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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로 나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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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집회. (19. 2. 5. 오후)

 

19-19: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9-13: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셋째 날에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게 했다. 첫 날에 뭘 만들었다? 빛을 만들었고, 둘째 날은 위의 물과 아래의 물을 위치적으로 나누었다. 셋째 날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게 했다. 물의 성질은 낮은 곳으로 모인다. 제일 낮은 곳에 물이 제일 많이 모인다. 이것을 통해서 신앙의 이치와 성질을 봐라. 사람들이 어디에 제일 많이 모이는지? 그곳이 도덕성적으로 낮은 곳인지, 높은 곳인지 잘 봐라. 자기가 갈 곳인지, 안 갈 곳인지 잘 봐라.

 

예수 믿는 내가 안 믿는 사람들이 많이 생각을 하는 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건 낮은 곳이요, 낮은 곳의 생각이다. 낮은 곳에 모인 사람들은 그 생각이 낮은 것으로 가지고 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높으냐, 낮으냐에 따라 자기 몸이 그곳으로 움직여진다. 자기가 만들어진 대로 자기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건 못 속인다.

 

물이 한 곳으로 모이지 않은 상태에 있었는데 천하의 물을 낮은 곳으로 모이게 하니까 뭍이 드러나고, 드러난 그 뭍에 뭐가 있었는지 다 드러난다. 농사를 지을 때 논 옆에 웅덩이를 파 놓는데, 이 물을 농사에 쓰려고 다 퍼내면 그 속에 무엇이 살고 있는지 드러난다. 물을 한 곳에 모아서 뭍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이 뭍 아래에 있던 돌도 드러나고, 산도 높은 산부터 먼저 드러나면서 나중에는 낮은 산도 드러나고, 골짜기도 드러나고, 평지도 드러나고, 강도 드러난다. 다시 말하면 생물을 살리고 생산이 되게 하는 이 면이 드러나는 거다. 그리고 드러난 뭍의 땅에 각종 씨 맺는 채소와 각종 열매 맺는 과목을 내도록 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지어졌다. 진화론자들은 주로 짐승이나 사람에 대해서만 진화를 말을 하지 나무 같은 것에 대해서는 진화론적으로 잘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진화론의 주장대로 본다면 나무도 나무가 되기 전에 그 무엇으로 있었는데 그게 진화를 해서 나무가 되었다고 할 거다. 이건 황당한 소리요 이치도 아닌 소리다. 이런 걸 믿게 하는 교육,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모든 사고방식은 정상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각종 채소와 각종 과목이 번식하는 것을 보면 뿌리로 번식이 되는 것도 있고, 가지를 꺾어서 땅에 묻으면 번식이 되는 것도 있고, 씨방이 바람에 날려서 번식이 되는 것도 있다. 참 신비롭다. 그리고 열매가 각종 동물이나 새에게 먹이가 되어서 짐승의 변으로 그 씨가 나와서 번식이 되는 것도 있다. 그런가 하면 짐승이 먹은 열매가 변으로 나온 것을 인간이 받아서 음식으로 만드는 것도 있다. 각종 채소와 각종 과목이 철 따라 나게 했고, 사람들에게 쓰이는 용도가 나무마다 다 다르게 했다. 참 신비롭다. 이렇게 되게 한 것은 인간이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거다.

 

동네가 뒤에는 산이 있고, 옆에는 강이 흐르고, 앞에는 바다가 있다면 얼마나 보기 좋으냐? 한 폭의 그림 같다. 그런 것처럼 땅과 물이 나눠진 것도 보기가 좋고, 땅의 각종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과목도 하나님의 보시기에 보기가 좋다.

 

여기서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는 것은 창조의 목적관에서 볼 때 이 모든 것들이 성도의 구원에 부족함이 없다는 면에서 이 생각을 염두에 두고 만족하시다는 뜻이다. 그냥 장미꽃이 보기가 좋다이것보다도 그 안에 성도들의 구원의 뜻이 들어있다 그 말이다. 그리고 성도들이 구원을 잘 이뤄갈 수 있도록 만물이 계속적으로 보존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하나님께서 보시고 좋은 거다. 씨를 맺는 열매는 하나님이 내신 것을 보존하는 요소가 들어있는 거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성도들이 열매 맺는 씨를 보고 자기의 삶에서 신앙의 열매가 어떤 것으로 맺어야 되겠다고 하는 깨달음을 준다는 면에서 하나님께서 이걸 보고 좋았던 거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첫 열매를 바치라고 했는데, 만일 농사를 지은 무나 배추나 과일의 첫 열매가 벌레를 먹고 제대로 안 자랐다면 이걸 첫 열매로 드려야 하겠느냐, 다른 좋은 것을 골라서 드려야 하겠느냐? 그러니까 성경 문자대로 지키려고 하다보면 많은 문제가 생기는 거다.

 

물질적인 것을 첫 열매로 드리라고 하는 것은 신앙적인 면에서 첫 열매를 드리라는 말인데, 신앙의 세계에서 자기의 신앙이 열매 맺게 한 분이 누구냐? 어찌 보면 우리의 삶도 농사를 짓는 것과 같다. 우리의 삶의 농사를 짓는 분은 하나님이다. 나는 가꾼 것밖에 없다. 하나님이 비도 주시고, 바람도 주시고, 햇빛도 적절하게 주신 거고 나는 심부름만 한 거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셨구나이런 마음이 들어간다면 하나님에 대해 감사가 나오게 되는 거고, 그 감사의 마음이 물질로 표시가 되는 거다. 이게 인격의 세계다.

 

그런데 이방세계는 감사를 맨 우상에게 한다. 자기가 먹고 마시고 한 것 전부가 하나님의 은택으로 된 것임에도 감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우상에게 하고 있으니 이건 나쁘게 말하면 미친 거다. 예를 들면 부모의 노력으로 자기가 잘 먹고 마시고 살았다면 부모에게 감사를 해야지 다른 곳에 가서 감사를 하고 있다면 이게 무슨 짓이냐? 생각을 어떻게 가져야 옳은 거냐?

 

인간이 농사를 지어서 열매가 잘 여문다면 농사꾼의 마음이 기쁘다. 그리고 자기만 기쁜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다 기뻐한다. 자기 속에 참 사람 되는 열매가 열려 있다면 만물도 기뻐하고 다른 사람도 다 기뻐한다. 옳은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 기뻐한다.

 

옳은 인격으로 열매가 맺었으면 여물어진 그 속에서 옳은 말이 나오고, 이치 있는 말이 나오고, 사람이 감동이 되는 말이 나오고, 사람이 깨달아지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신앙 믿음이 없고 세상정신을 가진 사람은 머리에서부터 마음속까지 세상 썩을 것으로, 냄새나는 것으로, 불탈 것으로, 자기 기분적으로 다 들어있다. 그러니 이게 사람이냐? 이런 사람은 앞으로 살아나가는 데도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럽겠느냐?

 

셋째 날에 뭘 만들었느냐? 셋째 날에 만든 것마다 우리가 구원을 잘 이뤄갈 수 있도록 만드셨기 때문에 이 면에서 하나님께서 산과 바다, 산천초목을 보고 기뻐하시고 보기가 좋은 거다. 신앙 면으로 볼 때 원칙적으로 좋은 물만 모인 곳이 어디냐? 교회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나쁜 물만 모인 교회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모인 그 물을 잘 구별해야 한다. 교회에는 뭐 하려고 모이는 거냐? 사회 같으면 많은 무리들이 꾸역꾸역 모이면 뭐 하려고 모이는 거냐? 그 수준이 있는 거다. 그 수준이 좋은 물인지 나쁜 물인지, 나쁜 사상인지 좋은 사상인지이게 있는 거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만들어 놓고 딱딱 구별을 시켜놨으니 우리는 분별을 해야 한다. 자기 생명이 걸려 있고 일생이 걸려있는 거다. 하나님은 구별을 하시고 좋았다고 했는데 자기는 구별을 했는데 하나님의 보시기에 싫었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냐? 자기가 분별을 못해서 처음에는 좋은 사람인 줄 알고 사귀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 사람에게 속고 피해만 봤다면 누구 탓을 할 거냐? 다 자기 탓이다. 사람을 모르는 자기 탓, 지식이 결여된 자기 탓이다.

 

사람이 사람을 모르면 안 된다. 농사꾼이 농사의 지식을 모르면 안 된다. 짐승을 기르는 사람이 짐승을 모르면 어떻게 키우느냐? 병원에서도 사람에 대해 병을 잘 알아야지 모르면 안 된다. 영적으로 보면 인간의 제일 중심 되는 게 영적인 면인데, 목사고 교인이고 간에 이 면에 대해 모르면 안 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걸 전제적 지식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14-19: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넷째 날에 해도 달도 별도 만드셨고, 만든 것만이 아니라 땅을 비취게 했다. 땅을 비취려면 땅바닥에 붙어있어야 하느냐, 땅 위에 떠 있어야 하느냐? 사방이 어두울 때 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항상 그 불을 높이 치켜든다. 어두울 때 불을 켜서 말로 씌우는 사람은 없다. 불을 든 사람은 높이 올리게 되어있다.

 

궁창은 6절의 둘째 날에도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고 했는데, 이 광명은 해를 말한다. 해를 만들어 놓고 주야를 나뉘게 하라고 했다. 밤과 낮을 나뉘게 하라고 했다. 그러니까 해가 비취면 낮이고, 해가 없는 곳이 밤이 된다.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은 완전히 다르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있는 곳은 밝다. 그러나 애굽사람이 있는 곳은 흑암이다. 이건 비유를 들어서 계시를 가르쳐 주는 거다. 이걸 물리적 개념으로 본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있는 곳과 애굽백성이 있는 곳의 하늘에 칸막이가 된 거냐? 이게 무슨 칸막이냐? 물질적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거다. 그러면 이걸 어떻게 이해를 해야 되느냐? 그냥 밝았다. 어두웠다이렇게만 보지 말고 영적 계시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이 있는 곳에는 해가 있다. 밝음이 있다. 말씀의 이치가 있다. 이걸 말해주는 거고, 애굽이 있는 곳에는 이게 없다는 걸 말해주는 거다. 그래서 밝음과 어두움으로 나누어 놓은 거다. 이스라엘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이 보내신 종 모세가 있지만 애굽은 이게 없다.

 

이걸 개인적 신앙 면으로 보면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 머릿속에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이해타산 소원 목적이 들어있다면 이 사람은 예수를 믿어도 애굽사람이다. 이 사람은 밤이다. 어둡다. 눈을 떴어도 어둡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구원을 아는 면에 소경이다. 이게 이해가 되느냐? 이걸 깨닫지 못하면 그 역사를 통해서 자기가 뭘 깨달을 거냐?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의 위치를 알아야 내가 어두운 곳에 있는 건지, 밝은 곳에 있는 건지를 알 수 있는 거다.

 

모세가 지팡이를 던지니 이 지팡이가 뱀이 됐다. 애굽의 술객들도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됐다. 그러면 모세가 지팡이를 뱀이 되게 한 것은 하나님의 역사고, 애굽의 술객들의 지팡이가 뱀이 된 것은 누구의 능력이냐? 하나님께서 애굽의 술객들에게 모세에게처럼 능력을 조금 빌려준 거냐? 인간의 술법이 뱀이 되게 할 수 있는 거냐? 인간의 술법으로 보면 마술사들의 가슴 속에서 비둘기도 끄집어내고 계란도 끄집어내는데, 마술사의 가슴 속에 닭 집이 있는 거냐? 마술사가 창조주 하나님처럼 닭을 만들어 내는 거냐? 그건 다 눈속임이다.

 

하나님께서 지팡이로 뱀을 만든 애굽의 술객들에게 능력을 빌려준 거냐, 자기들의 능력으로 뱀이 되게 한 거냐? 우리로 뭘 알게 해 주려고 이것이 기록이 되었을까? 그냥 단순히 능력문제를 말하는 거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모세의 지팡이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기 위해서 지팡이로 통해 그런 능력이 나타나게 한 거다.

만일 모세가 잠을 잘 때 누군가가 모세의 지팡이를 가져가서 능력이 나타나게 하려고 한다면 그게 되느냐? 또는 애굽의 술객들이 모세의 지팡이를 훔쳐다가 쓰면 모세가 한 것처럼 역사가 일어나는 거냐? 그리고 반대로 모세에게 애굽술객의 지팡이를 안겨주면 모세가 애굽술객이 되는 거냐? 하나님의 역사가 어떤 물질을 붙잡고 주격이 되어서 하는 거냐, 사람을 붙잡고 되는 거냐? 사람을 붙잡고 되는 거다. 자기를 붙잡고 되는 거다.

 

모세가 지팡이로 뱀이 되게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끄집어내기 위한 목적이고, 애굽의 술객들이 뱀이 되게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애굽에 눌려 앉히려는 목적이다. 그러니까 지금도 어떤 이적 기사가 나타났을 때 이게 하나님의 능력이다, 아니다하지 말고 아무리 성경구절을 가지고 그렇게 했다고 할지라도 그게 성도들을 정신 사상 면에서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내려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을 향하게 하려는 것인지를 봐야 한다.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여기서의 광명은 해를 말한다. ‘주야를 나뉘게 하라.’ 그러니까 낮이 되고 밤이 되고 하는 것이 해에게 있는 거냐, 밤에게 있는 거냐? 해다. 해가 비추이는 곳은 낮이고, 해가 없는 곳은 밤이 된다. 이게 그냥 단순히 해와 달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의 구원의 이치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아무 교회나 가서 충성봉사를 많이 하면 아브라함처럼 믿음이 들어가고 좋아지는 거냐,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그 신앙이라야 믿음이 좋아지는 거냐? 어느 게 옳은 순서냐? 그런데 기독교인들 대부분이 교회의 교훈의 중요성은 모른 채 그냥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충성봉사를 많이 하면 믿음이 좋은 것으로 안다. 우리는 매사에 구별 분별이 들어가야 한다.

 

아는 게 빛이고, 모르면 어두움이다. 말하자면 재앙감이다. 해가 없는 곳은 밤이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는 곳은 대낮처럼 밝고, 애굽사람들이 있는 곳은 밤이다. 해가 없다. 빛이 없다.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은 완전히 다르다. 근본적으로 다르다. 밝으면 일을 하는 거고, 밤이 되면 자는 거다.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게 하는 것은 큰 광명이다. ‘징조란 너희 앞으로 무엇이 점점 다가온다고 하는 전조현상이다. 지금 남쪽지방에 매화꽃이 피었다고? 이건 뭐가 온다는 징조냐? 봄이 오고 있다는 거다. 징조는 자기에게, 또는 가정에, 또는 사회에, 또는 국가에 무엇이 다가온다는 전조현상이다. 어느 나라가 무기를 많이 만들어 놓고 자꾸 자랑을 한다면 이건 뭘 하겠다는 거냐? 싸우겠다는 거다. 우리는 자기에게 어떤 징조가 다가오는지를 느낄 줄 알아야 한다. 몸으로, 정신 사상으로, 소원 목적으로, 예수 믿는 태도로, 깨달음으로, 자기의 모든 언행심사로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사시란 사계절, 즉 사시사철을 말한다. 봄이 오는 징조, 여름이 오는 징조, 가을이 오는 징조, 겨울이 오는 징조, 다 징조가 있다. 자기가 지금 계절적으로 봄이든 여름이든 가을이든 겨울이든 어느 계절을 살고 있던 간에 내가 지금 신앙 면에서 어떤 시기를 맞고 있는 건지? 이렇게 가다가는 내가 어떻게 되겠는지?’ 이런 걸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인격자의 세계는 이걸 다 느끼는 거다. 모르면 안 된다. 날씨도 전조현상이 있어서 현상과 징조를 보고 앞으로 살아갈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하게 된다.

 

일자란 하루 하루를 말한다. 한 날은 저녁과 아침으로 이루어진다. 이 일자가 수없이 지나가면 계절이 찾아오고, 이 계절이 네 번 지나면 일 년이 된다. 이 이치는 분명하다. 그렇다면 인간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에 밤과 낮이 얼마나 지나갔으며, 사계절이 몇 번이나 지나갔는지? 자기 나이가 70살이라면 사계절이 70번이 지나갔는데, 70년이라고 하는 세월 동안에 사계절의 각 절기가 몇 번이나 지나간 거냐? 그리고 70년 동안 낮과 밤은 몇 번이나 지나간 거냐? 이게 다 자기가 살아온 그림자요 발자취들이다.

 

이렇게 살아온 나날들 중에 자기의 나이적으로 어떤 전조현상들이 일어났으며, 이 전조현상을 어떻게 대처하며 살아왔기에 지금의 나의 결과가 된 거냐? 오늘의 결과가 또 내일의 전조현상이 되는 거다. 내일이라고 하는 그 날에 맺혀질 열매가 오늘의 준비가 되고, 내일의 열매가 또 모레 준비가 되고, 계속 연속이 되는 거다. 이런 현상들이 자기에게 밝은 것으로 일어난 것인지, 어두운 것으로 일어난 것인지? 빛이 없는 삶으로 일어난 것인지, 빛이 있는 삶으로 일어난 것인지? 이걸 생각해 봐라.

 

이런 걸 다른 사람들은 쉽게 생각을 못하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일종의 철학자가 되는 거다. 중들이 이런 걸 생각을 할 줄 아느냐? 못한다. 그들이 지금 빛이 있는 곳에서 목탁을 두드리고 있는 거냐, 빛이 없는 곳에서 그러고 있는 거냐? 영적으로 보면 그들은 해가 없는 곳에서 그러고 있는 거다. 그런 곳에 사는 것이 뭐가 있겠으며, 생명이 있는 정신이 뭐가 있겠느냐? 생명이 있다면 사람에게 자기 생활로 다 나오는 건데 산속에 처박혀 있는 게 생명적인 거냐? 생명이 있는 것은 정복이고 개척이고 그 삶이 신나는 거다.

 

믿는 우리는 자연만물을 통해서 내 자신부터 영적인 면을 보고 깨달아야 한다. 그냥 자연물만 보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만물을 만들어 놓은 의미가 없는 거다. 내가 깨닫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드시는 것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이게 있는 거다.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작은 광명이란 달을 말하는데, 밤에 땅을 비추라고 했다. 낮의 해가 땅을 비추면 땅에는 이 해의 혜택을 받는 사람이 있다. 해의 혜택을 안 받으려면 그늘에 있거나 굴속에 있으면 된다. 그리고 달은 밤에 비취는 건데, 달이 없는 밤도 있다. 밤에 구름이 끼었다는 게 아니라 그믐밤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달에게 밤에 비추라고 했는데 달이 없는 밤이 있다. 이처럼 달이 없는 밤에는 별이 그 역할을 한다.

 

달이 기울어지는 정도를 보아서 며칠이 지났는지 안다. 또 해가 정 위에서 옆으로 가는 것을 보고 몇 월이 지나가는 것인지 짐작을 한다. 해가 여름에는 거의 정상으로 해서 서쪽으로 기울고, 겨울이 될수록 더 크게 기울어서 진다. 마치 옆으로 떴다가 옆으로 지는 것 같다. 그리고 해도 달도 뜨는 시간이 각기 다르다.

 

그러면 달빛을 햇빛처럼 밝게 비취게 하게 하면 안 될까? 이러면 어떤 폐단이 있을까? 사람의 신체가 돌아가는 패턴이 안 맞아 들어간다. 밤에도 해가 있는 것처럼 밝다면 사람들이 낮인 줄 알고 잠을 못 잔다. 그래서 달빛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거다. 그런데 신비로운 게 짐승들 중에는 밤이 되어야 눈이 밝아지는 짐승도 있다. 이런 동물은 밤 동안에 사냥을 못하면 죽는 거다. 그 이치가 성령님이 활동하는 곳은 늘 밝기 때문에 마귀가 잘 못 건드린다. 시험을 칠 수가 없다. 이놈의 마귀는 어두운 곳에 가야 눈이 밝아서 자기 세상을 만난 것처럼 자기 밥거리를 찾는 거다. 모든 사물의 이치는 영을 기준으로 하고 나온 거다. 이걸 꼭 알아야 한다.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별들에게 궁창에서 땅을 비취라고 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달이 없는 그믐밤은 별들이 달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면 이 별들이 밤에 무슨 역할을 할까? 나침반이 없는 항해사나 바다에서 조각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이 별자리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길을 찾는다. 이게 다 우리들의 영적인 이치에 맞도록 들어가 있는 거다.

 

영적으로 보면 해는 큰 광명이니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주님으로 볼 수 있고, 달은 그 비췸을 받는 교회로서, 교회는 말씀으로 이방세상을 비춰주어 깨닫게 해서 죄에서 떠나게 해야 한다. 밝은 요소가 없으면 밝게 비춰지지를 않는 거다. 자기가 밝지 못하면 자기 자신을 못 보는 거고, 따라서 다른 사람의 어두운 곳도 못 보는 거다. 이치가 그렇다. 우리는 영적인 면에 눈이 밝아서 사람들의 정신 소원 목적, 무슨 취미, 무슨 시간을 어디에 가서 잘 모이고 이런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게 다 남이 아니라 바로 자기다. 자기의 마음속의 정신세계에 밝은 요소가 없으면 밝게 비춰주지를 못하는 거다.

 

땅에 붙은 교회는 빛이 없는 교회다. 소원 목적이 땅에 붙어있으면 빛이 없는 교회다. 빛이 없는 교인이다. 그러니까 그믐과 마찬가지다. 별은 죄악 된 세상에서 나그네를 생명 길로 인도하는 진리의 성도를 상징한다. 말하자면 아브라함의 신앙정신을 가지고 있는 성도를 말한다.

 

예수를 믿으면서 세상 사람들처럼 히히닥 거리기만 했을 뿐 안 믿는 사람을 전도해서 교회로 인도한 것이 하나도 없다면 이런 사람은 이 천지창조의 기록을 보면서 뭘 느끼는 거냐? 네가 느끼라고 기록해 놓은 건데 너는 뭘 하고 있느냐? 이런 사람은 우리 입장에서는 공중에 떠 있는 별이 아니라 땅에 붙어있는 별이다. 공중에 있는 별은 위치적으로 성분적 질적으로 고상함적으로 직분적으로 하늘의 것을 비춰주는 신분으로 들어가 있는 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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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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