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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의 은사는 무엇입니까? (마 2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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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은사는 무엇입니까?
                                                    마25:14-30

어느 대학교 직업 상담소에서 '실패자가 되는 10가지 지름길'이라는 재미있는 글을 발표했습니다.
1. 난 틀렸다고 늘 넋두리를 하라.
2. 자기 자신을 무능한 사람이라고 항상 비난하라.
3. 모든 일에 불평거리를 찾아라.
4. 날마다 없는 것과 부족한 것만 찾아라.
5.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단점을 부지런히 살펴라.
6. 조금만 어렵거나 힘들면 빨리 포기하라.
7. 안 되는 일이 있으면 더 이상 하려고 하지 마라.
8. 쉽게 포기해 버리고 적당히 변명하라.
9. 얼굴은 항상 용기 없고 낙심된 모습을 보여라.
10. 한 번 실패하면 이젠 끝장이라고 믿어라.
그러면 당신은 반드시 실패자가 될 것이다.

뭐든지 쉽게 포기하는 사람, 언어생활이 늘 부정적인 사람, 작은 일에도 쉽게 낙심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늘 실패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때론 내 인생에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쳐 올 때도 낙심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은 승리의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본문 속에 하나님 앞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을 성공적으로 결산하며, 칭찬 듣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실패한 인생으로 하나님 앞에 서서 책망만 듣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24절부터 30절까지의 말씀을 다시 한번 교독합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한 주인이 먼 길을 떠나면서 자기의 소유를 사랑하는 종들에게 맡깁니다.
한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또 한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그리고 한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달란트를 받은 종들의 자세는 각각 달랐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는 바로 가서 장사를 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종도 바로 가서 열심히 장사하여 두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가서 그 한 달란트를 땅 속에 묻어 두었습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달란트를 맡긴 종들과 결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더 남긴 종은 주인에게 와서 "주여, 주께서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나이다"
주인은 매우 기분이 좋아서 말씀합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내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리라"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두 달란트를 남긴 자도 주인에게 동일한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받은 한 달란트를 땅 속에 묻어 두었다가 그냥 가져온 자는 주인에게 엄청난 책망을 듣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했습니다.
또 그가 받았던 한 달란트마저도 빼앗깁니다.
그리고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납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왜, 무엇 때문에 이 사람은 이런 책망을 듣게 되었을까요?
여기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했는데, 게으르다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악하다는 말에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본전 잘라먹는 사람도 수두룩한데 그래도 이 사람은 본전이라도 가져왔으니 게을렀을 뿐 악할 것까지야 없지 않아요?
안 그래요. 집사님!
그런데 주인이신 하나님은 이 종을 향하여 악하다고 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그는 주인이신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주인 앞에 나아와 자신을 변명하면서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굳다"라는 말의 원어상의 뜻은 "완악한, 혹독한, 엄한, 잔인한, 고집센"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종은 주인을 완악하고 고집이 센 잔인한 수전노 같은 사람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에게 귀한 달란트를 맡겨준 주인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비뚤어진 마음으로 주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한 달란트를 땅 속에 묻어두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주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가장 오래 참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종은 그러한 주인을 악한 주인으로 생각했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그는 소극적이었습니다.
25절을 보면 "두려워하여"땅에 감추어 두었다고 했습니다.
그 뜻은 실패할까봐 두려웠다는 것이고 실패한 후에 주인한테 문책 당할까봐 두려웠다는 것입니다.
소극적인 사람은 큰일을 못합니다.
풍랑 만나 쩔쩔 매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내니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겁내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사람이 성공하고 큰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셋째, 그는 주인이 주신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한 달란트라고 하니까 아주 작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그 당시 한 달란트는 한 사람이 최소 20년은 먹고 살 수 있는 큰 금액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땅에 그냥 묻어 두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비교의식 때문이었습니다.

제임스 오펜하임이라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는 행복이 어딘가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명한 자는 행복을 자기의 발치에서 키운다"고 했습니다.
 
넷째, 핑계가 많았습니다.
일을 잘하고 충성하는 사람은 핑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일을 안 하는 사람일수록 핑계가 많고 말이 많습니다.
헌금 생활을 열심으로 하는 사람은 헌금 종류 많다고 투정부리지 않습니다.
안 하는 사람이 말이 많습니다.
전도 열심으로 하는 사람은 전도시킨다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기도 생활 힘쓰는 사람도 기도 투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맨밥을 먹어도 소화가 잘되는 사람은 찬물에 꾹꾹 말아 김치 한가지로 밥을 먹어도 맛있게 먹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밥투정, 반찬투정이 많은 것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저처럼 살이 찌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사회 생활이나 신앙생활이나 핑계가 많고 불평이 많은 사람은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절대 축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있는 것도 빼앗아 갑니다.
이것이 믿음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두 달란트 받은 자와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어떠했습니까?
첫째, 바로 가서 충성했습니다.
16절을 보면 "바로 가서"라고 했고, 17절을 보면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 같이 하여"라고 했습니다.
이것저것 망서릴 필요없이 달란트를 받자마자 즉시 일하러 나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엄청난 달란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훗날 쓰겠다고 미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는 사람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굉장한 달란트를 주인 마음에 들게 사용하지 않고 제멋대로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가서 해야 합니다.
미뤄도 안되고 지체해도 안됩니다.

요즘 수요 예배시간에 창세기를 강해하고 있는데 그 동안 아브라함의 생애 속에 함께 하신 하나님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생애를 추적하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그가 믿음의 조상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던 중요한 태도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마다 그는 즉시 그 말씀에 순종하여 따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어 보내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그 말씀대로 행합니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물로 바치라고 했을 때, 그 때도 역시 아침 일찍 일어나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을 때, 그는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즉각적인 순종, 바로 그것이 그로 믿음의 조상이 되게 했고,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여호수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이 차고 넘치는 요단강을 건널 때, 그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나아갑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넘치는 요단 물이 위로부터 마르게 하시고, 그 백성들을 기적 가운데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철옹금성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도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아침 일찍 일어나 지체하지 않고 순종하여 나아갑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 주셨습니다.
즉각적인 순종, 즉각적인 헌신은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둘째, 그들은 작은 일에 충성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섯 달란트 남긴 종과 두 달란트 남긴 종을 칭찬하십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네게 큰 일을 맡기리니"

여러분, 여러분이 기업의 오너라면 어떤 사람에게 중요한 일, 큰 일을 맡기겠습니까?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 바로 그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지 않겠습니까?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한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십니다.
요셉은 애굽 땅,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에게 닥친 불행한 현실을 원망하지 않고, 그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했을 때, 보디발은 그를 들어 집안의 모든 사람을 돌아보는 집사, 청지기로 삼았습니다.
나중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을 때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그 주어진 자리에서 작은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그를 애굽의 국무 총리로 세워 주셨습니다.

다윗은 목동이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왕을 새롭게 세우기 위해 아버지 이새의 집에 왔을 때, 그는 아버지로부터 초대를 받지 못하고 홀로 들판에서 형들의 양무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들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는 왕이 되기 전에 사울 왕 앞에서 수금을 타며 찬양하는 자로서 충성을 다했습니다.
보잘 것 없는 것 같이 아주 작은 일, 그러나 그 일에 충성할 때 열매가 있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들어 큰 일을 맡겨 주십니다.

  1494년 이탈리아의 여름, 한 영주가 이른 새벽 시간에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원 한 구석에서 누군가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가까이 가 보았더니 한 젊은 정원사가 나무로 만들어진 화분에 조각을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여보게, 이런 일을 한다고 누가 임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이른 새벽부터 조각은 왜 하는가?
청년이 말했습니다.
"저는 이 정원을 아주 사랑합니다.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저의 직무이므로 저는 보수와 상관없이 기쁘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영주는 아주 감동을 받고 그 청년에게 미술 공부를 시켰습니다.
후에 이 청년은 르네상스 시대에 최고의 미술가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입니다.

  성도 여러분, 자기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남이 시켜서 한다든지 남의 눈치 때문에 한다든지, 체면 때문에 일한다면 그곳에는 기쁨도 없고, 열매도 없습니다.
그러나 열정과 사랑을 가지고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곳에 위대한 성공의 꽃을 피울 수 있고,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은 바로 거기서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작은 일에 충성하여 배로 남긴 종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축복을 허락하십니까?
첫째는 더 많은 것을 맡겨 주십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케 하십니다.
셋째는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달란트 있는 자에게 주십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말씀합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더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게 하나님 나라의 믿음의 법칙입니다.

저는 늘 기도합니다.
우리 홍익교회 모든 성도들이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더 받아 풍성하기를 원합니다.
믿음의 분량도 더 풍성하기를 원합니다.
섬김의 분량도 더 풍성하기를 원합니다.
생업의 터전에서도 지경이 넓어지고, 아브라함처럼 복의 근원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와 여러분이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먼저 땅에 묻어 둔 여러분의 은사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한 가지 이상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 은사를 땅에 묻어두지 마십시오.
드러내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다듬어 사용하십시오.
교회 안에서, 그리고 여러분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자리에서 그 은사를 다른 사람을 섬기고 봉사하는데 사용하십시오.

은사는 하나님께서 내 자신을 위해 준 것이 아니라 이웃을 섬기고 봉사하라고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묵혀두지 마시고, 바로 가서 사용하십시오.

저는 2000년 한 해를 결산하며 새로운 한 해를 기도로 준비하면서 우리 홍익교회 모든 성도들이 교회안에서, 교회 바깥에서 한 가지 이상의 은사를 드러내 섬기기를 원합니다.

받은 은사를 땅에 묻어 두면 주님 앞에서 결산하게 될 때, 책망을 받게 됩니다.

미국의 부흥사 디엘 무디 선생께서 부흥회를 열고 있는데 어느 신문사의 기자가 무디 목사님의 설교에 흠을 잡아 신문에 기제 하려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그 기자는 무디 목사님을 찾아가서 말하기를 "목사님 오늘 목사님의 설교는 은혜스러웠지만 설교하는 동안에 36번이나 문법이 틀렸습니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사실 무디 목사님은 국민학교 2학년 중퇴하고 만 사람입니다.  그리고 목사들이 설교할 때 문법도 많이 틀리기도 하고 더듬거리기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무디 목사님은 대답하기를 "예 저는 많이 배우지 못하여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선생은 많은 지식을 가지고도 주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라고 반문을 하니까 아무런 대답도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지식이 아닙니다.
아는 대로 믿고 행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구세군이라는 교단이 있습니다.
이 교단의 구세군 신학교는 학제가 2년을 공부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신학교가 4년이 아니고 2년만 공부를 하냐고 했더니 처음 구세군이 만들어 질 때 빨리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2년만 공부를 시킨다는 것입니다. 즉 쓸데없이 시간만 늘여서 공부를 하는 것이 시간 낭비라는 것입니다. 남들이 4년 공부할 것을 2년에 마치고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 구세군의 이론입니다.

설교를 들었으면 들은대로 가서 행하십시오.
그대 다섯 달란트 더 남기는 축복이 임합니다.
혹 다른 사람에 비해 내 은사가 초라해 보이고 작게 보입니까?
그러나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십시오.
그리할 때, 하나님은 더 큰 은사를 주시고 큰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1947년 미국의 시카코 근교의 위스칸신 주에 있는 천체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과학자, 천체 물리학자 닥터 첸드리스카 박사는 시카코 대학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습니다.
"박사님, 겨울 방학 동안에 저희 대학에 와서 고급 물리학에 관한 특별강의를 좀 해주시겠습니까?"
그는 쾌히 승낙을 했습니다.
몇 주 후에 다시 대학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박사님, 아무래도 강의를 취소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아니 왜요?"
"클래스가 너무 작아서요. 두 명밖에 등록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첸드리스카 박사는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클레스가 작은 것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 두 명은 어떤 학생인가요?"
학교측에서 그들에 관해 알려주자 첸드리스카 박사는 강의를 수락했습니다.
시카코의 겨울은 유난히 춥습니다.
눈보라, 차갑고 사나운 바람이 몰아치는데도 이 분은 시카코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시카코대학을 일주일에 이틀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계속적으로 두 학생을 가르쳤습니다.
그로부터 꼭 십년이 흘러갑니다.
이 첸드리스카 박사에게 강의를 받았던 두 사람이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첸넝 양 박사라는 분이고 또 한 분은 충도 리라는 중국계의 미국 과학자들입니다.
그들은 수상의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 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우리 두 사람만을 앞에 놓고 강의했던 첸드리스카 박사의 강의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단 두 명의 학생밖에 없었지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을 때, 아름다운 결실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은사가 보잘 것 없다고 땅에 묻어 두지는 않았는지요?
아니면 그 은사를 소홀히 여기지는 않았는지요?
게으르지 말고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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