 않고 숲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처음에 울창했던 밀림의 나무들도 한 그루씩 자꾸 베어지면, 앞서의 경우와는 반대로 점차 땅이 보습 기능을 잃고 메마르게 되어 나머지 나무들도 전부 말라 죽고 맙니다. 이처럼 서로 도우며 공생하는 것이 자연의 질서인데 이 질서가 이기주의에 의해 파괴되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공멸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하나의 합창단과 같습니다. 그런데 종종 독창만 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손해가 나고,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어도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을 위해 희생하고, 참고, 화합하여야 합니다.
출애굽기 17장 12절에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나갈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그들의 길을 막으며 싸우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때에 모세는 여호수아로 하여금 청년들을 인솔하고 나아가 싸우게 하는 동시에 모세는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 손을 들어 기도를 하였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고 하였습니다. 모세의 팔이 피곤하여지매 아론과 홀이 좌우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주니 큰 승리를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즉 협동을 통하여 큰 승리를 얻은 것입니다.
또 출애굽기18:14-26절에 보면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모세가 혼자서 백성들을 돌보느라 너무 힘들어하자, 모세에게 충고하여 천부장, 백부장 등을 세워 협력하게 하였습니다. 또 사도행전6장 1- 7절을 보세요. 초대 교회 때도 사도들이 집사들을 세운 것은 업무가 너무 벅차므로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 전념(전무)하기 집사들의 협력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나라 농촌에는 계, 향약, 두레, 품앗이 등의 좋은 협동단결의 풍속과 장신이 있었습니다. 한 예로 논밭을 갈 때 각자 뙤약볕에서 혼자서 끙끙거리며 자기 밭만을 가는 것과 이웃이 함께 모여 풍악을 울리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겁게 한 집 한 집 다니면서 논밭을 함께 가는 것과 어느 쪽이 더 쉽고 능률이 나겠습니까? 두레, 품앗이 등의 협동정신을 계승합시다.
셋째, 여럿이 힘을 합친 것이 혼자의 힘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어느 농부의 자식들이 싸우기를 잘했습니다. 그들의 아버지가 아무리 타일러도 싸움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말로 타일러서는 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아버지는 여러 가지로 생각하던 끝에 이른바 실물교육을 할 수 있는 묘안을 생각해 냈습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회초리 한 단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아버지가 시키시는 대로 자식들은 각기 회초리 한 단씩을 가져왔습니다. 아버지는 먼저 그 회초리를 자식들에게 내어주면서 그것을 꺾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회초리 단을 꺾는 아들은 없었습니다. 자식들은 땀을 흘리면서 애를 썼으나 끝내 꺾을 수 없음을 깨닫고 회초리 단을 내려놓고 꺾을 수 없다고 아버지께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이번에는 그 회초리단을 풀어서 한 개비씩을 자식들에게 나누어주고 꺾어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자식들이 모두 힘 안들이고 그 회초리를 꺾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이제 알겠느냐? 너희들은 서로 합심하면 결코 적에게 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너희들이 서로 싸우고만 있으면 적에게 패하고 말 것이다." 주안에서 한 지체가 되고, 한 형제 된 성도는 서로 사랑하고, 협동 단결해야 합니다. 협동은 환난 날에, 그리고 마귀의 핍박에서 이길 수 있는 훌륭한 비결입니다.
넷째, 우리가 왜 협동단결해야 하면 하나님께서 서로 돕고 사랑하는 마음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전설 속에 나오는 피히 새가 있습니다. 그런데 피히새는 날개가 하나밖에 없습니다. 수컷은 오른쪽 날개가 있고, 암컷은 왼쪽 날개만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각각 떨어져 있을 때는 날개가 하나밖에 없기에 앞으로 날지 못하고 한참을 날아 이제는 산 넘어 왔겠지 하고 보면 그저 원을 그리며 제자리에서 맴돌기만 할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컷과 암컷이 만나 사랑을 나누고 나란히 한 몸이 되어 날아가면 그들은 높은 곳이나 낮은 곳 그리고 먼 곳 어느 곳이나 훨훨 날아다닐 수 가있습니다. 서로 한 몸을 이루어 협동하고 서로의 날개짓을 격려해 줄 때 가장 아름답게 날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피히새처럼 서로 돕고 사랑하는 마음을 원하십니다.
요 근래 독신주의를 주장하는 처녀, 총각들이 있는데 결혼 안 하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나이가 많이 들면 확실히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40이 넘은 노처녀, 노총각들이 얼마나 후회하는 지들 몰라요. 혼자보다 둘이 힘을 합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그리고 기러기들은 v자 대형으로 하늘을 납니다. 비행기와 망원경으로 기러기를 추적한 조류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1) 기러기는 혼자 나는 것보다 떼지어 날 때 71%나 더 오래 날 수 있다. (2) v자 대형을 이루는 것은 공기대가 형성되어 뒤따르는 기러기들의 비상이 쉽기 때문이다. (3) 날면서 계속 우는 것은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 상대를 격려키 위한 것이다.
잠언30:24- 2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개미와 메뚜기에게서 지혜를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개미와 메뚜기에게서 무엇을 배우리는 것입니까? 바로 협동 단결의 정신입니다. 우리는 기러기와 벌과 개미와 떼를 지어 나아가는 메뚜기에게서 협동의 정신을 배웁시다.
작은 것이라도 모아지면 커집니다. 어떤 교회에서 바자회를 하는데 각 가정에서 쓰지 않는 것 아마 쓰레기통에 들어가기 직전인 것들인, 헌옷, 책, 장난감을 모으고 여집사님들이 음식 장만하여 행사하는 데, 제법 큰돈이 마련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희 집이 청량리 인데 청량리 롯데 백화점에서 식품을 구입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마이리지라는 것이 있어 3개월 동안 10만 원 어치를 사면 7-8 천원 상당의 선물을 줍니다. 귀찮다고 영수증을 버리면 얻지 못하지만 조금씩 모아지면 돈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100 권 가까운 책을 저술했는데, 처음에 책을 내게 된 동기가 학교에서 매주 토요일을 '효경의 날'로 운영하는데 제가 윤리주임으로서 효도에 관한 글을 모으다 보니 감명적인 글이 많아 원고를 모아 출판사에 책 출판을 의뢰하였다가 베스트 셀러는 못되었지만 책이 잘 나가는 통에 계속 출판사에서 글을 요청하다보니 이렇게 많은 책을 저술한 저술가가 된 것입니다. 또 제가 옛날에 전화카드 모으는 취미를 가져 남이 버린 것을 모았는데 수십 개 모았는데 나중에 전화국에 가져가니까 새 것으로 교환해 주더군요. 하찮은 것도 모아지면 귀중하게 쓰여집니다. 하찮게 보이는 자갈도 모아지면 비싸게 팔립니다. 하찮아 보이는 사람도 힘을 합하여 위력을 보입니다.
종이 한 장은 간단히 누구나 찢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어린아이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화번호 명부를 봅시다. 누가 이 책의 한 가운데를 찢을 수 있겠는가?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많은 종이가 겹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한 장이라면 그처럼 간단히 찢어져도 여러 장이 겹쳐져 있으면 좀처럼 찢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도 신자들이 모여 함께 일하면 큰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마귀도 하나님의 자녀가 함께 기도하고 힘을 합치면 그들을 해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우리는 교회에 모여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힘써야 합니다.
다른 이야기입니다. 해가 질 무렵 앉은뱅이와 장님이 고개를 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앉은뱅이는 속도가 느리고, 장님은 보이지 않아 더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둘은 생각 끝에 장님이 앉은뱅이를 업고 앉은뱅이는 장님의 두 귀를 잡고 방향을 알려 주기로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무사히 고개를 넘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교회에서 서로의 도움을 필요로 하며 이렇게 서로 도울 수 있다면 교회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 될 것입니다.
다섯째, 협동하지 않고 분쟁하면 둘 다 공멸하기 때문입니다.(마12:25, 딤전6:4)
독일 베벤하우젠 근처의 오래된 수도원에 가면 서로 엉켜 있는 두 개의 사슴뿔이 전시되어 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라고 묻는다. 그럴 때 원장은 웃으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 뿔은 여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입니다. 두 개의 뿔이 엉켜 있다는 것은 두 마리의 사슴이 서로 치열하게 싸우다가 상대방의 뿔 속에 자신의 뿔을 쑤셔 넣음으로써 그만 떨어질 수가 없게 되었고 버둥대다가 끝내 둘 다 굶어 죽게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웃과 분쟁하고 싸우면 둘 다 이처럼 죽습니다. 또 동화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숲에 참새 집이 있었습니다. 참새가 며칠 집을 비운 사이에 토끼가 와서 살았기 때문에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싸움을 지켜보던 고양이 한 마리가 재판을 자청하고 나섰습니다. 참새와 토끼는 고양이에게 재판을 부탁했습니다. 고양이는 자기 앞에서 또 한번 싸워보라고 요구했습니다. 악이 오른 참새와 토끼는 다시 싸움을 시작했고 고양이는 번개처럼 달려들어 참새와 토끼를 모두 잡아먹었습니다.
성경 디도서 3장 9절에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교회 안에서 형제가 다투고 싸우면 마귀의 밥이 됩니다. 제가 공군 정훈참모로 근무하고 있을 때 저희 사무실에 상사 한 분이 계셨는데, 이 분이 술을 무척 좋아했는데 크리스마스 전날 술 마시고 혼자 가다가 술로 인해 길에 넘어져 쓰려져 있는데 마침 눈이 내려 상사의 몸 위를 덮어 그만 그 위로 차가 지나가 죽었습니다. 헌병대 연락을 받고 가보니 비참했는데 속으로 "술친구와 같이 갔더라면 죽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섯째, 협동하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위기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공군 장교 군사훈련을 받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담요를 개는데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왜냐하면 이불을 직각 사각형으로 만들어 놓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더구나 겨울이어서 내무반이 무척 춥지요. 그런데 옆에 동료와 함께 한 이불에서 자니까 밤에 춥지도 않고, 둘이서 이불을 개니 얼마나 손쉬운지 몰라요. 그 덕분에 남이 이불개는 동안 우리는 세면 세치 일찌감치 하고 참 좋았어요. 백지장도 마주 들면 가볍다는 우리 속담도 있지 않아요.
어떤 동화책에 보니까 농부가 새를 잡기 위해서 여기저기 그물을 쳐 놓았습니다. 어느 날 여러 마리의 참새들이 그물에 걸려 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물에 걸린 참새 가운데 한 마리가 외쳤습니다. "이대로 잡힐 순 없다. 살아야 한다. 자아, 우리 모두 동시에 힘껏 날아올라 이 그물을 저 큰 나무에 걸어 보도록 하자. 그러면 우린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라고 말입니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참새들이 동시에 힘껏 솟구쳐 날아올랐습니다. 그러자 그 무겁게 쳐져 있던 그물이 움직였습니다. 참새들은 그물을 큰 나무에 걸고서 모두 빠져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형제들을 위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참새처럼 모두가 한 곳에 힘을 합하면 아무리 힘든 일도 잘 풀리게 마련입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속담의 속뜻을 실감나게 합니다. 주어진 일에 체념만 하고 앉아 있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교회는 초대교회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며 협동단결하며 하나가 되었습니다.(행4ㅣ32)
일곱째, 우리는 모두가 연약한 존재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목공소에 목공소 연장들의 회의가 시작되었다. 누군가 '망치야, 너는 소리를 크게 내기 때문에 없어져야 한다'고 했다. 망치는 '내가 떠나면 톱도 떠나야 한다. 이것저것 무엇이든지 사정없이 잘라내니 말이다.'라고 대꾸했다. 톱은 '내가 떠나면 대패도 떠나야 한다. 대패는 항상 남의 깊은 속은 모르고 겉만 보고 깍아내니 떠나야 한다.' 그러자 대패도 한마디했다. '내가 꼭 떠나야 한다면 자(尺)도 떠나야 한다. 자는 항상 자기 것만 옳다고 하며 모든 기준을 자기중심으로 해서 크고 작다고 평하기 때문이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렇게 목공소 연장들의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중에 나사렛 목수가 들어와서 작업복을 갈아입으시더니 강대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사렛 목수는 강대상을 만들 때에 대패, 망치, 톱, 자 등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아니하고 모두 사용했다. 하나님은 쓰레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잠언 16장 4절에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쓰여지기 위하여 지어졌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은사와 직임이 서로 다르고 각자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와 다르다고 쓸데없다 하거나 소홀히 하면 안됩니다.(고전12:4-27) 만약 한 지체라도 없으면 병신이 되거나,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목수에게는 톱, 자, 대패, 망치 모두가 다 필요합니다. 어느 한 가지라도 없으면 만들고자 하는 물건을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으로 하늘나라를 건설키 위해서 주님은 어느 한 사람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편이 더 좋았을 것이라던 가룟 유다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부활과 승천하시는 구속사를 성취시키는 데 한 도구의 인간으로 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중 어느 누구도 필요 없다 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용서와 이해, 인내와 사랑 가운데서 서로 협동하며, 몸 된 그리스도의 한 지체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옆에 앉아 계신 분에게 "우리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됩시다." "협동 단결합시다"라고 말씀해보세요.
힘은 하나될 때에 강하게 역사합니다. 힘의 세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됨(Unity), 둘째, 조화(Harmony), 셋째, 협력(Cooperation)입니다. 자동차 한대를 만들기 위해 약 2만개의 부품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 2만 개가 모여서 하나의 자동차가 됩니다. 자동차 한 대가 제대로 되려면 그 부속품 하나 하나가 전부 제구실을 해야 합니다. 어느 하나라도 말썽을 부리면 안 됩니다. 어느 것 하나도 빼 놓고 달릴 수 없습니다. 2만개의 부속이 똑같이 힘을 협력해야 조화를 이루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도 한 분이시고, 이 지구도 하나뿐입니다. 우리도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주안에서 한 형제가 되고 협동단결하여 교회를 부흥시키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사랑이 많으신 주님,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은 천하만민 중에서 저희들을 택하여 주시고 저희들에게 자유와 건강과 주를 경외하는 마음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주님, 우리의 마음이 주님 보시기에 너무나 악합니다. 저희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변화시켜 주시고 회개의 영을 부어 주시어 겸손과 온유와 사랑이 넘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가득차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자신을 생각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 어려운 이웃을 구제하고, 돕고 용서하는 마음을 주시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 않도록 우리 입술을 지켜주시고 항상 친절하고 격려하며 도움되는 말과 입술이 되게 하소서,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인내로서 아무리 힘든 사명도 완수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게 하시고 성도들이 협동단결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교회발전에 이바지하게 하옵소서. 우리 담임 목사님에게 더욱 더 신령한 은혜와 복을 주셔서 새성광교회 모든 교인들을 인도하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시고,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지혜와 건강을 주시고, 굳센 믿음과 성령 충만함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새성광 교회 설교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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