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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되고 형통한 가정 / 시 1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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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복되고 형통한 가정
본문 : 시편 128장 1~6절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찌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찌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찌로다  시편 128장 1~6절 말씀

  이번 주간이 설인데요. 자녀들이 부모님을 찾아 온 가정도 있을 것이고, 고향에 다니러 가는 가정들도 있을 거예요. 이번에는 명절 기간에 눈이 온다고 하는데, 집 떠나면 고생이에요. 이번 명절도 사고나 어려움 없이 오고 가는 교통편들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잘 되는 장소가 따로 있고, 복을 받는 곳이 따로 있는 것 아니에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 복된 곳이고, 주님 기뻐하시는 길가는 것이 형통한 길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하나님 싫어하는 길로 가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고 복 받은 개인이나 나라가 없어요. 무엇인가 이루어 놓은 것 같고, 잘되는 것 같은데 쉽게 무너져 버리더라는 거예요. 주안에 참으로 복된 길이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우리 인생이 열리고, 가정의 앞날이 열려지는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 1.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3. 내 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 주시네 후렴)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오늘 시편은 우리의 가정이 복되고 형통한 가정되는 비결에 대하여 말씀해 줍니다. 만족한 기쁨과 축복의 길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것에 있고, 하나님께 복종하며 사는 것에 있다는 말입니다. 1절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데, 영적 축복뿐 아니라 세상에서도 복을 주십니다. 흔히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합니다. 기분 좋은 말입니다. 정말 그렇게 되어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새해가 되었다고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더라는 거예요. 날마다 떠오르는 해가 정월 초하루라고 새로워지는 것은 아니에요. 문제는 해가 아니라 사람에게 있습니다. 새해가 왔어도 새것이 나에게 없다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새해의 의미는 사람의 마음이 새롭게 되는 것에 있습니다. 새롭게 출발하는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새 마음으로 출발하는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아직도 시간이 많다고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뤄 버리면 또 한해는 쉽게 지나가 버릴 것입니다. 100미터 우승자로 유명한 칼 루이스는 우승의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남보다 빨리 출발하는데 비결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출발이 잘못되면 그 마지막은 무서운 불행이 되고 맙니다. 한술에 배부를 수는 없습니다. 당장, 단번에 안 이루어져도 말씀대로 순종하며 나아가는 인내하는 믿음 있어야 합니다. 인내하며 말씀따라 살기를 힘쓸 때 이런 복이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은 모든 것의 원리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고, 말씀 붙들고, 말씀대로 나아가는 자는 복되고 형통할 줄로 믿습니다. 집이나 나라나 한 사람만 믿음에 바로 서고, 하나님 마음에 쏙 들만큼 잘 믿으면, 가정도 건지고 나라도 건지게 됩니다. 내가 이런 한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가정을 잘 지켜 믿음의 가정, 축복의 가정 만드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영생을 얻고 우리를 복되고 형통하게 살게 하시려고 불러주셨습니다. 순종을 미루면 한참 고생하고 나서 결국은 그 길을 가게 됩니다. 옛날에 어느 부자가 개를 참 좋아해서 족보가 있는 개를 키우다가 잃어버렸다. 주인이 종을 불러 잃어버린 개를 당장 찾아오라고 하였는데, 종이 말대꾸를 하기를, 주인의 종이지 개의 종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고는 안 갑니다. 그랬더니 주인이 가마를 준비하라는 거예요. 종이 가마를 대령하고 "어디로 갈까요?" 물었더니, 주인이 "개를 찾으러 가자" 그랬다는 이야기입니다. 불순종하니 몇배나 힘든 길을 가더라는 거예요. 처음부터 순종하는 길이 복되고 형통한 길인 줄로 믿습니다. 시편16:2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복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능력의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복 주시는 하나님! 환경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면 우리는 복 있는 자로 살게 됩니다. 살아가면서 가장 큰복이 무엇일까요? 자녀가 잘되면 좋습니다. 몸도 건강해야지요.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에요. 가장 근본적인 복은 죄 용서함 받고, 죄 씻음 받고, 정결케 되는 복이 가장 큰복입니다. 그래서 시편32:1 "허물의 사함을 얻고 죄의 가리움을 받는 자는 복이 있도다" 죄 문제 해결 받는 것이 왜 제일 큰복이 됩니까? 죄는 그물과 같은 거예요. 자유롭게 살던 고기가 그물에 걸리면 그때부터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결국은 원치 않는 길을 가게 되고, 죽음의 길을 가게 되듯이, 사람도 잘 사는 것 원하지마는, 죄 때문에 자유를 잃어버리고, 결국은 안 되는 인생, 망하는 인생 살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조건 갖추어도 별수 없어요. 가정도 그렇습니다. 

  2절에 보십시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그저 근심 걱정없이 편하게 먹고사는 것을 약속한 것이 아닙니다.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이 땅에 사는 동안 할 일이 있다는 것이 복입니다. 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복입니다. 만족스럽지 못할지라도 일거리가 있다는 것,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있다는 것, 이것이 복입니다. 평소에는 잘 몰라요. 그런데 직장을 잃어버리거나, 일할 수 있는 건강을 잃어버릴 때에야 이것을 깨닫게 됩니다. 일할 수 있다는 것도 복이고, 열심히 일하는 대로 수고의 열매가 맺혀진다는 것이 복입니다. 열심히 일하면 고생한 보람이 나타나고 수고의 열매가 맺혀지는 것이 당연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죄의 세력이 그 가정을 붙들고 있으면 열심히 부지런히 사는데, 안 열리고, 안 풀리더라! 지나고 보니 결국 헛수고하게 되더라는 거예요. 힘에 겹도록 애를 쓰는데, 남는 것이 없는 고달프고 후회하는 삶을 살게 되더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애쓰고 수고하는 일들 위에 주께서 때를 따라 좋은 열매들을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가정마다 복된 가정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흔히들 믿는 것은 좋지만 적당히 믿으라고 합니다. 미치지 말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를 믿어도 고상하게 믿으려고 하지 마세요. 고상한 예수 믿는 사람은 오래 믿어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하고, 응답을 체험하지 못하더라는 거예요. 자기 예수 믿는 거예요. 윤리 예수 믿는 거예요. 바울에게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남기고 이루어놓은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이런 열정이 있습니다. 적당히 기회만 보고 눈치만 살피는 인생, 결국 큰 일을 이루지 못해요. 미치는 자가 결국 무엇인가를 이루더라는 거예요. 반 고호는 그림에 미친 사람이에요. 그러기에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냈고, 베토벤은 음악에 미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그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걸작이 나왔잖아요? 에디슨 같은 사람은 발명에 미친 사람이에요. 사람이 잘못된 것에 미치면 알면서도 망할 길 가는 거예요. 명예에 미치고, 출세에 미치면 보이는 것이 없게 됩니다. 돈에 미치고, 술에 미치고, 여자에 미쳐도 인간으로서 하지 못할 일을 하게 되더라는 거예요. 더더욱 마약에 미치고, 도박에 미치면, 자신도 망하고, 가정도 깨어집니다. 세상 것에 미치면 결국은 안 되는 삶을 살게 되지마는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삶은 형통한 역사가 일어나게 되더라! 아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길이 다른 데 있지 않아요. 시73:27-28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같이합니다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세상 것 가져보아도, 누려 보아도 결국은 헛것이구나, 아무 것도 아니구나, 깨달을 때가 옵니다. 결국은 허무한 거예요. 주님 바라보고, 주님 가까이 하는 것이 가장 큰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싸움이 무엇이냐? 내 자신과 싸워서 이기는 것입니다. 잠언 16:32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자기와 싸워 이기는 것, 참 어려운 거예요.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고 실패하게 됩니다. 내 힘만으로는 안 되는 거예요. 성령께서 도와 주셔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고, 기도하면서 내 자신을 이겨야 되요. 그럴 때에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복되고 형통한 앞날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사야 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마음의 생각과 방향을 바꾸는 것이 모든 것을 좌우합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신생아는 태어나면서 자기의 생명줄과 마찬가지인 탯줄을 잘라야 합니다. 영양을 공급받고, 생명을 공급받던 줄이지만 잘라야합니다. 이것이 사는 길이에요. 사람에게는 회귀 본능이 있습니다.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본능입니다. 지난 습관이나 생각을 무우 자르듯이 싹둑 잘라버리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신앙 생활은 자기와의 싸움이에요. 지난 것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합니다. 손해보는 인생 살지 말아야 합니다. 후회하는 인생 살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주님 바라보는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고 승리하시는 형통한 삶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다 보면 나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복된 깨달음을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 마음에 아픔을 주고, 미움으로 자리하는 사람도 생깁니다. 그런데 마음에 미움이 있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망가집니다. 굳어집니다. 은혜의 자리에서 멀어지게 되는 거예요.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콘트롤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잘 생기고 못 생기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마음을 가꾸고 인격을 가꾸면 그것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큰 믿음으로 먼저 속 사람이 더욱 강건해 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얼굴에서도 은혜의 모습이 나타나고, 주님의 사랑이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좀 고달프고 힘들어도 가까이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축복을 끼치고, 좋은 영향을 끼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씨시의 성 프랜시스가 제자들과 함께 전도를 나갔는데, 제자들은 성 프랜시스가 큰 소리로 외치며 전도를 할 줄 알았는데, 힘겹게 짐을 지고 가는 사람에게는 짐을 대신 져주고, 밭에서 땀흘리며 일하는 사람에게는 김을 함께 매주면서 하루종일 그냥 다니면서, 예수 믿으라는 말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거예요. 제자들이 의아해하며 묻자 성 프랜시스는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 우리의 인격의 향기를 통해서 그들이 예수를 만나게 된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바로 그 순간에 그들은 예수를 만나게 된다" 가정을 복되고 형통한 가정 만들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너부터가 아니라 나부터가 되야 합니다. 평생을 두고 수행을 쌓은 한 수도사가 죽음에 임하여 이런 고백을 했어요. "나는 20대에 세상을 변화시켜 보려는 뜻을 품고 열심히 뛰어다녔는데 40대에 이르러 지난날을 돌아보니 세상을 바꾸기는커녕 가까운 이웃조차 변화시키지 못하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내 이웃들을 변화시키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70대에 이르러 뒤돌아보니 이웃들은커녕 나 자신도 변화시키지 못하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주님께 나의 마음을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고, 이웃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다른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먼저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변화되지 않음을 한탄할 필요가 없어요. 주변 사람들 바라 볼 시간이 없습니다. 내 마음이 열리고, 내가 성령의 은혜받고, 내가 달라져야 이웃이 달라지고, 세상이 변화되는 일에 한 몫을 감당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런 은혜와 축복이 복된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넘치도록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남은 생애 다시 시작하는 축복의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결심과 다짐마다 하나님께서 크게 복을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걸어가는 앞날에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놀랄만한 믿음의 증거와 열매들이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점점 나아져 가는 복된 인생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각자의 길이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그 길이 외로울 수도 있고, 박수를 받지 못하는 길일수도 있습니다. 자기의 길에 우뚝 서서 자기의 길을 가는 사람, 복된 인생이고, 인생의 성공자입니다. 지금 남을 판단하고, 남의 길을 바라 볼 시간이 없어요. 나의 길 걸어가기에도 시간이 아쉬운 때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경주를 잘 감당하기 위해 벗을 것 벗어버리고, 주님 바라보며 승리의 삶, 형통한 삶, 되는 삶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잘못된 신앙 생활에 길들여지면 까다롭고, 타박하고, 불평하고, 완악하고, 골치 아픈 사람됩니다. 자신도 안 편하거니와 주변 사람들도 불편합니다. 자꾸 안 되는 길 걸어가는 거예요. 자신만 아니라 남편도, 아내도, 자녀도 축복의 길을 잃어버린 채 헤매이게 되는 거예요. 사람이 완전 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나는 옳다. 내 생각이 제일이다" 자기 의에 빠지면 참 고치기가 어려워요. 신앙 생활에 좋은 습관을 기르는 것이 참 중요해요. 바른 선택이 내일의 나를 만듭니다. 익숙해 진 것들을 바꾸고 포기한다는 게 어렵고 힘듭니다. 그러나 크게 변하면 큰 사람 됩니다. 아멘! 내가 먼저 축복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축복된 길을 갈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축복을 끼치는 존재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주님은 아낌없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주시고, 부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자리로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주 예수 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평안도 행복도 부유함도 승리도 영광도 능력도 하나님을 통하여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복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죄는 오늘 무한히 좋을지 몰라도, 내일은 멸망입니다. 주님 앞에 나오는 믿음은 오늘보다도 내일을 좋게 하고, 올해보다도 내년을 좋게 하고, 우리의 가는 앞날에 영원한 축복이 있게 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3절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식탁에 둘러앉았다는 것은 화목과 번영을 의미합니다. 감람나무 같다고 한 것은 각 방면에 요긴하게 쓸모있는 사람된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의 자녀는 이런 존귀한 복을 받습니다. 자녀들을 통하여 주님 영광 거두시거니와 자녀들이 자랑거리가 되어지고, 기쁨의 열매들이 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때로는 애써도 안 되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려면 안 되는 것이고, 주님이 지혜주시고, 축복하시면 일어서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물질의 축복뿐만이 아니에요. 자녀들의 앞날도 주님이 열어주시면 형통케 됩니다. 간증거리가 생기고, 하나님 영광 받으실 일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돈만 쫓아다니고, 세상 것만 따라가면 나중에는 모두 잃어버리고 헛수고하고 후회하는 인생삽니다. 주님 원하신 자리로만 나아가면 일상생활의 문제는 걱정하지 않도록 하나님 역사하십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신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우선으로 살면 필요할 때는 돈도 힘도 명예도 다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생은 운명이나 팔자가 아니에요. 모든 방법이 다 실패할 때라도, 모든 문이 다 닫혔을 때라도. 여전히 주님은 나를 붙들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만 바로 되면 우리의 미래는, 앞날은 열립니다. 우리는 태어났으니 그저 사는 존재들이 아니에요. 시편 34: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하나님의 눈은 믿음의 사람을 향하십니다. 그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신다고 했어요. 들으실 뿐 아니라 응답하시고 축복하십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만 회복하면 됩니다. 신명기 15:4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정녕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믿을 뿐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셔서, 가난과 저주가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에서 떠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가 결국은 승리하고 축복의 열매를 거두게 됨을 생활을 통해 간증하고 증거하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5,6절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수라엘에게 평강이 있으리로다" 기독교의 축복은 당장 눈앞만 보는 것이 아니에요. 자녀와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지는 복입니다. 우리가 뿌려놓은 씨앗들이 자녀에게, 후손들에게 나타나고, 열매맺게 된다는 말입니다. 자녀들 교육 잘 시켜 보겠다고 뉴욕으로 이민을 간 가정이 있었습니다. 5년 동안 부인과 함께 하루에 14시간씩 주말도 없이 부지런히 일하여 가게를 조금씩 확장해 나가고, 돈도 제법 벌었어요. 주변 사람들은 다 그를 성공했다며 부러워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딸은 가출을 해서 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도 학교를 자주 결석합니다. 자신도 불면증과 관절염으로 시달리게 되니, 벌어 놓은 돈도 서서히 다 까먹기 시작합니다. 아이들 잘 길러 보겠다고 이민가서 열심히,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서 살았는데 교육도 망치고 자신의 건강도 망치고 남는 것은 병밖에 없더라는 거예요. 돈만 번다고 인생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에요. 환경 좋다고 자녀교육 잘 되는 것도 아니에요.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 이것이 축복입니다. 시편 112:1-2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후대가 복이 있는 복된 길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현대인들 참 만족을 잃어버리고 삽니다. 좋은 것 많이 먹어도 거기 만족이 없고, 큰집을 가졌는데도 그 속에 평안이 없는 거예요. 많은 지식과 학위를 가졌는데 그 속에 인격이 없고, 좋은 옷을 입었는데 속사람이 아름답지 못하더라는 거예요. 많은 것을 가져 보아도 행복하지 않더라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참 만족과 행복은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마귀는 언제나 편한 것, 좋은 것 가져다 주는 것 같지만 결국은 다 빼앗아 가버리는 거예요. 평안을 가져다 주는 것 같고, 걱정을 잊게 해 주는 것 같지만 결국은 망하게 하는 거예요. 잠시 쾌락을 주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버리면 더 큰 것을 잃어버립니다. 현실 너머를 볼 줄 아는 사람 후회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우리는 과소평가하기 쉽습니다. 내 것이 좋은 것입니다. 어떤 농부가 오랫동안 좋은 농장을 가꾸면서 행복하게 살았는데, 하루는 자기의 농장이 싫증이 나서 그것을 팔고 새 농장을 갖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팔려고 부동산 중개소에 농장을 내어놓고 새농장을 찾아보는데, 광고에 "넓고 기름진 땅, 좋은 농가, 큰 곡식창고, 이상적인 위치, 최신식 농기구를 갖춘 농장을 팝니다." 이런 농장이야말로 내가 갖고 싶은 농장이라 생각하고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자기의 농장이 광고에 났더라는 거예요. 때로 불만족스러워도 지금 나에게 있는 것이 좋은 거예요. 주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사야 49:23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 사무엘상 2:30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해 주시는 거예요.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와 자녀와 후손들의 앞날에 뜻하지 않은 화나 재앙이 침범치 못할 뿐 아니라, 악한 자들이 해치지 못하는 축복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지금 당장 무엇을 이루어 놓았느냐? 이것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유다는 똑같이 예수님을 따르며 실수하기도 하고, 책망받기도 했던 제자였지만 결국 베드로는 하루에 삼천 명을 회개시켜 새 사람을 만드는 위대한 사도가 되어졌고, 유다는 스승을 팔아먹고 자살로 인생을 마치는 실패자가 된 것입니다. 사람은 항상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에요. 늘 변해가는 것이 인생인데, 어느 방향으로 변해 가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조금씩이라도 바른 길로 변해간다면 그 사람은 소망이 있는 거예요. 결국에는 좋은 결말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예비하신 복을 받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도 처음에는 미미할지 몰라요. 그러나 들은 말씀들이 우리 속에서 뿌리내리고, 살아서 움직일 때 큰 열매가 나타나고 결국은 큰 역사를 일으킵니다. 역사는 들음에서 시작되는 거예요. 오늘 귀로 들었던 말씀들이 우리 가정과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생활로 그대로 성취되고 이루어지는 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지금 좀 불편해도, 지금 좀 어려워도, 지금 좀 고달파도 믿음으로 살아서 5년 후, 10년 후가 더 좋아지는 복된 가정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5년 후 10년 후가 더 좋아지는 복된 교회가 되어 가기를 축원합니다. 이 일에 내가 세워주신 그 자리에서 제물되어 지기를 축원합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획기적인 것이 이일을 이루는 것 아니에요. 충실하게 밭 갈고 씨 뿌리는 일이 결국은 좋은 열매와 역사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런 축복된 자리로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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